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61화>
하하, 하하하-
천문석이 웃음이 아닌 웃음을 터트릴 때, 공병대 장병들은 번개같이 움직였다.
가장 어려운 수십 미터 다리를 가로지르는 H빔 골조 설치가 끝난 상황.
순식간에 H빔 골조를 다리에 고정하고 난간과 상판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
정신없이 움직이는 장병들의 감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마혁진은 몸을 일으켜 한참 동안 인사를 받다가 성큼성큼 이세기에게 걸어가며 버럭 외쳤다.
“뭐라고 안 할 테니까! 그만 웃어!”
하-
뚝 웃음이 멈춘 순간 피로가 묻어나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하아아- 다 끝났지? 그럼 이제 돌아가자.”
천문석은 어느새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장철 헌터님 기다려야지.”
“아, 그러고 보니! 장철이 없었네. 걔는 어디 갔는데?”
“장철 헌터님은 아주 중요한 일. 꼭 해야 하는 일 처리하시고 있다.”
“꼭 해야 하는 일? 새꺄! 나한테는 나비효과라고 마스크까지 씌우더니! 뭐 아주 중요한 일을 해?! 이 다리도 그렇고, 중랑천도 그렇고 너 진짜 나비효과 생각은 하는 거냐? 하!”
“이건 전부 다 주도면밀한 계산에 따른…….”
마혁진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다 돌연 얼굴색이 변했다.
“잠깐! 너 왜 장철한테는 꼬박꼬박 존댓말인데, 나한테는 말을 까는데?! 내가 장철, 이태성 걔네들보다 나이도……! 너, 솔직히 말해 봐. 몇 살이야?!”
이미 한 번 나왔던 이야기!
예전에는 다급히 말을 돌렸지만, 이미 대응 논리가 세워져 있었다!
“당연히 존댓말 해야지! 장철 헌터님 동생이 장민 대표님이잖아!”
“장강 유통 장민 대표님? 아니, 장철 동생이 장민 대표님인 게 존댓말이랑 무슨 상관…… 어, 너 설마?!”
질문하다 스스로 깨달은 마혁진.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도 방금 장민 대표‘님’이라고 불렀잖아? 왜 그렇게 불렀냐?”
“…….”
마혁진의 표정이 수십 번 변할 때.
천문석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헌터 업계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장강 유통의 오너가 장민 대표님이니까. 그렇지?”
“와, 이 속물 녀석! 대기업 오너가 동생이라서 존댓말이라고?!”
“억울하면 너도 대기업 오너 오빠로 태어나던가? 카캬캌-”
“새캬! 내가 이태성 패거리랑 엮이지만 않았어도 장강 유통은 아무것도 아냐! 칠성파! 아니, 칠성 그룹 세우고 벌써 대기업으로 키웠다!”
“네, 네. 그러시겠죠. 염동 대표님!”
“……!”
마혁진이 발끈하려는 순간.
천문석은 아련한 눈으로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은 계획이랑 다르다. 나도 계획대로만 됐으면 벌써 객잔 주인, 건물주, 금괴 112.5kg 캐부자, 초대박 무공 교실 차렸다. 세상 절대 만만하지 않다. 대기업 세우겠다고 마음먹고 세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아무나 대기업을 세우는 게 아냐. 그런데 장민 대표님은 맨손으로 대기업을 세웠다. 그것도 게이트 전쟁 터진 난장판에!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아니, 누구는 건물주 되기도 이렇게 빡센데! 10대에 창업해서 30대에 대기업 오너?! 뭔가, 뭔가, 뭔가! 하늘이, 세상이 아주 크게 잘못됐다니까!”
숨 한번 쉬지 않고 쏟아진 외침에.
마혁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기 녀석의 말이 맞다!
세상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3개월 무급 인턴 기간을 버티고 정식 조직원 통보를 받은 다음 날 게이트 사태가 터졌다!
-칠성파를 세우고 부산의 암흑가를 제패하고 일본과의 물류를 독점했을 때 서울 수복 작전이 성공해 망했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설치되고 헌터 길드의 전성기가 열려, 칠성 길드를 만들고 사냥터를 통제하다 이태성 길드장과 엮여 헌터 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
그리고 칠성 길드가 막타를 맞은 사건!
재기를 꿈꾸며 모든 조직원과 재산을 끌어모아 올인한 게이트 너머 이세계 거점 도시 신동대문!
신동대문에서 이세기와 얽히며 화룡점정!
칠성 길드는 개박살이 나고 자신은 열사의 사막에 떨어져!
숨 쉬는 것조차 돈을 받는 스카라베 강철 도시에 끌려가 노역형을 치렀다!
