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58화>
파파팟-
천문석은 두 눈을 비비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20년!
장철 헌터의 20년에 걸친 염원이 마침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장세린, 잃어버렸던 딸을 다시 만났고 젊은 장철, 과거의 자신과 마주했다!
장철 헌터는 과거의 자신, 회사원 장철에게 어떻게 스스로를 소개할까?
두근두근 흥미진진하게 이 모습을 봤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을 몇 배나 뛰어넘었다!
“……!”
천문석은 비비던 손을 멈추고 번쩍 눈을 떴다.
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염동 선생님! 아악- 이유! 이유라도…… 으아아악-!”
난로 위의 오징어처럼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는 젊은 장철!
“뭔가 오해하시나 본데 전 그냥 반가워서 악수하는 겁니다. 하하하-”
누가 봐도 거짓임을 알 수 있는, 통쾌한 얼굴로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장철 헌터!
“고모? 나 언제까지 눈 감고 있어야 해?”
두 눈을 질끈 감고 작은 손으로 귀를 가린 채 오리배 좌석에 앉는 장세린!
“금방 끝날 거야. 고모가 말할 때까지 눈 뜨면 안 돼 알았지? 얼른 짐 가져올게.”
성큼성큼 자동차로 걸어와 어쩐지 눈에 익은 배낭을 메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자신 앞을 지나가는 장민!
장철 헌터가 젊은 장철, 과거의 자신을 쥐어박고 장민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세린이를 데리고 자리를 피해 주고 있다!
느껴진다.
어린 장민과 장철 헌터 사이에서 흐르는 공감이!
이 순간 세린이 가족의 실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장민 > 장세린 > 장철]
이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거기! 청년분! 저 좀 도와…… 으아악-“
미쳐 외침을 끝맺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회사원 장철!
회사원 장철의 모습에 예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만났던 장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오리배를 띄우기 전 조폭에게 둘러싸여 싸우던 모습.
무기와 장비는 장철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장철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뒤로 물러섰다.
오빠를 구하려 싸움판에 뛰어든 장민과 그 뒤에 도착한 자신이 없었으면, 장철은 다시는 딸을 보지 못했으리라.
순간 장철 헌터와 젊은 장민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천문석은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화이팅! 걱정 마세요! 오리배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그게 아니……! 아아아악-!”
회사원 장철의 처절한 비명이 청담대교 주위로 울려 퍼졌다.
오리배 보트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 멀찍이 돌아가고.
멀리 청담대교 교각에 기대 앉혀진 기절한 남자가 조심스레 실눈을 떴다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젊은 장철은 정신줄을 놓고 축 늘어졌다.
“……죽은 건 아니죠?”
천문석의 물음에.
장철 헌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체를 강제로 활성화한 후유증이다. 아마 내일쯤이면 깨어날 거야. 좀 더하고 싶었지만 이제 건너가야 하니까…….”
“역시! 전 뭔가 생각이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천문석은 탄성과 함께 젊은 장철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여전히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지만, 어느새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장철 헌터가 세린이 가족과 함께 한강을 넘을 때가 됐다.
천문석은 젊은 장철을 어깨에 걸치고 성큼성큼 걸어가 오리배 좌석에 앉혔다.
“앗! 아빠?!”
“아빠는 피곤해서 잠시 잠드셨어. 내일쯤 깨어나실 거야.”
천문석은 힐끗 장민을 봤다.
10대 소녀의 입가에 담긴 미소.
“여러 가지로 감사드립니다. 이세기 님. 자, 여기 제 옆자리에 앉으…….”
천문석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오리배 밖으로 나오며 외쳤다.
“염동 대협! 마혁진 선생님 얼른 타세요! 빈자리! 여기 빈자리에 앉으시면 되겠네요! 전 자동차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재빨리 달려가 세린이가 타고 온 자동차를 다시 확인했다.
깔끔한 좌석과 바닥!
자동차 안에 널브러진 핫팩, 은박지, 페트병, 칼로리바 포장지는 모두 사라지고 대시보드 위에 빵빵해진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비닐봉지를 열자 눈에 익은 포장지와 핫팩, 자동차 곳곳에 놓였던 쓰레기가 나왔다.
