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64화 (1,16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64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멍하니 주위를 돌아보다 문득 말한 순간, 마혁진의 머릿속에 기억이 펼쳐졌다.

3개월 동안 개같이 굴러 간신히 정직원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서울에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보스가 갑자기 초능력자가 됐으니까!

강북을 넘어 한국 최대의 혈맹 온라인 작업장을 만들고, 서울의 밤거리를 지배하는 조직의 미래를 꿈꿨다.

그러나 자신은 보스를 쥐어박은 염동 대협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잘렸다.

꿈과 미래 계획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누구라도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은 이 분노와 황당함, 어이없음, 답답함을 터트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염동 대협을 외치는 함성을 쫓아 청담대교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염동 대협 마혁진을 불렀다가 사방에서 밀려오는 인파에 휩쓸려 쥐어 터졌다.

쉴 새 없이 쥐어박혀 고통에 머리가 식는 순간 기절한 척 숨을 죽였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외국인과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람이 처절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지금 그 결과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외국인과 분통을 터트리다 뒤로 넘어간 최 팀장.

멀리 뒤엉켜 널브러진 수십 명의 군인과 국정원 직원들.

그리고 한마디씩 던지며 청담대교를 건너가는 사람들까지!

“이 사람들은 뭐야?”

“거기, 정신 차려 봐요?!”

“이거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아냐?”

“군인이잖아! 함부로 손대면 안 돼!”

“경찰 어디 있어? 누가 경찰 좀 불러봐요!”

……

문득 사람들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청담대교를 걸어 한강을 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냥 이 다리를 지나 강남으로 튈까?’

그러나 기절한 척 보고들은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국정원, CIA, 델타포스가 뒤엉킨 난장판.

아무렇지도 않게 100달러 지폐를 뿌리던 외국인.

오성파 행동 대장이 착해 보일 정도로 처절하게 싸운 최 팀장.

게다가 자신은 이미 최 팀장에게 주민등록증까지 보여 줬다!

만약 최 팀장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찾아온다면?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으으윽-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머리를 부여잡는 순간 청년 마혁진은 깨달았다.

자신도 이 난장판에 얽혔다는 것을!

위이이이잉-

이때 핸드폰 진동음이 느껴졌다.

자칭 국정원 최 팀장의 옷!

고심하다 손을 뻗을 때 호루라기 소리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패싸움이라며? 이 사람 외국인이잖아?”

“경사님! 여기 이 외국 군인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뭐?! 소총! 물러서세요!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누구 이분들 일행이나! 어떻게 된 건지 사정 아시는 분 없습니까?!”

하아아-

청년 마혁진은 깊은 한숨과 함께 손을 들고 경찰을 향해 달려갔다.

“여기 있습니다!”

오성파에서 잘리며 한번 미래가 변한 청년 마혁진의 미래가 다시 한번 뒤틀리고 있었다.

이 모든 변화를 일으킨 스노우볼을 굴린 사람.

천문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영동대교에 있었다.

* * *

천문석은 슬쩍 뒤를 바라봤다.

뚝 끊긴 다리 너머 격류가 휘몰아치는 한강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보자 이글거리는 염동력장을 휘감은 염동 대협 마혁진이 있었다.

정신없이 뚝섬을 달리면서 닥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앞뒤가 막힌 영동대교에서 마혁진을 마주하고 있었다.

마침내 닥친 것이다.

여기서 설득해야 한다!

천문석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염동! 이게 과거의 은원은 흘려보내고 미래를 생각…….”

“때려놓고는 은원을 흘려보내? 열 대, 아니 백 대만 맞자! 그럼 흘려보낼 수 있다!”

진심을 싣는 건 실패다.

미래 비전으로 설득한다!

천문석은 잽싸게 말을 이었다.

“염동! 우리 대국적으로 미래를 생각하자!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망칠 거냐?! 염동 대협, 염동건설이 끝이 아니다! 더 밝고 희망찬 미래……!”

“그게 가해자가 할 소리냐?”

“새옹지마!”

“새옹지마?”

“그렇다! 새옹지마!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법! 비록 신동대문에서 시청 공고문 도난의 누명을 썼지만, 그 결과 넌 엄청난 행운을 얻었다!”

“행운? 그 행운이 도대체 뭔데? 그날 이후로 되는 게 없는데?”

천문석은 혼을 실어 외쳤다.

“날 만난 거다!”

“…….”

마혁진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천문석은 당황했다.

분노, 황당, 개싸움, 어이없음!

예측을 완전히 빗나가는 마혁진의 대응!

“…….”

마혁진의 두 눈과 십자 마안은 하늘에 박혀 있고 몸에선 쓸쓸함이 입에선 회한 어린 탄식이 새어 나왔다.

