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09화 (1,21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09화>

돌과 바위, 동물과 사람.

무생물과 생명의 근본적인 차이.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하나로 잇는 힘, 명운(命運)!

명운은 존재를 세계에 잡아 두는 인력 그 자체다.

그렇기에 명운이 흩어지면 경지에 오른 요마괴이, 신성을 얻은 마신이라 할지라도 흐름으로 돌아간다.

이 인과에서 벗어난 건 옛이야기 책에서나 나오는 진정한 신위에 닿은 존재뿐이다.

뭔가 운이 없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김철수는 99% 아니다.

천문석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너 명운 흩어지면 죽어!”

[나 마도 황제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김철수는 씩 웃으며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공터 중앙 어느새 다시 회전하기 시작한 적층 마력 회로를 향해서!

“……!”

천문석은 김철수가 뭘 하려는 지 바로 알아챘다.

‘그때와 같다!’

1차 세기말 대한민국 사건!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의 북한산!

타이탄을 탄 김철수는 북한산에 나타난 허신과 마신의 중합체를 엄청난 빛으로 지워 버렸다.

절멸의 빛!

김철수는 그때처럼 자신의 명운을 태워 밝힌 절멸의 빛을 탄환 삼아, 아득한 천공에 솟은 검은 기둥을 지워 버릴 생각이다.

초월자 김철수.

이세계의 초월자는 지금 스스로를 희생해 지구를 지키려 하고 있다!

이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왜? 도대체 왜?!

다른 세계에서 온 초월자가 어째서?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지구를 지키려는 거지?!

파슥, 파스슥-

명운을 태운 빛을 뿌리며 걷는 김철수의 뒷모습에 시선이 박히는 순간 머릿속 외침이 그대로 질문이 되어 튀어나왔다.

“너,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   *   *

파슥, 파스슥-

세계에서 튕겨 나가던 육체가 고정된 채 빛을 발하고,

위이이이이잉-

멈췄던 초가속기 원통형 마력 회로가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과연 머릿돌 제트, 흑옥(黑玉)!

절대자의 마음이 담긴 흑옥은 명운이 흩어져 튕겨 나가던 육체마저 다시 고정하고 있다.

절멸의 빛을 쏘아 올려도 영육과 혼백이 흐름으로 돌아갈 정도의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

이미 받은 타격과 합치면…….

‘대략 20년쯤?’

이 머릿돌, 흑옥 덕분에 대략 20년, 2020년까지만 후유증을 겪으면 회복할 수 있다.

20년은 긴 세월이지만 기억을 완전히 잃고 흐름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천지 차이!

이 모든 것이 이세기가 건네준 머릿돌 덕분에 가능했다.

‘고맙다! 이세기!’

김철수는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명운을 태워 빛을 밝혔다.

어둠을 지워 버릴 절멸의 빛을!

이때 이세기의 질문이 날아왔다.

“너,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수천수만 번 들었고 되뇌었던 질문.

김철수는 발을 내디디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돌철. 너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지구에서 타 대륙으로 떨어지고 긴 세월이 지났다.

인간, 아인종, 수인족. 수많은 사람을 만나 대협약의 약속 아래 마도 제국이라는 문명의 불꽃을 피워올렸다.

마탑, 천공탑, 전능 옥좌, 부유 도서관.

모두가 볼 수 있으나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에 세운 왕궁.

자신이 이뤄낸 모든 성취가 타 대륙에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지구로 돌아왔다.

‘김밥을 먹기 위해서…….’

김철수는 마음으로 웃었다.

어떤 기억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잊히지 않는다.

보석과 강철의 황제가 가진 힘의 원천.

마도의 기억 대부분을 잊었지만, 여전히 선명한 기억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이세기의 물음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왔다.

수없이 반복했던 게이트 전쟁의 기억.

함께 싸운 전우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했다.

‘야, 여긴 우리한테 맡기고 빨리 가봐! 전선 뚫린다!’

‘뭐? 위험! 하- 우리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우리 10년 차 베테랑이야!’

‘서울에서 100번이 넘게 사람들 탈출시킨 게 우리다!’

‘누가 보면 자기 혼자 싸우는 줄 알겠네?’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등을 떠민다.

‘자, 그럼 얼른 가보세요. 사령관님!’

……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웃으며 장난스럽게 경례하던 전우들.

-눈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로 와락 몸을 껴안는 남자와 그 뒤에 있던 서울에서 빼낸 남자의 부인과 아이.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아껴먹던 사탕을 내미는 아이.

