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06화>
“사실은 말이야…….”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설명이 시작됐다.
그러나 김철수의 귀에는 이 설명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타이탄 강철을 알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한 문장이 번쩍 떠올랐다.
‘돌과 철을 찾아라!’
이 순간 자물쇠에 열쇠가 맞물려 돌아가듯 철컥- 기억의 빗장이 풀리고 아무리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던 기억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찾아라…… 철을 찾아라.”
따뜻한 온기가 담긴 바위 위, 검은 로브를 담요처럼 두르고 잠결에 속삭이는 꼬맹이.
너무나 눈에 익은 꼬맹이의 모습이 동영상을 뒤로 스킵하듯 거꾸로 재생됐다.
바위에 누웠던 몸이 일어나고, 잠결에 속삭이던 흐릿한 목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변해 갔다.
“돌과 철을 찾아라.”
“돌을…… 철을 찾아…….”
“돌을 찾아 강철을 회수…….”
“석이 가지고 튄 강철을 찾아라!”
“석을 찾아서 타이탄 강철을 회수해라!”
……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과 마력 파문을 일으키는 수인!
파스스스스슥-
꼬맹이는 대마법을 펼쳐 스스로의 기억을 봉인했다.
세계의 비의를 담은 기억을 그 누구도 엿볼 수 없도록!
그리고 혼백에 새겨 넣듯 온 마음을 담아 외쳤다.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라!”
“천문석이 타이탄 강철을 가지고 튀었다!”
“……!”
기억 속 장면을 보는 순간.
김철수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방금 기억은 자신이 잃어버렸던 기억, 지구로 귀환한 그 날의 기억이다!
너무나 눈에 익은 꼬맹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명운이 흩어진 자신이다!
마침내 진실을 알았다.
자신은 기억을 잃어버린 게 아니다!
스스로 대마법 봉인을 펼쳐 기억을 봉인했던 거다!
기억을 봉인한 이유는 간단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하늘에 가득한 그림자!
명운이 흩어져 꼬맹이가 된 마도 황제의 기억을 지구에 나타난 초월종이 엿보는 순간 참사가 터졌을 테니까!
그리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타이탄 강철의 행방도 알았다.
타이탄 강철은 분실한 게 아니었다.
기억 속 외침!
‘천문석이 타이탄 강철을 가지고 튀었다!’
그렇다! 타이탄은 잃어버린 게 아니라 도둑맞은 거다!
‘천문석’에게!
마침내 모든 진실을 깨닫는 순간 무아지경이 깨졌다.
김철수는 번쩍 고개를 들어 정면을 봤다.
“……그렇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건지 알겠지?”
어느새 설명을 끝맺는 천검 이세기.
무아지경에 빠져 미처 듣지 못한 설명.
하지만 지금 설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이세기가 타이탄 강철이 사라진 그때의 상황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증거와 사실을 합치면 결론은 하나!
김철수는 이글이글 열망이 타오르는 눈으로 외쳤다.
“너 타이탄 강철이 사라진 그 자리에……!”
“맞아. 거기 있었어. 그런데 앞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손을 들어 말을 끊고 다사 확인했다.
“사실관계 말고 강철! 타이탄 강철 어디 있어?!”
“그게 사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바로 촉이 왔다.
“괜찮아 이름은 이미 알고 있다! 어디 있는지만 말하면 된다!”
“……뭐? 이름을 안다고?”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쏟아 냈다.
“이름은 알아! 어디냐? 어디 있냐?!”
“아니지! 벌써 다른 곳으로 도망쳤겠지?!”
“추적해야 하는데 방법이…….”
“머릿돌! 그렇지 머릿돌이 있었지!
“진명은 이미 아니까 얼굴만 알면 대마법으로 세계를 특정할 수 있다!”
“세계만 특정하면 직접 가서 강철을 부를 수 있다!”
“너 얼굴 봤지! 그 녀석 얼굴만 기억하면 찾을 수 있다!”
……
김철수는 열망이 가득 담긴 폭풍 같은 외침을 터트렸다.
‘아니,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천문석은 말을 쏟아 내는 김철수를 봤다.
