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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83화 (1,18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83화>

“……!”

천문석은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선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암반을 가로지르는 삼색 고양이 뽀미.

급경사의 비탈을 내려오는 청년 마혁진과 국정원 요원.

뽀미와 청년 마혁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재의 기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초월자가 주시하는 지금!

아직 각성하지 못한 뽀미와 마혁진은 재의 기사의 공격에 스치기만 해도 즉사다.

방법은 하나뿐!

자신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몸은 하나!

초월자에게 걸리지 않고 둘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몸을 드러내면 난장판을 만들고 튄다는 플랜A, 초월자의 뒤통수를 치고 튄다는 플랜B 모두 끝장이다!

‘시바시바! 어떡하지?!’

고심은 찰나에 끝났다.

서울의 수호자가 될 뽀미, 염동 대협이 될 청년 마혁진 모두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초월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괜찮다! 최악의 상황에도 플랜Z, zonber는 남아 있으니까!

천문석은 행복회로를 돌리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뛰어나가려는 순간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왜 갑자기 민간인들이 나타난 거야? 어떻게 쫓아 보내지?! 시바시바 뭐가 이렇게 꼬이는 거야?!]

‘초월자! 가깝다!’

반사적으로 내력을 갈무리하고 납작 바닥에 엎드리는 동시에 이어지는 목소리!

[하아- 넌 또 어디 가는 거야? 재들 처리하고 올 테니까 어디 멀리 가지 말고 거기 있어!]

쟤들! 청년 마혁진과 국정원 요원!

처리! 쓱싹 하겠다는 뜻!

갈무리했던 내력을 다시 움직였지만 이미 늦었다!

파아아아앙-

초월자가 만들어 낸 강풍이 로프를 잡고 내려오는 청년 마혁진과 국정원 직원을 덮쳤다!

“……!”

산산조각 나는 육체와 처절한 비명의 예감에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들려왔다.

“신입! 조심해! 강풍이다!”

“악, 으악! 이거 뭐야?! 웬 돌멩이가?!”

“위로! 위로 올라오세요!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아니 지금 움직이면 더 위험해! 우선 잡고 버티자!”

……

[가뜩이나 마력도 간당간당한데! 다신 오지 말고! 얼른 가라! 훠이, 훠이!]

국정원 직원들의 다급한 외침과 초월자의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귀찮은 목소리?!’

번쩍 뜬 눈에 보였다.

바위 뒤에서 휙, 휙- 튀어나와 강풍 속으로 날아가는 돌멩이!

로프에 매달린 채 강풍에 흔들리며 돌멩이를 맞는 두 사람!

초월자는 돌멩이를 던져 국정원 직원을 맞추고 있었다!

“……??”

‘지금 뭐 하는 거지?’

‘돌멩이? 돌멩이를 던진다고?!’

‘아니, 무슨 초월자가 저래?!’

‘진짜 초월자가 맞기는 한 건가?!’

……

바위 뒤에 숨어 돌멩이를 던지는 모습에서 인과를 벗어난 초월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근과 잔업에 지치고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과 불운에 고통받는 짠 내 나는 모습만 그려졌다!

수많은 알바로 구르던 철수 형처럼!

백운대에 처음 올랐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넋을 놓고 멍하니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때.

냐암, 냐아암-

정신을 깨우는 나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차! 뽀미!’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천문석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반쯤 불탄 망토에 발톱을 박아넣고 능숙하게 기어 올라가는 삼색 새끼 고양이.

뽀미는 우아하게 재의 기사의 견갑 위를 걸어 술이 달린 투구에 폴짝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분홍색 혀를 내밀어.

할짝할짝할짝-

재의 기사의 투구를 미친 듯이 핥기 시작했다!

“……!”

백운대를 오르며 예상한 처절한 격전도 치열한 수 싸움도 없었다.

긴박한 분위기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당연했다.

초월자는 돌멩이를 던져 국정원 직원을 쫓아내고.

뽀미는 재의 기사의 투구를 미친 듯이 핥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재의 기사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혼자만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초월자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뭐지 이 분위기는? 아니 이럴 거면 천마는 왜 부른 거야?!’

자신조차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는 놀라운 은신 기술과 천의에 닿은 통신 기술을 가졌지만 그뿐!

인과조차 뛰어넘은 초월자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허술하고, 짠 내 나고, 재수 없는 철수 형 같은 모습이라니!

그럼에도 초월자는 초월자! 분명 숨겨 둔 한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만 보면 플랜A, B는 필요도 없어 보였다.

여기서 그대로 몸을 돌려 내려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느낌이 왔다.

‘그냥 내려갈까?’

문득 생각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단어.

‘마력 폭풍!’

그렇다! 자신이 백운대에 온 건 초월자의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력 폭풍이 터지지 않은 이유를 찾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마력 폭풍이 터지지 않은 이유는 찾지 못했다.

이 거대한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그렇게 쉽게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이제 포격이 시작되어 난장판이 도고 동료들과 집으로 돌아가면 영영 이유를 알 수 없을 거다.

