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98화>
“……!”
김철수가 쏟아 낸 말 속에 담긴 한 단어가 천문석의 발걸음을 잡았다.
“너 방금 뭐라고……?!”
다시 묻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몇 번이나 말했잖아! 워커 실트 행방을 알아야 한다고……!”
“아니 그거 말고, 뭘 터트려야 한다고 했잖아?!”
“마력 폭풍? 하아- 마력 폭풍은 물 건너갔어. 마력이랑 명운이 흩어져서 어차피 시간 못 맞춰. 각성력의 씨앗을 퍼트려야 하는데…… 이미 늦었어. 남은 방법은 워커 실트뿐이다! 워커 어디에 있냐?! 서울에 있냐?! 서울 아니더라도 메시지를 던지면……!”
각성력의 씨앗!
무공, 육체, 오러, 마탄, 마력, 초능력.
6계통의 각성력을 지닌 각성자가 탄생한 계기이자 자신이 거대 괴수를 북한산으로 유인하고 뽀미를 각성시킨 이유!
잘못 들은 게 아니다.
김철수는 마력 폭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북한산의 난장판에 정신없이 구르면서 찾았지만, 마력 폭풍의 작은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마력 폭풍의 흔적, 실마리는 북한산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에게 있었으니까!
초월자 김철수!
김철수가 마력 폭풍과 관련이 있었다.
아니 관련이 있는 걸 떠나 자신이 마력 폭풍을 터트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력 폭풍이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일으킨 거라고?!’
‘이게 가능한 건가?! ‘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몇 시간 전 마혁진이 2020년으로 돌아가자며 쏟아 냈던 말들!
‘지금 여기 있는 각성자가 ‘너, 나, 얘!’, 육체, 초능력, 무공 각성자 셋뿐인데!’
‘현장에서 몸으로 구르는 우리가 아무리 생각한다고 ‘마력 폭풍’ 문제가 해결되겠냐?!’
‘추이린! 그 녀석 같은 머리 쓰는 녀석, 마력 각성자가 있어야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어!’
마혁진의 말이 맞았다.
마력 폭풍의 실마리는 추이린 수석 같은 마력 각성자가 있어야 잡을 수 있었다.
추이린 수석 연구원 같은 1세대 마력 각성자는 세기말 대한민국에 없다.
하지만 차원 방벽을 뛰어넘고, 천의로 뜻을 전하는 존재가 있었다!
‘마력 폭풍은 ‘어떻게’ 터졌냐?’
처음부터 질문이 틀렸다.
‘마력 폭풍은 ‘누가’ 터트렸냐?’
이게 제대로 된 질문이다.
‘어떻게’가 아닌 ‘누가’!
언제나처럼 사람이 중요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답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1세대 마력 각성자를 아득히 초월한 어떻게 가능한지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아득한 수준의 마법을 사용하는 초월자!
문득 움직이는 시선에 어느새 앞을 막고 열변을 토하는 꼬맹이가 보였다.
“……워커 실트 위치만 알려 주면 지분 3%, 아니 5% 추가로 줄게! 15%가 절대 적은 지분이 아냐! 회사 상장도 안 할 거야. 지분이 분산되면 사업 시작도 하기 전에 견제받고 정보가 유출돼서 망한다. 15% 이게 내 최선이다. 앗! 아니면 20년 후에 금괴 10톤으로. 잠깐! 너 아까 건물주 이야기했었지?! 20년 후에 건물이랑 빌딩으로 넘겨줄까? 아니지, 건물 같은 게 아니라 아예 영지를 하나 줄게! 그러니까 빨리 워커 실트 위치…….”
김철수!
1년도 아닌 20년 후에 금괴, 건물, 영지를 주겠다는 꼬맹이에게도 안 먹힐 설득을 하는 김철수가 답이었다.
이세영, 장철, 이태성, 마혁진, 추이린…….
뽀미, 용용이, 거북이…….
수많은 각성 헌터와 각성 동물을 탄생시킨 마력 폭풍은 바로 자신 앞 김철수가 일으킨 거다!
“……!”
격동으로 몸이 떨리고 저릿저릿한 전율이 마음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 눈에 새겨지는 모습!
깨진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로 엉망이 된 얼굴과 얼마나 굴렀는지 전신에 붙은 흙과 낙엽, 진흙!
20년 후에 김철수라는 각성자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철수가 지분을 주겠다는 초대박을 터트릴 회사도 들어 본 적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김철수의 미래를 이미 봤다!
4년 후 2004년 부산!
김철수는 평범한 꼬맹이가 되어 부산의 서울 보육원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 여기서 마력 폭풍을 터트리며 힘과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희생과 대의!
