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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03화 (1,20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03화>

천공에 숨겨져 있던 각성력의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적층 마력 회로를 통과한 서약의 불꽃이 아득한 천공을 향해 가속할 때.

김철수는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7, 8, 9개? 아니, 이게 다 몇 개야? 뭔 보안 마법 회로를 이렇게 촘촘하게 짜놨어?!”

각성력의 태양 주위에는 보안 마법 회로가 겹겹이 깔려 있었다!

김철수는 과거의 자신이 각성력의 태양에 만들어 놓은 마법 회로를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지구에 보안 마법 회로를 해제할 존재는 없는데?!”

잊어버린 기억을 되짚으며 보안 마법 회로를 해제할 때 문득 드려오는 바람 소리가 있었다.

휘이, 휘이이-

운율이 담긴 휘파람 소리를 닮은 바람!

이 순간 잊었던 기억 하나가 번쩍 떠올랐다!

진혼진군가!

제국 기사들의 노래!

타대륙의 전장에 울려 퍼지던 진혼진군가가 지구의 북한산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순간 깨달았다.

이상한 숲과 더 이상한 아이.

천마를 부르자 나타난 천검 이세기.

이름을 잊어버린 하이브리온 가문의 기사.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이상한 아이 덕분에 2000년 1월 2일 세기말 대한민국에 왔고.

천검 이세기를 불러 정제 마석과 머릿돌을 얻을 수 있었다.

재의 기사, 이름을 잊은 하이브리온 가문의 기사가 서약의 불꽃을 받았다.

셋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나지 못했다면 마력 폭풍을 터트려 지구 전체에 각성력의 씨앗을 퍼트리겠다는 자신의 계획은 실패했다!

하지만 자신은 세 사람을 만났고 성공했다.

지구의 김철수가 타 대륙에 문명의 불꽃을 피워 올렸던 것처럼.

타 대륙, 하이브리온 가문의 기사는 지구의 하늘에 서약의 불꽃을 쏘아 올렸다.

서약의 불꽃과 각성력의 태양이 만나는 순간 마력 폭풍이 터지고.

마력 폭풍에 실린 각성력의 씨앗이 전 세계에 흩어져 수많은 지성체의 마음에 떨어지게 된다.

각성력의 씨앗이 발아할 조건은 단 하나!

‘지킨다!’

아주 작은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한 사람이 독점했던 힘은 수십, 수백만의 사람과 생명에게 전해지게 된다.

상상만으로 가슴이 터질 듯이 벅차올랐다.

수없이 게이트 전쟁을 반복하며 갈망하고 기원했다.

‘자신이 가진 이 힘을 모두에게 나눠 줄 수만 있다면!’

그 오랜 갈망이 마침내 이뤄지고 있었다.

수없이 시간을 돌리면서도 찾지 못했던 게이트 전쟁 승리의 ‘가능성’이 생겨났다!

가능성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이 세계의 나뭇가지뿐만이 아니라 한 가지에서 갈려 나온 서로 다른 나뭇가지들도 닯아 간다.

이 세계에 마력 폭풍이 터지는 순간, 다른 나뭇가지에도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마력 폭풍이 터지고 각성자들이 탄생하리라!

자신의 오랜 소망이 마침내 이뤄졌다.

휘이, 휘이이이-

진혼진군가를 노래하는 하이브리온 가문의 기사 덕분에!

“…….”

김철수는 문득 고개를 돌려 기사를 봤다.

아득한 천공으로 날아오르는 서약의 불꽃을 바라보며 진혼진군가를 노래하는 기사.

기사의 전신에선 불티와 하얀 재가 흩날리고 그 존재감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존재의 본질을 이어 주는 명운이 흩어진 기사는 이제 곧 죽는다.

아니 죽음보다 더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혼백에 쌓아 올린 업을 태워 서약의 불꽃을 만들었기에, 거대한 흐름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사는 한 점 후회 없이 자신이 만들어 낸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사필멸은 신조차도 피하지 못하는 숙명.

