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18화>
천마는 홀린 듯이 정면을 바라봤다.
천강의 불꽃에 타오르는 순간 들려온 하늘님의 부름.
엄청난 차원압을 뚫고 도착한 세계에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존재를 만났다.
난 너다.
금괴 10톤!
부자집 아들.
객잔, 반점 주인.
그리고 펼쳐지는 수인.
전법륜인(轉法輪印)!
말이 아닌 뜻을 전하는 수인을 펼쳐 서로의 본질에 닿는 순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진실이다!
자신 앞에서 전법륜인을 펼친 저 청년은 후생의 자신이다!
깨달음의 순간.
발걸음을 떼는 청년!
탓, 탓, 탓-
청년의 발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질 때.
천마 천문석의 머릿속에선 기억의 폭풍이 몰아쳤다.
천마신공의 마업이 시작된 순간!
산속 사당의 동생들 전원이 마종문 입문에 성공했을 때 만난 스승님과 긴 여행을 떠났다.
그 긴 여행이 끝났을 때 자신은 다 쓰러져 가는 사찰 앞에 있었다.
‘이상하네? 왜 갑자기 인과가 여기로 이어지지?’
고개를 갸웃하며 다 쓰러져 가던 사찰을 넘겨주고 훌쩍 떠나신 스승님.
천문사(天問寺).
자신이 물려받은 천문사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이름마저 천문석으로 바꾸고 적극적인 영업에 나섰다.
돌잔치, 결혼식, 기우제, 풍년제, 작명, 부적 쓰기, 우물 찾기!
온갖 동네 대소사를 싹쓸이해 순식간에 규모를 키우며 대박의 꿈에 부풀었을 때 그들이 찾아왔다.
마도 18문의 무사들!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천문사는 마도 18문의 18가지 중의 하나다. 그 계승자인 넌 마도 쟁투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
정파, 사파, 마도!
무림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마도 그 자체인 마도 18문의 일문이 천문사란 이야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말문이 막혀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천문사가! 내 사업체가! 마도 18문의 자잘한 문파도 아니고 18가지 중에 하나라고?’
‘무사만 수천을 거느린 극음도, 화염도 같은 마도 문파와 같은 급이라고?!’
‘아니 산속에 다 쓰러져 가는 사찰! 게다가 문도라고는 스승님과 자신까지 딱 2명인데 무슨 마도 18문의 가지야?!’
자신이 스승님에게 배운 것은 사냥, 노숙, 점치기, 부적 그리기, 수인, 우물 찾기, 요리 같은 잡기뿐이었다.
당연히 천문사의 주 업종도 작명, 기우제, 우물 찾기였다.
천문사는 무공, 무림 방파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었다!
알고 보니 자신이 대륙 전장의 잃어버린 후계자란 설정이 100배는 설득력 있었다!
당연히 호시탐탐 천문사를 노리는 경쟁 사찰, 무당집, 하오문의 사기꾼들인 줄 알았다!
자신은 분노했다!
정당한 대결에서 밀리니 이런 꼼수를 쓰다니!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진흙탕 개싸움을 하려는 순간.
무사는 검을 뽑았고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광포한 빛, 강기가 맺혔다.
‘……’
전, 산속 사당의 돌멩이.
현, 천문사 주지 천문석.
자신의 마도 18문행, 마도 쟁투 참가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도 18문과 인연이 닿은 모든 사람의 불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마도 쟁투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이미 오래전에 망한 천문사에서 병풍으로 데려온 까까머리 청년.
천문석이 마도 쟁투에 승리하고 천마의 자리에 오를 것을.
산속 사당의 돌멩이에서 시작해.
천문사 주지 천문석을 거쳐.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가 됐다.
그 모든 일을 직접 겪은 자신조차 믿기 힘든 황당한 전개였다.
7일!
천문석 자신이, 마도 지존 천마의 자리에서 버틸 거라고 모두가 예상한 최대 기간이 7일, 일주일이었다!
그때의 자신은 희망을 품었다.
우연과 불운이 겹쳐 마도 쟁투에서 승리하고 천마가 됐을 뿐 자신에게는 무공, 세력, 금력, 가문 모두 쥐뿔도 없었다.
돈도 안 되는 이름뿐인 천마 자리에서 언제 칼이 날아올지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천문사 주지로 돌아가는 게 100배 1000배 낫다!
7일, 일주일만 지나면 내 집, 내 사찰, 내 초대박 사업체 천문사로 돌아갈 수 있다!
헛된 희망이었다.
7일은 14일이.
14일은 한 달이 되더니.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갔다.
1년, 2년, 3년……!
구파일방, 오대세가, 정파 무림이 힘을 모아 무림맹을 만들고.
산림과 장강, 황하, 사파 무림 전체가 사자련의 깃발 아래 뭉쳤다.
마도 18문 수천 년 역사의 최고수.
천마 천문석을 상대하기 위해서!