쉽게 말해지는 가치다. 하지만 직접 행동으로 이 가치를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제주도 몬스터 사태 때 사람들을 구하다 무너진 천장에 깔렸던 철수 형처럼!
철수 형과 이름이 같은 초월자가 스스로를 희생해 마력 폭풍을 터트리려 하고 있다!
우선은 확인부터!
천문석은 말을 끊고 질문했다.
“마력 폭풍! 각성자가 태어나는 마력 폭풍 터트릴 수 있냐?!”
“마력 폭풍은 잊으라니까! 이미 늦었어! 워커…….”
“잠깐! 대답부터! 마력 폭풍 터트릴 수 있냐?”
천문석의 진지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철수.
“그래. 터트릴 수 있었지…….”
“그렇지! 하늘님이 괜히 뺑뺑이를 돌리고 사건을 몰아주실 리 없지! 하늘님 이런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군요! 하하하하하-”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해결하지 못한 마지막 하나, ‘마력 폭풍’을 해결할 실마리를 잡았다!
초월자, 김철수!
김철수는 스스로를 희생해 마력 폭풍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이 정해졌다.
김철수를 도와 마력 폭풍을 터트리는 것!
“우리 과거의 오해는 덮어 두고 미래를 위해, 게이트 전쟁 승리를 위해 나아가자!”
“그러니까 워커 실트 어디 있는지……!”
“우리 당장 마력 폭풍 터트려야 한다! 내가 뭘 해야 하냐?!”
짧은 침묵 뒤로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하아- 너 내 말을 전혀 안 듣고 있었구나. 마력 폭풍 안 된다니까.”
“뭐? 너 방금 마력 폭풍 터트릴 수 있다며?!”
“터트릴 수 있었다고 했잖아! 있었다고!”
“……있었다고? 잠깐 그 말은 설마……?”
“맞아. 전에는 되고 지금은 안 된다!”
“아니 왜! 도대체 왜 안 되는데?! 아니지, 뭐가 됐든 당장 그 문제부터 해결하자! 네가 모르나 본데 마력 폭풍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천문석은 피를 토하듯 말을 쏟아 냈고.
김철수는 말없이 쏟아지는 외침을 들었다.
방금 전과 역할이 뒤바뀐 상황.
“……결국, 전투는 물량이다!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한 손으로는 안 돼! 마력 폭풍을 터트려 각성자가 쏟아져 거점과 전선을 유지해야 승산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마력 폭풍을 터트려야 한다! 뭐가 문제야? 빨리 말해 바로 해결하고 마력 폭풍 터트리자!”
천문석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김철수는 손을 들어 가리켰다.
“이게 첫 번째 문제다.”
천문석이 던진 돌멩이에 깨져 피가 철철 흘러내리다 말라 굳은 이마를!
“……아.”
탄성이 터지는 순간 옆으로 움직여 숲 한쪽을 가리키는 손.
“두 번째 문제. 재의 기사에게서 ‘서약의 불꽃’을 뽑아낼 통제력을 가진 녀석이 저러고 있다.”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고,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놀고 있는 뽀미를 가리키는 손가락!
“그리고 세 번째 문제는…… 됐다. 어차피 첫 번째, 두 번째 해결 못 하면 세 번째는 가지도 못해.”
고개를 가로저은 김철수는 바로 말을 이었다.
“이제 알았지? 마력 폭풍은 이미 늦었어. 타이탄 마스터가 마지막 희망이다. 워커 실트 혹시 서울에 있냐?”
김철수는 기대로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
그러나 천문석은 김철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워커 실트는 이 세계가 아닌 2020년 남중국 남일도에 있었으니까.
2000년 어딘가에 과거의 워커 실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알지 못했다.
아니 안다고 해도 말해 줄 수 없었다.
수없이 말했던 나비 효과.
워커 실트에게 문제가 생기면 장철은 장세린, 딸을 만나지 못한다.
“미안하다. 말해 줄 수 없다.”
단호한 대답에 김철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천문석은 실망하지도 좌절하지 않았다.
“마력 폭풍을 터트리자. 내가 도와줄게! 우선 두 번째 문제. 재의 기사한테서 서약의 불꽃 빼내는 거 내가 할 수 있을 거 같다!”
“네가? 서약의 불꽃은 그냥 불꽃이 아냐. 뽀미 정도의 염동력, 통제력이 아니면 움직이는 게 불가능하다.”
“통제력? 이런 거 말이야?”
짝-
양손이 부딪치는 순간 둥실 허공에 떠오른 작은 불꽃!
작은 불꽃은 허공에 잔상을 남기고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이걸로 안 되냐?]
김철수의 눈이 번쩍 뜨이고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잠시만 계산 좀 하고!”