보석과 강철을 잃어버리고, 스스로의 이름마저 잊은 자신에게는 하이브리온 가문의 기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삶은 유한하나, 그 본질은 영원히 이어지니. 많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

오래전 만났던 검성의 말이 진실이기를 기원하며, 끝까지 신념을 지킨 기사의 마지막 노랫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

김철수는 수인을 짚고 파문을 일으켰다.

휘이, 휘이잉-

진혼진군가를 담은 바람 소리와 물결치듯 퍼져 나간 마력 파문이 만났다.

이 순간 수십 배로 강해진 바람이 아득한 하늘을 달려 지구와 경계 너머의 세계로 퍼져 나갔다.

*   *   *

“……어? 이거?!”

롱소드로 각성력의 태양을 가리키고 있던 천문석은 문득 느껴지는 직감에 시선을 돌렸다.

크아아아아-

계곡과 능선에서 마수와 몬스터의 포효가 울려 퍼지고.

휘이잉, 휘이이잉-

운율이 담긴 바람이 하늘과 대지 가득 울려 퍼졌다.

‘휘파람 소리?’

바람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지구에는 이질적인 존재가 보였다.

적금발의 여기사, 재의 기사가 불티와 잿가루가 흩날리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갑옷에서 흩날리는 발간 불티와 새하얀 잿가루는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재의 기사는 석상이 된 듯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각성력의 태양을 향해 쏘아 올려진 서약의 불꽃을 바라보며 노래했다.

[…….]

선이 가는 얼굴에 담긴 단단한 신념.

기사의 표정 없는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바람에서 기사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득한 천공에는 거대한 각성력의 태양이 빛나고.

노을이 드리워진 하늘을 백광, 서약의 불꽃이 가로지른다.

휘이, 휘이이-

숲과 산에는 재의 기사의 마음이 담긴 휘파람 소리를 닮은 바람이 불고.

[…….]

재의 기사는 열기를 잃은 불꽃과 모두 타 버린 하얀 재를 흩날렸다.

열기를 잃은 불꽃과 모두 타 버린 하얀 재.

모든 힘을 담아 서약의 불꽃을 피어올린 재의 기사에 남은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이제 곧 재의 기사는 모든 힘과 기억을 잃고 거대한 흐름으로 돌아간다.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고정하는 명운이 흩어진 이상 당연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재의 기사에게서는 아쉬움, 후회,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터질 듯이 차오르는 환희와 열망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재의 기사를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김철수.

보석과 강철의 황제 김철수와 재의 기사 사이에 무슨 일이,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른다.

[…….]

“…….”

하늘을 올려다보는 재의 기사와 그런 재의 기사를 말없이 바라보는 김철수에게서 긴 이야기와 아득한 인연이 느껴졌다.

바람에 담겨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서 이유 모를 친숙함이 느껴졌다.

‘뭐지? 이 휘파람?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언제지? 어디였더라?!’

천문석은 재의 기사와 김철수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이때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롱소드! 야, 롱소드 움직이면 안 돼! 아직 끝난 게 아냐!]

김철수에게서 날아온 다급한 메시지!

“……!”

번쩍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내딛던 상황!

원통형 마력 회로 중앙의 ‘十’ 표시에 겨눠진 롱소드가 흔들렸다!

재빨리 롱소드 위치를 고정하고 외쳤다.

“미안! 알고 있다!”

검신에 담겼던 서약의 불꽃은 사라졌지만 느껴졌다.

롱소드 첨단에서 뻗은 무형의 선이 마력 회로 중앙의 ‘十‘자 표시를 관통하여 가속!

아득한 천공에 자리한 각성력의 태양을 가리키고 있다!

서약의 불꽃은 이 무형의 선을 따라 날아오르고 있었다.

도화지에 선을 긋는 것과 같다.

출발지에서 각도가 몇 도만 차이 나도 선의 끝에서는 그 차이가 몇 배로 커진다!

천문석은 롱소드를 미세하게 조정해 각성력의 태양의 중심을 정확히 가리켰다.

곧 롱소드는 거대한 바위에 박힌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됐어! 보안 마법 회로 해제에 시간이 걸리고 있어! 조금만 버텨라! 10분! 길어야 10분이면 모든 게 끝난다!]

