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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88화 (1,18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88화>

“쟤들…….”

“왜 저러냐……?”

마혁진과 장철의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한 반응이다.

천문석 자신도 보면서 어이없었으니까!

파파파파파팟-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섬광과!

핏, 피핏, 피피핏-

정신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

흙바닥, 나뭇가지, 낙엽, 쌓인 눈, 허공…….

뽀미는 산속 공터 안을 연속 순간이동하고 있었다.

암살검 한경석과 같이 싸웠기에 너무나 잘 알았다.

연속 순간이동은 뇌에 엄청난 부하가 걸린다.

십 초 동안 터진 섬광만 17번!

뽀미는 1초에 2번꼴로 연속 순간이동 하고 있다!

한 손에 꼽히는 랭커 암살검, 마혁진이라도 저렇게 연속으로 순간 이동하면 뇌가 녹아내린다!

과연 북한산의 수호자,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다는 위용이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는 천문석, 장철, 마혁진 셋 사이에 흐르는 건 감탄과 탄성이 아닌 황당, 당혹, 어이없음이었다.

당연했다. 이 순간이동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으니까!

앞으로 추적하는 것도 뒤로 물러서는 것도 아니다.

뽀미는 텅 빈 산속 공터 안에서 빙글빙글 맴을 돌면서.

흙바닥에서 구르고!

나뭇가지에 충돌하더니!

낙엽 더미에 불쑥 튀어나왔다가!

얼어붙은 눈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으니까!

전혀 컨트롤이 되지 않는 움직임!

뽀미는 꼬맹이가 휙 집어던진 얌체 공처럼 탱탱탱- 정신없이 튕기고.

검은 로브의 초월자는 공을 놓쳐 당황한 아이처럼 그걸 두 팔을 휘두르며 쫓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귀에는 전해지지 않는 외침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상상됐다.

‘안 돼! 멈춰! 멈추란 말이야! 아아아악-’

당황한 꼬맹이 같은 외침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뽀미는 갑자기 왜 저렇게 순간이동을 하는데?!’

‘초월자는 마력 놔두고 왜 몸으로 뛰어서 쫓고 있는 거야?!!’

……

머릿속에 생각의 폭풍이 몰아쳤다.

순간이동, 염동력, 거대화 등등. 다중 각성 동물 뽀미!

뭔가 좀 이상하지만, 어떻게 가능한지 짐작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초월자!

뽀미와 초월자가 분노가 담긴 외침과 함께 뒤를 쫓아왔다.

이 둘은 천문석이 그동안 싸워 온 어떤 적과도 달랐다.

싸워서 이기면 북한산 안전지대가 사라져 수백만 시민이 위험하고.

만약 패배한다면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에게 정신없이 쥐어 터질 상황이었다!

이겨도 망하고, 져도 망하는, 승패에 상관없이 혼돈! 파괴! 공포! 그 자체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전력으로 도망치며 깊은 고뇌에 빠졌던 방금 전 상황이 무색하게도 다가오는 위협! 뒤를 쫓던 뽀미와 초월자는 알아서 삽질하고 있었다!

공터에서 빙글빙글빙글- 연속 순간이동 중인 뽀미와 두 발로 뛰어 그 뒤를 쫓는 검은 로브의 초월자!

바로 감이 왔다!

초월자 저 녀석 마력이 바닥났다.

즉, 남은 위협은 뽀미 뿐이다!

하지만 뽀미는 탱탱볼이 되어 연속 순간이동으로 튕겨 다니고 있다!

이제 뒤를 쫓던 뽀미와 초월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로 플랜 F, 강기와 오러의 난장판을 만들고 2020년으로 돌아가면 된다!

끓어오르는 희열에 외치려는 순간.

장철과 마혁진의 시선이 얽히고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각성 후유증, 감각 교란 현상 맞지?”

“99% 확실하다! 내가 겪었던 증상이랑 완전히 똑같아! 순간이동 같은 공간계 초능력을 각성하면, 새롭게 눈을 뜬 공간 좌표 감각 때문에 신체 균형이 무너진다! 저기 뽀미처럼! 하, 이걸 잊고 있었다니!”

“뽀미도 생명체가 맞구나. 인간 각성자처럼 각성 후유증이라니!”

“진짜 천운이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순간이동 하는 거 보이지?! 랭커라도 저렇게 순간이동 했으면 뇌가 녹을 거다. 괴물 같은 녀석! 싸웠으면 몇 분 버티기도 힘들었어! 하아-”

마혁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천문석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각성 후유증!

감각 교란 현상!

처음 듣는 말이지만, 대화를 듣자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무인의 경지가 올랐을 때와 비슷하다!

‘일류, 절정, 초절정’으로 경지가 오르는 건, ‘평야, 언덕, 태산’으로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는 것과 같다.