‘이세기 새끼랑 얽히면 안 됐는데!!’
새삼 탄식할 때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이세기와 얽히기 전에 이미 스노우볼이 구르고 있었다.
신동대문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
어떤 미친 새끼가 시청 공고문을 가지고 튄 다음, 그걸 삼합회, 야쿠자, 칠성 길드에 뒤집어씌운 사건!
신동대문의 모든 헌터가 빡쳐서 범인으로 지목된 삼합회와 야쿠자를 개박살 내고 눈에 불을 켜고 칠성 길드를 찾았다!
그때 공고문 도난의 누명만 쓰지 않았다면?!
이세기 새끼와 신동대문 광장에서 깃발을 꽂을 일도 없고!
열사의 사막에 떨어져 스카라베 강철 도시에 끌려갈 일도 없었다!
당연히 이세기 놈의 불운이 옮아, 이곳 세기말 대한민국까지 올 일도 없었다!
즉, 지금 자신이 이렇게 거지꼴로 구르는 건 신동대문 시청 공고문을 훔치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그놈’이 시작이었다.
더 빡치는 건 ‘그놈’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것!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미친 새끼가 공고문을 가지고 튀고는 누명을 씌워! 잡아서 허리를 반으로 접어 놔야 했는데!”
“누명? 공고문? 갑자기 무슨…… 아, 신동대문 공고문 사건! 뭐야, 너 아직도 그거 맘에 담고 있었냐? 야, 그땐 어쩔 수 없었어. 솔직히 너희가…….”
“…….”
마혁진은 멍하니 이세기를 봤다.
겸연쩍게 웃으며 변명하듯 말을 잇는 이세기!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작은 눈 뭉치가 데굴데굴 굴러 순식간에 거대하게 자라났다.
이 눈 뭉치의 이름은 의혹이었다!
‘설마, 설마. 설마!’
파파팟! 머릿속에 번개가 튀고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이 퍼즐 맞추듯 하나로 모인다!
자신과 조직원이 숨어 있던 신동대문 안전 가옥을 찾아온 헌터!
엄청난 섬광과 굉음을 터트리고 번개같이 도망친 헌터!
광장에서 분노한 헌터들을 선동한 헌터!
깃발을 꽂고 싸우다 초거대 괴수를 불러들인 헌터!
자신을 열사의 사막에 떨어뜨린 헌터!
……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헌터는 같은 사람이다.
이세기!
그 모든 일의 원흉 이세기가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을 말하고 있다!
‘설마! 설마!! 설마!!’
머릿속에서 구르는 의혹이란 이름의 눈덩이가 모든 생각을 집어삼키고, 마침내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는 순간.
마혁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공고문…….”
“야, 공고문 사건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아, 생각해 보니까 그거 1년도 안 됐구나…… 하도 굴러서 몇 년은 지난 거 같네. 하여튼 이미 지난 일이잖아! 그리고 그때는 적이었고 게다가 삼합회, 야쿠자, 칠성파까지 조직 셋이 연합했잖아? 우리 미래지향적으로! 대국적으로 생각하자! 같이 할 일 많다니까! 특히 저기 옆에 영동대교랑 성수대교, 동호대교도…….”
천문석은 말을 쏟아 냈고.
마혁진은 마침내 오랜 의문의 답을 깨달았다.
칠성 길드 마혁진에게 막타를 때린 스노우볼, 신동대문 시청 공고문 도난 사건!
그 누명을 씌운 사람을 마침내 만났다.
이세기!
“야, 이 새캬! 시청 공고문 도난! 그 누명! 네가 범인이었구나!”
“어? 뭐야, 새삼스레……?”
말이 뚝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시선.
천문석과 마혁진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
“……!!”
의문과 확신!
당장이라도 터질 듯 아찔한 긴장이 고조될 때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설마, 너 모르고 있었어?”
* * *
“미친 또라이 새끼!”
으아아악-
괴성과 터져 나오고!
고오오오오-
역장을 휘감고 돌진하는 마혁진!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구인창의 경력을 일으키다 깨달았다.
‘영동, 성수대교! 염동 건설이 필요하다! 지금 쥐어박으면 안 된다!’
쿵-
땅을 박차고 뒤로 뛰어 역장을 피하고!
타타타타탓-
몸을 돌리지도 않고 뒤로 질주하며 외쳤다!
[대령님! 먼저 영동대교에 가 있겠습니다. 작업 끝나면 오세요!]
천문석은 청담대교 난간을 뛰어넘어 하부 철교를 날 듯이 달렸다.
곧 고함과 무시무시한 살기가 따라붙었다!
“멈춰! 거기 서라고 새끼야!”
