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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05화 (1,20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05화>

우려했던 이변은 없었다.

마력 폭풍은 아무런 사건, 사고, 변수 없이 정상적으로 터졌다.

이변은 마력 폭풍이 터진 후에 일어났다!

각성력의 태양에서 생겨난 빛의 고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순간.

[우웅우우우웅-]

[□□□! □□□□!]

백운대 암반에서 검은 기둥이 하늘로 솟구치고 거대한 울림과 사념파가 터져 나왔다.

파삭-

검은 기둥은 아득한 천공에 닿는 순간 산산이 부서져 무수한 그림자를 쏟아 냈다.

그림자들은 떡밥으로 몰려드는 송사리 떼처럼 각성력의 태양으로 돌진했다.

“……저건 또 뭐야?!”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때.

김철수의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허신, 고대신, 악신, 신마, 초월종! 잔해? 흔적? 사념체? 중합체? 중합체! 쟤들이 지구에서 왜 나와?!”

이름만 들어도 감이 왔다.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 터지던 불운!

저 검은 그림자들이 이번에 찾아온 불운이다!

그림자가 각성력의 태양에 닿으면 모든 게 엉망진창 난장판이 된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강철봉을 뽑아 겨누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1미터가 좀 넘는 강철봉!

아득한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림자들!

아무리 내력을 밀어 넣고 강기를 일으켜도 근처에도 닿지 않는다. 원거리 무기가 필요하다!

‘리볼버!’

반사적으로 잡낭을 여는 순간 떠오른 기억.

리볼버와 마탄은 모조리 이세영 선생님께 넘겼다!

“원거리, 원거리 무기가?!”

재빨리 잡낭 안을 훑는 손에 걸리는 돌멩이, 약초, 포션, 검은 동전, 줄자…….

줄자!

워커 실트의 현철 줄자!

재빨리 줄자를 꺼내 주르륵 뽑았지만 20미터 남짓!

이걸로는 턱도 없다!

“하필이면 하늘이야!”

분통을 터트리며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때 좌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사고 터질 것 같다고 말했지!”

“잠깐 기다려 봐! 생각 중이잖아! 이번에도 방법이 나올 거다!”

분통을 터트리는 마혁진과 신뢰 어린 외침의 장철 헌터.

“당연히 계획이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우선 대답하는 순간 진짜로 번쩍 떠오르는 방법이 있었다.

서약의 불꽃을 아득한 천공으로 쏘아 올려 각성력의 태양을 점화시킨 마력 회로!

서약의 불꽃을 쏘아 올렸다면 당연히 다른 것도 쏘아 올릴 수 있다!

시선을 내리자 보이는 검대에 걸린 검!

유형화된 오러를 버텼던 재의 기사의 롱소드다!

이 롱소드로 만든 강기를 마력 회로로 가속해 쏘아 올리면?!

레일 건! 강기의 대공포화를 쏟아붓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건 먹힌다!

“김철수! 나한테 저 녀석들을 단숨에 처리할 계획이……!”

환희 어린 외침과 함께 몸을 돌리던 천문석은 흠칫 놀랐다.

어느새 후드를 벗고 하늘을 바라보는 김철수의 얼굴이 보였다.

경악한 얼굴이 아닌 어이없어 하는 얼굴이!

‘뭐지? 왜 저런 얼굴이지?!’

긴박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얼굴에 멈칫할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저 멍청한 녀석들……!”

처음 다급한 외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깊은 한숨과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허신, 악신, 초월종, 중합체라며?! 지금 위기 상황! 각성력의 태양에 닿으면 끝장인 거 아냐?!”

“맞아. 보안 마력 회로를 모조리 해제했다. 마력 폭풍이 끝나기 전에 한 놈이라도 각성력의 태양에 닿으면 각성력이 오염된다.”

“그럼 엄청난 위기 맞잖아! 당장 처리해야지! 내가 계획을 세웠어! 아까 서약의 불꽃을 쏜 것처럼 저 초대형 마력 회로로 강기를 쏘면…….”

김철수는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그럴 필요 없다.”

“뭐?”

“자세히 봐봐.”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오는 해일 같은 빛의 고리를 향해 엄청난 기세로 돌진하는 용, 거인, 이형의 괴수의 그림자들!

“뭘 자세히 봐?! 엄청난 기세……!”

엄청난 기세로 돌진하던 초월종의 그림자들이 서서히 밀려오는 빛의 고리에 휩쓸려 와르르 튕겨 나왔다.

[우우우우우웅-]

음기를 담은 울림이 하늘을 뒤흔들고.

[■■■! ■■■■]

수백 수천의 사념파가 뒤엉켜 하나로 폭발했다.

이 순간 그림자들은 각성력의 태양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다시 돌진했다!

그리고 빛의 고리에 휩쓸려 나뒹굴었다.

빗자루에 쓸려 나가는 낙엽처럼,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에 데굴데굴 구르는 강아지처럼.

계속, 계속해서!

구르고 또 굴렀다!

