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93화 (1,19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93화>

쿵, 쿵, 쿵-

육중한 걸음 소리와 함께 천천히 멀어지는 재의 기사!

“…….”

천문석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재의 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

타타타탓-

한달음에 따라붙어 다급히 말을 쏟아 냈다!

“야, 잠깐 멈춰봐! 너 어떻게 칠성검을 펼치는 거야?!”

[…….]

“칠성검, 칠성검공 어디서 배운 거야?!”

[…….]

“야, 야! 어떻게 아는지 대답하라니까!”

[…….]

“칠성검 몰라? 일기공, 일원공은?!”

[…….]

“일기일원공도 몰라?!”

[…….]

“마도 18문? 극음도, 화염도, 여래문, 반야당은……?!”

[…….]

……

천문석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무림에서 이 말은 모든 무공에는 그 뿌리, 근원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배나무에선 배가 열리듯이!

같은 뿌리를 가졌으면 당연히 같은 열매가 열리는 법!

소림, 무당, 화산, 남궁세가, 마도의 18문 모두 마찬가지!

겉모습, 형(形)이 달라져도 뿌리가 같다면 그 안에 담기는 무의(武意), 뜻은 같다.

재의 기사가 어떻게 칠성검, 칠성검공을 펼쳤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순간 가능성, 경우의 수가 줄줄이 튀어나왔다.

누군가 자신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비슷한 열매, 칠성검공을 만들어 낸 거라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면 전생 천마, 현생 알바 천문석 자신의 무의 근원은 무엇인가?

스승님에게 배운 수인(手印)!

천문사를 물려받고 대박 사찰을 꿈꾸며 배운 불법!

원하지 않았음에도 강제로 입문하게 된 천마신공!

무저갱의 마굴을 걸으며 상대한 초월자들!

천마신공의 업을 벗기 위해 파고든 유불선의 법도예(法道藝)!

이 모든 것을 뿌리로 맺힌 열매가 일기일원공이다!

그리고 일기일원공을 수련하기 위한 마음이 칠성검공, 그 마음을 초식으로 풀어낸 게 칠성검이다!

칠성검, 칠성검공은 일기일원공이란 목표에 닿기위한 방법이자 수단, 수련공이다!

강이 있어야 배를 만드는 법!

일기일원공 없이 칠성검이 나올 리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창안한 일기일원공을 익힌 사람은 천문석 바로 자신뿐…….

순간 번쩍 머리를 스치는 이름들이 있었다.

이원, 여량위!

일원공과 일기공을 나눠 가르친 두 사람이 있다!

이원과 여량위, 그 후인들이 나눠진 심법을 합쳐 일기일원공에 입문했다면?!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듯, 일기일원공이란 나무에서 칠성검이란 열매를 키워 냈다면?!

그리고 그 칠성검이란 열매가 아득한 하늘의 인과로 눈앞의 재의 기사에게 전해졌다면?!

“……!”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지고 생각하기도 전에 답이 튀어나왔다.

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천문석 자신이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재의 기사에게 해야 할 말, 보여 줄 행동은 하나였다.

천문석은 재의 기사를 앞질러 뛰어가 내력을 움직였다.

왼손에 일기공, 오른손에 일원공을 일으키고.

머리는 하늘의 중심, 천원을 향하고 두 다리는 땅의 맥, 용맥을 밟았다.

그리고 걸었다.

쿵-

한걸음에 천기가 쏟아지고.

쿵-

다시 한걸음에 지기가 솟구친다.

쏟아지고 치솟는 하늘과 땅의 흐름 속에서 왼손과 오른손이 원을 그려내는 순간.

일기일원(一氣一元)!

하늘과 땅, 천원과 용맥을 하나로 잇는 일기일원공의 뜻을 담은 초식이 펼쳐졌다.

‘일기일원공을 익혔다면 못 알아볼 리 없다!’

천문석은 일대종사의 위엄을 담아 외쳤다.

[내가 일기일원문의 조사다. 네 스승이 누구냐?]

쿵-

이 순간 재의 기사의 육중한 발이 마침내 멈췄다!

“……!”

‘드디어! 누구에게 배웠냐?! 이원, 여량위? 아니면 두 사람의 제자?! 빨리빨리 말해라!’

천문석이 마음속으로 초조히 외치는 순간.

쿵-

재의 기사는 다시 발을 내디뎌 천문석을 빙글 돌아 나아갔다.

[…….]

아무 말 없이!

숲을 향해서!!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따라 달리며 외쳤다.

“야! 내가 네가 펼친 무공 만든 조사라고, 조사! 개파조사 몰라?! 문파 최고 대빵! 야, 야! 아무 대답이나 좀 해 봐!”

그러나 재의 기사는 대답하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쿵, 쿵, 쿵-

투구를 정면에 둔 채 육중한 발을 내디뎌 숲을 향해 걸어갔다!