김철수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이 돌아갔다.
직접 싸워 봤기에 짭천마 이세기의 실력을 잘 알았다!
거기에 이 정도 통제력이면?
한 가지만 충족되면 가능성이 있다!
“서약의 불꽃을 옮기는 순간 엄청난 고통이 밀려올 거다? 버틸 수 있겠냐?”
“통증?”
오욕칠정을 태우는 마공으로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서고, 천지를 잇는 천강의 불꽃으로 스스로를 불태운 게 자신이다.
“당연히 버틸 수 있다!”
천문석의 확신에 김철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
그러나 밝아졌던 얼굴은 바로 어두워졌다.
“……안 돼. 돌멩이 맞으면서 마력이 모두 날아갔어. 서약의 불꽃을 빼내도 마법 회로를 만들 마력이 없다. 다시 마력을 모을 시간도, 마석도 없어. 아니 마석이 있어도 정제할 시간이 없다. 하아-”
김철수가 한숨을 내쉴 때.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켰다.
2000년 1월 2일 서울에 도착하고 계속 생각했다.
왜 자신과 장철, 마혁진은 이곳 세기말 대한민국에 왔을까?
처음에는 자신이 하늘에 고한 장철의 딸, 장세린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정신없이 한강 다리를 건너 중랑천 물길을 뚫고 몬스터 저지선을 만들었다.
장철은 이번에는 늦지 않게 장세린, 잃어버렸던 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소망을 이룬 장철은 세린이를 과거의 장철과 부인, 장민 가족에게로 돌려보냈다.
해야 할 일, 목적을 이뤘으니 그때 2020년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 순간 정신없이 사건이 터져 집으로 돌아갈 타이밍을 놓치고 서울 북쪽 끝 북한산까지 오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과 불운에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자신과 장철, 마혁진 세 사람이 북한산에 온 건 사고, 불운 때문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준비한 정교한 설계였다!
천문석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장철과 마혁진.
각성한 뽀미와 임수정.
청년 마혁진과 국정원 요원들.
권 의원, 경찰과 수사관들.
재의 기사.
초월자 김철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까지!
붉은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펼쳐진 광활한 북한산의 작은 숲에 모두가 모였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이 모든 사람을 한자리에 모았다.
‘어째서?’
이 순간 던전에 들어와 알게 된 모든 정보가 퍼즐 조각이 되어 머릿속에서 맞물리고 질문의 답이 떠올랐다.
게이트 전쟁 승리!
마력 폭풍을 터트리기 위해서다!
* * *
하하하하하-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긴 여행이 끝나고 천문사를 물려줄 때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천지불인(天地不仁).
하늘과 땅에는 마음이 없으니 어진 마음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다!
스승님이 틀리셨다.
하늘에는 마음이 있었다.
장철 헌터와 장세린.
염동 대협 마혁진과 청년 마혁진.
임수정과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
재의 기사.
초월자 김철수.
전생 천마 천문석.
아득한 시간과 공간, 차원을 넘어.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 그 증거였다!
천문석은 모든 사건과 불운, 난장판의 이유, 하늘의 뜻을 깨닫는 순간 외쳤다.
“마력 폭풍! 김철수 우리는 반드시 마력 폭풍을 터트릴 거다!”
“안 된다니까 그러네! 마력이 전부 날아갔다고! 명운도 흩어지기 시작했어! 이미 늦었어! 우리는 끝장이야!”
김철수의 절망 어린 목소리가 돌아올 때.
천문석은 무장 벨트로 손을 내리며 말했다
“마력은 걱정할 거 없다!”
“뭔 헛소리야? 이게 전부 다 마력이 없어서 생긴 일인데! 잠깐 너 설마? 방법이 있냐?!”
김철수가 반색하는 순간.
천문석은 손을 내밀었다.
“이게 방법이다.”
“…….”
김철수의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당연했다.
천문석의 내민 손에는 해머가 들려 있었으니까!
“한 손 해머? 야, 해머가 무슨 방법이야?!”
“이건 해머가 아니다. 하늘의 뜻이다!”
“……하늘의 뜻? 이 상황에 먼 헛소리를……!”
천문석은 해머 헤드와 자루를 붙잡고 비틀었다.
파스스슥-
빙글 돌아가는 자루 틈에서 만져질 듯 선명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해머 자루가 완전히 열리고 마력 회로와 기계장치 한가운데, 푸른빛을 뿜어내는 육각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민 대표가 장철 헌터에게.
장철 헌터가 자신에게 건네준 하늘의 뜻.
점성 있는 액체가 담긴 육각 기둥.
초거대 기업 재금 그룹이 만든 나이트 아머 연료.
초고순도 액화 정제 마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