무언가 초점이 어긋난 대화. 외침이 이어질수록 오히려 의문이 쌓이고 있었다!
“……얼굴? 무슨 얼굴?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타이탄 강철 훔쳐 간 도둑놈!”
도둑놈!
세 글자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순간 김철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도둑놈 천문석! 이세기! 너 그놈 얼굴 봤지?!”
* * *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처음 도끼를 잡았는데 능숙하게 나무를 베고, 10살도 되기 전에 사서삼경을 줄줄 외운다.
30대 일류고수도 힘든데, 약관의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명문 거파의 후기지수(後起之秀)들!
재능(才能)!
세상에는 수식이 필요 없는 천부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이었다.
천문석도 재능이 있었다.
이름조차 없이 돌멩이라 불린 사고무친의 고아 소년이 수십 명의 동생과 몇 번이나 겨울을 났다.
다 쓰러져 가던 천문사를 물려받아 순식간에 주위 마을의 기우제, 풍년제, 작명, 택일을 싹쓸이했다.
생각지도 못한 마도 18문에 강제 입문하고 1년도 걸리지 않아 마도 쟁투에서 승리하고 마도 지존 천마의 위에 올랐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천문석이 가진 천부의 재능 덕분이었다.
잔머리!
‘도둑놈 천문석! 이세기! 너 그놈 얼굴 봤지?!’
김철수의 외침을 듣는 순간 그 잔머리가 파팟- 불꽃을 튀기며 미친 듯이 돌아갔다.
‘도둑놈 천문석 이세기’가 아니라!
‘도둑놈 천문석! 이세기다!’
천문석, 이세기 두 이름 사이에 놓인 ‘……!’ 느낌표가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 냈다.
도둑놈 천문석! 그리고 이세기!
김철수는 나이트 아머, 타이탄 강철을 날름한 범인으로 ‘천문석’을 찍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 이세기에게 ‘도둑놈 천문석’의 행방을 묻고 있었다!
즉, 김철수는 타이탄 강철을 주워 간 ‘천문석’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뭐야, 이 녀석! 왜 이런 오해를 하는 거야!?’
의문을 품는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생각!
‘설마?!’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각성력의 태양과 해일처럼 밀려오는 빛의 고리에 나뒹구는 그림자들.
그 너머 난장판이 된 허공과 지상에는 관심도 없는 무심한 하늘에서 뜻이 느껴졌다.
역시 하늘님!
불운, 사건, 재앙, 난장판의 연타를 때려 박았지만, 결정적 순간 자신에게 행운을 내려 주셨다!
‘초월자 김철수는 자신을 ‘목격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범인이 아닌 목격자!
이유는 간단했다.
초고순도 정제 마석과 머릿돌을 건넸고, 1999년 12월 31일의 사건을 말한 자신이.
‘천검 이세기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으니까!’
순간 가슴속에 깊은 곳에서 안도감이 퍼져 나갔다.
‘천검 이세기가 아닌 천문석이라고 말했으면 대형 사고가 터졌다!’
역시 내 절친 천검 이세기!
이세기 녀석의 잘생긴 얼굴로 산속 사당에서 겨울과 보릿고개를 몇 번이나 무사히 넘겼다!
거기에 더해 전생부터 현생까지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이세기’란 이름 덕분에 피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위기가 자신을 비켜 갔다!
천검 이세기란 이름 덕분에!
이 정도면 천검 이세기는 나의 영혼의 이름, 세컨드 네임이나 마찬가지……!
“야, 야! 얼굴! 얼굴 기억나?!”
이때 정신을 깨우는 김철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초월자 김철수는 ‘천문석’이 나이트 아머를 가져간 도둑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오해를 풀지 않는 이상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아니 그보다 나이트 아머 나한테 던져 준 거 아니었어? 설마 그냥 우연히 내 앞에 떨어진 거라고?! 내가 훔쳐 간 거라고?!’
수많은 사건, 사고, 불운, 위기를 겪었지만, 상상도 못 한 위기!
‘그냥 전부 사실대로 말할까?!’
힐끗 시선을 던지자 보였다.
백운대 암반에서 기습 공격했을 때도. 그림자가 튀어나왔을 때도 담담하던 김철수의 얼굴에 떠오른 분노!