“…….”

천문석은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다 질문했다.

“……허신, 고대신, 악신, 신마, 초월종?”

하아아-

긴 한 숨소리 뒤로 이어지는 대답.

“멍청한 녀석들이 어디서 쥐어 터지고 사념체만 남아서 뭉쳤어. 이성이 대부분 날아가고 본능만 남았다. 아무래도 투영 공간에 붙잡혀 있다가 풀려 난 것 같은데…….”

‘아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천문석은 지금 가장 중요한 걸 확인했다.

“그럼 저거 그냥 놔둬도 되는 거냐?”

“아니. 단 한 놈이라도 태양에 닿는 순간 각성력은 오염되고 잃었던 힘을 되찾는다. 가능성이 0.0001%도 안 되는데! 그 가능성 때문에 모든 걸 제쳐 두고 처리해야 해! 타이탄 강철을 찾는 건 끝이야. 강철을 찾을 기회였는데…… 빌어먹을 젠장! 뭔 타이밍이 이렇게 거지 같아! 진짜 못 해 먹겠네! 무슨 사고가 이따위로 터져! 으아아악-“

담담하게 말을 시작한 김철수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괴성을 질렀다.

“…….”

너무나 익숙한 모습과 외침.

사건·사고, 불운에 절규하던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불운이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그 불운이 자신이 아닌 김철수를 찾아온 상황!

“와, 뭐가 이렇게 재수가 없어.”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불현듯 느껴진 기시감에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이 정도면 진짜 철수 형 어린 시절 아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불운!

-어린 김철수가 철수 형이 되는데 필요한 20년, 2000년에서 2020년!

-재의 기사의 충성 맹세를 받던 모습!

-알바 자리를 알선하고 학생들에게 받던 찬사와 추앙!

철수 형과 어린 김철수는 공통점이 너무나 많았다.

이쯤 되니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결정적 증거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10만 명을 얼굴 순으로 줄 세우면 1, 2, 3등 안에 들어갈 어린 김철수의 잘생긴 얼굴!

하지만 20년쯤 불운과 극한의 알바 전선에 구르면 어린 시절 잘생긴 얼굴도 철수 형처럼 세월과 노동의 풍파를 맞지 않을까?!

순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말도 안 되지.”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눈앞의 어린 김철수는 그냥 꼬맹이가 아닌 보석과 강철의 마도 황제, 지구에 각성력이란 힘을 선물한 진정한 초월자였으니까!

그런 초월자가 자신과 같이 온갖 알바 현장에서 같이 구른 철수 형이라고?

알고 보니 동네 뒷산이 세계 최고봉도 아니고, 알바 알선의 황제 철수 형이 보석과 강철의 황제 초월자라니!

차라리 1차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만난 초월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어?”

문득 생각이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주먹을 휘두르며 분통을 터트리는 초월자 김철수.

그 주먹이 향한 하늘에 가득한.

허신, 고대신, 악신, 신마, 초월종…….

중합체!!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섬광이 폭발하고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펼쳐졌다.

1999년 12월 31일.

1차 세기말 대한민국.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기 전날 밤!

초대형 뱁새에게 낚인 서리 늑대를 쫓아 북한산을 달리다 만났던 존재, 봤던 광경!

수백 수천의 마신급 존재의 사념체가 뭉쳐 만들어진 중합체가 나타났었다!

이대로라면 세계가 붕괴할 위기!

천강흔 랜덤 박스를 열고 초절정에 오르려 했다.

이때 하늘에 가득한 별이 한 번에 폭발하는 듯한 엄청난 빛이 중합체를 단숨에 꿰뚫어 불태웠다.

인간형 거대 로봇, 나이트 아머를 탄 초월적 존재가 한 일이었다!

나이트 아머에서 폭격하듯 쏟아진 존재 자체를 지우는 빛 앞에 마신과 허신의 사념체는 진흙 속으로 도망치는 물고기처럼 세계에 구멍을 뚫고 파고들었다.

그 뒤를 쫓은 절멸의 빛이 마신과 허신을 소멸시키면서 세계 그 자체에도 구멍이 뻥뻥 뚫렸다!

그 결과 댐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엄청난 마력장이 쏟아지고, 세계 자체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그때 나이트 아머가 ‘빛의 씨앗’을 뿌렸다.

광화문, 완도, 상해, 하노이, 카트만두, 테헤란, 이스탄불, 파리, 뉴욕,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춘천…….

게이트가 열릴 전 세계 도시를 향해서!

그리고 그날 자정, 2000년 1월 1일 00시 00분!

세계 최초의 게이트, 광화문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의 정체는 구멍 난 댐처럼 붕괴할 위험에 처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나이트 아머를 탄 초월적 존재가 만든 일종의 ‘수문’이었다!

“…….”

천문석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빛의 고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오며 새하얀빛의 덩어리, ‘각성력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1999년 12월 31일 초월적 존재가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 던진 ‘빛의 씨앗’.

