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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96화 (1,19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96화>

“감귤이……?”

천문석이 바람결에 실려 온 이름을 말했을 때.

뽀미의 몸은 어느새 정지 버튼을 누르듯 멈춰 있었다.

냐앗-?

그리고 의아한 울음소리와 함께 장철과 마혁진, 그 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얼굴이 돌아갔다.

뽀미의 시선이 한 사람 한 사람을 훑다가 한 사람에게서 멈췄다.

…… -?!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뽀미!

천문석은 뽀미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봤다.

국정원 요원들 사이 라이더 재킷을 입은 여자.

1차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처음 만났고.

2000년 3월의 서초구에서 칼로리바 쪽지를 건네줬던.

어린이 대공원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거대 괴수를 뺑뺑이 돌리던 임수정이다!

보는 순간 깨달았다.

방금 바람결에 실려 온 목소리는 임수정의 목소리다!

그리고 뽀미는 100여 미터에 달하는 거리 너머 정확히 ‘임수정’을 보고 있었다!

‘뽀미가 목소리 주인을 한 번에 알아봤다고?! 설마……!’

천문석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순간 다시 한번 바람결에 목소리가 실려 왔다.

“……아닌가? 흰색, 노란색, 검은색…… 무늬가 정말 비슷한데? 하긴 우리 예쁘고 착한 감귤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나쁜 고양이일 리 없지…….”

고개를 갸웃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임수정.

…… -!!

이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뽀미의 두 눈에 이글거리는 마력광이 번뜩이고 전신에서 폭발하듯 각성력이 치솟았다!

“뽀미! 아냐! 나쁜 고양이 너 말한 거 아냐!”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치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순간 몸에 실리는 가속도!

뽀미는 외침이 끝나기도 꼬리로 잡은 천문석을 던져 버리고 허공으로 도약!

파파파팟-

섬광과 함께 백여 미터 거리를 단숨에 도약해!

임수정과 국정원 요원들, 수사관과 경찰 수십 명의 머리 위 이십여 미터 허공에 나타났다!

“……!”

“……!”

“……!”

멀리서 전투를 보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허공에서 튀어나온 10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 고양이의 모습에 모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피해!”

“으아아악-!”

장철이 반사적으로 뛰어들고, 염동 대협이 악을 쓰며 역장을 일으켰으나 이미 늦었다!

‘떨어지는 거대 고양이에 먼저 뭉개진다!’

최후를 직감한 모두가 질끈 눈을 감는 순간.

폭발하듯 치솟은 푸른빛이 거대 고양이의 전신을 휘감았다.

휘이, 휘이이이-

그 순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거대한 고양이의 몸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탁-

바닥에 내려섰을 때는 10미터가 훌쩍 넘어가던 거대한 고양이는 어느새 양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고 어린 삼색 고양이로 돌아와 있었다.

어린 삼색 고양이는 폭풍처럼 몰아치던 무시무시한 모습이 전부 거짓말인 것처럼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며 폴짝폴짝 뛰었다.

나얌, 냐아암-!

깜짝 놀란 얼굴로 얼어붙은 임수정 앞에서!

“……감귤이! 너 진짜 감귤이 맞구나! 너 여기는 어떻게 올라 거야?! 언니가 만들어 준 도서관 집에 왜 안 있고?!! 괴물들 나와서 엄청 걱정했잖아!”

냐냐, 냐아앗-!

뽀미는 작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앞발로 이세기가 날아간 방향을 가리켰다.

마치 엄마에게 이르는 아이처럼!

“엄청 맛있고, 그리운 냄새가 났다고? 언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고 했잖아!”

바지와 재킷을 쓰스쓱 타고 올라 냠냠- 목을 핥는 어린 고양이.

“그만, 그만 간지러워! 알았어. 화 안 낼게. 다시 만나서 나도 반가워 감귤아!”

냐암, 냐아얌-!

어린 삼색 고양이는 부드럽게 울며 몸을 비비고 작은 혀로 연신 얼굴을 핥았다.

“…….”

“…….”

“…….”

장철과 마혁진.

