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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21화 (1,22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21화>

“……!”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머릿속에서 상황이 재구성됐다.

-전생 천마는 천마 신공의 극을 넘어 비상, 천강의 불꽃으로 하늘과 땅을 이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원을 올린 순간 초월자 김철수의 부름이 전해졌다.

-그 부름에 따라 차원 방벽을 뚫고 도착한 세기말 대한민국 북한산.

-북한산에서 후생의 자신을 만나 마업을 건네받고 인과를 이었다.

-다시 돌아온 마도 18문! 수십만 무인 앞에서 승천한다고 구라를 치고 하늘을 올랐다.

천강의 불꽃이 폭발해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순간.

불쑥 튀어나온 존재가 천마의 본질을 낚아채 사라졌다.

전생 천마는 흐름으로 돌아가 현생 알바로 태어난 게 아니라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끌려갔다!

자신은 존재조차 몰랐던 기억!

전생 천마의 죽음과 현생 알바의 탄생 사이에 ‘빈 공간’이 있었다!

전생 천마는 그 사실을 자신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보여 줬다.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흐르는 순간 머리털이 쭈뼛쭈뼛 곤두서고 번쩍 질문이 떠올랐다.

‘왜? 아니 어떻게?!’

그렇다! 지금 중요한 건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방금 일어난 사건은 자신에겐 과거이지만, 천마에게는 미래다!

즉, 전생 천마는 아직 겪지 않은 미래의 일을 예상하고 자신에게 보여 준 거다!

‘전생 천마는 어떻게 겪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알고 있던 거지?!’

생각과 동시에 입에서 답이 튀어나왔다.

“전법륜인! 뜻을 전하는 수인으로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했으니까!”

그렇다! 전생 천마에게 이 모든 것! 자신조차 잊은 기억을 전해 준 것은 자신이었다!

과거를 바꾸고, 기억을 잊고.

하늘의 저울에 대가로 바친다고 해도.

일어났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생 천마가 엿본 미래!

현생 알바가 잊은 과거!

기억은 사라졌어도 일어났던 ‘사실’은 여전히 자신의 본질 안에 남아 있었다.

전생 천마는 그 본질에 새겨진 ‘사실’, 자신의 미래이자 현생 알바가 잊은 과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생 천마는 자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 □□□ □□□□! □□□ □□□ □□□ □□□□!’

‘온 정신을 집중해라!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게 일어난다!’

전생 천마의 경고대로 모든 것은 찰나에 일어났다.

포아아아앙-

새하얀 섬광 속에서 튀어나와 전생 천마의 본질을 낚아채 사라진 존재!

듣는 순간 감이 왔다.

세계의 나무.

나뭇가지에 걸리는 부하.

그리고 자신을 찾아올 적예.

전생 천마가 말할 수 없던 모든 것이 이 존재와 얽혀 있다!

이 존재의 정체를 알게 되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아무 이유 없이 전생 천마의 본질을 낚아챘을 리 없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다!

“……!”

천문석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전생과 현생에서 인과가 얽힌 수많은 사람과 요마괴이, 초월종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몰아쳤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거다!’ 하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생 천마는 누군가 자신의 본질을 낚아챌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가능한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다.

그 일이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를 잇는 인과의 고리였으니까!

“도대체 누구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문득 느껴졌다.

휘이, 휘이이-

휘파람 소리를 닮은 바람이 귓가를 스칠 때.

전생 천마의 마지막 사념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천문석, 돌멩이의 본질은 천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늘조차 거스르는 절대 후회를 남기지 않는 천마!’

“설마!?”

전생과 현생, 천마와 알바.

이름과 서는 자리는 달라졌지만,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는 같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전생 천마의 사념에 담긴 속뜻을 알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생긴다.’

-하늘조차 거스르는.

‘하늘을 거슬러야만 얻을 수 있는.’

-절대 후회를 남기지 않는 천마!

‘어떤 대가를 치러서든 반드시 손에 넣어라.’

“하늘을 거슬러야만 얻을 수 있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생긴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든 반드시 손에 넣어라.

전생의 자신이 전한 사념을 말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이어졌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 끝나는 순간 북을 치는 듯한 진동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전했다.

“…….”

천문석은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서 전생의 자신이 전한 말을 곱씹었다.

