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13화>
갑자기 나타나 풍선처럼 둥실둥실 하늘로 떠오르는 그림자 마수.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와 반격 없이 공격을 튕겨 내기만 하는 모습.
바로 감이 왔다.
엄청난 존재감에 비해 남은 힘은 크지 않다.
지상에서 정면으로 싸우면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지상으로 끌고 올 방법이 없었다.
거대한 산불도 시작은 작은 불꽃 하나!
그림자 마수가 각성력의 태양을 닿는 순간 기름 탱크에 불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쾅-
각성력의 태양에 닿는 순간 엄청난 존재감에 걸맞은 힘을 되찾고 재앙이 되리라!
“……!”
눈앞이 깜깜해지고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올 때 마혁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야, 그거 있잖아! 그거! 검은 로브 걔한테 받은 그거! 네 손에 쥔 그거!”
“보안 키?!”
“그래! 보안 키! 그 보안 키로 마력 폭풍을 멈추면……!”
장철 헌터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안 돼! 우리는 마력 폭풍 원리도 모르고 있다. 중간에 멈춰 서 전 세계에 나타날 각성자에 문제가 생기면 끝장이다!”
장철 헌터의 말이 맞다.
원리를 모르는 이상 마력 폭풍을 함부로 멈출 수는 없다.
“맞아! 지금 마력 폭풍 멈췄다가 상황이 악화할 수도…….”
이 순간 번쩍 떠오르는 기억.
김철수가 보안 키를 넘기며 했던 말!
‘인증 파문을 담은 보안 키다. 그 보안 키 없으면 각성력의 태양 봉인된다. 혹시 모를 안전장치다.’
봉인!
초월자 김철수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자신에게 보안 키를 넘겼다.
만약 각성력의 태양에도 대비를 해 뒀다면?!
천문석은 보안 키에 기감을 집중하고 육체의 눈을 감았다.
마음의 눈이 번쩍 떠지는 순간 느껴진다.
손에 쥐어진 보안 키에서 시작된 한 가닥 선이 아득한 천공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빚의 물결을 지나.
그 중심, 이글이글 타오른 각성력의 태양으로!
마음의 눈으로 보였다.
각성력의 태양 위에 새겨진 마력 회로!
오감으로는 알 수 없는 직접 접촉해야만 알 수 있는 보안 마력 회로가 태양에 깔려 있었다!
초월자 김철수는 이미 대비를 해 뒀다.
그림자 마수는 각성력의 태양에 닿는 순간 알게 된다.
각성력의 태양은 이미 잠겼고 그 열쇠, 보안 키는 지상.
바로 자신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즉, 그림자 마수가 각성력의 태양을 삼키기 위해서는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손에 있는 열쇠, ‘보안 키’를 얻기 위해서!
역시 보석과 강철의 황제 김철수!
마치 미래를 보고 준비한 것처럼 안배와 상황이 기가 막히게 맞물렸다!
천문석은 번쩍 눈을 뜨고 외쳤다.
“됐다! 걱정할 거 없다! 저 녀석 알아서 지상에 내려온다! 바로 전투 준비하면 된다!”
“알아서 내려온다고?”
“새캬! 알아듣게 설명해! 쟤가 왜 내려오는데? 자세히……!”
“저 녀석 그냥 몬스터가 아니다! 반격 없이 공격을 무시하고 있다! 이성이 살아 있는 상태다! 기다린다고 내려올 리가…….”
천문석은 손을 들어 말을 끊고 활짝 손을 펼쳐 보였다.
“이것 때문에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장철, 마혁진의 시선이 손에 모였다.
빛의 실을 뭉친 실타래 같은…….
“보안 키?”
“마력 폭풍 멈추면 안 된다며?”
천문석은 씩 웃으며 하늘의 태양을 가리켰다.
“초월자 김철수가 태양에 보안 회로 깔아 놨어. 그 보안 회로가 이 열쇠, 보안 키랑 연결됐다. 즉, 저 잠겨 있는 태양에 담긴 각성력을 먹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방법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희열에 들뜬 외침이 쏟아졌으니까.
“보안 키! 열쇠를 찾아 내려올 수밖에 없구나!”
“그때 처리하자는 거구나! 와, 이 잔머리!”
“계획은?!”
천문석은 쓱 주위를 훑었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숲속 공터.
바닥에는 단단한 암반이 공터 주위에는 무성한 소나무가 가득하다.