2000년 1월 2일 초월자 김철수가 각성자를 만들기 위해서 뿌린 ‘각성력의 씨앗’.

빛의 씨앗, 각성력의 씨앗.

목적과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기원을 둔 힘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

천문석은 시선을 내려 김철수를 봤다.

1차 세기말 대한민국.

1999년 12월 31일에 나타났던 초월적 존재.

2차 세기말 대한민국.

2000년 1월 2일 바로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초월자.

비슷한 시간대에 초월자 둘이 나타났다.

당연히 의심했어야 했다.

그러나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

너무나 다른 첫인상!

처음 만난 순간 느낀 힘, 능력, 존재감, 위압감까지 모든 게 달랐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1999년 12월 31일에 북한산에서 만난 나이트 아머를 탄 초월적 존재가 바로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초월자 김철수다!

두 초월자는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빌어먹을 찾는 게 뭐 이렇게 빡세!”

초월자 김철수가 절규하듯 외치는 로봇, 나이트 아머가 어디 있는지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1999년 12월 31일 북한산에서 인간형 로봇, 나이트 아머를 주워 2020년으로 돌아가 제주도 휴가 때 한 약속에 따라 건네줬으니까.

특급 헌터에게!

이 세계는 자신이 갔었던 세계는 아니다.

그러나 언제 세계가 분화했는지 모르는 이상, 2일 전 자신이 없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김철수가 아무리 타이탄 강철을 찾아도 나올 리가 없었다.

나이트 아머는 자신이 주워 20년 후 특급 헌터의 손에 들어갔으니까!

즉, 김철수는 존재하지도 않는 나이트 아머를 찾는 거대한 삽질을 하고 있었던 거다!

자신 때문에!

“……!”

진실을 깨닫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고 저절로 입이 열렸다.

“잠깐! 할 말이……!”

“뭔데?”

“…….”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

“야, 너희는 얼른 돌아가. 쟤들 이성 대부분이 날아갔지만, 하나하나 모두가 더럽게 끈질긴 재앙이다! 찍히면 끝까지 쫓아간다. 여기는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게! 찍히기 전에 튀어!”

“아니, 잠깐! 그게 아니라……!”

“됐어. 찾는 거만 포기하면, 저 중합체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고맙다! 이 머릿돌이랑 정제 마석 덕분에 가능했다!”

위이이이잉-

김철수가 수인을 짚는 순간 회전하기 시작한 마력 회로!

천문석은 다급히 외쳤다.

“나이트 아머! 로봇 이야기야!”

“나이트 아머? 아! 괜찮아. 마지막 순간에 삐끗하는 건 익숙하거든. 하, 인생!”

“아니 그게 아니라! 2일 전! 북한산에서 나이트 아머 타고 게이트 연 초월자! 그게 너 맞지?!”

“내가 나이트 아머를 타고 게이트를 열었다고? 2일 전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시간 없어! 나중에!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이야기하자! 얼른 쟤들 대피 시키고 너도 튀어!”

파스스슥-

수인에서 마력 파문이 흘러나오고.

챠르르르륵-

어느새 허공에 뜬 정육면체 큐브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큐브에서 튀어나와 허공에 마법 회로를 그려내는 황금빛 선!

1미터 남짓!

원기둥 형태의 마법 회로가 줄줄이 생겨났다.

보는 순간 감이 왔다.

‘탄자다!’

츠츠츠츠츳--

마법 회로 탄자가 회전하는 코일 가속기, 수십 층 높이의 적층 마력 회로로 움직였다.

이제 곧 초음속의 마법 탄자가 쏟아지고 격전이 시작된다.

지금이 진실을 전할 마지막 기회다!

천문석은 머릿속에 펼쳐진 기억을 쏟아 냈다.

“인간형 로봇!”

“엄청난 마력과 유형화된 빛을 뿌렸다!”

“외장갑에 문신처럼 뿌려진 일곱 색의 핏자국이 있고!”

“갑자기 허공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펜던트가 떨어졌다!!”

김철수는 우뚝 멈췄다.

천천히 몸이 돌아가고 돌처럼 굳은 얼굴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펜던트…… 그 펜던트 모습이……?”

“피자처럼 부채꼴로 잘린 돌 8개가 모여 원을 만들고, 그 중앙에 말간 보석이 박힌…… 아, 피자가 뭐냐면…….”

김철수의 머릿속에 쾅- 벼락이 떨어졌다.

부채꼴 모양의 돌멩이 8개를 하나로 엮어 만든 펜던트!

마도 제국 타이탄 0번기!

황제 전용기 ‘강철’을 아공간 봉인한 펜던트다!

외장갑에 뿌려진 일곱 색의 핏자국!

악신, 적룡왕, 거인족 검사…… 강적들의 핏자국이다!

이세기가 설명하는 로봇의 외형이 타이탄 강철과 똑같다!

“네가 어떻게 타이탄 강철을 알아?!”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다.

천문석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천천히 입술을 뗐다.

“너 오해하면 안 된다. 절대 오해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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