‘뭐야,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

자신도 모르게 움찔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운…… 그래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지…….”

“뭐……?”

천문석이 반문하는 순간.

마혁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시청 공고문은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장철은 언제 오냐? 장철 오면 집에 돌아가는 건 맞지……?”

스스로 말을 돌리는 마혁진!

자신이 바라던 바다!

천문석은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장철만 오면 바로 돌아갈 거다!”

“그럼 됐다. 빌어먹을 불운. 이제 화내는 것도 힘들다. 우선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돌아가서…… 하아…….”

염동 대협 마혁진은 마치 84일 동안 연속으로 낚시에 실패한 노인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감이 왔다.

열정, 고통, 고생, 분노!

모든 감정에는 한계가 있다!

하얀 재만 남은 장작에는 불이 붙지 않는 법!

마혁진은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사고와 불운에 어느새 분노할 힘마저 잃고 지쳐 버렸다!

“장철 어디로 오기로 했냐? 가서 좀 쉬면서 기다리자.”

“가자! 내가 앞장설게.”

천문석은 몇 걸음 걷다 문득 멈춰 섰다.

“안 가냐? 왜?”

“장철 헌터님 올 때까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또 뭔데? 빨리 끝내고 좀 쉬자…….”

“…….”

천문석은 손을 들어 뒤를 가리켰다.

“한강?”

“아니 그 뒤.”

“영동대교?”

“맞아.”

“영동대교는 왜?”

“다리 연결해야 해.”

“……뭐?”

“우리 끊어진 영동대교 연결해야 한다고.”

이 순간 하얗게 타 버린 재에서 불씨가 살아났다.

“그게 뭔 소리야? 청담대교만 연결하면 된다며?!”

마혁진이 버럭 소리치는 순간.

천문석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염동. 잘 기억해 봐. 난 청담대교만 연결하면 된다고 말 한 적 없다. 끊어진 다리 연결해야 한다고 했잖아?”

“그게 그거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청담대교에서 그 개고생을 했는데 영동대교를 또 이어야 한다고?! 이거 미친놈…… 어, 잠깐?!”

분노를 쏟아 내던 마혁진은 돌연 바닥을 봤다.

“영동대교! 너 설마 나 영동대교로 유인해서 달린 거냐?!”

“야, 원래 뭐든지 처음이 힘든 거야!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잖아? 게다가 다리 이름도 영동대교잖아! 영동, 염동! 이름도 비슷한 게 의욕이 막 불끈불끈 솟지 않냐?!”

“무슨 개소리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잠깐! 너 입 터는 게 수상한데? 뭐 더 있는 거……?!”

주위를 돌아보는 마혁진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서쪽!

자전거를 타고 건너온 성수대교!

이 순간 마혁진은 깨달았다.

끊어진 다리!

발아래 영동대교가 서쪽에 성수대교가 있다!

그리고 그 너머 한강을 따라 상판이 끊어진 다리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동호, 한남, 반포! 설마 아니지? 아닌 거지?!”

“야, 당연히 아니지! 날 뭐로 보고…….”

“처음부터 제대로 말해야지! 깜짝 놀랐잖아!”

마혁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천문석은 편의점에 간다고 말하듯 여상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이을 다리는 영동, 성수대교밖에 없어. 2개만 연결하면 끝나! 하하하-”

“……!”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떡 벌어진 입!

1, 2, 3……!

마음속으로 10을 새는 순간 고함이 터졌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마혁진이 달려들 때 너무나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르르르릉-

끊어진 영동대교를 이을 H빔과 상판, 자재가 잔뜩 실린 대형 트럭들의 엔진음.

[자 모두 질서를 지켜 주십시오! 염동 대협께서 끊어진 영동대교를 연결하실 겁니다!]

트럭에서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환호성은 천천히 다가오는 트럭 행렬 뒤에서 들려왔다.

옷을 꽁꽁 껴입은 아이가 고사리손을 흔들고.

아이들의 손을 꼭 잡은 엄마가 열기 어린 눈으로 외친다.

수많은 사람의 갈망과 기원이 담긴 외침이 하늘과 땅, 마음을 뒤흔들었다.

“……!”

마혁진은 홀린 듯이 이 모습을 바라봤고.

하하하-

천문석은 웃으며 그 어깨를 툭 쳤다.

“할 거지?”

“…….”

마혁진이 뭐라 말을 잇지 못할 때.

으아악-

청년 마혁진은 악을 쓰며 기절한 사람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같은 시공간에 자리한 두 마혁진이 구르기 시작했다.

* * *

쿠우우우웅-

거대한 H빔 골조가 끊어진 다리 위에 놓이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됐다! 이제 건너갈 수 있다!”

“드디어 다리가 연결됐다!”

“염동 대협이 해내셨다!”

