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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73화 (1,17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73화>

각성력을 아낄 필요는 없다!

마침내 이 거대한 난장판의 끝이 보였으니까!

으아아악-

마혁진은 아낌없이 각성력을 쏟아부어 역장의 쐐기를 만들었고.

하아아아앗-

장철 헌터는 역장의 쐐기에 전력을 다해 슬레지 해머를 내려찍었다.

쾅쾅, 쾅쾅쾅쾅-

멈추지 않고 섬광이 터지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천문석은 소리만으로도 알아챘다.

장철과 마혁진이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

시작이 좋다!

거대 랩터가 스스로 반발장을 죽이고 기습하는 순간 제대로 들어간 굉천수!

굉천수에 감각을 잃은 거대 랩터는 그대로 지상에 추락해 굴렀다!

여기에 워커 실트의 자동 줄자와 해머의 초고순도 정제 마석을 이용한 벼락으로 주도권을 잡았다!

거대 랩터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연속공격에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쥐어 터지고 있다.

플랜B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정말 오랜만에 모든 게 계획대로 아니 계획보다 더 좋게 진행되고 있다!

‘봤냐?! 마혁진, 나 절대 재수 없지 않다! 카캬카카카캌-‘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내력과 마력을 자동 줄자에 밀어 넣었다.

콰카카카쾅-

강기와 뇌전을 휘감은 자동 줄자, 빛의 채찍이 반발장을 찢어발기고.

쾅쾅, 콰아앙-

초능력 각성자가 만든 역장의 쐐기에 육체 각성자의 무지막지한 해머가 내려꽂혔다.

거대 랩터의 전신에 쐐기가 박힐수록 발버둥은 점점 줄어들었다.

마혁진과 장철의 외침이 들려왔다.

“역장 쐐기 13개 박았다!”

“더 박냐? 아니면 지금 터트릴 거냐?!”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지금 터트리면 결정타가 될까?!’

폭풍 같은 연속공격에 쓰러져 있는 거대 랩터!

자동 줄자에서 전해지는 감각과 발에서 올라오는 맥동으로 알 수 있었다!

반발장이 솟구치는 양과 질 모두 확 줄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습을 당해 일방적으로 얻어터져도 거대 괴수는 거대 괴수!

거대 괴수의 무지막지한 체력이라면 타격을 회복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직 부족하다!’

머릿속에서 계산이 끝나는 순간 바로 입이 열렸다.

[아직 모자라다! 33개! 역장 쐐기 33개 박아넣고 한 번에 터트린다! 자리 비워 줄 게 내가 있던 곳에도 박아 넣어라!]

천문석은 외침과 함께 역장의 쐐기를 박을 수 있도록 전진했다.

콰카카카카캉-

빛의 채찍이 이동하는 순간 파괴의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줄줄이 깨져나간 금속질 비늘과 검게 탄화된 근육!

마혁진과 장철은 파괴의 현장을 보는 순간 전신의 털이 곤두서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1세대 헌터인 두 사람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계통조차 알 수 없는 힘은 반발장만 깎아 낸 게 아니다!

거대 괴수의 강화 강철 같은 육체마저 깎아냈다!

‘어떻게?’

‘어떻게?!’

의문을 품는 순간 바로 답이 보였다.

이세기의 손에 들린 빛의 채찍!

빛의 채찍이 뇌전과 오러와 비슷한 빛을 담아 거대 괴수의 반발장을 장난처럼 찢어발기고 있다!

나이트 아머처럼 승패마저 바꾸는 전술 등급 마도구다!

“이세기 너 진짜 계획이 있었구나! 그냥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임기응변인 줄 알았는데…….”

마혁진이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장철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천문석과 같이 전장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동생과 조카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장민의 이야기.

오리온 길드 면접, 무림 던전, 신동대문 난장판, 제주도 사태, 강릉 이상 던전 사건…….

특급 헌터의 이야기.

소고기 등심구이, 돼지고기 팍팍 김치찌개, 북한산 워터 파크, 제주도 휴가, 박스성 만들기…….

천문석이 강해질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무림 던전에서 나온 모습을 봤을 때 엄청난 포텐이 느껴졌으니까.

장철이 이상을 느끼는 건 다른 곳이었다.

“쟤 옥탑방 산다고 하지 않았나? 저런 마도구는 어디서 구한 거야? 비슷한 마도구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분명 W. S. 인더스트리…….”

이때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장철! 뭐 하냐! 얼른 와!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

어느새 역장을 압축하며 달려가는 마혁진이 보였다.

“……!”

장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혁진의 말이 맞다.

지금 중요한 건 거대 괴수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의문을 푸는 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늦지 않았다.

