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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04화 (1,20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04화>

[하늘님……!]

백운대 암반 위 허공에서 전생 천마의 마음의 외침이 터져 나올 때.

재의 기사의 육중한 전신 갑주가 내리누르고 있던 암반에선 검은 그림자들이 우수수 일어났다.

그리고 아득한 천공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각성력의 태양을 바라봤다.

이 순간 그림자, 투영체들은 환희에 몸을 떨었다.

자신들을 암반에 묶어 둔 재의 기사의 존재감이 흐릿해지고, 세계의 경계 너머에 숨어 있던 마력의 태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어떤 신과 초월종의 마력과도 다른 저 마력!

아무렇지도 않게 보안 마법 회로를 해제하는 능력!

게다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재의 기사의 서약 불꽃까지!

바로 그다!

절멸의 빛으로 자신들을 태우고 수백 수천 번 반복되는 세계에 버리고 사라졌던 마도 황제가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지금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재의 기사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져 주박이 풀리고!

마지막 보안 마법 회로가 해제되어 서약의 불꽃과 마력의 태양이 만나는 순간!

저 마력의 태양을 손에 넣어 오랜 갈망을 이루리라!

마도 황제의 멸절!

허신과 마신, 악신과 초월종의 잔재와 사념이 모인 투영체는 아득한 천공의 태양을 향해 갈망을 쏟아 냈다!

[우우우우우웅-]

투영체의 갈망이 담긴 사념파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으아악- 하늘님! 거의 다 돼 갑니다!]

전생 천마의 차원 방벽을 뚫는 절절한 마음의 외침과 함께!

사념파와 마음의 외침은 백운대 암반 위 허공에서 하나로 뒤엉킨 음차원의 울림이 되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음차원의 울림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휘이이, 휘이이-

재의 기사의 노랫소리가 드높은 하늘에서 작은 골짜기까지 북한산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문석, 장철, 마혁진.

국정원 직원들과 권 의원 일행.

이름을 잊은 하이브리온 가문의 기사.

그리고 보석과 강철의 황제 김철수까지.

숲의 공터에 모인 모두는 새로운 사건, 사고, 불운, 재앙이 꿈틀꿈틀 다가오는 걸 짐작도 못 했다.

인간의 청각을 월등히 초월한 한 존재만이 이상을 깨달았다.

…… -!

번쩍 눈을 뜬 뽀미는 백운대 암반을 바라봤다.

파파파팟-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한순간에 곤두서는 털!

‘저기 무언가 있다!’

맛있는 칼로리바를 주는 인간을 만났을 때와 같은 직감!

반사적으로 공간을 뛰어넘으려는 순간.

쓰으윽, 쓰으으윽-

목을 문지르는 포근한 손길과 부드러운 목소리.

“무슨 소리 들었어? 이 털 곤두선 거 봐. 무서워할 거 없어. 언니가 꼭 지켜 줄게.”

냐아아암-

뽀미는 자신도 모르게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꿈틀꿈틀 임수정의 포근한 품 안으로 파고들어 쿨쿨- 다시 잠들었다.

“……방금 뭔가 들은 같은데? 이거 말해야 하나?”

임수정이 망설이다 손을 들고 말하려 할 때 희열에 가득 찬 외침이 들려왔다.

“됐다! 마지막 보안 마력 회로 해제했다!”

*   *   *

구우우우웅-

거대한 종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고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왔다.

이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아득한 천공의 각성력의 태양.

하늘을 가로지르는 서약의 불꽃.

아무리 날아올라도 좁혀지지 않던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김철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10초! 마력 폭풍 터진다!”

하늘을 바라보는 모든 존재의 마음속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0, 9, 8…… 3, 2, 1, 0!

영원 같은 10초가 지나고 서약의 불꽃과 각성력의 태양이 만나는 순간.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듯 거대한 빛의 고리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왔다.

빛의 고리는 아득한 천공을 서서히 가로지르며 하늘 가득 새하얀 눈송이를 흩날렸다.

이 모습을 보는 모두는 직감했다.

‘마력 폭풍이 터졌다!’

이 순간 미동도 하지 않고 석상처럼 하늘을 바라보던 재의 기사가 움직였다.

끼기기기긱-

하이브리온 가문의 기사는 육중한 전신 갑옷을 입은 몸을 천천히 돌려 김철수를 봤다.