휘이이-

이때 반짝이는 물방울이 얼굴에 닿아 톡- 터져 나갔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고요한 북한산.

휘이이이-

계절에 맞지 않는 따뜻한 바람에 실린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흩날리고 있다.

어느새 메워지기 시작하는 균열을 지나, 여전히 빛의 고리를 만들어 내는 각성력의 태양이 뜬 하늘에서.

물방울을 쫓아 움직인 시선은 숲 속 공터 한가운데서 멈췄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거대한 빛의 탑.

초월자 김철수가 만든 적층형 마력 회로가 물거품처럼 꺼지며 반짝이는 물방울을 흩날리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어째선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본질을 태워 서약의 불꽃을 일으킨 재의 기사.

힘을 깎아 각성력의 태양을 하늘에 띄우고 마력 폭풍을 일으킨 초월자 김철수.

재의 기사와 김철수가 행동으로 보여 줬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고심할 필요는 없다.

전생 천마가 말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낚아채여 어디론가 사라진 전생 천마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사라진 전생 천마의 미래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어째서일까?

사라진 전생 천마가 지구에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을 거란 느낌이 왔다.

사건·사고와 불운, 재앙이 뒤엉킨 난장판에서 구르는 전생 천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게이트 전쟁이 터지기 전, 한국 군대가 대가 없는 헌신을 요구하던 시절. 모든 입대 장병의 꿈이 있었다고 한다.

입대 후 첫날밤 잠들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26개월이 지나 전역일이 오는 꿈!

지금 자신의 상황은 입대 장병들의 꿈과 비슷했다.

하룻밤 만에 전역일이 오듯, 오려낸 듯 사라진 전생과 현생 사이의 기억!

이유를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사라진 기억 속 전생 천마는 26개월의 군 생활처럼 온갖 난장판에서 구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천문석은 희미해지는 균열 너머 전생의 자신을 향해 기원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힘내라. 화이팅!”

카캬카카캌-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희미해진 균열은 지우개로 지우듯 서서히 사라지고.

마공의 극에 달했고 다시 그 극을 넘어 도약한 전생 천마와의 연결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초월에 닿았던 정신이 흐릿해지고, 당장이라도 비상할 것 같던 육체가 무겁게 대지를 누른다.

전법륜인의 수인으로 알게 된 기억이 흐릿해지더니 하나하나 흩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말해 줘도 이 순간이 끝나면 어차피 잊어버려.’

전생 천마가 말했던 것처럼!

하지만 상관없었다.

기억을 잊는다 해도 행동과 사실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천문석은 웃으며 흩어지는 기억을 관조했다.

천마신공의 기억이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고, 극에 달한 무의 기억이 봄볕 아래 눈처럼 녹아내린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건.

파슥, 파스슥-

천마신공이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는 천강흔(天罡痕) 랜덤 박스뿐이었다!

이 순간이 지나면 기억을 잊은 자신은 고뇌할 것이다.

분명 천강흔 랜덤 박스를 열었고 천마신공에 당첨됐다!

그런데 당첨된 천마신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공을 담았던 랜덤 박스만 남아 있는 상황!

‘천마신공은 어디로 간 거야?!’

황당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하하하-

천문석은 통쾌하게 웃으며 빙글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었다.

각성력의 태양이 온화한 붉은 노을을 드리우고.

계절에 맞지 않는 따뜻한 바람에 실린 반짝이는 물방울이 흩날리는 암반 위를.

새끈새끈 잠들어 있는 세 사람과 한 영체를 향해서.

장철.

마혁진.

청년 마혁진.

새하얀 여우 영체.

이제 길었던 세기말 대한민국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장철과 마혁진.

청년 마혁진과 새하얀 여우 영체.

천문석은 기절한 모두를 한자리에 모으고 확인했다.

아득한 천공.

각성력의 태양은 반의반도 안 될 정도로 크기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빛의 고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오고 있었다.

마력 폭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암반 위.

기절하듯 잠든 마혁진의 손에 단단히 쥐어진 회중시계.

틱, 틱-

회중시계 초침은 어느새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각성력의 태양으로 날아오르던 그림자 마수는 무해 한 여우 영체로 밝혀졌고.

갑자기 튀어나온 강자, 전생 천마는 천마신공과 마업을 거두고 인과를 이은 후 납치되듯 사라졌다.