장철은 한달음에 달려가 역장의 쐐기에 해머를 내려쳤다!

거대한 바위에 박히는 석공의 쐐기처럼 공룡형 괴수, 거대 랩터의 전신에 역장의 쐐기가 박히고 있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전투.

전투라기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격전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배달 오토바이에서 자동차 안으로 순식간에 옮겨진 임수정과 김 대리.

“…….”

“…….”

두 사람은 완전히 압도되어 눈을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생명체가 아닌 건축물 같던 거대 괴수!

포격을 쏟아부어도 잡을 수 있을지 의심되던 거대 괴수가 대지에 쓰러져 깨지고 부서지고 있다!

포격이 아닌 인력(人力), 사람의 힘으로!

임수정과 김 대리가 넋 나간 얼굴로 일방적인 전투를 보고 있을 때.

철수 준비를 하던 옥상 지휘 캠프의 모두도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저 사람들 도대체 누구야?!”

“15개! 벌써 15개의 쐐기가 박혔습니다!”

“거대 괴수가 전혀 반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에너지 반응! 무언가 거대 괴수가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염동력! 끊어진 다리를 이었던 염동력으로 고정한 거 아닐까?!”

“아니 저 빛의 채찍을 든 사람이 의심스러워! 저 채찍에 저거 벼락이라니까! 벼락!”

……

옥상 난간에 찰싹 달라붙은 국정원 직원들은 정보기관의 요원이 아닌 마술을 본 아이들처럼 상기된 얼굴로 외치고 있었다.

평소의 김 부장이라면 당장 불벼락이 떨어질 상황이다.

그러나 김 부장도 다른 요원들과 마찬가지였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광경을 봤다.

“……!”

김 부장은 격동으로 전신이 떨리는 걸 느꼈다.

염동 대협과 함께 나타난 곰 같은 남자와 어쩐지 사기꾼 냄새가 나던 이세기라는 청년!

이들에게 무언가 있다는 건 짐작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

10층 건물 높이의 거대 괴수를 세 사람이 ‘철거’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건 이미 전투가 아닌 철거다!

섬광과 굉음!

벼락이 담긴 빛의 채찍!

줄줄이 박혀 들어가는 쐐기와 산조차 부술 듯한 해머!

상대할 방법이 없어 대공원에서 뺑뺑이를 돌리며 포격을 기다리던 거대 괴수를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있다!

이 모습에 수십 년 동안 정보기관에서 구른 김 부장의 촉이 움직였다.

서울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과 괴수가 튀어나온 건 시작일뿐이다.

괴물과 괴수를 압도하는 사람, 초인(超人)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금 자신 앞, 이곳 대한민국에서!

그렇다면 지금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김 부장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기록! 지금 전투 전부 기록하고 있지?”

“카메라 3대로 기록 중입니다!”

“남은 카메라도 모조리 동원한다! 다른 건물에도 카메라를 올려보내라. 모든 방향에서 찍는다!”

“네, 바로 보내겠습니다! 2, 4, 6팀! 바로 움직인다!”

“지원 병력을 요청한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세 분을 모셔야 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철수 준비 중이던 것도 잊은 채 정신없이 움직였다.

한 사람. 옥상 가장자리에 정물처럼 서 있는 신입, 마혁진을 제외하고.

“신입은 어디 간 거야?”

“누가 데리고 있겠지! 빨리 움직여! 바로 카메라 설치해야 한다!”

바로 앞을 달려가면서도 국정원 직원들은 신입, 청년 마혁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청년 마혁진은 풍경에 동화된 정물처럼 무아지경에 빠져 마음속에 밝혀진 지혜의 륜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이 대공원에선 한 사건이 마무리되는 동시에 새로운 씨앗이 심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어린이 대공원뿐만이 아니었다.

*   *   *

“빌어먹을! 못 해 먹겠네!”

북한산 국립공원에 분노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검은 로브를 걸친 7살 남짓한 꼬맹이.

김철수는 분필을 집어 던졌다.

휙 날아간 분필은 정지한 재의 기사에 닿는 순간 그대로 튕겨 나와 이마로 날아왔다.

김철수는 반사적으로 분필을 낚아채며 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젠장, 되는 일이 없네!”

정지한 재의 기사의 불의 서약을 움직여 마력 폭풍을 터트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불의 서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빌어먹을 마력!”

그렇다! 빌어먹을 마력 때문이다!

마력만 충분하면 불의 서약을 하늘로 날려 보내 마력 폭풍을 터트릴 수 있다.

마력 폭풍만 터지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러나 강철을 찾기 위해 광역 스캔 마법을 사용하고 마력 회로를 그리며 남은 마력은 간당간당한 상태!