-어깨에 피멍이 들도록 지게를 지고 보급품을 나르던 할아버지.

-자기 키만 한 저격용 소총을 들고 빌딩에 남아 뒤를 지켜 주던 소녀.

……

이들 모두가 게이트 전쟁에서 죽어 갔다.

수없이 시간을 돌려 실수를 고치고, 패배를 승리로 바꿔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인류는 게이트 전쟁에서 패배한다.

오직 자신만이 모든 죽음을 기억한 채 끝없이 게이트 전쟁을 반복했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아이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와 수줍은 듯 사탕을 내밀 때마다 수없이 바라고 또 바랐다.

자신이 가진 힘을 쪼개서 모두에게 나눠 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전신이 갈가리 찢어 죽는다고 해도 웃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시간조차 되돌릴 힘이 있지만, 그 바람만은 이룰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돌리고 또 돌리는 것뿐이었다.

진정으로 바라는 결말.

게이트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하는 미래를 찾을 때까지!

몇 번이나 시간을 돌렸을까?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백 년, 천 년?!

무너진 도시와 끝없이 펼쳐진 죽음.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에도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러나 딱- 시간을 되돌리는 순간 그 모든 실패와 죽음은 없던 일이 된다.

지상의 별빛이 어둠을 밝힌 사람들의 웃음과 미소가 가득한 도시.

1998년 12월 24일, 서울.

크리스마스이브가 다시 시작된다.

제약도 한계도 없었다.

딱, 딱, 딱-

시간을 돌릴 때마다 모든 것이 처음으로 리셋된다.

수많은 사람의 용기, 희생, 헌신, 눈물,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

이 모든 것은 없던 것이 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된다.

돌아오지 않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의 기억뿐이었다.

폭탄을 짊어지고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던 남자.

아무렇지도 않게 미끼가 되어 트럭을 몰고 돌진하던 전우.

몬스터의 물결에 포위된 빌딩에서 끝없이 울려 퍼지던 총성.

이 모든 희생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다.

하지만 머리로 기억하고 가슴에 새긴 상처는 아무리 시간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쌓인다.

만 년 동안 쌓인 눈이 단단하게 굳어 빙하가 되듯.

그리고 모든 게 다시 반복된다.

용기, 희생, 헌신, 눈물, 고통.

죽음과 게이트 전쟁 패배의 결말.

어느 순간 깨달았다.

시간 회귀의 권능.

자신의 힘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과 이 권능이 영원을 약속하지 않음을.

육체는 조금의 손상도 없는 젊은 육체로 돌아오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끝없이 반복되는 기억과 경험에 정신과 감정이 마모되어 사라져 갔다.

동료들의 희생과 죽음에 무덤덤해지고, 생명과 돌멩이가 구분되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한계에 도달하면 기억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처음처럼 시간을 돌리고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패배하고 또 패배했다.

그럼에도 김철수는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린 친구가 있었다.

언제나 빙그레 부드럽게 웃던 그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비밀을 말했을 때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모두를 구할 방법을 찾겠다고.

아무리 시간을 돌리고 기억을 지워도 약속은 사라지지 않는다.

웃으며 홀로 남아 몬스터를 저지했던 친구.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웃음과 희생이 영혼에 새겨졌기에.

김철수는 끝없이 시간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하는 미래를 찾아서!

수십, 수백 번!

수없이 시간을 돌려 얼굴과 이름조차 잊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이 포기한다면,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동료의 희생과 죽음은 진짜로 없던 일이 되니까!

이게 바로 이유였다.

‘너,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돌철. 너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천검 이세기와 자신이 한 질문의 이유.

그리고 하늘에서 아득한 세월이 지나 찾은 자신의 답이 있었다.

태양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거대한 빛의 고리!

마력 폭풍!

보이고 느껴졌다.

이 거대한 빛의 고리에서 흩날리는 수십, 수백만의 씨앗!

각성력의 씨앗!

자신이 찾은 게이트 전쟁 승리의 답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김철수는 이세기의 질문에 마음으로 답했다.

‘이건 자신의 권리이자 의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자신은 희생하는 게 아니라 마침내 오랜 꿈을 이루는 거다.

툭-

어느새 평평한 바위 위에 발이 멈추고, 머리 위에 적층형 마력 회로가 보였다.

자신이 찾은 답을 세계에 낼 순간이다.

김철수는 몸을 돌려 손을 흔들었다.