몸과 정신,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게 달라진다!

아이가 자라나 옷이 맞지 않으면 옷을 갈아입듯.

영육과 혼백에 새겨진 깨달음을 수습하고 달라진 몸과 정신을 경지에 맞게 조율해야 한다!

전생 천마의 경험이 말한다!

뽀미가 각성 후유증을 수습하려면 대략…….

이때 장철과 마혁진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2, 3일! 후유증에서 벗어나 감각에 익숙해지려면 최소 2, 3일은 걸릴 거다.”

“2, 3일? 내가 일주일 걸렸어! 뽀미의 각성력이라면 최소 2주 본다!”

“하긴, 고등급 각성 후유증은 각성력 포텐이 클수록 길게 가니까. 이태성도 거의 2주 정도 고생했지.”

“생각해 보니까 나도 일주일이 아니라 2주 정도…….”

천문석은 잽싸게 끼어들었다.

“저 상태로 2주나 있는 다고요?! 길어도 10분 정도면 적당히 수습될 거 같은데……?”

“뭐 10분? 고등급 각성이 장난인 줄 아냐! 방금 들었잖아? 이태성이 거의 2주 가깝게 고생했다고!”

어이없어 하는 마혁진의 말을 장철 헌터가 받았다.

“각성 계통, 개인차가 크지만, 각성 후유증은 고등급 각성자일수록 강하게 온다. 각성력 포텐이 클수록 뒤틀린 감각을 다시 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하하하-“

완전히 여유를 찾은 장철이 웃을 때.

마혁진은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툭 말을 던졌다.

“뭐야? 무공 각성자가 어떻게 이런 것도 몰라? 1세대 헌터, 고등급 각성자는 다 아는 사실인데?”

모르는 게 당연했다.

자신은 무공 각성자도 1세대 헌터, 고등급 각성자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전생에서 현생까지 천문석의 경험과도 달랐다!

전생의 천마신공에서 유불선의 수많은 무공을 지나 현생의 일기일원공까지 항상 같았다.

돈오돈수(頓悟漸修)!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 꽝- 단숨에 도약했다!

뒤틀린 감각을 다시 맞춰야 했지만, 그 또한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무한과 찰나!

그 간극 속에서 순식간에 감을 잡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뽀미가 각성 후유증에 빠져 능력이 봉인됐고!

초월자가 당황한 꼬맹이처럼 두 발로 달려 뽀미 뒤를 쫓고 있다는 ‘현실’이 중요하다!

바로 지금이 재의 기사를 이용해 흔적을 날려 버리고 2020년으로 돌아갈 순간.

플랜 F를 실행할 기회다!

“기회입니다! 제가 완벽한 플랜 F를 세웠습니다! 바로 움직이죠!”

“플랜 F? 너 방금 플랜 E, ESC? 탈출한다고 하지 않았냐? 갑자기 F는 뭐야?”

“방금 더 좋은 계획이 생각났다. 플랜 F, 백운대 암반에 우리가 2020년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돌아갈 방법! 야, 그런 게 있으면 빨리 말했어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색해서 백운대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마혁진.

“잠깐! 우리가 왔던 능선 말고! 혹시 모르니까! 우회해서……!”

“우회해서! 백운대 암반! 알았다! 빨리 따라와!”

타타타타탓-

마혁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즉시 달려갔다.

바로 뒤를 쫓아 달리려는 순간 문득 보였다.

수풀 사이에 숨어 여전히 공터를 내려다보는 장철.

“장철 헌터님?”

“어, 그래 가자.”

여전히 공터에 시선을 둔 채로 몸을 일으키는 장철.

장철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정신없이 달리는 검은 로브가 있었다.

“장철 헌터님?”

“어쩐지 우리 집 꼬맹이가 생각나서 말이야…….”

장철 헌터가 우리 집 꼬맹이라고 말할 사람은 한 명뿐이다.

“특급 헌터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철.

“나이, 체형, 목소리 전부 다 다른데. 이상하게 특급 헌터랑 분위기가 비슷한 거 같아서…….”

장철 헌터가 말꼬리를 흐릴 때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요플레 뚜껑을 스틸 한 류세연과!

그 뒤를 쫓아 정신없이 옥상을 달리던 특급 헌터!

‘안 돼! 멈춰! 멈추란 말이야! 아이 거를 뺏어 먹으면 나쁜 어른이야!’

‘난 고등학교 졸업 안 했으니까 괜찮아! 아직 어른 아니거든! 크크킄-’

문득 떠오른 기억 속 장면이 눈앞의 공터에 덧씌워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뽀미 쫓아가는 모습이, 요플레 뚜껑 쫓던 모습이랑 비슷하긴 하네요.”

“네가 봐도 그렇지?”

