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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82화 (1,18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82화>

새하얀 암반 주위로 풀과 나무, 바위가 줄줄이 이어지는 백운대.

천문석은 내력을 갈무리하고, 기척을 지운 채 얼어붙은 수풀과 바이 사이를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초월자를 찾기 위해서!

백운대 정상에서 시작해 능선을 타고 수색하길 한참.

하늘에 생겨났던 화살표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초월자의 존재감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

그러나 천문석은 바짝 긴장한 채로 숨소리마저 죽이고 움직이고 있었다.

북을 치듯 빠르게 뛰는 심장과 저릿저릿한 육감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여기에 무언가 있다!’

그리고 바위와 나무에 가려진 암반에 도착하는 순간 발견했다.

“……!”

전신 갑주를 입은 채 하늘을 향해 검을 뽑아 든 기사!

그리고 기사가 치켜든 검 첨단에 모여 있는 선명한 불꽃!

기사와 불꽃은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춰 있었다.

얼어붙은 수풀과 땅바닥을 기며 찾고 있던 초월자가 아닌 생각 하지도 못한 기사가 나타난 상황.

어이없게도 이 기사의 모습이 너무나 눈에 익었다.

‘쟤가 여기서 왜 나와?!’

순간 차르륵- 머릿속에 기억이 펼쳐졌다.

추이린 수석 연구원의 배송의뢰로 가게 된 부산 던전 7층, 마도구 제작자들의 공방 도시!

공방 도시는 지열탑 과열로 난장판이 됐고, 자신과 동료들은 지열탑 폭발을 막기 위해 공방 도시 지하 유적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철봉을 만든 캐부자 마법 마도구 제작자 레이 실트를 만났다.

레이 실트,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격벽을 열고 들어간 장소가 마그마 챔버에 박힌 지열봉이 겉으로 드러난 공간이었다.

이 거대한 공간은 마그마 챔버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지열탑 통제 장치의 마력이 합쳐져 화염의 마력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현상을 일그러트리는 화염의 마력 폭풍은 지하 유적 깊은 곳에 재가 되어 타오르는 거대한 숲, 투영 공간을 만들어 냈다.

투영 공간에 쏟아져 나온 수백의 고스트!

레이 실트의 롱소드, 강철봉을 빌려 고스트를 박살 내고 거대한 거인을 잡았다.

이 순간 타오르는 재의 숲에서 걸어 나오는 존재가 있었다.

투구와 건틀릿, 판금 갑옷으로 전신을 가린 채, 불티와 눈처럼 새하얀 잿가루를 흩날리던 기사!

재의 기사!

너무나 뜨거워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지던 재의 기사와 격돌했다.

생생히 기억난다.

자신의 강철봉과 재의 기사의 롱소드가 격돌하는 순간 터져 나온 유형화된 파괴의 빛!

오러 블레이드!

오러 블레이드를 앞세워 공격하던 재의 기사!

갑자기 튀어나온 수십 마리의 서리 늑대!

하얀 번개 추이린의 연속 뇌전 마법!

이 모든 게 뒤엉켜 투영 공간에 엉망진창 난장판이 펼쳐졌다!

그 재의 기사가 자신 앞에 있었다.

그렇다.

지금 암반 한가운데 서 있는 기사는 자신이 공방 도시에서 만나고 싸웠던 재의 기사다!

‘재의 기사가 왜 여기에 있어?!’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번쩍 벼락 치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설마!’

마그마 챔버 폭발 직전까지 갔던 지하 유적 난장판의 결말.

배송 물품이던 금속 상자가 작동해 자신과 동료들, 서리 늑대 무리를 1999년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날려 보냈다!

그게 바로 답! 2000년 1월 2일 북한산에 재의 기사가 있는 이유다!

재의 기사도 자신들처럼 그 폭발에 휩쓸려 날려 온 거다.

또 다른 세기말 대한민국!

바로 이 세계로!

“……!”

하나의 의문이 풀리자 줄줄이 답이 떠올랐다.

초월자가 자신을 부른 장소에 재의 기사가 우연히 있을 리 없다!

저 재의 기사가 바로 초월자가 자신을 부른 이유다!

그리고 초월자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도 바로 감이 왔다.

롱소드 끝에 멈춰 있는 선명한 불꽃!

이 작은 불꽃에서 엄청난 힘과 가능성이 느껴졌다.