……

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다리를 울리고 밀려났던 시민들이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 들썩였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리케이드의 군인들이 저지할 때.

확성기 외침이 울려 퍼졌다.

[대기! 대기! 아직 상판을 고정하지 못했습니다!]

[전원 시민분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다!]

[공병대! 골조를 고정하고 상판을 깐다! 천천히! 안전하게 움직인다!]

영동대교 북쪽과 남쪽에서 공병대가 동시에 움직여 골조를 고정하고 상판을 깔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득-

아스팔트에 구멍을 뚫어 H빔 골조를 다리에 고정하고.

2인 1조로 상판을 들어 옮겨 능숙하게 H빔 골조 위에 깔고 고정했다.

순식간에 H빔 골조 위에 강철판이 고정되고 난간이 세워져 다리가 완성됐다.

[됐다. 시민들 이동 시킨다!]

[절대 뛰지 않도록 협조를 구하고!]

[가족 단위! 10명 단위! 5초의 딜레이를 두고 진입시킨다!]

이미 청담대교를 겪은 지휘관과 병사들은 능숙하게 움직였고 시민들은 천천히 다리를 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처음 불안하게 내딛던 발걸음에 곧 확신이 담기기 시작했다.

쿵쿵, 쿵쿵쿵-

힘차게 내딛는 발과 달려가듯 빠르게 걷는 몸!

“뛰시면 안 됩니다!”

“모두 천천히 걸어 주세요!”

“중랑천, 저지선 모두 안전합니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 주세요!”

……

사람의 물결이 끊어졌던 영동대교를 지나 한강 너머로 밀려가고 있었다.

시민들은 바삐 걸으면서도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연신 주위를 돌아봤다.

그러나 기대했던 사람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은 천문석과 함께 자재가 실린 트럭 짐칸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염동. 그래도 두 번째라고 처음보단 낫다. 그렇지 않았냐?”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천문석은 목소리 톤을 한 톤 더 높였다.

“와, 미친놈들. 이렇게 다시 이을 거 다리는 왜 끊은 거야?! 완전 또라이 아냐! 그렇지 않냐? 염동?”

“…….”

순간 대답 대신 쏘아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과 눈빛에서 전해지는 너무나 선명한 감정!

하하, 하하하-

천문석은 겸연쩍게 웃었다.

“웃지 마. 네가 웃을 때마다 사건이 터지잖아. 미친놈아…….”

“야, 그래도 이제 거의 다 했어. 끊어진 성수대교 연결하고 장철 헌터님 돌아오면 바로 집에 갈 수 있다.”

“하- 집에 갈 수 있는 건 맞냐…… 왜 이렇게 불안하냐?”

마혁진이 깊은 한숨을 내쉴 때.

천문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염동 이 녀석, 촉이 더 좋아졌는데?’

마혁진의 촉이 맞다!

원래대로라면 염동 대협 마혁진은 돌아가지 못하고 2000년 1월 2일 이곳에 남는다.

자신의 잡낭 안에 염동 대협 마혁진의 미래가 들어 있었다.

‘4-이세기’라 쓰인 칼로리바 포장지 쪽지!

2000년 3월 서초구에서 만난 임수정이 자신에게 건네준 쪽지에 적혀 있던 내용!

염동 대협 마혁진은 4장의 칼로리바 포장지 쪽지를 가지고 2000년에 남는다.

그리고 임수정을 보내 2달 후 임수정을 서초구에 보내 자신에게 쪽지를 전한다.

그러나 천문석은 마혁진을 버려두고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혁진이 남지 않으면 나비 효과가 일어나고, 스노우볼이 굴러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순간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2020년 남일도에서 2000년 서울까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나비 효과, 스노우볼을 말하는 게 민망할 지경이었다.

아니 애초에 장철 헌터의 기원을 투영한 던전에 들어온 것 자체가 과거를 변화시키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대로 과거를 변화시켰다.

장세린은 아빠와 고모, 장철 헌터와 함께 한강을 건너 엄마를 만나러 갔으니까.

그뿐이 아니다.

자신과 염동 대협 마혁진은 끊어진 청담, 영동대교를 연결해 수십만, 아니 수백만 서울 시민의 미래를 바꿨다.

그 모든 것을 해 놓고 마혁진에게 염동 대협으로 과거에 남으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임수정을 통해 자신에게 칼로리바 쪽지를 건네준 마혁진.

그 녀석은 무슨 일이 있어서 과거에 남은 거지?

“혹시, 자발적으로 남은 건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헛웃음이 새어 나오고 고개가 흔들렸다.

마혁진이 자발적으로 2000년에 남는 장면은 조금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빨리 차원문을 향해 달리는 모습은 눈앞에서 본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마침내 돌아간다! 다시는 엮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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