[…….]

“…….”

여전히 기사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감정 없던 얼굴에 생겨난 환한 미소를 보는 순간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문명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훌륭했다.”

적금발의 여기사는 강철 건틀릿을 들어 올려 가슴 갑옷을 두 번 두들겼다.

텅, 텅-

빛바랜 전신 갑옷에서 불티와 잿가루가 솟구치고.

쿵, 쿵, 쿵-

어깨, 목, 가슴, 등, 다리…… 전신 갑옷이 하나둘 떨어져 퍼석퍼석- 산산이 부서져 새하얀 재가 됐다.

그리고 적금발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 환한 미소를 담은 얼굴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기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 소리 내어 말했다.

“마이 로드.”

기사의 형체가 와르르 재가 되어 무너지고 작은 불꽃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천천히 허공을 가로질러 롱소드에 닿았다.

톡-

재의 기사의 마지막 불꽃은 대지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각성력의 태양을 겨눈 롱소드 검신에 스며들었다.

“…….”

“…….”

천문석은 김철수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롱소드를 내밀었다.

“아니.”

김철수는 고개를 젓고 허리 숙여 잿더미에 안으로 손을 뻗었다.

잿더미에서 나온 김철수의 손에는 강철 건틀릿 한 짝이 들려 있었다.

재의 기사의 강철 건틀릿.

“…….”

김철수는 한참 동안 강철 건틀릿을 바라보다가 앞으로 내밀었다.

“이 건틀릿은 네가 써라.”

“…….”

천문석은 건틀릿을 받고 롱소드를 내밀었다.

“받아. 재의 기사의 마지막 불꽃이 스며든 유품이다.”

“아니, 제국 기사의 유품은 이 노랫소리다.”

김철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롱소드도 너에게 줄게. 난 아무것도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거든. 아, 이 머릿돌은 잠시 후에 돌려줄게. 찾을 게 있거든.”

“찾을 게 있다고?”

“잃어버린 돌과 철.”

김철수는 씩 웃으며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진 북한산을 돌아봤다.

“지금이라면 찾을 수 있어.”

위이이이이잉-

이 순간 수십 층 높이의 마력 회로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우선 스캔을 교란하는 차원 준위부터 낮추고.”

딱-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마력 회로에서 수만 가닥의 선이 뻗어 나왔다.

찰나의 순간 거대한 뚜껑처럼 북한산을 덮은 황금빛 선!

그리고 펌프로 물을 퍼내듯 무언가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천문석의 다급한 외침에.

김철수는 여상한 어조로 대답했다.

“수영장에서 잃어버린 물건 찾으려고 물 빼는 거 봤지? 그거랑 마찬가지야. 북한산 어딘가에서 돌과 철을 잃어버렸는데 아무리 스캔해도 나오질 않아. 차원압이 높아서 스캔이 먹히지 않는 거 같아, 차원압을 낮추고 머릿돌의 힘으로 스캔 마법을 펼치면 금방 찾을 거다.”

김철수는 적층 마력 회로에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잃어버린 물건 찾으면 머릿돌 돌려줄게.”

김철수는 스스로의 힘을 포기하고, 깊은 인연으로 묶인 재의 기사의 희생을 감내했다.

마력 폭풍, 지구에 각성력이란 선물을 넘겨주기 위해서.

“됐어. 그냥 가지고 가라.”

바로 고개를 젓는 김철수.

“어차피 지금 나는 수면에 비친 허상이나 마찬가지야. 수면에 비친 자신에게 손을 뻗어 봐야 물만 잡히잖아?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가지고 돌아가지 못해. 머릿돌 잘 간수 해라. 이거 엄청엄청 귀한 거야!”

김철수는 씩 웃으며 수인을 짚고 마력 파문을 일으켰다.

“한 10분이면 끝날 거다.”

둥둥, 둥둥둥둥-

북을 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물결이 되어 퍼져 나갔다.

거대한 황금빛 선에 뒤덮인 얼어붙은 풀과 나무, 흙과 바위, 허공을 향해서.

“…….”

잠시 이 모습을 바라보던 천문석은 몸을 돌려 크게 손을 흔들었다.

“염동. 집에 돌아가자!”