권 의원, 수사관과 경찰.

5팀장과 국정원 요원들까지

모두는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줄줄이 부러져 날아간 나무들.

바스러져 자갈이 된 바위와 푹푹 파인 암반.

방금 치열한 격전이 펼쳐져 난장판이 된 숲이 보였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거대 고양이와 싸워 숲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세기가 날아간 방향으로!

“…….”

“…….”

“…….”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표정과 분위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모두는 이심전심,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삽질이란 말인가?!’

“하아아-”

장철 헌터의 땅이 꺼질듯한 한숨 뒤로.

염동 대협 마혁진의 탄식이 이어졌다.

“이세기…… 재수 없는 새끼…….”

하아-

하아아-

짙은 노을이 드리워지는 숲속에 한숨 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모두의 마음속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건 빈 깡통처럼 날아간 천문석도 마찬가지였다.

*   *   *

“…….”

천문석은 멍하니 임수정을 바라봤다.

거대화!

연속 순간이동!

무시무시한 물리력!

전신을 옥죄던 중력장!

……

무시무시한 각성 능력을 폭풍처럼 쏟아 내던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는 더 이상 없었다!

냠, 냐암-

엄마를 만난 새끼 고양이처럼 예쁘게 울며!

할짝할짝-

손, 얼굴, 목덜미를 핥고 애교를 부리는 새끼 고양이 감귤이만 있었다!

‘감귤이!’

이게 바로 열쇠, 핵심, 마법의 단어였다!

임수정이 뽀미를 ‘감귤이’라고 부르는 순간 분노한 뽀미는, 착해 보이는 어린 고양이가 됐다!

“……거지 같은!”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불쑥 기억이 튀어나왔다.

1차 세기말 대한민국! 서리 늑대를 찾아 국민대를 거쳐 북한산에 오를 때 어린 삼색 고양이를 만났었다.

감귤이!

국민대 도서관 뒤편, 고양이 집에 걸려 있던 뽀미의 원래 이름이다!

‘임수정이 그 집과 감귤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구나! 잠깐! 설마 그럼 그것도……?!’

직감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떠오르고 전신에 전율이 일었다!

장철, 마혁진은 분명 거대 괴수가 오토바이를 따라 북한산으로 이동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임수정은 어린이 대공원에서 거대 괴수를 뺑뺑이 돌리던 배달 오토바이를 운전했다!

거대 괴수를 북한산으로 유인한 라이더가 바로 임수정이다!

그리고 거대 괴수가 북한산에서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임수정의 친구 뽀미, 아니 감귤이가 친구의 뒤를 쫓아 온 거대 괴수를 잡았으니까!

‘잠깐, 그럼 왜 감귤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뽀미란 이름으로 알려진 거지?’

문득 의문이 들었으나 바로 고개가 저어졌다.

뽀미, 감귤이!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조금만 빨리 말하지…… 하아-”

그랬다면 뽀미와 싸울 일 자체가 없었을 텐데.

이 거대한 삽질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러나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마혁진과 장철 헌터다!

보고 듣지 않아도 선명히 그려진다!

‘그럴 줄 알았다. 뭐? 계획? 내가 말했지? 얻어걸린 거라고, 너 재수 없다고!’

측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마혁진!

‘하아, 하아아-’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을 장철 헌터!

‘이런 치욕이라니!’

생각만으로도 현기증이 밀려오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긍정적 마인드로 생각했다.

계획은 절대 실패한 게 아니다.

자신은 절대로 재수 없지 않다!

두 가지 좋은 소식이 있었으니까!

첫째! 더는 뽀미와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둘째! 문득 고개를 들자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검은 로브!

그렇다! 검은 로브가 보인다!

뽀미는 자신을 휙 집어던진 숲에는 나무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아지경에 빠진 검은 로브를 입은 초월자가 있었다!

마력이 바닥난 초월자가!

*   *   *

새옹지마!

뽀미는 임수정, 아군의 아군이 됐고.

초월자를 제압할 기회까지 얻어걸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초월자야말로 자신의 계획이 제대로 먹혔다는 증거다!

