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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14화 (1,21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14화>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 초침이 움직였다.

2020년 집으로 돌아가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하필이면 지금!”

“이게 왜 움직여?!”

“빌어먹을 타이밍!!”

그렇다!

빌어먹을 타이밍이었다!

천문석의 시선이 하늘에서 손으로 움직였다.

-마력 폭풍을 일으키는 각성력의 태양.

-각성력의 태양을 향해 떠오르는 그림자 마수.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

마력 폭풍!

그림자 마수!

워커의 회중시계!

마력 폭풍이 조금만 더 빨리 끝났다면?

그림자 마수가 더 빠르거나 아예 더 느렸다면?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가 모든 것이 끝나고 움직였다면?

셋 중 하나만 어긋났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 사건이 같은 타이밍 겹쳐 최악의 사건이 터졌다!

마력 폭풍을 멈추면 각성자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수백 미터 허공에 뜬 그림자 마수를 공격할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그림자 마수가 잠겨진 각성력의 태양을 찍고 지상에 내려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

더럽게 느린 그림자 마수가 각성력의 태양에 닿기 전에.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 초침이 12시를 가리키고 2020년 한국으로 튕겨 나갈 테니까!

-각성자를 탄생시키는 마력 폭풍.

-2020년 대한민국 집으로의 귀환.

-각성력의 태양을 삼키려는 그림자 마수 처치.

시소에 올라탄 것처럼 한쪽이 내려가면 반대쪽은 올라간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무엇을 포기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마력 폭풍, 그림자 마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성자는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

그림자 마수가 각성력의 태양을 삼켜 재앙이 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다.

결국, 포기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2020년 대한민국으로 귀환!

즉 이곳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아야 한다.

“……!”

장철 헌터와 시선이 마주치고 다급한 외침이 돌아왔다.

“계획 있지? 이것도 상정 범위 안이지?!”

“그놈의 상정 범위! 계획 없다니까! 누가 이런 걸 예상하냐?! 빌어먹을 젠장! 이 더러운 불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분통을 터트리는 마혁진.

“……!”

허망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다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번뜩이는 장철.

두 사람의 외침과 눈빛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마혁진과 장철도 자신과 같은 결론을 냈다.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아야 한다!’

그러나 마혁진과 장철이 남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다수의 강자가 아닌 꼬인 상황을 단숨에 해결할 절대 강자. 인간의 한계, 초절정의 벽을 넘은 초인경의 고수였으니까!

순간 뇌리를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창천무흔.

아득한 하늘을 달리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람!

천하십절의 검절.

무림 맹주, 천검 이세기!

천검 이세기의 창천검이라면 수백 미터 하늘에 떠 있는 그림자 마수조차 단숨에 베어 버릴 수 있다.

장철, 마혁진, 현생 알바 천문석으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천검 이세기급의 절대 강자다!

그러나 지금 이 타이밍에 초인경의 고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도와줄 리 없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초인경의 고수가 없다면, 초인경의 고수를 만들면 된다.

말도 안 되는 해결 방법이었다.

명문 무가에서 태어나 돈과 영약을 쏟아붓고 초절정 고수에게 배워도 절정의 벽조차 넘지 못하는 무인이 부지기수!

초절정.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경의 고수는 만들겠다고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초절정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자신!

천문석은 손을 활짝 펼쳤다.

파스스스슥-

기다렸다는 듯이 떠올라 선연한 기운을 뿌리는 천강흔(天罡痕).

초절정의 벽을 넘을 때가 왔다.

***

“…….”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면 오늘 하루 동안 겪은 난장판, 개고생의 반 이상은 시작도 하기 전에 해결됐다.

그럼에도 천문석은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초절정의 벽을 넘는 순간 천강흔 랜덤 박스가 열린다!

그리고 오감을 뛰어넘는 육감과 직관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천강흔 랜덤 박스에는 99.99% 천마신공이 들어 있다!