이제 남아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문득 손을 펼치자 빛의 실을 돌돌 말아 만든 것 같은 실뭉치가 보였다.

보안키.

각성력의 태양이 빛의 고리를 계속 만들어 내는 이유.

마력 폭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회중시계 초침은 12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마력 폭풍과 회중시계는 끝을 향해 경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경주의 승자는 회중시계였다.

마력 폭풍이 끝나기 전에 회중시계 초침은 12시에 도착하고 2020년 돌아가는 길이 열린다.

약간의 어긋남.

마력 폭풍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선 내력, 각성력 같은 이능력을 지닌 누군가가 보안키를 가지고 이곳 암반에 남아야 한다.

천문석.

장철 헌터.

염동 대협 마혁진.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

그리고 누가 남을지는 이미 결정됐다.

모든 선연에는 마장이 따르는 법.

천마신공의 마업을 끊어 내는 선연이 찾아왔다.

당연히 하늘의 저울에 마업을 벗은 대가를 올려야 했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장철과 마혁진을 향해 외쳤다.

“장철 헌터님 일어나세요. 야, 염동! 일어나라! 집에 갈 시간이다!”

*   *   *

장철과 마혁진의 타는 듯한 시선이 회중시계에 모였다.

칠십팔, 칠십구, 팔십……!

틱-

미쳐 백을 세기도 전에 한 칸 전진하는 회중시계 초침!

“……!”

“……!”

이 순간 장철과 마혁진의 시선이 하늘로 움직였다.

확연히 작아진 각성력의 태양을 향해서!

각성력의 씨앗이 담긴 빛의 고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순간 태양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보통의 사람은 알 수 없는 미세한 차이!

그러나 지금 하늘을 보는 장철과 마혁진은 상상도 못 한 아수라장에서 구른 1세대 헌터였다.

“……!”

“……!”

장철과 마혁진은 직감했다.

이세기의 말이 맞다!

마력 폭풍이 끝나기 전에 회중시계 초침이 12시에 도착한다!

“네 말이 맞았구나…… 하아-.”

장철 헌터가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마혁진은 절박한 외침을 토해 냈다.

“야, 방법 있지? 계획, 플랜 있는 거 맞지?!”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난 항상 계획이…….”

“새캬! 놀랐잖아! 계획부터 말했어야지! 가슴이 철렁……!”

안도와 분노가 뒤섞인 외침을 터트리던 마혁진은 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굳어 버렸다.

“플랜 Z……!”

플랜 제트, Z, ZONBER, 존버!

2020년까지 20년 존버 하겠다는 미친 계획!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생각이 전개되는 순간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야, 이 새캬! 플랜 제트? 존버?! 20년 동안 존버 하자고? 그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랑 무슨 차이야?! 이세끼 이 또라이…….”

천문석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야, 걱정할 거 없어. 존버는 한 명만 하면 된다.”

“어, 어? 아?!”

말문이 컥 막히는 순간 빠르게 움직이는 시선!

각성력의 태양, 회중시계, 보안키를 거쳐 이세기의 얼굴에서 시선이 멈추는 순간.

“아!!”

마혁진은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리고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러나 밝아진 얼굴은 찰나의 순간에 고뇌 어린 표정으로 변하고, 침통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세기…… 모두를 위해 희생하다니…… 절대로 네 희생은 잊지…….”

“어, 아냐.”

“……뭐?”

“내가 희생하는 거 아니라고.”

“아니라고? 너 방금 존버는 한 명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 보안키! 검은 로브가 준 보안키 네가 들고 있어야 마력 폭풍이 유지되잖아?!”

천문석은 씩 웃으며 보안키를 던졌다.

마혁진은 반사적으로 낚아채는 순간 깨달았다.

파스스-

자신의 손안에서 마력광을 뿜어내는 빛의 실뭉치를!

“이거 설마?!”

“어 맞아. 보안키 각성력에 반응한다.”

마혁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남는 사람은 어떻게……? 혹시 동전 던지기 같은……?!”

“야, 이런 중요한 일을 운에 맡기면 안 되지!”

“……그럼 어떻게 정하려고?”

마혁진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묻는 순간 상상하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민주적 절차, 다수결로 정하려고.”

“…….”

마혁진은 시선을 움직였다.

다수결에 참가하는 사람.

장철, 이세기,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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