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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92화 (1,19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92화>

두우우우우우웅-

거대한 종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 퍼질 때.

곰처럼 숲을 질주하던 장철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종소리를 듣는 순간 감이 왔다.

천문석이 재의 기사를 유인하기 시작했다!

“유인하겠다더니 아주 작살을 내놓는구나. 하긴 남 말할 처지가 아니지.”

장철이 피식 웃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선생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현직 국회의원……!”

어깨에 걸쳐진 권 의원의 외침과.

“의원님! 권 의원님!”

“그분이 누군지 알고?!”

“현역 의원! 국회의원이십니다!”

“당장 멈추세요!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한다!”

“……쏟아진다니까!”

……

정신없이 뒤를 쫓는 수사관과 경찰들의 외침이.

설득할 필요도 없이 단숨에 모두를 대피시켰다!

겸사겸사 ‘권 의원’이라는 오래 숙원도 해결하고!

하하하-

장철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숲을 달렸다.

“선생님! 선생님! 왜 이러시는지 이유라도 좀 말해 주세요!”

권 의원의 외침을 듣는 순간 세린이를 찾아 서울을 헤매던 게이트 전쟁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게이트 5개가 중첩해서 열린 서울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다.

같은 게임을 하던 이태성.

각성한 이태성은 자의, 타의로 서울을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과 각성자들을 모아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이태성의 목표는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탱커, 딜러, 지원…… 게임의 구성을 그대로 옮긴 사냥팀으로 마수와 몬스터를 밀어내고 거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강과 인접한 철근 콘크리트 성채.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째로 거점으로 수복했다.

이태성과 1세대 헌터들은 한강과 이어지는 하천을 이동하며 마수와 몬스터를 사냥하고 고립된 사람들을 구해 날랐고. 자신은 세린이를 찾아 움직였다.

그때 고립된 서울 밖 세상과 연결된 식당에 놓인 텔레비전이 있었다.

추이린이 뭘 어떻게 했는지 멀쩡하게 방송이 나오던 텔레비전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결사 항전을 부르짖는 정치인.

-몬스터와의 공존을 말하는 시민운동가.

-선거와 임기 연장을 놓고 싸우던 국회.

-제주도 봉쇄령을 내린 정부.

-군 복무 중임을 알리는 연예인.

……

텔레비전 속 제주도와 눈앞의 서울, 낙동강 전선은 완전히 다른 세상인 것만 같았다.

화면 속에서 항전을 외치는 사람들을 정작 전장에선 볼 수 없었다.

전황은 악화되고 물자 부족은 점점 심해졌다.

어제 웃으며 인사한 동료가 오늘은 군번줄로 돌아왔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듯한 소녀가 소총을 끌어안은 채 철모를 베고 잠들고.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어린아이가 동생의 손을 잡고 닭 모이를 주고 달걀을 모았다.

노인들은 어깨에 피가 철철 흐르도록 지게를 짊어지고 던전에서 물자를 나르고.

남녀를 가리지 않은 무장 수송대가 몬스터가 흘러넘치는 도로를 뚫고 호남평야에서 쌀을 날랐다.

서울과 전국의 거점, 낙동강 전선은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격전의 나날이었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걸고 끝없이 밀려오는 몬스터의 파도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알려진 제주도의 모습은 전장과 너무나 달랐다.

이 모든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은 ‘냉기 포자’ 사건이었다.

8월의 제주도에 내리는 폭설 속에 숨어 있던 눈송이와 똑같이 생긴 냉기 포자!

제주도에서 파티를 벌였던 정치인, 재벌, 유력인사의 자녀 수십 명이 냉기 포자에 당했다.

줄줄이 병원에 실려 가던 정치인, 재벌 2세들의 모습과 현장의 사진과 영상이 방송과 인터넷으로 뿌려졌다.

산처럼 쌓인 음식과 깨끗한 옷과 밝은 얼굴!

제주도의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과 직접 사진과 영상으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전국의 거점과 낙동강 전선에서 버티고 있던 모두는 분노를 터트렸다.

하지만 사과도 해명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텔레비전에 나와 결사 항전, 공존, 정치, 봉쇄령을 말할 뿐이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식당에 모여 한 대뿐인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백여 명의 눈동자가 실망과 허탈함으로 물들던 광경.

이태성은 모두 앞에서 선언했다.