마공은 일반적인 무공과는 궤를 달리한다.

돌탑을 쌓듯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게 아닌 돈오(頓悟)!

쾅-!

마른하늘에 날벼락!

굉천수의 일성이 터지는 찰나에 일기일원공에 입문했듯.

천강흔 랜덤 박스가 열리고 천마신공이 튀어나오는 순간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듯 강제로 천마신공에 입문하고 힘을 되찾게 된다.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천문석의 경지를!

전생 천마의 압도적인 힘이라면 모든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던전에서 구르는 이유는 장철, 마혁진, 한경석…… 모두와의 관계 때문이다.

천마신공에 입문해, 비참한 결말이 정해진 마인이 된다면 본말전도였다.

그래서 난장판에서 구르며 몸으로 때웠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천검 이세기, 천마 천문석 같은 초인경의 고수가 지금 당장 필요했다.

그리고 천문석은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천강흔 랜덤 박스가 열리면 99% 천마신공이 튀어나온다.

만약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는데도 천강흔 랜덤 박스가 열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천마신공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2004년 부산 칠성파 빌딩.

이세영 선생님과 만나 정신줄을 놓았다 깨어났을 때.

심상 공간에 자리한 천강흔 랜덤 박스는 봉인됐다.

무의 극을 넘어서고 온갖 난장판에서 구른 전생 천마의 직감이 말한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 봉인된 천강흔 랜덤 박스가 열릴 가능성은 30% 남짓!

30퍼센트의 리스크!

오늘 하루의 난장판에서는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염동 대협 마혁진을 굴리고 몸으로 때우면 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난관이 앞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30퍼센트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이다!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마음으로 외쳤다.

‘이렇게 공교롭다니! 정체불명의 초월자 감사…… 어? 정체불명의 초월자?!’

순간 벼락 치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던전에 들어와 처음 도착한 세계!

서울 수복 작전을 앞둔 2004년 부산, 칠성파 빌딩!

이세영 선생님을 만났을 때 엄청난 뇌전이 쏟아져 정신줄을 놨다 깨어났을 때 한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철수형이랑 이름과 연령대가 맞아 혹시나 했다가 잘생긴 얼굴을 보고 의심을 거둔 기절한 꼬맹이!

서울보육원 김철수!

그리고 방금까지 이곳 북한산에도 김철수가 있었다.

서약의 불꽃으로 각성력의 태양을 점화해 마력 폭풍을 일으키고, 절멸의 빛으로 그림자와 몬스터 웨이브를 지워 버린 보석과 강철의 황제 김철수!

2004년 김철수.

2000년 김철수.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을 이 순간 깨달았다.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

초월자가 툭툭 아무 곳에서나 튀어나올 리 없었다.

2004년 서울보육원의 김철수!

2000년 보석과 강철의 황제 김철수!

둘은 같은 사람이다.

즉, 2004년 부산 칠성파 빌딩에서 천강흔 랜덤 박스를 봉인한 정체불명의 초월자는.

보석과 강철의 황제.

서울보육원의 김철수였다!

*   *   *

“……!”

마침내 진실을 깨닫는 순간 머릿속에 흩어진 단서가 맞물렸다.

예상했듯이 한국 사람 초월자 김철수는 인연이 닿는 지구에 다시 나타났다.

자신이 2004년에서 2000년으로 과거로 시간을 거스를 때.

명운을 불태운 김철수는 2000년에서 2004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다.

불쑥 의문이 떠올랐다.

‘부산에서 만났을 때 왜 아는 체를 안 한 거지?! 천강흔 랜덤 박스를 봉인할 정도면 어느 정도 힘과 기억이 돌아왔다는 건데?!’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답이 떠올랐다.

자신을 완전히 잊었거나.

혹은 인과 역전 때문이다!

2004년의 김철수는 4년 전 과거,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이미 만났다.