[그럼 안녕이다. 여러 가지로 고마웠다. 천검 이세기.]

*   *   *

위이이이잉-

김철수는 전신이 빛으로 변해 마력 회로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이 모습에서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천강의 불꽃으로 스스로를 태웠던 전생의 자신!

김철수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상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기에 다시금 외쳤다.

“너 정말 괜찮냐?!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

[당연히 괜찮지!]

김철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마력 폭풍 부탁한다. 마력 폭풍 끝날 때까지 반드시 그 ‘보안 키’ 이곳에 있어야 한다! 보안 키 사라지면 마력 폭풍도 멈춘다! 절대 잊으면 안 돼!]

“……걱정하지 마라.”

위이이이잉-

마력 회로가 엄청난 속도로 가속해 빛의 원통이 되고.

파스스스슥-

김철수의 몸은 빛을 발하는 것을 넘어 빛 그 자체, 광체(光體)로 변해 갔다.

‘이제 모든 게 끝난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아차! 타이탄! 깜빡할 뻔했네! 야, 내 타이탄 강철 훔쳐 간 천문석! 그 녀석 누구야?]

지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김철수의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까지처럼 얼렁뚱땅 넘길 수는 없었다.

천문석은 진실을 말했다.

“……나야.”

[그래 네가 본 거 알아! 내 타이탄 강철 훔쳐 간 도둑놈! 돌멩이 천문석 누구냐고? 걔 어디에 있냐고?!]

“그러니까 그 도둑놈, 돌멩이 천문석이 나야.”

천문석은 다시 한번 진실을 말했다.

[……!?!]

빠르게 깜빡이는 빛에서 생생한 감정과 울림이 쏟아져 나왔다.

[너 이세기라며?]

[천검 이세기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뭔 헛소리야?! 도둑놈! 천문석? 내 타이탄 훔친 돌멩이 천문석이 너라고?!! 장난하지 말고! 제대로 진실을 말해!!]

천문석은 맹세하듯 한 손을 들고 진심을 담아 진실을 밝혔다.

“천검 이세기는 일종의 별호, 소울 네임 같은 거고 돌멩이 천문석이 내 진짜 이름이야. 1999년 12월 31일. 북한산에서 타이탄 강철 주운 거 나 맞아.”

[……?!]

김철수의 광체(光體)가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폭발하듯 섬광이 터져 나왔다.

[야, 이 ㅆ……!!]

이게 마지막이었다.

김철수의 광체(光體)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마력 회로에 빨려 들어가.

빠아아아아앙-

빛의 탄환이 되어 아득한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명운을 태워 만든 절멸의 빛이 하늘을 반으로 가르고.

초월종의 본체, 검은 기둥을 단숨에 꿰뚫었다.

파파파파파팟-

하늘을 모조리 태울 듯 엄청난 빛이 천지간에 가득 차오르며 시야에 닿는 모든 그림자를 불태웠다.

이 순간 거대한 사념파가 울려 퍼졌다.

[□□ □□□!]

마신, 허신, 초월종, 그림자, 중합체의 잔해, 그림자가 아닌 아득한 천공에 퍼져 나가는 빛에서!

초월자 김철수의 사념파다!

‘천검 이세기!’

직감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사념파가 자동으로 해석되는 순간.

천문석은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고 진심을 담은 마음을 하늘에 전했다.

[미안하다! 사고였다! 절대! 절대로 훔치려던 게 아니야! 그 타이탄 네가 나한테 선물로 주는 건 줄 알았어!]

[■■■■! □□□□ □□ □?! □ □□□ □□ □□!!]

‘미친놈아! 타이탄을 누가 줘?! 내 타이탄 강철 내놔!!’

자신도 당장 주고 싶었다.

하지만 타이탄은 지금 자신에게 없다.

아니 자신의 손에 있어도 줄 수 없었다.

보석과 강철의 황제!

이세계에서 온 초월자 김철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타이탄 강철은.

특급 헌터의 특급 로봇이 됐으니까!

그렇다!

자신은 이미 타이탄 강철을 특급 헌터에게 선물로 넘겼다!

제주도 임옥분 여사님의 집 마루에서 별생각 없이 했던 약속대로!

그렇기에 천문석이 지금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20년! 20년 후! 2020년에 혹시 다시 만나면 꼭 돌려……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특급 헌터를 설득해 볼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

‘아마 설득은 힘들겠지만 말이야…….’

뒷말을 속으로 삼켰을 때 절절한 사념파가 쏟아져 내렸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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