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85화>
파앙, 파아앙-
칼바람이 불어오는 백운대 암반 위.
김철수는 멍하니 주위를 돌아봤다.
“…….”
방금 격전이 펼쳐진 암반 위에 남아 있는 건 재의 기사뿐.
갑자기 튀어나온 천마 후보 2번과 그 동료들이 뽀미를 인질로 붙잡고 도망쳤다!
‘아니, 왜? 뽀미는 왜 인질로 잡은 건데?!’
김철수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인과가 어긋날까 봐 뽀미에게는 추적용 앵커 하나 박지 않았다!
마력 폭풍이 터지기 전인 지금의 뽀미는 그냥 평범한 새끼 삼색 고양이였으니까!
그런데 천마 후보 2번은 그런 뽀미에게 무자비한 딱밤을 날려 이마를 깨트리고 인질로 잡았다!
진짜 천마, 인과율의 수호자라면 생각지도 못할 행동이다!
결론은 간단했다.
‘천마 후보 2번도 가짜다!’
깨달음의 순간 허공에서 전해지는 심상.
[으앗- 뭐가 이렇게 안 뚫려!]
아직도 차원 방벽을 뚫고 있는 천마 후보 1번의 사념이 심상에 닿았다!
“너 아직도 뚫고 있냐?”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아-
인과가 얽히지도 않았는데, 메시지 마법을 보내자마자 연결됐을 때 의심했어야 했다!
‘천마 후보 1번, 2번 모두 꽝이라니!’
순간 가슴속에서 울분이 치솟았다.
이상한 숲에서 더 이상한 꼬맹이를 만난 이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처음 목표인 타이탄 강철은 흔적도 없고.
마력 폭풍을 터트리기 위해 부른 천마는 둘 다 가짜!
각성 전인 뽀미는 무자비한 딱밤을 맞고 납치됐고.
어느새 북한산에는 짙은 노을이 드리워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언제 이 세계에서 튕겨 나갈지 알 수 없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남은 시간은 2, 3시간 남짓이다!
타이탄 강철은 찾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납치 된 뽀미를 되찾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가짜 천마 후보 2번, 뽀미를 납치한 짭천마를 응징하는 것뿐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약속한 10분이 됐고 김철수는 외침과 함께 달렸다.
“뽀미!”
* * *
뽀미이이-
메아리치듯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잠시 후.
스으윽-
격전이 벌어졌던 암반을 내려다보는 백운대 바위 뒤에 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5팀 팀장과 이 대리, 청년 마혁진.
바위 뒤에 납작 엎드려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던 세 사람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능선을 봤다.
마치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검은 형체가 소나무 숲 너머, 이세기가 이동한 곳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하아-
5팀 팀장은 절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이세기를 쫓아 온 곳에서 만난 상상을 초월한 초능력자!
수백 미터 다리를 단숨에 복구한 염동 대협의 염동력!
거대 괴수를 순식간에 잡은 이세기의 초능력!
그런데 저 검은 로브를 입은 존재는 염동 대협과 이세기 이상, 인지를 초월하는 초능력자였다!
손을 휘젓자 날아온 바람!
그 바람에 닿는 순간 그대로 소총이 무력화했다!
이세기의 도망치라는 외침에도 몸을 돌릴 수 없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팀장님. 탄창에 넣어 둔 다른 탄환도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화약에 문제가 생겼냐?!”
“화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팀장과 이 대리의 입에서 같은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서울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들이 쏟아져 난장판이 돼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총, 전차, 장갑차, 자주포!
현대 무기가 괴물들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게이트 출현에 잠시 서울이 난장판이 됐지만, 경기도에 집결 중인 기갑 부대가 움직이는 순간 괴물들은 정리되고 혼란이 수습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믿음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현대 국가의 압도적인 무력의 근원은 화약 무기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초능력자가 그 화약 무기를 무력화했다!
전차, 장갑차, 전투기, 전함, 항공모함……!
수백, 수천의 적을 단숨에 날려 버리고, 포탄의 비로 도시조차 갈아 버리는 현대 무기가 모조리 무력화된다면?
전쟁의 패러다임, 아니 세계 패권조차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초능력이 나타났다!
이 힘에 비하면 이세기, 염동 대협, 해머 헌터의 초능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빛을 삼키는 검은 로브를 입은 초능력자! 그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바로 뒤를 쫓는다!”
바위에서 튀어나와 로프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팀장님!”
백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김 대리와 한 사람!
“김 대리! 너 어떻게 여기에?!”
“헉, 염동 대협! 허억- 염동 대협을 쫓아서……!”