황당하게도 마도 18문의 마인들을 쥐어박았다고 무림 공적이 되고 정사마 대전이 터졌다!
그때 자신은 다시 한번 희망에 차올랐다.
망하려면 화끈하게!
정사마 대전에서 화끈하게 지고 마도 18문은 해체한다!
각자도생!
서로 갈 길을 가는 거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됐다.
당연했다.
극음도, 화염도를 필두로 17가문의 가주 전원을 쥐어박고 굴렸다.
소속과 이름을 적은 명판을 목에 걸고 다니는 치욕까지 줬다.
무인의 결코 원한을 잊지 않는 법!
절대 고수 천문석이 천마의 자리에 있는 마도 18문은 결속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콩가루가 되어 있었다.
콩가루 집안이 된 마도 18문.
vs
구파일방을 주축으로 모인 정파 무림맹.
사파 무림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은 사자련.
숫자, 무력, 금력, 조직력!
모든 면에서 마도 18문이 압도적으로 밀렸다!
단 하나 초절정 고수의 숫자는 비등했지만, 그 질은 천지 차이였다.
마도 18문의 초절정 고수들은 자신에게 매일 쥐어박히고 구르던 반쪽짜리 초절정 고수였으니까!
반면 무림맹과 사자련의 면면은 화려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사자련의 초절정 고수.
전대의 기인이사와 그 제자들이 바글바글했다!
당연히 압도적으로 밀린다!
정사마 대전의 시작은 초절정 고수의 대전!
적당히 눈치 보며 싸우다가 마도 18문의 초절정 고수들이 쥐어 터질 때 잽싸게 항복하고 협상하면 된다.
반드시 먹힐 협상 카드!
마도 18문의 해체와 천마의 은퇴로!
정사마의 모든 무림인과 자신까지 모두가 행복해지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사마 대전이 시작되는 순간 이 모든 계획은 헛된 희망으로 밝혀졌다.
기나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극음도를 피해 다급히 바닥을 구른 화산제일검.
화염도에 검이 부러지고 망연자실한 사자련주.
……
마도 18문의 반쪽짜리 초절정 고수들은 무림맹과 사자련, 전대의 초절정 고수들을 압도했다.
‘아니, 초절정 고수가 왜 저 모양이란 말인가?!’
그리고 눈덩이가 굴렀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사자후를 터트리며 밀어붙이던 마도 18문의 초절정 고수들.
초절정 고수의 뒤를 따라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마도 18문의 무사들.
‘이게 아닌 데??’라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따라 움직이는 가주들.
정사마대전은 마도 18문의 승리로 끝났다.
정파, 사파, 마도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가 불행한 암흑기가 시작됐다.
천검 이세기가 나타나 천하십절의 시대를 열고 무림 맹주에 오를 때까지!
그리고 눈덩이는 구르고 굴러 마업을 벗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백척간두 진일보!
천마신공의 극, 12성 대성에서 다시 한번 나아갔다.
물극필반(物極必反)!
마지막 한 방 역전을 노리고!
그 결과 이렇게 천강의 불꽃이 전신에서 타올라 훅 가기 직전인 지금 상태가 됐다.
자신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아- 이세기 새끼…….]
“하아- 조금만 빨리 좀 움직이지…….”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자 자신과 똑같은 탄식을 내뱉은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느새 자신 앞에 멈춰 선 청년.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은 후생의 자신과!
전생과 현생의 천문석.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가 마주했다.
* * *
“…….”
[…….]
천문석은 전생의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불현듯 오랜 의문이 떠올랐다.
처음 전생을 자각했을 때 가진 너무나 당연한 의문!
‘아니, 어떻게 한국에서 태어난 거야?’
영육이 스러지고 혼백이 흐름으로 돌아가면 ‘인과와 인연’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
게이트가 열리고 던전이 생겨나기 전에는 무림과 지구는 ‘인과와 인연’이 이어지지 않는 다른 세계였다.
당연히 전생의 천문석이 지구에서 태어날 ‘인과와 인연’은 없었다!
하지만 의문을 풀 방법은 없었다.
당연했다.
신성에 닿은 존재라 할지라도 아득한 인과의 시작과 끝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때의 천문석은 인과니, 인연이니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생 최악의 알바, 키즈 카페 부점장을 시작했을 때였다.
-마도 18문의 마인들 보다 더한 꼬맹이들!
-그 꼬맹이들의 행동대장 악마 꼬맹이!
-음흉한 배후의 음모가 앙꼬!
키즈 카페 부점장으로 악마 같은 꼬맹이들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면 의문 따위 떠오르지도 않았다.
키즈 카페 알바를 그만두고 철수 형과 헌터업에 튀어든 후에도 정신없이 터지는 사건·사고에 의문의 답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지구에 태어난 이유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그 이유를 알아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대박을 치고 건물주가 되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던 오랜 의문의 답!