내력, 마력, 각성력 그 무엇도 아니다.

오리온 길드의 개미굴 광산에서 이미 한번 겪었던 힘이다!

무혼(武魂)!

검사가 평생의 수련과 심득을 담아 키워 내는 무혼의 불꽃이다!

‘초월자는 재의 기사가 키워 낸 무혼의 불꽃을 노리고 있다!’

이 사실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직접 재의 기사와 싸워 봤기에 그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유형화된 빛, 오러 블레이드!

재의 기사는 초절정 경지다!

초월자는 초절정 재의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자신을 부른 것이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안도와 확신이 들었다.

‘초월자 이 녀석 모산파 놈들과 비슷한 과구나!’

온갖 사술과 환술, 주술을 쏟아붓던 모산파 놈들!

그러나 강대 강, 정면으로 밀고 들어가는 순간 사술은 무너지고 줄줄이 뚝배기가 깨졌다!

지금의 자신에겐 불가능한 위용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자신이 상대할 건 전생의 모산파도 눈앞의 재의 기사도 아닌 초월자니까!

즉, 먼저 초월자만 찾아 기습할 수 있다면 플랜A, 난장판을 만들 필요도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천문석이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순간.

크아아아아-

메아리치듯 사방에서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확인한 시계는 4시 55분!

백운대 주차장에서 출발한 4시 30분에서 25분이 지났다!

포격이 시작되는 건 4시 30분의 1시간 후인 5시 30분!

천문석은 원래 계획에 플랜B를 추가했다.

-플랜A. 몬스터 웨이브로 난장판을 만들고 얼렁뚱땅 튄다!

-플랜B. 초월자를 찾아 제압하고 잽싸게 튄다!

포격이 시작될 때까지 남은 시간은 35분!

그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 백운대 주차장으로 돌아가 장철과 마혁진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   *   *

‘바로 시작한다!’

천문석은 결심과 동시에 기감을 퍼트렸다.

초월자가 자신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도록 넓고 얇게!

재의 기사가 정지한 암반 너머 수풀, 나무, 바위 위로 물결치듯 기감이 퍼져 나갔다.

오감을 넘어 느껴졌다.

단단히 얼어붙은 땅과 눈!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얼어붙은 낙엽!

수풀과 나무, 바위 그림자 아래 잠들어 있는 생명!

1, 3, 5, 7, 11, 13미터!

한계 거리 13미터까지 뻗은 기감에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

그 어디에도 초월자의 흔적은 없었다.

재의 기사의 존재감과 한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산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천문석은 실망하지 않았다.

초절정 수준인 재의 기사조차 상대하지 못해 자신을 불렀지만, 초월자는 천의의 실 자락으로 인과도 얽히지 않은 자신을 불렀다!

어떻게 가능한지 감도 오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플랜A, 플랜B. 최악의 경우 플랜Z.

계획대로 용의주도하게 움직여야 한다!

천문석은 기갑을 퍼트린 채로 소리 하나 없이 얼어붙은 수풀과 바위 사이를 기었다.

휘이이잉-

차가운 냉기가 실린 칼바람이 불어오고.

파스스스슥-

햇볕에 달궈졌던 암반과 대지가 빠르게 온기를 잃어 갔다.

‘2,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김철수는 나무 위에 은신한 채 칼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고!

‘어디냐? 어디에 숨었냐?!’

천문석은 얼음장 같은 땅바닥을 기고 또 기어가며 기감을 뻗었다!

혹시나 밖으로 새어 나갈까, 마력과 내력을 갈무리한 상태!

체온이 빠르게 떨어지고 팔다리, 손발의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텼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장한 모습이었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김철수와 천문석.

마도 황제와 전생 천마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채 한겨울 산에서 삽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삽질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모습을 드러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삽질!

게다가 불굴의 의지를 가진 두 사람이었기에 이 삽질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해가 산으로 기울어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 문득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냐아아암-

‘고양이 울음소리?!’

반사적으로 돌아간 시선에 소나무가 길게 이어진 작은 숲이 보였다!

고양이 울음소리는 이 숲에서 들려왔다!

가능한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다!

‘저 숲에 초월자가 은신했다! 위치만 특정하면 플랜B를 실행할 기회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숲을 향해 기었다.

이때 생각지도 못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세기 선생님!”

백운대 방향!

