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19화>
천마신공의 마업(魔業)을 벗는 것!
이것이 전생 천마 천문석이 지구에 태어난 이유이자 결과 그리고 원인이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
“……!”
말은 필요 없었다.
사라졌던 기억, 감정,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전생과 현생, 무림과 지구를 잇는 인과의 고리가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천마신공!
파스슥-
현생 알바 천문석은 지혜의 륜을 밝히고.
화르르르-
전생 천마 천문석은 멈췄던 천강의 불꽃을 다시 움직였다.
현생과 전생의 천문석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는 것을 넘어, 하늘님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 하고 있었다!
정사마, 유불선, 주술공!
온갖 무공과 법을 파고들었지만, 천마신공의 마업을 벗을 방법은 찾지 못했다.
결국, 천마신공은 극에 달했고, 그릇이 가득 차올라 넘쳐 흐르려 했다.
감정이 사라진 인형, 오욕칠정이 끓어 넘치는 광인까지 딱 반걸음 남았을 때.
마도 지존 천마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천마신공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시 한번 비상하는 것!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감정 없는 인형이 되거나, 미친놈이 되느니 화끈하게 한 방에 가는 게 나았으니까!
그래서 마도 18문의 모두를 불러 모은 자리에서.
천마신공의 극!
12성 대성을 넘어선 그 누구도 닿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백이면 백! 추락해 한 방에 훅 간다!
하지만 마공의 한계를 넘어 비상할 수 있다면?!
물극필반(物極必反)!
달이 차면 기울고.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
반박귀진, 반로환동, 환골탈태!
비범을 넘어오히려 평범해지고, 나이 든 육체가 세월을 거슬러 전성기로 돌아가듯.
마공에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경지가 있었다.
극마(克魔)!
마공이 정점을 넘어 반(反)! 균형을 되찾는다면 마공의 멍에를 벗고 한번 날갯짓에 구만리 장천을 날아가는 대붕이 될 수 있다!
천마는 도전했고 천강의 불꽃에 타올랐다.
[하아-]
“하아-”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번 날갯짓에 구만리 장천을 날아가는 대붕?
대붕이 되기는커녕 천강의 불꽃이 전신에 타올라 훅 가기 직전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마도 18문 역대 최강의 고수, 천마신공 12성 대성에 닿은 유일한 천마.
천문석은 극마의 경지가 구라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공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그 끝이 치매, 광인이라고 말하면 배울 맛이 나겠는가?
거짓이라도 희망한 미래, 밝을 가능성을 말해 줘야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게 된다.
천문석은 이 사실을 마도 쟁투에 끌려간 첫날부터 짐작했다.
마도 18문의 두 기둥 중 하나, 화염도의 가주가 마도 쟁투의 참가자 수백 명 앞에서 피를 토하듯 외쳤다.
‘마공은 그 어떤 무공보다 성취가 빠르다!’
‘정파 무공을 배운다면 금수저가 아닌 이상 4, 50대에나 일류, 절정 고수가 된다!’
‘반면 마공은 열에 다섯은 20대! 한창 팔팔할 때 일류 고수가 된다!’
‘늙어서 노는 거랑 젊어서 노는 건 완전히 다르다.’
‘정파의 고리타분한 무인들은 말한다! 마공을 배우면 그 말로가 비참하다고!’
‘맞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마공을 익혀 절정 고수가 돼도 그 끝은 좋지 못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게 있다!’
화염도의 가주는 형형한 눈으로 마도 쟁투에 참여한 모두를 돌아보며 확신과 신념을 담아 외쳤다.
‘무림인 평균 수명 35세! 반면 마도 18문 무인의 평균 수명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참가자 모두가 당황할 때 이어진 외침.
‘45세! 열 살이나 더 사는 45세다!’
‘즉, 마공이라고 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차피……!’
화염도가 길게 말꼬리 끌며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모두는 한목소리로 외쳤다.
‘마공의 끝!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기 전에 죽을 테니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화염도.
‘그렇다! 어차피 마공의 끝에 닿기도 전에 죽는 무인이 부지기수!’
‘한 번 사는 인생! 폼나게 화끈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만에 하나 마공의 극! 극마의 경지에 도달하면?’