“잠깐 긴급 사항이 있다! 또 다른 초능력자가 나타났다! 이번 초능력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닌…….”
김 대리는 5팀 팀장의 말을 끊었다.
“권 의원! 권 의원이 검찰과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장 알리고 빠져나가야 합니다!”
“권 의원? 권 의원이 여기에 직접 왔다고?!”
“네! 바로 피해야 합니다! 간신히 앞질렀지만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권 의원은 정계, 재계, 법조계 곳곳에 인맥이 뻗은 실세 중의 실세!
여기서 발목이 잡히면 끝장이다!
“팀장님! 우선 여기서 피하죠!”
로프를 걸어 둔 곳에서 들려오는 이 대리의 외침.
“그래 우선 아래로 내려가자! 김 대리 너도 같이 내려가자!”
5팀 팀장과 이 대리, 신입, 김 대리와 임수정은 로프를 잡고 줄줄이 급경사의 비탈을 내려갔다.
바위와 나무를 지나 암반에 내려서는 순간 김 대리의 깜짝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저건 뭐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이 대리와 임수정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툭 튀어나온 바위와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암반 중앙!
전신 갑옷을 입고 검을 든 사람이 서 있었다!
“……!”
김 대리와 이 대리가 반사적으로 소총을 겨누는 순간 총구를 잡아 오는 손길이 있었다.
팀장은 총구를 내리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신경 쓸 거 없다. 방금 전투에서도 미동도 없었다. 석상이나 마찬가지다!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이 대리 어디로 이동했는지 봤지? 앞장서라!”
“네! 신입 내 뒤로 바짝 따라붙어라!”
타타타타탓-
이 대리는 한달음에 암반을 가로질러 이세기 일행과 검은 로브 초능력자 사라진 숲으로 달렸다.
그 뒤로 청년 마혁진과 임수정, 5팀장과 김 대리가 바짝 따라붙었다.
팀장은 숲으로 들어오는 즉시 김 대리에게 확인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
“권 의원과 검찰이 백운대 주차장에 들이닥쳤습니다! 최 팀장님을 잡으려는 것 같습니다!”
“최 팀장? 최 팀장은 안가에 있잖아? 확신도 없는데 권 의원이 백운대까지 올라왔다고?!”
“권 의원의 타깃이 변했습니다. 염동 대협의 초능력을 직접 겪었습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백 미터에 달하는 철제 구조물을 움직이는 엄청난 염동력!
염동 대협의 염동력을 보는 순간 권 의원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어떻게든 회유하려 할 거다!’
엄청난 인맥과 정치력을 가진 여당의 실세! 게다가 미국과 CIA에까지 선이 닿아 있는 권 의원!
권 의원이 염동 대협을 회유하는 순간 모든 정보와 신원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사실 염동 대협은 큰 문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염동 대협의 뒤를 쫓고 있는 검은 로브 초능력자다!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미국의 세계 패권조차 뒤흔들 힘을 지닌 초능력자!
검은 로브는 현대 무기 체계를 모조리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미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온건한 초강대국이다.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에 위협이 될 적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CIA와 선이 닿은 권 의원이 검은 로브의 능력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다!
최악의 상황이다!
“더 빨리! 반드시 우리가 먼저 검은 로브를 만나야 한다! 전력으로 달린다!”
“네? 검은 로브요? 이세기 선생님과 동료들은……!”
“우선 달려라! 자세한 건 가면서 설명해 줄게!”
5팀 팀장과 김 대리 일행은 정신없이 소나무 숲을 통과해 이세기 일행과 검은 로브의 뒤를 쫓았다.
이들이 사라지고 잠시 후 백운대에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샅샅이 뒤져라!”
“섬광과 폭음! 분명 이곳에 있다!”
호흡하나 흩어지지 않은 권 의원과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숨을 몰아쉬는 검사, 수사관, 경찰들이 줄줄이 백운대에 도착했다.
“빨리 움직여라! 흔적이 남았을 거다!”
권 의원의 채근에 수사관과 경찰은 사방으로 흩어져 백운대를 뒤졌고 곧 흔적을 찾았다.
“탄피를 찾았습니다!”
“여기 로프가 있습니다!”
“로프 아래 암반! 전투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줄줄이 로프를 잡고 암반에 내려서는 순간 모두는 흠칫 놀랐다.
암반 가운데 우뚝 멈춰 선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
보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고 전율이 흐른다!
“위험합니다! 의원님 뒤로!”
보좌관이 앞을 막고, 수사관과 경찰들이 총과 칼, 창을 들고 조심스레 접근해 두들겼다.