자신이 지구에 태어난 이유, 아득한 인과의 시작이 지금 자신 앞에 있었다.
2000년 1월 2일.
세기말 대한민국 북한산.
바로 여기서 모든 인과가 시작됐다!
무림과 지구.
전생과 현생.
천마와 알바.
처음 남일도 던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만남은 정해져 있었다!
시작은 초월자 김철수다.
김철수는 천의의 실 자락으로 천마를 불렀고 그 부름은 두 사람에게 닿았다.
전생의 천마와 현생의 알바에게!
백척간두 진일보!
천마신공의 극, 12성 대성을 넘어 하늘과 땅, 사람을 하나로 잇는 천강의 불꽃을 일으킨 무림의 전생 천마, 천문석!
천강흔 랜덤 박스!
천마신공이 담겨 있는 천강흔 랜덤 박스가 심상 공간에 자리한 지구의 현생 알바, 천문석!
초월자 김철수의 부름이 시공을 뛰어넘어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를 같은 시공간으로 불렀다.
그 결과 낮과 밤처럼 결코 만날 수 없던 과거와 미래의 한 사람.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느껴진다!
파스, 파스스스-
물결치듯 서로를 향해 퍼져 나가는 전법륜인의 파문이 닿는 순간.
말로는 모두 전할 수 없는 기억, 마음, 감정의 폭풍이 밀려왔다.
현생 알바의 사라진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채워지고.
전생 천마의 원래라면 알 수 없던 미래의 기억과 마음이 차오른다.
잘려 나가듯 사라진 과거의 기억.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기억.
이 순간이 지나면 모두 잊게 될 기억과 감정이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
과거와 미래, 무림과 지구.
완전히 다른 세계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고난과 시련, 사건·사고, 난장판, 불운과 재앙은 여전히 끝없이 이어진다.
‘이 지독한 불운!’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야?!’
같은 생각을 하는 순간.
천마와 알바는 웃었다.
전생과 현생의 불운은 저주가 아니었다.
이 불운 때문에 산속 사당의 추운 겨울에 웃을 수 있었고, 끝없이 이어지는 알바가 힘들지 않았다.
불운이 이어 준 인연!
초롱초롱한 눈빛의 동생들, 겉모습 만은 신선 같던 스승님, 더럽게 잘생긴 이세기 새끼…….
졸졸 따라오는 주인집 아이, 엄한 눈빛 안에 따뜻한 마음을 담은 임 여사님, 빙그레 웃는 대기업 회장…….
이 불운으로 수많은 사람과 만났다.
만남은 또 다른 만남을 부르고.
인연은 다시 인연으로 이어진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으니.
설령 삶이 끝난다고 해도 그 만남과 인연, 웃음과 선업은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다.
그 결과, 이렇게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
전생과 현생의 천문석이.
아득한 인과의 시작과 끝을 본 과거와 미래의 천문석은 자신을 향해 물었다
[적예는 잘 있냐?]
“류세연은 잘 있냐?”
대답은 필요 없었다.
서로의 얼굴에 떠오른 거울 같은 웃음이 대답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랜 의문의 답을 알았다.
‘천마는 어째서 아무런 인과도 이어지지 않았던 지구에 태어난 걸까?’
그 질문의 답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인과의 역전.
결과를 만들어 낼 원인이자 이유!
지구에서 태어난 현생 알바 천문석이라는 ‘결과’를 맺을 ‘원인’을 지금 이곳에서 만드는 것!
그것이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가 만난 이유였다.
이심전심.
천마와 알바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마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파아, 파아-
천마의 손에서 파도치는 듯한 빛이 흘러나왔다.
빛의 파도는 얼어붙은 암반, 돌멩이, 나무, 흙, 풀을 지나 닿았다.
“…….”
“…….”
넋을 놓고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장철과 마혁진.
“……!”
[앗, 아앗!]
정신없이 달려오다 멈춰 있던 청년 마혁진과 새끼 여우의 영체에.
장철과 마혁진, 청년 마혁진과 여우의 영체는 허수아비가 쓰러지듯 픽, 픽- 쓰러졌다.
“…….”
천문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하는 일을 인과의 역전, 역천이다!
하늘의 저울은 그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법.
역천의 비의를 보는 순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천문석은 하늘을 바라봤다.
확연히 작아진 각성력의 태양 너머로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하늘의 인과는 누구도 그 끝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 말은 진정으로 맞았다.
전생에서 현생까지 죽음을 넘어서까지 이어진 업!
그 업을 풀어낼 인과가 이렇게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천문석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지권인(智拳印)!
지헤의 빛을 밝힌 손이 명멸하자 잠시 물러났던 무명(無明)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공의 극!’
[천마신공!]
바로 지금이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의 인과가 이어지고, 무림과 지구의 인연이 닿는 순간이다.
생사를 넘어 전생에서 현생으로 이어진 업(業)!
마침내 천마신공의 마업(魔業)을 벗을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