진실을 말하는 순간 저 분노가 자신에게 쏟아진다!
아니 분노가 쏟아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지금 당장 타이탄을 돌려주고 오해를 풀 방법이 없다는 거다!
초월자가 아닌 초월자 할아버지가 와도 지금 타이탄 강철을 돌려주는 건 불가능하다!
타이탄 강철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나 2020년 서울에 사는 특급 헌터의 손에 들어갔으니까!
2000년과 2020년, 20년의 세월!
지금 당장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구라를 칠 수도 없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김철수는 자신의 힘을 깎아 지구에 각성력이란 선물을 안긴 진정한 초월자였으니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딜레마!
‘시바시바시바! 어떻게 하지?! 생각나라! 생각나!’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때 외침이 들려왔다.
“이름은 천문석, 진명은 돌멩이다! 얼굴만 알면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어! 그냥 여기에 손을 올리고 머릿속으로 강하게 생각하면 된다!”
파스스스슥-
어느새 허공에는 마력광을 뿌리는 원반, 마력 회로가 그려져 있었다!
처음 보는 마력 회로!
하지만 보는 순간 기능을 알 수 있었다!
머릿속 생각을 영상으로 투영하는 마력 회로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야, 그림자! 우리 그림자 처리해야지?! 하나만 닿아도 태양 오염된다며!”
“괜찮아! 저 녀석들 이성이 거의 날아갔어! 지금 북한산에 마력 회로를 깔아 놔서. 우리 있는 줄도 모른다. 어그로만 끌지 않으면 시간은 충분해! 얼른 천문석 도둑놈 얼굴부터 뽑아내자!”
파스스스슥-
김철수의 단호한 외침과 함께 마력 회로가 서서히 다가왔다.
피할 수 없는 재앙의 칼날처럼!
“……!”
이제 모든 진실이 드러나고 엉망진창 난장판이 시작된다!
눈을 질끈 감는 순간 폭음이 울려 퍼졌다.
쿵쿵, 쿠우우웅-
“……!”
“……!”
반사적으로 돌아가는 시선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포탄이 스쳤다.
콰카카카쾅-
몬스터 웨이브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능선과 계곡에 포탄이 떨어져 폭발했다.
“포격? 아니 왜 갑자기 포격이야?”
김철수가 황당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6시 30분!
5시 30분에 쏟아져야 했던 포격이 한 시간 늦게 시작됐다!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나쁘지 않다!
타이탄 도난 사건은 우선 적당히 넘기고, 플랜 Z로 타이탄 강철을 돌려주면 된다!
“야, 우리 이럴 때 아냐! 그림자! 얼른 그림자부터 처리해야지! 저 포격으로 그림자들 어그로가 끌리면 안 되잖아?!”
“괜찮다. 내가 펼쳐둔 마력 회로 물리력에는 영향을 안 받는다. 우선 범인부터 확인하고…….”
김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이아아아아-
하늘이 아닌 지상!
포탄의 불벼락이 쏟아지는 능선과 계곡 몬스터 웨이브에서!
포효가 터지는 능선과 계곡에서 붉은 오로라 같은 웨이브 반발장이 폭발했다.
웨이브 반발장은 단숨에 수백 미터 허공을 가로질러 차원압을 낮추기 위해 펼쳐진 마력 회로를 찢어발기고 아득한 천공을 향해 솟구쳤다.
“……아. 몬스터 반발장.”
김철수가 멍하니 하늘로 솟구치는 반발장을 바라볼 때.
천문석의 입에선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 어어? 저거 어디까지 가는 거야?!”
웨이브 반발장은 마력 회로를 꿰뚫고도 계속계속 하늘로 솟구쳐 마침내 닿았다.
끝없이 밀려오는 거대한 빛의 고리에 휩쓸려 나뒹굴고 있던 초월종의 그림자에!
[■■■?!]
[■■■! ■■?!]
[■■■ ■■! ■■■■!!]
각성력의 태양을 향하던 사념파가 지상을 향해 터져 나오고.
다음 순간 초월종의 검은 물결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선 황금빛 탑, 3차원 적층 마력 회로가 있는 곳.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천문석과 김철수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