터질 듯한 침묵이 내리고 마도 쟁투 참가자 수백의 시선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화염도의 가주는 당당히 외쳤다.
‘마공의 단점이 사라진다!’
‘……!’
‘……!’
‘……!’
경악과 혼란, 환희와 기대감이 정점을 찍었을 때, 화룡점정!
‘극마의 경지에 오른 나처럼!’
화염도의 가주는 자신이 극마의 경지에 올랐다고 선언했다.
거대한 환호성이 터지고 타는 듯한 투지가 솟구쳤다.
마도 쟁투의 참가자들은 분지를 둘러싼 마도 18문의 17 문파를 상징하는 전각으로 달려갔다.
천마의 자리를 노리는 마도 쟁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고.
천문석이 마도 18문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하는 순간이었다.
‘마도 18문 이놈들 약을 팔고 있다!’
마를 극복하는 극마의 경지라고?
아니 극마의 경지에 올랐으면, 그냥 자기가 천마하고 무림을 통일하면 되지 무슨 마도 쟁투란 말인가?!
그러나 억지로 끌려온 전 천문사 주지에게는 힘이 없었다.
분지를 둘러싼 마도 18문의 18번째 전각, 폭삭 주저앉은 천문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위치가 역전됐을 때.
천문석은 화염도의 가주에게 물었다.
‘너 마도 쟁투 때 왜 극마의 경지라고 구라 쳤냐?’
‘……그게 마공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심해서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허허헛-’
화염도의 이마가 깨지고, 걸고 다니는 명판에 네 글자가 추가됐다.
[가롱성진(假弄成眞)]
“마도 18문…….”
[약팔이 놈들…….]
동시에 탄식이 터져 나오고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거울을 바라보듯 똑같이 손을 들어 빛을 발하며 같은 생각을 한두 사람.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는 웃었다.
“그 구라가…….”
[진짜였다니.]
물극필반(物極必反), 극마의 경지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공은 한번 입문하면 끝, 그 어떤 방법으로도 마업을 벗을 수 없다! 이 말도 진실이었다.
서로 상충하는 두 문장이 모두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단 하나가 부족했을 뿐이다.
전생 천마는 그 사실을 모르고 새로운 경지를 향해 발을 내디뎠고.
하늘의 중심 천원(天元)과 땅의 끝 지극(地極)을 잇는 한 줄기 선, 천강의 불꽃에 영혼육백이 타오르고 있었다.
전생 천마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 전생과 후생이 만난 지금 알게 됐다.
허공으로 내디딘 몸은 아직 추락하지 않았고 비상은 시작하지도 않았음을!
실패의 증거라고 생각한 영혼육백을 태우는 천강의 불꽃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을!
물극필반, 극마(克魔)!
천마신공의 마업(魔業)!
‘극마의 경지에 올라 마업을 벗는다!’
천문석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부족했던 단 하나가 지금 충족됐다.
죽음.
불사조가 화염 속에서 죽고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나듯.
탄생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완성되는 하나의 삶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하나의 삶이 아닌 두 개의 삶!
‘죽음’을 사이에 두고 전생과 현생의 천문석이 마주 보고 있었다.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
교차할 리 없는 운명이 교차하고, 만날 리 없던 두 사람이 만났다.
바로 지금이 물극필반!
극에 달한 천마신공이 반(反)! 돌아갈 순간이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화르르륵-
전생 천마의 멈춰 있던 천강의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
파스, 파스슥-
현생 알바의 지혜의 빛이 당장이라도 꺼질 듯 명멸했다.
지혜의 빛이 흐려지자 천마신공의 무명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성큼 한 걸음 걸어가며.
전생 천마는 후생의 자신에게 물었다.
[마업은 어떻게 벗을 수 있는가?]
“마업을 벗을 방법은 없다.”
대답과 동시에 질문이 이어졌다.
“버려야 주울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
“초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태워야 한다.]
“그렇다면 마업은 어떻게 벗을 수 있는가?”
현생 알바는 질문을 돌려줬고.
전생 천마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살아서 마업을 벗을 방법은 없다!]