재의 기사와 싸울 필요도 없다!

눈앞의 초월자만 적당히 제압하고 냅다 2020년 집으로 도망치면 된다!

게다가 초월자는 무아지경에 빠져 마력을 충전하느라 무방비한 상태!

무방비한 초월자만 제압하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천문석은 프로였다.

상대는 초월자!

무방비하게 보여도 실상은 엄청난 수준의 보호 마법을 둘둘 휘감고 있을 거다!

특히 저 로브는 보통 물건이 아니다!

나무 바로 아래에서 보는 자신조차 시야에서 벗어나면 기척과 존재감을 깜빡깜빡 놓친다!

요괴선, 마불이 만들어 낸 보패급 마도구!

뽀미가 자신을 정확히 이곳으로 던지지 않으며 찾지 못했을 거다!

그야말로 새옹지마!

우선은 보호 마법부터 확인한다!

결심하는 동시에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돌멩이들!

천문석은 돌멩이를 두 손 가득 들고 한달음에 나무 뒤로 달려갔다.

후, 하-

크게 심호흡하고, 돌멩이에 내력을 담았다.

‘돌멩이가 닿는 순간 전개되는 보호 마법을 확인하고 폭풍처럼 몰아쳐 제압한다!’

생각과 동시에 팔꿈치, 어깨, 손목의 스냅을 담아 돌멩이를 던졌다.

빠아앙-

돌멩이는 단숨에 공간을 뚫고 날아가.

따아아악-

가부좌를 틀고 앉은 초월자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다.

“……!”

초월자는 번쩍 눈을 떴고 섬뜩한 마력광이 줄기줄기 쏟아졌다!

‘이제 시작이다!’

활시위를 당기듯 전신에 힘을 주고 언제든 쏘아질 준비를 하는 순간.

으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초월자가 뚝 나무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야, 이 녀석? 설마, 함정인가?!’

함정이라도 괜찮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천문석은 언제든지 몰아칠 수 있게 내력을 끌어올린 채 초월자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곧 머리를 부여잡고 땅바닥에 엎드린 초월자를 발견했다.

“으으윽- 뭐야? 돌멩이?! 갑자기 날아온 돌멩이가 이마를 때렸다고?! 마력! 내 마력! 시바! 명운도 흩어지잖아! 이게 끝이라고?! 튕겨 나간다고?! 뭐가 이따위야! 젠장젠장젠장!!”

탓탓, 탓탓탁-

작은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리치며 분통을 터트리는 초월자.

무시무시한 느낌은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지고 익숙한 느낌이 왔다.

목소리도 외침의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그 행동은 너무나 눈에 익었다.

“…….”

장철 헌터의 말이 맞았다.

특급 헌터가 좌절할 때를 빼다 닮은 모습이다!

천문석은 알 수 없는 직감에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너 혹시 특급 헌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번쩍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초월자!

초월자는 피에 젖은 얼굴로 돌멩이를 흔들며 미친 듯이 분통을 터트렸다.

“짭천마! 너구나! 미친놈아! 갑자기 돌멩이는 왜 던져?!! 마력 모으던 게 다 날아갔잖아! 지금 세계에서 튕겨 나가게 생겼다고! 망했어! 너 때문에 완전히 망했다고!”

그렇다! 초월자는 피에 젖은 얼굴로 분노했다.

어느새 빛을 삼키던 검은 후드가 벗겨져 초월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장철 헌터가 예상이 틀렸다.

하지만 천문석이 이미 한번 만났던 아는 얼굴이었다.

남일도 던전에 들어오고 처음 도착한 세계.

서울 수복 작전을 앞둔 2004년 부산, 칠성파 빌딩!

이세영 선생님을 만나고 기절했다 깨어난 순간 눈앞에 있던 아이!

철수형이랑 이름과 연령대가 맞아 혹시나 했다가 잘생긴 얼굴을 보고 의심을 거둔 꼬맹이!

천문석은 마침내 깨달았다.

지금 자신 앞,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초월자의 정체는……!

“김철수! 너 김철수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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