장철 헌터는 반색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이가 완전히 다르니 그럴 리가 없죠. 특급 헌터가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하던가요?”

“만 6세가 초등학교 입학 나이니까…….”

머뭇거리던 장철 헌터가 입을 열었을 때 외침이 들려왔다.

“야, 너희 빨리 안 오고 뭐 해! 얼른 집에 가야지!”

“알았어.”

천문석은 손을 흔들고 앞장섰다.

“이제 가죠. 돌아가서 특급 헌터 만나 셔야죠.”

“그래. 이제 돌아가자. 이번에 겪은 일 말해 주면 깜짝 놀랄 거다. 하하-.”

눈앞에 있는 듯 상상됐다.

놀라서 부릅뜬 눈과 헤 벌린 입.

이모티콘을 그대로 옮긴 듯한 표정.

특급 헌터.

서울에서 남중국 푸젠성에 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은 지난 듯 특급 헌터와 류세연이 그리웠다.

‘이제 돌아갈 때다!’

천문석은 백운대 암반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이 순간 보이는 게 있었다.

마혁진이 달려간 우회로가 아닌 백운대 암반으로 쭉 이어진 능선에 사람이 나타났다.

전술 조끼에 방탄 헬멧, 소총을 들고 능선을 달려오는 사람!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백운대 암반에서 소총으로 지원 사격을 한 국정원 요원이다.

국정원 요원은 뽀미와 김철수가 빙글빙글 원을 그리는 공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   *

‘이 타이밍에 왜 여기에 나타나는데?!’

생각할 것도 없다.

일행의 뒤를 쫓아왔다!

그 결과 초월자와 만나게 생겼다!

아무리 마력이 바닥났어도 상대는 초월자!

그 힘뿐만 아니라 사고 회로 또한 인지를 뛰어넘는 존재다!

회유라도 하겠다고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당장 막아야 한다!’

목소리조차 닿지 않는 먼 거리!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순간이동!

“염동……!”

피핏-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나는 형체, 마혁진!

“야, 왜 이렇게 안 와?! 너희 집에 안 갈……!”

천문석은 손을 들어 말을 끊고 능선을 가리켰다.

“국정원 요원이 뽀미가 있는 공터로 접근 중이다! 당장 막아야 해!”

“뭐?”

흠칫 놀라 시선을 돌린 마혁진의 표정은 시큰둥하게 변했다.

“빨리 순간이동으로 저 요원 빼내야 해!”

“각성력 간당간당 하다니까. 그리고…….”

마혁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쏟아 냈다.

“뽀미 만나도 괜찮잖아?”

“어차피 뽀미는 지금 각성 후유증 중이니까.”

“아니, 각성 후유증이 아니더라도 괜찮지. 각성 동물은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니까.”

“지금 뽀미랑 만나면 위험한 사람은 바로 너! 딱밤으로 뽀미 이마를 깨트린 이세기, 너랑!”

“더럽게 재수 없게 이세기와 동료로 엮인 나랑 저기 쟤밖에 없어! 괜찮으니까! 놔두고 얼른 집에나 돌아가자!”

쉴 새 없이 외침을 쏟아 내고 주저하지 않고 몸을 돌리는 마혁진.

“뽀미가 아니라! 초월자! 초월자가 문제라고! 잘못 얽히면 무슨 문제가 터질지 몰라!”

“하! 초월자? 지금 저기서 꼬맹이처럼 뽀미를 쫓아다니는 쟤 말하는 거냐?!”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

“됐고! 너희 안 갈 거면, 나 먼저 백운대에 가서 기다릴 테니까. 다 끝나고 와라!”

마혁진이 단호히 몸을 돌리는 순간.

천문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자신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능선을 달리는 국정원 요원!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초월자와 뽀미에게 들키지 않고 국정원 요원을 빼낼 수 없다!

염동 대협의 순간이동 능력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몸을 돌린 마혁진의 등에선 짙은 피로감과 단호한 의지가 동시에 느껴졌다.

당연했다! 푸저우 시가지에서 이곳까지 사건·사고와 난장판에 정신없이 굴렀으니까!

‘방법이 없는 건가?!’

이때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공터로 달리는 국정원 요원 뒤로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또 다른 국정원 요원.

대공원에서 만났던 김 대리.

배달 오토바이를 탔던 임수정.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어쩐지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모두를 따라 달리는 갓 스무 살 청년!

“마혁진?! 염동, 저기 청년 마혁진이 있다!”

절대 멈출 것 같지 않던 발걸음이 멈추고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와, 이젠 대놓고 구라를……!”

그러나 마혁진의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딱-

허공에서 튕긴 손가락에 흠칫 놀라는 순간 이세기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인 시선에 보였다.

정신없이 능선을 달리오는 청년.

갓 스무 살 젊은 자신의 모습이!

“쟤가 왜 저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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