미동도 하지 않는 전신 갑옷 기사!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이미 죽은 것 같습니다!”
수사관과 경찰들이 기사를 둘러쌌다.
“투구가 전혀 열리지 않습니다!”
“우선 바닥에 눕혀 보자!”
“으아아악- 꿈쩍도 안 해!”
“더 힘을 줘봐 아아악-!”
……
악을 쓰는 외침이 쏟아질 때 권 의원은 직감했다.
바위와 나무에 가려져 위성에선 보이지 않는 절묘한 위치!
국정원이 북한산으로 이동한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이런 걸 숨겨 놓고 있었구나!’
게이트에서 쏟아진 괴물들과는 전혀 다른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
이 기사는 게이트 너머에 문명이 있다는 확실한 물적 증거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서울에 쏟아진 괴물을 처리한 후 시작될 게이트 너머 탐사에 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된 상황!
‘중세 갑옷을 입은 기사라니!’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다!
중세 정도의 문명 수준이라면 게이트 너머의 땅과 자원, 인력까지 모조리 집어삼킬 수 있었으니까!
21세기에 대항해시대가 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갑자기 튀어나온 초인에 게이트 너머 문명의 증거까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계속 튀어나오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모조리 손에 넣는다!
“기사는 우선 놔둔다! 흔적을 찾아 초인을 쫓는 게 우선이다!”
권 의원은 명령과 동시에 보좌관에게 눈짓했다.
“……전화는?”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한 보좌관은 심상치 않은 기색에 재빨리 목소리를 낮췄다.
“백운대 정상에서는 위성 전화 안테나가 섰습니다.”
“권 장군에게 연락해서 헬기를 띄운다.”
보좌관의 시선이 암반 위 기사와 백운대 정상으로 움직였다.
‘조카인 권 장군을 움직여 기사를 확보하고 탈출로를 만든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보좌관이 로프로 달려가는 순간, 주위를 수색하던 경찰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입니다! 사람들이 달려간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능선을 타고 달렸습니다!”
“기사는 놔둬라! 나중에 회수하면 된다! 전원 흔적을 따라 추적한다!”
수사관과 경찰들 숲으로 달려가는 순간 권 의원은 백운대에 오른 보좌관을 봤다.
“……!”
보좌관이 위성 전화기를 흔들 때.
권 의원은 바로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치는 매 순간 활력이 솟구쳤다.
권 의원과 수사관, 경찰 수십 명이 썰물 빠지듯 떠나는 순간.
재의 기사의 검은 투구 안에 파랗게 이글거리는 불꽃이 생겨났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미동도 하지 않던 전신 갑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쿵, 쿵쿵쿵-
재의 기사의 육중한 발이 암반을 디디고, 느리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발걸음이 시작됐다.
‘와라!’
혼을 실어 자신을 부른 존재, 천문석을 향해서!
지금 이 순간,천문석 뒤로 줄줄이 꼬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천문석의 계획, 플랜 D는 뒤죽박죽 엉망으로 변하고 각자의 바람과 욕망을 담은 술래잡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술래잡기에 참여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재의 기사마저 사라지고 텅 빈 암반 위 허공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으아앗- 드디어! 하늘님! 이제 손까지 나올 정도로 뚫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내력을 쏟아부을 수 있습니다! 어떤 놈을 조질까요?!]
손가락 한 마디가 겨우 나올 듯 작았던 구멍은 어느새 손이 반쯤 나올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카캬카카카캌-]
이 구멍으로 환희 어린 웃음이 담긴 사념파가 쏟아졌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늘님……?]
[하늘님……??]
[하늘님……!!]
……
뚝- 웃음이 그치고 절절한 사념이 허공에 뚫린 구멍에서 쏟아졌다.
천강의 불꽃에 영혼육백이 불타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구멍을 뚫은 전생 천마의 사념이었다.
그러나 전생 천마에게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천문석과 납치된 뽀미.
-정신없이 달리는 장철과 마혁진.
-빡친 마도 황제 김철수.
-5팀장과 청년 마혁진, 이 대리, 김 대리, 임수정.
-권 의원과 검찰 수사관과 경찰 수십 명.
-다시 불꽃이 살아난 재의 기사까지.
모두가 현생 알바, 천문석의 계획에 휩쓸려 난장판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현생 알바가 굴린 스노우볼이 아득한 하늘의 인과를 타고 굴러 전생 천마를 때렸다!
전생 천마의 절절한 사념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암반 위에 공허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하늘님! 하늘님 어디 계세요?! 하늘니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