하지만 2004년의 천문석 자신은 이곳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초월자 김철수를 만나기 전이었다!

미래로 나아가는 김철수.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천문석.

나비 효과!

김철수는 인과가 비틀려 나비 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

이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전율이 전신에 흘렀다.

2020년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해 이곳 2000년 세기말 대한민국까지.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고와 정신없이 몰아치던 불운과 난장판!

그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득한! 아득하다고밖에 말하지 못할 하늘의 인과였다!

하늘의 인과는 수천수만 가닥의 인연으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드리워진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짜 올렸다!

천문석과 김철수.

전생 천마와 보석과 강철의 황제가 만나도록!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무아지경에 빠져든 정신을 깨트리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이게 어떻게 이렇게 연결된다고?!”

“혹시 방법을 찾은 거냐?!”

“방법 없다니까. 우리는 전부 게이트 전쟁에서 개같이 구를 거다!”

반색하는 장철 헌터와 여전히 좌절 중인 염동 대협 마혁진.

천문석은 씩 웃으며 외쳤다.

“당연히 계획이 있습니다! 이제 최후의 계획을 쓸 때입니다!”

“뭐? 새꺄! 이 와중에 존버 하자고?! 야 그게 게이트 전쟁에서 구르는 거랑 뭐가 달라?!”

“존버? 갑자기 뭔 소리야?”

“아까 최후의 계획이 플랜 Z! 존버라며!”

“아! 플랜 Z가 아니라. 다른 최후의 계획 플랜 X! 드디어 초절정에 오를 때가 왔다!”

“플랜 X?”

“초절정? 그 무협지에 나오는 초절정?! 너 지금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다고 말한 거야? 무협지 속 주인공처럼?”

마혁진에게서 미친놈 보듯 황당한 얼굴, 어이없어 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

장철 헌터도 어이없어 하는 건 마찬가지!

하지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두 눈으로 보는 순간 머리가 아닌 직관으로 알게 될 테니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천문석은 빙글 몸을 돌려 한 걸음 내디뎠다.

탓-

암반 위에 발을 디디며 마음을 일으켰다.

무공에 다시 입문한 이후 수없이 싸웠지만, 진심으로 싸운 적은 거의 없었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상대를 기만하여 진흙탕 개싸움으로 끌어들여 같이 굴렀다!

언제부터였던지 하늘에서 인력(引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잘 때, 밥 먹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싸울 때!

아차! 하는 순간 강제로 초인경,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천강흔 랜덤 박스를 열릴 것만 같은 느낌!

통장 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넘었고, 하루하루 건물주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천강흔 랜덤 박스 오픈이라니 절대 안 된다!

그래서 하늘의 인력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초절정의 경지로 나아가지 못하게 마음에 추를 매달았다.

천문석은 발을 내딛는 매 순간 그 추를 풀어냈다.

탓-

한걸음에 어깨가 펴지고, 천기가 머리에 쏟아지고.

타탓-

다시 한걸음에 다리가 쭉 뻗고, 지기가 몸을 받쳐 올린다.

승(昇)!

천기와 지기의 흐름에 올라타는 순간 벽이 보였다.

모든 무인이 넘기를 갈망하나 인연이 닿지 않으면 그 앞에 설 수조차 없는 벽.

초절정의 벽!

‘단숨에 뛰어넘는다!’

천문석은 발을 내디디며 영육과 혼백 사이 심상 공간을 관조했다.

무한한 심상 공간.

꼬리를 물고 회전하는 일기공과 일원공의 중심!

단단히 봉인된 천강흔 랜덤 박스……!

‘……어? 이게 왜 이래?!’

내딛던 발이 우뚝 멈추는 동시에 보였다.

단단히 봉인된 천강흔 랜덤 박스는 곳곳이 깨지고 닳아 있었다.

마치 꼬맹이가 정신없이 깨뜨리고 핥아먹은 사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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