김철수의 몸 주위로 황금빛 선이 튀어나와 마력 회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10분!

서약의 불꽃이 각성력의 태양에 닿는 순간 마력 폭풍이 터진다!

한경석을 찾으며 시작된 이 긴 이야기의 끝이 마침내보였다.

“하아- 진짜 길었네. 이렇게 길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파티마는 경석이를 만났겠지? 설마 던전에서 나갔는데 없는 거 아냐?”

내심 안도하며 남일도 던전에서 헤어진 동료를 생각할 때 번쩍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가짜 5관 금괴 제련 사건!

자신이 남중국에 오게 된 이유들!

5관 금괴를 얻자마자 잘라서 진위를 확인했으면 이 모든 일은 시작도 안 했다!

제련을 맡긴 한경석의 낌새가 이상하단 것만 눈치챘어도 사건이 이렇게 커지진 않았다!

대환단을 헌터 나라에 올리지만 않았어도 광화문이 난장판이 되고 국가 헌병대와 얽히진 않았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항상 안도할 때 사건이 터지고 모든 난장판이 시작됐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

그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마력 폭풍이 터지기 직전인 지금이 가장 위험할 때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다!’

천문석은 기감을 사방으로 뻗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 봤다!

넋을 놓고 하늘을 보는 장철과 마혁진!

쿨쿨 잠든 뽀미와 뽀미를 안은 채 하늘을 보는 임수정!

어느새 동굴에서 나와, 부러질 듯 고개를 치켜든 국정원 일행과 경찰, 검찰 권 의원의 사람들!

예상대로 모두가 방심하고 있다!

“……!!”

천문석은 즉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강렬한 시선을 쏘아 보냈다.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권 의원이었다.

“……!”

흠칫 놀라 몸을 파르르 떨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급히 동굴로 들어가는 모습!

경찰과 검찰, 국정원 일행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다음은 마혁진!

[염동! 너 뭐 하고 있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말을 던지는 순간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마혁진!

“……!”

“…….”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벼락같은 외침을 마음에 담아 던졌다.

[새꺄! 정신 안 차리지?! 이 중요한 때 구경을 하고 있어?! 사주 경계 똑바로 안 해!]

“……!?!”

마혁진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새캬! 장철도 같이 구경하는데!’

마혁진의 억울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

천문석은 말없이 장철 헌터를 가리켰다.

장철 헌터는 이미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경계 중!

마혁진의 얼굴이 황당함과 어이없으므로 물들었다가 곧 주위로 염동력장이 퍼져 나갔다.

됐다!

장철 헌터와 염동 대협 마혁진이 바짝 긴장해 주위를 살피고.

뽀미는 임수정의 품에 안겨 쿨쿨 잠들어 있지만, 뭔 사건이 터지면 누구보다 먼저 움직일 거다.

돌발 변수에 대응할 준비는 끝났다!

앞으로 10분!

이제 마력 폭풍이 터지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천문석은 롱소드를 들어 올린 채 사방으로 기감을 뻗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천공에 드러난 각성력의 태양!

아득한 하늘을 가로지르는 서약의 불꽃!

멀리멀리 울려 퍼지는 운율이 느껴지는 바람!

그리고 바짝 긴장한 채 주위 모든 것에 촉각을 세운 사람들!

1초, 2초, 3초…….

시간은 평소의 몇 배나 느리게 흘러갔고.

10분 후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서약의 불꽃은 하늘을 가로질러 각성력의 태양이 있는 아득한 천공에 도착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천문석이 예상한 변수, 사건, 난장판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숲에서는!

이 순간 아무도 없는 백운대 암반에서 소리가 아닌 마음으로 전해지는 절절한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늘님? 하늘님?! 어깨까지 나왔습니다! 이제 곧 차원 방역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설마 나갔는데, 없으신 건 아니죠?! 하늘님 계시면 대답 좀 해 주세요!]

김철수 자신이 불러 놓고 까맣게 잊은 천마 후보 1번.

전생 천마의 절절한 마음이 백운대 암반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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