그리고 죽음을 사이에 둔 전생과 현생의 천문석이 찾은 답이 말해졌다.
“존재의 본질을 태우는 천강의 불꽃으로 마업을 함께 태워야 한다.”
[존재의 본질을 태우는 천강의 불꽃으로 마업을 함께 태워야 한다.]
툭-
이 순간 손과 손이 닿았다.
파슥, 파스슥-
명멸하는 지혜의 빛을 따라 천마신공의 무명과 마업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현생 알바에게서 전생 천마에게로!
* * *
거울처럼 마주 선 전생과 현생의 천문석.
파스, 파스슥-
천강흔 랜덤 박스에서 튀어나온 천마신공과 그 마업이 전생 천마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올올히 풀려 나간 하늘의 인과가 이어질 때 시작됐다.
미래에서 과거로 천마신공의 마업이 넘어가고.
전생에서 후생으로 삶과 운명이 흐르고 있었다.
천강의 불꽃으로 영육과 마업을 태워 흐름으로 돌아가고.
이 순간 새겨진 인과와 인연을 따라 지구에 태어난다.
[…….]
전생 천마는 고개 들어 붉은 태양 너머 붉게 노을 진 하늘을 봤다.
노을에 가려진 별빛이 마음에 쏟아지고, 베일에 가려진 듯 보이지 않던 천의가 잡힐 듯이 가까워졌다.
전생 천마는 후생의 자신에게 물었다.
“부잣집 아들보다 좋냐?”
“당연하지! 너도 맘에 들 거다!”
현생 알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하하하하-]
전생 천마의 입에서 통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을 때, 천강의 불꽃은 천마신공의 마업을 태우기 시작했다.
마업이 근원에 있는 심지, 천마신공의 본질은 다 타지 않고 남겠지만 상관없었다.
그 심지는 천강의 불꽃이 남긴 상처, 천강흔 랜덤 박스에 봉인될 테니까.
현생 알바가 전생 천마를 다시 만나 이 모든 것을 넘겨줄 때까지!
미래에서 과거로.
다시 과거에서 미래로.
천마의 공과 업이 전해진다.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는 윤회.
그러나 무엇이든 끝은 있는 법.
아득한 인과의 끝에 천마의 공과 업은 사라지리라.
파스스스스-
이 순간 선연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득 시선을 돌리자 천강흔이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랑하듯 번쩍 손을 든 꼬맹이처럼.
천마신공은 사라지고 담겼던 상자만 남았다.
천강흔 랜덤 박스만!
하하하하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렸다.
무거운 업을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날 전생 천마.
그 먼 길을 걸어와 무거운 업을 내려놓은 현생 알바.
전생과 현생, 두 천문석은 한참 동안 웃었다.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전했다.
[그럼 안녕이다.]
천마는 천강의 불꽃에 타오르는 채로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었다.
이제 마도 18문으로 돌아가 잠시 멈춰 둔 운명을 다시 시작할 때였다.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천문석은 천강의 불꽃으로 영육과 마업을 태우고 죽는다.’
그러나 죽음을 향해 가는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득한 인과의 시작과 끝을 봤다.
인과는 이어졌고, 인연은 매듭이 지어졌다.
삶은 유한하나 그 본질은 영원히 이어지니.
이제 곧 너무나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천강의 불꽃이 영육과 마업을 태워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은 기대감에 터질 듯이 두근거리고, 가슴속에서 웃음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으니까!
전생 천마 천문석은 휙 손을 그어 차원 방벽을 찢었다.
[이렇게 쉽다고? 뭔 차원압이! 하-]
헛웃음과 함께 몸을 돌려 손을 흔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적예한테 잘해라. 걔 이세기보다…….]
“무섭다고?”
[아니 강하다고. 그리고 곧 널 찾아갈 거다.]
“뭐? 누가 이세기보다…… 잠깐, 누가 누굴 찾아온다고?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야, 야! 잠깐, 잠깐만 설명해 주고 가야지……!”
현생 알바의 다급한 외침이 쏟아질 때.
전생 천마는 잠시 멈춰 둔 운명이 기다리는 균열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힘내라! 카캬카카카-]
장난기 어린 웃음과 목소리가 담긴 사념만을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