‘게이트 전쟁만 끝나면 내가 저 새끼들 전부 조져 놓는다!’

인간 재해 이태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자신의 어깨 위에 걸쳐진 권 의원이 그때 텔레비전에 나와 결사 항전을 외치던 정치인이었다.

“축하한다. 네가 인간 재해를 탄생시켰다.”

“네? 인간 재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찾는 분이신가요?! 말씀만 해 주시면 당장 경찰청장에게 연락해서 해결하겠습니다!”

장철은 피식 웃으며 질문을 툭 던졌다.

“너 전쟁 터지면 참전할 거냐? 아니면 제주도로 튈 거냐?”

“제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당연히 법에 따라 참전합니다!”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돌아온 대답.

하지만 슬쩍 ‘나이’를 강조하고, ‘법’이란 여지를 두는 걸 잊지 않았다.

회사원 장철이라면 그대로 당했을 정치인의 화법!

그러나 지금 자신은 회사원 장철이 아닌 난장판이 된 서울에서 구르고 구른 헌터다.

식당에 모여 분통을 터트리던 동료를 대신해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장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그럼 미리 참전했다고 생각해라.”

“네? 네?! 잠시만, 선생님! 잠시만……!”

닳고 닳은 정치인이 당황하는 순간.

장철은 마혁진이 기다리고 있을 숲으로 달리며 손을 흔들었다.

“빨리 쫓아와라! 늦으면 너희 권 의원 몬스터 웨이브에 던져 버린다!”

*   *   *

마혁진이 국정원 일행을 발견하고, 장철이 권 의원과 검찰, 경찰을 끌고 달릴 때.

“여기야! 네 뒤통수 때린 사람 여기 있다고!”

천문석은 재의 기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재의 기사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분명 제대로 뒤통수를 때렸다!

거대한 종소리가 노을 지는 북한산 멀리멀리 퍼져 나갈 정도로 제대로 된 정타를 때려 박았다!

그런데도 재의 기사는 뒤통수를 깐 자신이 아닌 숲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천문석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동시에 바위에서 뛰어내려 달렸다.

100여 미터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

재의 기사가 가까워지는 순간 내력을 움직였다!

탓, 타타탓-

대지를 갈지자로 밟고 전진!

이야야아아앗-

대놓고 기합을 지르며 강철봉을 내리찍었다!

두우우우우우웅-

다시 한번 거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재의 기사는 멈추지 않았다.

쿵, 쿵, 쿵-

오직 숲에 시선을 고정한 채 육중한 발을 내디디고 있다!

‘한 번으로 어그로가 잡히지 않으면, 잡힐 때까지 내리찍으면 된다!’

천문석은 폭풍 같은 연타를 때려 박았다.

깡깡, 까가가가가깡-

강철봉이 빛바랜 전신 갑옷을 두들길 때마다 불꽃이 튀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재의 기사는 멈추지 않았다.

쿵, 쿵, 쿵-

공격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육중한 발을 내디뎌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숲을 향해서!

‘적당한 공격으로는 안 된다!’

직감하는 순간 천문석의 기세가 일변했다.

왼손의 일기공과 오른손의 일원공!

둘로 나뉜 내력을 비틀어 강철봉에 밀어 넣었다.

콰드드드득-

대지의 일기공과 하늘의 일원공이 강철봉 속에서 비틀리는 순간.

부우우우웅-

강철봉 속을 흐르는 모래가 요동치고 강철봉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어그로를 끌어 유인하겠다는 어설픈 마음가짐으로는 안 된다!

일격에 끝장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혼이 실린 일격을 내리쳐야 한다!

진동이 멈추고 강철봉에 선명한 빛이 맺혔다!

강기(罡氣)!

유형화되기 직전의 강기가 담긴 강철봉이 투구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섬전 같은 검격이 튀어나왔다.

쩡, 쩡, 쩌어엉-

강기와 오러가 충돌해 불꽃이 우수수 쏟아지고 충격파와 진동이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검격의 정체는 재의 기사의 검대에 걸려 있던 롱소드!

천문석의 강철봉과 재의 기사의 롱소드가 찰나의 순간 수십 번 얽혔다.

깃털처럼 두둥실 허공을 찌르는 순간 표홀하게 허공을 가로질러 흘리고!

바위처럼 무겁게 내리누르는 순간 하늘로 우뚝 솟은 봉우리처럼 버텨 낸다!