적은 한 뼘 남짓 그림자 마수!
존재감은 압도적이지만, 가진 힘 대부분을 잃고 이성과 힘 일부만 남은 잔해일 뿐이다.
기책은 필요 없다.
정면으로 부딪쳐 단숨에 제압한다!
중요한 건 퇴로를 막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
순식간에 계획이 서고 입이 열렸다.
“장철 헌터님은 백업!”
“마혁진 너는 후방 지원!”
“도망치지 못하게만 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이 ‘보안 키’로 어그로 잡고 바로 제압하겠습니다!”
계획을 들은 장철과 마혁진은 머리를 굴렸다.
동료가 있는데 혼자서 그림자 마수를 상대하겠다는 이야기!
다른 1년 차 헌터가 이렇게 말했다면 뒤통수를 때려 줬을 계획이다.
헌터는 전사가 아닌 사냥꾼!
전투가 아닌 사냥을 해야 하니까.
그러나 이 계획을 말한 사람은 이세기였다!
“……!”
“……!”
새삼스레 이세기를 보는 순간 장철과 마혁진의 머릿속에 오늘 하루가 펼쳐졌다.
-폭파되는 한강 다리를 자전거로 뛰어넘고.
-무섭게 물이 차오르는 중랑천 물길을 열고.
-한강 변에 밀려오는 몬스터 저지선을 만들고.
-잃어버렸던 별을 만나 가족에게 돌려보내고.
-끊어진 한강 다리에 철제 구조물을 놓고.
-거대 괴수와 몬스터를 유인해 북한산으로 옮기고.
-등급외 각성 동물, 북한산의 수호자 뽀미를 각성시키고.
마침내 정체불명의 초월자를 만나 마력 폭풍까지 터트렸다!
서초구의 건물에서 깨어나 이곳 북한산까지.
하루 동안 일어났다고는 믿기지 않는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한강에서 북한산까지 쉴 새 없이 사건이 터지고, 정신없이 난장판에서 굴렀지만,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중랑천이 범람하고, 상급 몬스터가 밀려오고, 거대 괴수가, 몬스터 웨이브가 몰아쳤는데도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직접 겪을 때는 느끼지 못했다.
사건·사고, 불운과 재앙에 정신없이 굴렀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한 발짝 물러나 다시 생각하자 알 수 있었다.
천운(天運).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천운이 따랐다!
그리고 그 천운을 불러 온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이세기였다.
“…….”
“…….”
장철과 마혁진은 홀린 듯이 이세기를 봤다.
‘이게 가능한 건가?!’
‘이세기 녀석! 그냥 재수 없는 게 아니었구나!’
마음속에서 믿음과 신뢰감이 무럭무럭 솟아나고 머리가 가슴이 말했다.
‘이 계획은 먹힌다!’
‘이세기라면 할 수 있다!’
이때 이세기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획 반대하는 사람?!”
“난 찬성이다.”
“나도 찬성이다!”
“그럼 바로 준비하자!”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세!
장철 헌터는 해머를 잡고 육체를 강화하고.
마혁진은 공간 지각을 확장하고 염동력장을 펼쳤다.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압축하며 마음속 투지를 끌어올렸다.
세 사람의 각성력과 내력, 투지와 투지가 충돌해 불같은 기세가 일어나는 순간 시선이 하늘을 향하고 그 기세가 하늘로 쏘아졌다.
와라!!
기파가 하늘 높이 퍼져 나가는 순간 깨달았다.
“…….”
“…….”
“…….”
방금전까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한 지금 다시 보니 알 수 있었다.
각성력의 태양까지 반도 못 올라간 다람쥐 풍선!
그림자 마수가 변한 다람쥐 풍선은 둥실둥실, 천천히, 기어가듯 올라가고 있었다!
진짜 풍선보다 수십 배는 더 느리게!!
* * *
[야, 너 정체 다 들켰어! 풍선인 척하는 거 소용없어! 그냥 빨리 움직여!!]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외쳤다.
그러나 그림자 마수는 여전히 느리게, 더 느리게 하늘로 올라갔다.
외침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진짜 풍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하아아-”
“하, 시바-”
탄식과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애써 끌어올린 투지가 차게 식는 걸 느꼈다.
생사결을 준비했는데 상대가 대놓고 지각한 상황!
‘어떻게 된 게 만나는 적마다 다 이 모양이란 말인가?!’
마음속에서 분통이 터져 나올 때 불쑥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이것도 상정 범위냐?”