마력광이 번뜩이는 십자 마안!
마혁진은 염동력장을 탄환처럼 발사했다.
파앙-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압축된 역장의 바람이 쏘아졌다!
“잡았다!”
그러나 역장의 바람이 닿는 순간, 이세기는 갈대처럼 상체가 흔들리고, 몸이 튕겨 올랐다!
“……!?!”
마혁진은 입을 떡 벌리고 이 모습을 바라봤다.
‘저게 사람 새끼란 말인가?!’
역장에 실린 힘을 타고 탱탱탱- 얌체 공처럼 난간 위를 튕겨 빠르게 멀어지는 이세기!
“야, 빨리 따라와!”
이세기의 외침에 번쩍 정신을 차리고 정신없이 달렸다.
으아아악-
그러나 아무리 악을 쓰며 압축된 역장을 쏘아 보내도 태풍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사방팔방 지랄 맞게 튕기는 얌체 공처럼!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떻게 했는지 공간 좌표가 흔들려 순간이동도 봉인된 상황!
‘이대로면 놓친다!’
직감하는 순간 각성력을 끌어올렸다.
“아아악-! 멈춰! 당장 멈춰 이 새꺄!”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아 외치는 순간, 진짜로 속도가 확 느려지는 이세기!
마혁진이 생각할 것도 없이 정신없이 따라붙었다.
천문석은 마혁진을 다음 다리를 이을 장소, 영동대교로 유인하며 생각했다.
“와, 진짜 모르고 있던 거야?”
힐끗 보는 순간 감이 왔다.
각성력이 이글거리는 두 눈과 마력광이 타오르는 십자 마안!
마혁진은 분노로 눈이 돌아갔다!
이대로는 영동대교로 데려가도 다리를 잇도록 설득할 수 없었다.
“하, 시바! 어떡하지……?!”
하지만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닥치면 방법이 생길 거다, 닥치면!
그러니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야, 공격 어차피 안 맞아! 각성력 아껴! 다리 연결하려면…….”
“너는 내가 반드시 아작을 낸다!”
마혁진은 공격에 쏟아붓던 각성력을 육체로 돌려 전력 질주했다.
천문석과 마혁진은 순식간에 철교를 지나 인파가 가득한 뚝섬 유원지로 뛰어내린 뒤 내달렸다.
영동대교를 향해서!
이때 청담대교에 도착한 검은 양복의 사람들이 있었다.
인파 속에서 염동 대협을 쫓다 놓친 최 팀장과 국정원 직원들이었다.
* * *
헉, 헉-
허어억-
정신없이 인파 속으로 달린 국정원 직원들이 숨을 몰아쉴 때.
최 팀장은 시민들을 유도하던 경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염동 대협은 청담대교를 오르고 계셨습니다! 그럼 전 이만! 거기 밀면 안 됩니다!”
최 팀장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사방에서 울려지는 탄성과 밀려드는 인파에 꼬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염동 대협이 올라간 청담대교는 어느새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상황.
하지만 추적을 힘들게 하던 인파가 오히려 청담대교를 막는 벽이 됐다.
이대로 끊어진 청담대교를 올라 염동 대협을 찾는다!
“염동 대협은 청담대교 위에 있다! 뺑뺑이를 돌린 제임스가 오기 전에 염동 대협을 찾아 회유해야 한다! 모두 흩어져서 수색한다!”
최 팀장이 명령하는 순간, 십여 명의 국정원 직원들은 넓게 흩어져 청담대교를 오르기 시작했다.
염동 대협을 찾아서!
그리고 이 모습을 검은색 SUV 한 대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스르륵-
짙은 선팅을 한 창문이 내려가고 망원경이 튀어나와 정신없이 달리는 최 팀장을 확인했다.
“최 팀장! 청담대교! 김 의원의 정보가 맞았습니다!”
“최강의 초능력자 염동 대협이 여기에 있단 말이지? 최 팀장, 그 녀석이 잔머리를 굴렸지만 여기까지군.”
제임스는 피식 웃으며 명령했다.
“여기에 타깃이 있다. 이름은 불명, 코드네임 염동 대협! 경찰과 군인 위주로 정보를 파악한다. 여기선 알파 팀이 움직인다! 절대 최 팀장에게 가까이 접근하면 안 된다!”
명령 즉시 차 문이 열리고 완전 무장한 군인 다섯 명이 뛰어내려 인파 속을 달렸다.
대한민국 국군과는 완전히 다른 군복과 장구류, 미군이었다!
천문석과 마혁진이 사라진 청담대교에 한발 늦게 최 팀장과 국정원, 제임스와 미군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