장철 헌터와 염동 대협 마혁진은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제 다 끝난 거냐?”

“야, 진짜 끝난 거 맞아? 뭐 잊은 거 없어? 혹시 놓친 거라든지?!”

장철 헌터의 듬직한 목소리 뒤로 마혁진의 불안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진짜 끝났습니다! 제 완벽한 계획대로 마력 폭풍이 터졌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됩니다! 카캬캌-”

천문석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마혁진은 불안한 눈으로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는데…… 중간에 뭔가 사건이 터져서 난장판이 돼야 말이 되는데…….”

“천의! 하늘이 뜻이 나랑 함께한다니까! 염동! 너 왜 이렇게 믿음이 없어?!”

“그동안 겪은 게 있는데 너라면 믿겠냐?!”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버럭 소리치는 마혁진.

괜찮다!

어차피 돌아가면 잘못된 고정 관념을 버리게 될 테니까!

“그럼 바로 시작할게!”

천문석은 무장 벨트에 롱소드를 걸고 잡낭에 강철 건틀릿을 넣다가 문득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큐브와 정제 마석을 손에 쥔 김철수.

늘어지게 잠든 뽀미를 품에 안은 임수정과 그 뒤에 모여 있는 사람들.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국정원 5팀장과 김 대리, 이 대리. 청년 마혁진.

끓어오르는 욕망이 담긴 시선을 보내는 권 의원과 경찰, 검찰 수사관들.

당장이라도 달려와 질문을 쏟아 내고 회유하려는 모습이지만 그 바람은 이뤄질 수 없었다.

우리는 이제 집에 돌아갈 테니까!

이별은 짧게!

“모두 잘 있어라.”

천문석은 들리지 않는 작별 인사를 하고 잡낭에서 손을 꺼냈다.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

빨간색과 파란색 두 가지 버튼이 보였다.

천문석은 2004년 부산에서 넘어올 때처럼 빨간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장철과 마혁진을 봤다.

“바로 시작한다.”

찰깍-

회중시계 옆면의 빨간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회중시계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냐?”

“하, 그 시계 또 그러냐?”

걱정스러운 장철.

어이없어 하는 마혁진.

천문석은 바로 설명했다.

“이 시계 원래이래요. 부산에서도 이랬습니다.”

“부산에서도 그랬다고……?”

마혁진은 장철의 말을 잘랐다.

“뭐야? 너 기억 안 나? 해운대 앞바다에서도 이랬잖아?”

“해운대 앞바다?”

“야, 염동! 그때 장철 헌터님 기절해서 오리배 보트 좌석에 묶어 놨잖아!”

“오리배? 유원지에서 타고 노는 오리배?”

“아, 그랬었지! 장철 넌 못 봤네. 저 시계 원래 좀 이상해. 뭐 당연한 거지. 너도 알잖아? 이세기 저 녀석이랑 엮이면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거.”

“야, 방금 완벽하게 먹힌 내 계획을 보고도 그 소리냐?! 하늘에 저 마력 폭풍 안 보여?!”

“됐고! 빨리 누르기나 해. 지금도 내 촉이 말하고 있다. 뭔가 사건이 터진다고!”

마혁진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알았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빨간 버튼을 계속, 계속 눌렀다.

2004년 해운대 앞바다에 오리배 악어를 띄웠을 때처럼.

찰칵, 찰칵, 찰칵-

마혁진은 문득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해운대 앞바다처럼 용용이 나오는 거 아니겠지?”

“용용이? 바다의 재앙 용용이? 용용이가 나왔다고?!”

장철 헌터의 외침에 마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진짜 난리도 아니었다. 용용이가 소용돌이 휘감고 나타나서…….”

쐐애애애액-

이 순간 공기를 찢어발기는 음속 폭음이 터졌다.

반사적으로 하늘로 움직인 얼굴에 보였다.

각성력의 태양을 중심으로 퍼져 나오는 빛의 고리를 향해 몰려드는 검은 얼룩 같은 형체들!

“…….”

“…….”

“…….”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때 거대한 떨림과 함께 사념파가 쏟아졌다.

[우웅우우우웅-]

[□□□! □□□□!]

그리고 김철수의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허신, 고대신, 악신, 신마, 초월종! 잔해? 흔적? 사념체? 중합체? 중합체! 쟤들이 지구에서 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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