‘그냥 좀 지연되는 거겠지? 2, 3일 안에 마력 폭풍이 터지고 각성자들이 나타나겠지?’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도 마음속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력 폭풍이 터지지 않으면 서울과 바다의 거점과 사람들을 지켜 줄 각성자와 각성 동물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각성자와 각성 동물이 없다면 낙동강 전선을 지키고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

마음속으로 탄식하는 순간 보였다.

챱챱챱-

정신없이 재의 기사의 투구를 핥고 있는 어린 삼색 고양이의 모습이.

‘뽀미라도 각성했으면 불안이 좀 가셨을…… 어?’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지고 시선이 움직였다.

평범한 어린 삼색 고양이 뽀미!

로프를 매달린 채 급경사의 비탈에서 버티는 청년 마혁진!

각성하지 않은 뽀미와 청년 마혁진의 모습이 겹쳐지는 순간 떠오른 얼굴.

염동 대협 마혁진!

깡패 두목 마혁진은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구르며 염동 대협 마혁진으로 진화했다!

십자마안(十字魔眼)!

자신의 최대 출력 전법륜인 딱밤을 맞고!

전생의 광승, 현생의 염동 대협과 이세영 선생님까지!

벌써 세 사람이나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4번째가 있었다.

아직 각성하기 전인 어린 삼색 고양이 뽀미!

뽀미의 이마에 최대 출력 전법륜인 딱밤을 날리면?!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가 탄생하는 순간 수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자신과 동료들은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

초월자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지금이 기회다!

플랜C, 뽀미 강제 각성!

바로 시작한다!

천문석은 결심하는 순간 움직였다.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고 재의 기사의 투구를 핥는 뽀미에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던졌다.

[와라!]

종족, 언어, 존재를 넘어선 심상이 찰나의 순간 공간을 넘어 뽀미의 마음에 닿았다!

…… -!

번쩍 고개를 드는 동시에 뛰어내리는 뽀미.

타탓-

뽀미는 갑옷을 밟고 암반에 뛰어내려 한 걸음 한 걸음 우아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먹힌다! 플랜C가 제대로 먹히고 있다!’

천문석은 희열을 억누르고 계획대로 움직였다.

[뽀미야. 여기야, 여기! 자, 여기로 오면 맛있는 거 줄게!]

천문석은 심상으로 낚시질하듯 뽀미를 유인했고!

“조금만 더 버텨!”

“이제 곧 바람이 약해질 겁니다!”

청년 마혁진과 팀장은 강풍과 돌멩이를 맞으며 로프에 매달려 버텼고!

‘와, 쟤들 왜 이렇게 끈질겨?! 더 강하고 빠르게! 이야얍- 가라! 얼른 떠나가라!’

바위 뒤에 숨은 김철수는 쉴 새 없이 돌멩이를 던지고 강풍을 불렀다!

천문석, 청년 마혁진, 꼬맹이 김철수.

세 사람이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난장판을 만들고 있을 때 백운대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철과 마혁진.

김 대리와 임수정.

권 의원과 검찰, 경찰.

그리고 모두에게 잊힌 존재에게 변화가 시작됐다.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던 재의 기사!

[와라!]

전법륜인의 수인을 통해 뽀미에게 전해진 심상이 재의 기사의 멈춰 있던 정신에도 닿았다.

두근-

롱소드 첨단에 멈춰 있던 불꽃이 다시 타오르고!

두근두근-

텅 빈 갑옷 안 온기를 잃은 잿가루에 열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재의 기사가 깨어나고 있었다.

이 순간 멈춰 있던 하늘의 저울에 재의 기사란 추가 올려지고 저울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너무나 거대하여 오히려 들을 수 없는 맥동이 울려 퍼지고.

재의 기사가 스스로를 멈춰 봉인했던 존재들 또한 깨어나기 시작했다.

십만에 달하는 몬스터 웨이브조차 잔물결로 보이게 만들 거대한 존재들이!

그러나 전직 마도 황제와 현생 알바는 이 거대한 변화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와, 쟤들 뭐가 이렇게 끈질겨! 좀 가라! 가! 이야얍얍얍-!’

정신없이 돌멩이를 던져 국정원 직원을 맞추고.

[잘한다! 뽀미! 조금만 더 빨리! 완전! 엄청! 맛있는 걸 줄게!]

혼신의 힘을 다한 구라로 새끼 삼색 고양이를 낚고 있었으니까.

마혁진의 촉이 맞았다.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엉망진창이 되고 거대한 재앙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천문석과 우연과 필연으로 엮인 모두를 향해서!

*   *   *

혹시 알고 있는가?

고양이는 자신의 앞발을 뒷발로 밟으며 움직인다는 사실을.

천문석은 그 사실을 방금 알았다.

천천히 허공을 휘젓는 꼬리!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내딛는 발!

앞발이 교차하는 순간 정확히 앞발이 디뎠던 자리에 놓이는 뒷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흰색, 노란색, 검은색이 뒤섞인 어린 삼색 고양이는 마치 귀족처럼 우아하게 암반 위를 걸었다.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리게!