당연히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저런 황당한 적을 예상한단 말인가?!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말과 행동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어차피 시간문제다. 저 태양 보안 마력 회로로 잠겨 있다! 올라가 봤자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각성력의 태양 찍고 내려오면 그때 잡으면 된다. 지금 다른 할 일도 없잖아? 그냥 앉아서 기다리자. 시간은 충분하다!”
“하, 하, 하-”
장철 헌터가 어색하게 웃으며 해머를 내릴 때.
마혁진은 역장을 풀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어쩐지 이럴 것 같더라니…… 야! 내 말이 맞았지?! 사고 터질 거 같다고! 아까부터 계속 말했잖아!”
“이런 건 솔직히 사고도 아니지! 저거 다람쥐 풍선이야. 다람쥐 풍선! 하나도, 조금도, 1도 위협적이지 않아! 그냥 겸사겸사 처리하면 되는 거다.”
“방금 전에 사색 된 거 다 봤거든? 너 솔직히 공격할 방법도 없었잖아?! 보안 마력 회로 안 깔렸으면! 저 그림자 마수가 태양을 삼키는 거 두 눈 뜨고 봐야 했어!”
정곡만 콕콕 찔러 오는 마혁진.
점점 더 감이 예리해져 가고 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원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야!
“이게 끝이라고 누가 보증하냐? 이게 난장판의 시작이라면?!”
“……!”
순간적으로 말문이 컥 막히고 자동으로 생각했다.
‘시바, 진짜 그러면 어떡하지?!’
절대 사고가 터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초월자 김철수가 만들어 낸 절멸의 빛이 하늘 가득한 그림자와 계곡과 능선에 끓어오르던 몬스터 웨이브를 지워 버렸으니까!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납작 엎드려 존버한 그림자 마수가 튀어나왔다.
마혁진 말대로 이게 난장판의 시작이라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 존재가 등장하는 전조일 뿐이라면?!
‘생각해 보니까. 이번 던전에서는 평소보다 유달리 더 재수가 없던……!’
아차! 자신도 모르게 설득되고 있었다!’
천문석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내고 재빨리 말했다.
“저 그림자 마수 처리하고 마력 폭풍 끝나는 즉시 돌아가면 된다!”
“확실히 돌아갈 수 있는 건 맞냐? 또 사고 터져서 못 돌아가는 거 아냐?! 너 그 시계! 2020년으로 돌아가는 회중시계는 제대로 챙긴 거 맞냐?! 혹시 잃어버리거나…….”
“야, 나를 어떻게 보고! 내 손에서 물건을 뺏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중시계 여기 안전하게 있다!”
천문석은 잡낭에 넣어 둔 회중시계를 꺼내 당당히 내밀었다.
모두의 시선이 회중시계에 모이는 순간 아주 작은 소리.
그러나 천문석, 장철, 마혁진에게는 천둥보다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틱-
회중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 * *
“……지금?”
“……설마?!”
“너희도 들은 거냐?!”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고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야, 초침! 당장 확인!”
손가락이 활짝 펼쳐지고 숫자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곗바늘이 멈춰 있는 회중시계 숫자판이!
“……!”
“……!”
“……!”
숨소리마저 죽인 시선이 쏟아지고 시간이 흘렀다.
1, 2, 3, 4, 5, 6, 7, 8, 9, 10초!
10초가 지나도록 미동조차 하지 않는 초침!
흐어어어-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시바!”
“시계 초침 움직인 줄 알았잖아?!”
“야, 아무리 내가 재수가 없어도 그 정도는 아냐! 아마 부속품이 흔들렸겠지.”
“그렇지? 설마 이 타이밍에 시계까지 움직이겠냐? 하하-“
“안심하면 안 된다니까! 이 새끼는 상상을 초월하게 재수 없는…….”
틱-
이 순간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
“……!”
“……!!”
경악한 시선이 다시 모이고 터질 듯한 긴장감이 퍼져 나갔다.
천문석, 장철, 마혁진 세 사람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회중시계를 봤다.
10초, 20초, 30초…….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고 다시 입을 여는 순간.
“혹시 잘못 들은…….”
틱-
너무나 분명한 소리와 함께 초침이 한 칸 전진했다.
각성력의 태양은 마력 폭풍을 쏟아 내고.
그림자 마수가 각성력의 태양을 노리는 지금.
2020년 집으로 이어진 길을 열어 주는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