아니 사실 마력 회로를 그리지 않았어도 불의 서약을 다시 움직일 정도의 마력은 처음부터 없었다!

“지금이라도 마석을 구하러 내려갈까?!”

총성이 들려오는 시가지로 몸이 돌아갔지만 바로 고개가 저어졌다.

몬스터를 잡아 마석을 찾고, 그 마석을 다시 정제할 시간이 없다!

자신은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니다.

이상한 숲에서 만난 꼬맹이 덕분에 잠시 오게 된 손님일 뿐이다.

언제 꿈에서 깨어나듯 이 세계에서 튕겨 나갈지 모른다.

즉, 마석을 정제하다 튕겨 나가면, 완전히 망하는 거다!

돌과 철을 찾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실패고, 세계 자체가 개판이 되게 생겼다!

불의 서약이 움직이지 않으면 마력 폭풍이 터지지 않고.

마력 폭풍이 터지지 않으면 각성자와 각성 동물도 없다!

게이트에서 본격적으로 마력장이 쏟아지면 사방에 던전과 균열, 마경이 생겨난다.

처음에는 현대 무기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침식하는 던전과 균열이 화약 조성을 조금만 변화시켜도 현대 무기 대부분이 쓸모없어진다!

게다가 게이트는 양방향 통로다.

게이트에서 지구로 마력장이 쏟아질 때.

지구에서 게이트로는 차원력이 흘러나가고 있다.

이대로 차원력이 계속 흘러나가 지구의 차원압이 낮아지면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지구에 강림하게 된다!

고대신, 악신, 허신, 고룡, 초월종!

마력 폭풍이 없으면 지구의 문명 자체가 끝장이다.

어떻게든 불의 서약을 움직여 마력 폭풍을 터트려야 한다.

원래 세계로 튕겨 나가기 전에!

지금의 자신은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자신 대신 불의 서약을 움직여 마력 폭풍을 터트릴 존재를 부르는 것!

마도왕!

제국군 군단장!

원 대륙의 샤!

최고위 사제와 성녀!

차원 용병!

자본주의 그 자체 스카라베 지하 왕국!

……

자신을 도와줄 수많은 이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힘과 기억을 잊고, 돌과 철마저 잃어버려 개털이 된 지금의 자신은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지금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다.

과거, 현재, 미래.

삼생의 인과가 동시에 자라나는 세계의 나무.

세계의 나무의 아득한 인과가 뒤틀리는 순간 나타나 뒤틀림을 바로잡는 존재!

역천을 바로잡는 역천.

인과율의 집행자.

천마!

문제는 자신과 천마는 인과가 엮이지 않았다는 것!

인과가 엮이지 않은 존재를 부르는 건 주소를 적지 않고 이름만 적어 편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몇 번을 불러야 천마가 나타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힘과 기억을 잃고 이름마저 잊었다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

자신은 돌과 철을 걸고 약속했다.

수없이 시간을 되돌려 게이트 전쟁을 반복하며 죽어 간 모든 동료에게 약속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문명의 불꽃이 꺼지고 초월자의 놀이터가 된 타 대륙에서 만난 동료들에게도 약속했다.

타 대륙에 찬란한 문명의 불꽃을 피어올리고 인류의 시대를 열겠다고!

두 번째 약속은 지켰다.

그리고 첫 번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구로 돌아왔다.

게이트 전쟁 승리!

자신이 힘을 잃은 지금 각성자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걸 위해 마력 폭풍이 터져야 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김철수는 손에 쥔 분필로 재의 기사 주위에 마법 회로를 그렸다.

말과 뜻을 전하는 메시지 마법 회로!

완벽하게 그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뒤틀리고 부족한 게 천마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마법 회로가 완성되는 순간.

김철수는 수인을 짚고 마법 회로를 활성화했다.

파슥, 파스슥-

마법 회로가 점멸하는 순간.

하아아-

김철수는 크게 심호흡했다.

인과가 이어지지 않은 천마와 연결하기 위해선 수십 번, 아니 수백 수천 번을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남은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불러도 연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마력이 없다면 명운을 깎아서라도 반드시 부르리라!

인과율의 집행자 천마를!

이름을 잊은 돌과 철의 황제는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담아 불렀다.

[천마! 나에게 와라!]

마법 회로가 번쩍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

연결됐다!

인과가 엮이지도 않았는데 단 한 번에 연결됐다!

생각지도 못한 천운에 멈칫한 이 찰나의 순간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봤냐? 봤냐?! 나 완전 재수 좋은 거 봤냐?! 카캬카카카캌-!]

의기양양한 외침과 웃음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고.

쩡-

얼음이 깨지듯 허공에 균열이 생기고 하늘조차 움직일듯한 절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부잣집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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