[야, 빨리! 조금만 빨리 움직여! 시간 없어! 무서운 사람 온다고!]

아무리 간절한 심상을 전해도 뽀미는 변하지 않았다!

냐아암-!

오히려 나른하게 울면서 느리게 더 느리게 움직였다!

[야, 이, 씨!]

끓어오르는 열기에 머리가 띵해져 자신도 모르게 심상이 흔들리는 순간.

…… -!!

느리게 더 느리게 뻗어 나가던 뽀미의 발이 우뚝 멈췄다!

“……!”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반사적으로 심상이 튀어나왔다.

[아니야! 내가 욕하려던 거 아냐! 사람이, 아니 고양이가 좀 느리게 움직일 수도 있지! 천천히 오라고 말하려고……!]

발라당-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암반 위에 드러눕는 뽀미!

“……?!”

[야, 너 뭐 하는 거야?! 설마, 너 설마! 드러누운 거야?!! 야, 그러면 안 돼! 조금만 더 오자! 이렇게 드러누우면 안 돼!]

절절한 진심이 담긴 심상을 전하는 순간.

냐암, 냐아암-

뽀미는 레고 매장 앞에서 누워 버린 꼬맹이처럼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10미터!

불과 10미터를 남겨 두고!

초월자가 엉뚱한 데 정신이 팔린 천재일우의 기회가 속절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뽀미의 변덕 때문에!

‘청개구리 같은 녀석! 왜 각성 동물은 전부 이 모양이란 말인가?! 니케, 탱탱이, 퐁퐁이, 용용이, 냠냠이…… 전부 다 똑같……!’

냠냠이!

새하얀 고양이 냠냠이와 삼색 고양이 뽀미!

털 색깔은 완전히 다르지만, 냠냠이와 뽀미는 하는 행동이 똑같다!

당연했다. 냠냠이는 뽀미의 새끼였으니까!

이 난국을 해결한 답이 냠냠이가 했던 행동에 있다!

천문석은 잡낭 안으로 손을 넣어 훑었다.

손에 착 달라붙는 막대기!

‘이거다!’

손을 꺼내 펼치자 막대기의 정체가 드러났다.

세연이를 구하러 가는 자신 앞에 수십 번 나타난 냠냠이가 원했던 간식!

곡물 칼로리바!

천문석은 곡물 칼로리바를 살짝 잘라 내 내력을 담은 손가락으로 튕겼다.

단숨에 허공을 날아 암반 위에 드러누운 뽀미 앞에 떨어지는 칼로리바 덩어리!

[완전 맛있는…….]

심상이 전해지기도 전에 하늘을 휘젓던 작은 발이 멈추고 데굴데굴 굴러 일어나 칼로리바를 먹었다!

…… -!!

번쩍 고개가 들리고 부드럽게 움직이던 꼬리가 뻣뻣하게 굳는 순간 보였다.

자신의 손에 들린 곡물 칼로리바에 꽂힌 선명한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뽀미의 눈동자가!

‘완전히 먹혔다!’

천문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곡물 칼로리바를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경악으로 커지는 눈동자!

머리부터 꼬리까지 곤두서는 털!

와작-

천문석이 칼로리바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파파파팟-

뽀미는 번개같이 암반 위를 달려 도약했다.

각성 전이어도, 아직 어려도 뽀미는 뽀미!

뽀미는 정확하게 칼로리바를 입으로 물었다!

냠냠, 냐아암-

정신없이 칼로리바를 핥는 뽀미를 부드럽게 받치는 손.

이 손은 도끼로 내리찍어도 미동도 하지 않을 천문석의 손이었다!

‘드디어 잡았다! 카캬카카칵-’

천문석은 터질듯한 웃음을 안으로 삼키며 잽싸게 엄지로 약지를 누르고 마음을 움직였다.

이세영 선생님을 검은 폭풍으로 각성시켰을 때처럼!

영육과 혼백 사이, 무한한 심상 공간에 각성력을 가득 채우고 그 각성력을 터트릴 불꽃, 씨앗을 떨어뜨린다!

‘고통 없이는 결실도 없는 법! 다 널 위해서다! 뽀미!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마음의 외침과 함께 뽀미를 각성시킬 최대 출력 전법륜인 딱밤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나무 뒤에 숨은 두 사람이 보고 있었다.

“……쟤 지금 뭐 하는 거냐? 설마…… 새끼 고양이한테 딱밤 때리려는 거는 아니겠지?”

장철의 어이없어 하는 질문에.

마혁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 이마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이세기 녀석은 충분히 하고 남을 놈이야. 미친놈. 새끼 고양이한테 딱밤은 왜 날리는 건데…….”

거대한 재앙, 엄청난 강적의 예감에 미친 듯이 백운대로 달려온 장철과 마혁진.

두 사람 앞에는 생각지도 못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엄청난 힘에 부르르 떨리는 손!

아무것도 모른 채 냠냠 무언가를 먹는 새끼 고양이!

황당하게도 천문석은 새끼 고양이에게 딱밤을 날리려 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수, 몬스터도 한 방에 정신줄을 놓을 진심, 전력을 다한 딱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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