번개 같은 쾌속의 찌르기를 검극이 그려내는 원 안에 가둬버리고!

어지럽게 쏟아지는 눈발 같은 공격을 쾅- 벼락 같은 내려치기로 끊어 낸다!

경중쾌환(輕重快幻)!

경중쾌환은 처음 검을 잡는 순간 배우는 너무나 간단한 무리다!

그러나 그 무리를 펼치는 사람은 무의 극에 달했던 전생 천마!

그 무리를 펼치는 강철봉은 오러 블레이드조차 막아 내는 레이 실트의 강철봉이다!

그럼에도 재의 기사의 방어를 뚫을 수 없다!

재의 기사의 2kg 남짓한 롱소드는 무게가 변하는 레이 실트의 강철봉으로 펼치는 가볍고, 무겁고, 빠르고, 허깨비 같은 일격을 모조리 막아 내고 있었다!

‘이 녀석 뭐야?! 왜 이렇게 잘 싸워?!’

이 순간 심장이 요동치고 피가 끓어 올랐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을 넘어 허허허허(虛虛虛虛)! 언제나 농락하듯 싸우고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도망쳤다!

그러나 지금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진심으로 싸울 상대! 자신의 피를 끓게 하는 상대가 나타났다!

롱소드 한 자루로 자신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 내는 재의 기사라는 상대가!

‘제대로 상대해 주마!’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순간 기세가 일변했다.

전생의 경지는 잃어버렸으나 무한한 무의 지평에 닿은 사실, 혼백에 새겨진 무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니!

한 호흡에 천기를 담고 내딛는 발로 용맥을 밟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천기와 대지에서 솟구치는 지기를 담아, 산을 무너트릴 일격을 때려 박는다!

우르르르르릉-

천기와 용맥이 맥동하는 강철봉이 떨어지는 동시에.

쩡쩡쩡, 쩡쩡쩡쩡-

검극에 오러가 뭉친 롱소드가 일곱 번 허공을 찔러 왔다.

그러나 롱소드의 검격은 강철봉의 궤적 근처에도 닿지 않았고,

강철봉은 당장이라도 롱소드를 부러트리고 전신 갑주를 짓뭉갤 듯 떨어져 내렸다.

‘아차! 여기서 치명타를 때려 박으면 안 된다!’

다급히 강철봉의 궤적을 비트는 순간.

쾅-

섬전 같은 일검이 일곱 번의 검격을 하나로 이었다!

이 순간 허공에 떠오르는 별!

천추, 천선, 천기, 천권.

국자의 네 별, 괴(魁)!

옥형, 개양, 요광.

손잡이의 세 별, 표(杓)!

괴와 표를 합친 일곱 개의 별, 북두칠성(北斗七星)!

재의 기사의 검격이 그려낸 북두에서 별빛이 쏟아졌다!

파스스-

이 순간 강철봉에 담긴 천기와 지기, 기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깡-

천문석의 강철봉과 재의 기사의 롱소드는 허공에 맞닿아 멈췄다.

“…….”

[…….]

천문석의 시선이 허공에 멈춰 선 강철봉에서 롱소드를 지나 투구로 움직였다.

그리고 재의 기사의 투구 속 검은 심연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칠성검! 칠성검공?!”

칠성검공(七星劍功)!

일곱 걸음에 하늘을 담아 천지를 부순다!

재의 기사가 칠성검을 펼쳤다!

그 누구도 알 리 없는 칠성검공이 생각지도 못한 시간, 공간에서 튀어나왔다!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생각만 하고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사고에 뒤로 계속 미루다 천강의 불꽃에 훅 갈 때까지 결국 만들지 못한 무공!

칠성검공은 일기일원공의 수련공이었다!

재의 기사는 자신이 만든, 아니 만들기도 전인 칠성검공을 사용했다!

“어떻게 네가 칠성검을 알아?!”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롱소드가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강철봉을 끌어당기는 순간.

한 점의 살기도 없는 롱소드가 움직인다.

수평으로 긋고 사선으로 비틀어 끌어올려 수직으로 내리긋는 롱소드.

허공에 그려지는 열십자(十)!

“…….”

[…….]

“……설마 이게 끝?”

[…….]

재의 기사는 아무 대답 없이 빙글 몸을 돌려 발을 내디뎠다.

쿵, 쿵, 쿵-

처음 걸어가던 숲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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