반사적으로 몸을 멈추고 시선을 올리자 보였다.

백운대 암반 위에 나타난 세 남자!

전술 조끼에 배낭, 소총으로 무장한 어쩐지 낯익은 얼굴…….

‘마혁진! 쟤 젊은 마혁진이잖아!’

어린이 대공원에서 만났던 2000년의 마혁진과 무장한 국정원 직원 둘이 나타났다!

재의 기사와 초월자가 있는 백운대에!

‘어떻게?! 오지 마! 내려오면 안 돼!’

다급히 마음으로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이세기 선생님!”

“이세기 님! 어디 계십니까?!”

“팀장님! 저 아래! 나무에 가려진 암반! 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마혁진이 백운대에서 몸을 내밀고 바위와 나무에 가려진 암반을 가리켰다.

재의 기사가 있는 암반을!

“이세기 선생님?!”

“거기 아래! 이세기 선생님이십니까!”

“여기선 확인이 안 됩니다!”

“로프를 걸고 내려가서 직접 확인한다!”

……

능숙하게 로프를 풀어내고 급경사의 바위 비탈을 내려올 준비를 하는 세 사람!

이대로면 저 셋은 재의 기사가 있는 암반에 내려선다!

재의 기사는 마치 정지한 듯 아무 반응도 없는 상태!

하지만 유형화된 빛,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순간 끝장이다!

어지간한 각성자도 반응조차 할 수 없다!

저 세 사람은 총구를 겨누기도 전에 끝장난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청년 마혁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니까!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쫓아 보내야 한다!’

내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손을 뻗어 돌멩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던지려는 순간 다시 한번 들려왔다.

냐아아암-

고양이 울음소리가!

‘가깝다?!’

반사적으로 돌아가는 시선에 보였다.

스윽, 스으윽-

수풀 속에서 우아하게 걸어 나오는 흰색, 검은색, 노란색이 어우러진 너무나 낯익은 삼색 새끼 고양이…….

‘뽀미?!’

이 순간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뽀미! 너 어디가?!”

자신의 입이 아닌 숲속 한 나무에서!

“……!”

뚝- 끊어진 외침.

그러나 대략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암반을 내려다보는 소나무다!

아직 국정원 세 사람은 내려오지 않는 상황.

플랜B.

초월자를 처리하고 국정원 3인과 함께 튄다!

천문석은 빠르게 바닥을 기어가며 하나로 집중한 기감을 뻗었다.

직선으로 쭉 뻗어 나가는 기감!

여전히 나무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가 아닌 엉뚱한 장소, 허공에서 뇌리를 긁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이건 또 뭐야?!’

반사적으로 눈에 내력을 담고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깨진 스마트폰 액정처럼 금이 간 허공!

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꼬물, 꼬물- 공간을 뚫고 있는……!

‘손가락?!’

허공에서 튀어나온 손가락이 구멍을 뚫고 있었다!

‘환술?!’

지권인의 수인을 짚고 눈을 비비며 몇 번을 확인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손가락!

분명 손가락이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

천문석은 돌처럼 굳어진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초월자의 부름을 따라 도착한 백운대에 생각지도 못한 존재들이 줄줄이 나타나고 있었다.

-재의 기사!

-은신해 있는 초월자!

-삼색 고양이 뽀미!

-청년 마혁진과 국정원 요원!

여기에 허공에 구멍을 뚫고 있는 손가락이 더해졌다!

‘아니, 시바 이게 뭐야?! 손가락? 손가락으로 차원 방벽을 뚫는다고?! 도대체 왜?! 어떤 또라이가 저런 삽질을 하는 거야?!’

전생, 현생을 다 합쳐도 처음 보는 광경!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세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팀장님! 로프 준비됐습니다!”

“우선 나랑 신입이 내려간다! 위에서 경계해라!”

로프를 잡고 비탈을 내려오는 국정원 요원과 젊은 마혁진!

냐암, 냐아암-

재의 기사가 서 있는 암반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삼색 새끼 고양이 뽀미!

“……!”

소나무 위에서 툭 떨어져 흔적도 없이 공간으로 스며드는 투명한 형체, 초월자!

재의 기사가 암반 위에 멈춰 있고.

정체불명의 손가락이 구멍을 뚫는 지금.

익숙한, 너무나 익숙한 촉과 전율이 밀려왔다.

거대한 난장판의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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