이 순간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

재의 기사를 막기 위해선 쓰러트려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재의 기사를 쓰러트릴 생각은 없었다.

재의 기사는 흔적을 지우고 2020년으로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했으니까!

거기에 재의 기사가 펼친 칠성검, 칠성검공이라는 의문까지 이유에 더해진 상황!

‘어떻게 하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답이 나왔다.

멈추지 않는 재의 기사! 폭주하는 기관차를 막을 수 없다면,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면 된다!

장철과 국회의원 일행!

마혁진과 국정원 요원들!

각성 후유증을 겪는 뽀미를 우선 빼낸다!

재의 기사가 펼친 칠성검의 근원을 알아보는 건 그다음이다!

천문석은 마음의 결정을 한순간 몸을 돌려 재의 기사를 앞질러 숲으로 달려갔다.

“하, 시바. 또 계획 변경이라고 말하면, 마혁진 녀석이 지랄할 텐데…….”

*   *   *

“…….”

마혁진은 문득 말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조폭, 작업장, 칠성파, 부산, 신동대문, 삼합회, 야쿠자, 이태성…….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가는 수많은 이름.

문득 생각이 멈추고 선명한 이름 세 글자가 떠올랐다.

‘이세기.’

그렇다! 전부 이세기가 원인이다!

이세기와 얽히기 전에는 상식선에서 사건·사고가 터졌다면!

이세기와 얽힌 후에는 듣도 보도 상상도 못 한 대형 사건, 기괴한 사고가 잇달아 터지고 있다!

-신동대문 깃발전!

-거대 괴수 등에서의 3인 결전!

-수많은 차원의 온갖 이종족이 모인 차원 짬통, 열사의 사막!

-숨 쉬는 것조차 돈을 내는 스카라베 강철 도시의 강제 노역!

-도시를 등에 짊어지고 사막을 달리는 거대한 거북이!

-거대 괴수들과 나이트 아머가 뒤엉킨 해운대 앞바다 격전!

……

이 모든 일을 겪고, 이세기와 더는 얽히지 않겠다는 생각에 남중국 푸저우시로 튀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남중국 푸저우시로 쫓아 온 이세기!

또다시 이세기와 얽혀 남일도 던전에 떨어졌다.

2004년 부산, 깡패 두목 마혁진!

2000년 서초구, 폭주족과 검은 폭풍!

2000년 1월 2일, 게이트가 열린 직후 세기말 대한민국까지!

눈덩이가 커지는 것처럼 사건·사고, 재앙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자신은 구르고, 또 구르고, 계속 굴렀다!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지금.

또다시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오늘 하루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오판이었다.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보시다시피 전 비무장입니다! 검은 로브의 초능력자님께 꼭 드릴 제안이 있습니다!”

한겨울 산속에서 속옷만 입은 채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치는 국정원 요원!

그리고 국정원 요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광경.

“아아악- 죽어랏! 죽어! 끄어어억-!”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주먹을 휘두르는 검은 로브, 초월자!

냐앗, 냐아야얏-! 깨애애애-!!

마찬가지로 데굴데굴 구르며 정신없이 앞발과 꼬리를 휘두르는 어린 삼색 고양이, 뽀미!

바짝 긴장하고 움직인 게 무색하게도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감도 안 오는 초월자가 공터 바닥을 구르며 싸우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꼬맹이들이 싸우는 것처럼!

“뭔 이런 개판이 다 있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개싸움, 아니 고양이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움직이는 국정원 요원이 보였다!

‘미친. 저기가 어디라고 다가가!’

이때 하나로 뒤엉킨 채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 멀어지는 뽀미와 초월자가 보였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뽀미와 초월자 모두 서로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렸다!

바로 지금이 국정원 일행을 데리고 빠져나갈 기회다!

마혁진은 수풀에서 뛰어나가 공터로 달리며 바닥난 각성력을 끌어모았다.

‘나와라! 좀 나와! 으아아악-!’

단숨에 공터를 가로질러 속옷만 입은 국정원 요원의 팔을 낚아채는 순간.

“……누구?!”

피핏-

순간이동!

아찔한 현기증에 비틀거리는 국정원 요원과 함께, 청년 마혁진과 모두가 숨어 있는 수풀로 떨어졌다.

“팀장님?”

“염동 대협?!”

“어떻게 여기에?!”

마혁진은 놀란 외침을 끊었다.

“말은 나중에!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와!”

앞장서 달렸으나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뭐야? 뭔데?! 빨리 따라와! 피해야 한다!”

“팀장님?”

모두의 시선이 속옷만 입은 국정원 5팀장에게 모였다.

“안 됩니다. 국익을 위해선 저 검은 로브를 반드시 회유해야 합니다!”

“미친! 쟤가 누군지 알고 회유를 해! 저 초월자! 엄청 위험해! 절대 접근하면 안 돼!”

마혁진이 외치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움직였다.

“아악, 으아악-!”

냐얏, 냐아아앗-!

고양이와 뒤엉켜 데굴데굴 구르며 괴성을 지르는 초월자에게로!

“…….”

“…….”

“…….”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침묵 뒤로 반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월자! 저 검은 로브가 초월자군요? 위험하다면……. 혹시 정보가 있으신가요?! 주소, 이름 같은 인적 사항을 아십니까?!”

5팀장은 반색한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그 환해진 얼굴은 다음 대답을 듣는 순간 와락 일그러졌다.

“쟤, 이세기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하, 하하- 그렇군요.”

어색한 웃음, 황당한 표정.

마혁진은 즉시 말을 이었다.

“이세기, 그놈 더럽게 재수 없지만, 촉은 거의 예지 수준이야! 저기 초월자랑 얽히면 너도 내 꼴 난다! 빨리 옷부터 입어! 바로 피해야 하니까!”

“국익……!”

단호히 고개를 젓는 5팀장.

듣지 않아도 뒷말과 앞으로 이어질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

천천히 설득할 시간이 없다!

강제로 데려간다!

마혁진은 5팀장의 얼굴에 잽을 날렸다.

“……!”

타, 탓-

5팀장은 반사적으로 스탭을 밟아 잽을 피하고 원투 스트레이트에 훅, 3연타를 날렸다.

격투기를 배운 사람이라도 한 방에 훅 갈 제대로 체중이 실린 3연타였다.

그러나 상대는 이세기와 얽히며 온갖 변칙 기술에 쥐어 터지고 개고생에 단련된 마혁진이었다.

퍽, 퍽퍽-

마혁진은 쏟아지는 3연타를 몸으로 버티고 복부에 차돌 같은 주먹을 찔러 넣었다.

5팀장이 허리를 꺾으며 무력화되는 순간 번쩍 들어 어깨에 걸쳤다.

“시바, 옷은 왜 벗은 거야?! 바로 움직일 거니까! 얘 옷 가지고 따라와라!”

외침과 동시에 몸을 돌리는 순간 보였다.

“…….”

어깨에 웬 노인을 둘러멘 채 자신을 보는 장철!

그리고 그 뒤 경악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

“……!”

백운대 주차장에서 경고도 없이 총을 쐈던 녀석들이다.

검찰 수사관과 경찰들!

어느새 장철이 국회의원 일행을 데리고 도착했다!

“왔구나! 나도 준비 끝났다. 바로 움직이자!”

반색해서 움직이는 순간 깊은 탄식이 돌아왔다.

“하- 이 한겨울에 사람 옷은 왜 벗겨?”

“뭐? 내가 뭘 벗겨?!”

황당함에 반문할 때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국정원 요원 아냐?”

“한겨울에 옷은 왜 벗은 거야?”

“자기가 벗고 싶어 벗었겠냐? 하-”

“공무원이 뭐라고 새해부터 이 지랄이냐…….하아-”

……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어이없어 하는 시선들!

“야, 아니야! 내가 벗긴 게 아니라……!”

마혁진이 해명하려는 순간 터져 나온 외침이 있었다.

“모두 어디 있냐?!”

멀리 나무 뒤에서 보이는 사람!

이세기!

드디어 돌아간다!

마혁진은 이세기를 향해 외쳤다.

“여기다! 전부 모여 있다! 초월자, 뽀미 완전히 맛이 갔어! 그냥 직선으로 달려오면 된다!”

*   *   *

‘언제나 그렇듯 처음,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천문석은 숲을 달리며 재빨리 표정과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곧 외침과 함께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발견했다.

‘뭐야? 초월자 있는 공터에 왜 저렇게 가까이 있어?!’

의아해하는 순간 돌아온 대답!

“……초월자, 뽀미 완전히 맛이 갔어!”

‘이런 행운이라니!’

천문석은 한달음에 달려가 준비한 표정, 준비한 목소리로 외쳤다.

“변수가 생겼다! 절대 절대로 내가 친 사고가 아니라……!”

그리고 말문이 컥- 막혔다.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는 시선에 보이는 사람들.

경악한 얼굴로 무어라 속삭이는 검찰 수사관과 경찰!

넋 나간 얼굴의 국정원 요원과 임수정, 청년 마혁진!

국회의원으로 보이는 노인을 납치하듯 어깨에 둘러멘 장철!

그리고 마지막 마혁진의 어깨에는…….벌거벗은 남자가 걸려 있었다!

“……!?!”

몇 번을 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비유나 은유가 아닌 진짜로 벌거벗은 남자다!

“염동, 미친놈아! 한겨울에 사람 옷은 왜 벗겨 놓은 건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