“와, 이건 언제 다 치운 거야?”
이 빈틈 없는 모습이라니!
역시 어려도 장민 대표는 장민 대표였다.
장철과 장철 헌터, 장민과 장세린.
모두가 오리배 보트에 타고 커다란 배낭과 짐이 실렸다.
이걸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헤어질 때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달려와 오리배 보트에 두들기며 외쳤다.
“이제 밀겠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준비 끝! 출발!”
세린이의 씩씩한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끌어올린 내력을 폭발시켰다.
쓰으으으윽-
단숨에 시멘트 위를 가속해 한강에 던져지는 오리배 보트.
촤아, 촤아, 촤아아-
오리배 보트는 새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십여 미터를 미끄러졌다.
쿵, 쿠우웅-
격류에 실려 온 잡동사니가 선체에 닿는 순간.
“바로 페달 돌린다! 모두 꼭 잡아!”
장철 헌터의 엄청난 힘이 페달에 실렸다.
촤아, 촤아아-
오리배 보트는 한강의 거친 물살을 가로지르기 시작했고.
“안녕, 안녕……!”
“감사했어요……!”
세린이와 장민의 목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장철 헌터가 페달을 돌리는 오리배 보트는 청담대교 아래를 지나 다른 잡동사니 뗏목과 오리배 보트를 향해 나아갔다.
장철 헌터가 아내와 만나고 돌아오면 2020년 집으로 돌아간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시선이 북쪽과 남쪽으로 움직였다.
북쪽.
총성과 포효!
저지선을 향해 몰려드는 마수와 몬스터, 그리고 멀리서 접근 중인 거대 괴수!
남쪽.
상판이 뚝 잘려 나간 한강 다리들!
온갖 잡동사니가 떠내려오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뗏목, 오리배, 유람선!
거대 괴수가 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
하지만 배로 수십만에 달하는 시민들을 한강 너머로 옮기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자신이 할 일은 한강 변에 모인 수십만 시민들이 한강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러나 다리는 끊겼고, 배는 턱없이 부족하다.
서리 늑대, 탱탱이가 있던 1차 세기말 대한민국 때처럼 한강에 얼음 다리를 놓을 수도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고 모두가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수십 미터의 상판이 뚝 잘려 나간 한강 다리를 다시 잇는 것!
시선을 위로 올리자 보였다.
청담대교에 남쪽에 나타난 군인과 중장비, 자재!
중랑천 제방에서 만난 장교의 말대로 공병대가 끊긴 다리를 잇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복원해야 하는 다리 길이만 수십 미터!
게다가 이 위를 건널 시민은 수십만 명이다!
당연히 공병대의 움직임은 지지부진했다.
이대로라면 2, 3일은 걸려야 끊긴 다리를 복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닥치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떠오를 거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한점 걱정 없이 오리배 보트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알겠다는 듯 손을 흔드는 장철 헌터.
고모에게 잡힌 채 얼굴을 내민 장세린.
“……!”
“……!”
파도 소리에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마음은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때 불현듯 생각나는 게 있었다.
돌돌 말아 무장 벨트에 걸어 둔 담요!
세린이가 망토처럼 덮고 있던 담요를 챙긴 후 돌려주는 걸 깜빡했다!
“담요! 담요 가져가셔야죠! 던지겠습니다!”
내력을 담아 던지려는 순간 돌돌 말린 담요 구석에 수놓은 글자가 보였다.
‘석’
“어……?”
반사적으로 담요를 펼치자 손바느질로 수놓은 세 글자가 드러났다.
‘천문석’
장세린이 덮고 있던 담요에 자신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이게 뭐야?!”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외침!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류세연이다!
이 담요는 류세연이 직접 ‘천문석’ 세 글자를 손바느질해 배낭에 넣어 준 담요다!
즉, 장세린이 덮고 있던 담요는 2020년에서 가져온 자신의 담요였다!
* * *
“내 담요를 왜 세린이가 가지고 있어?!”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문득 떠오른 이름!
하늘!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잔뜩 구름 낀 겨울 하늘이 보였다.
이 흐린 하늘과 손에 잡힌 담요에서 너무나 아득하여 헤아릴 수 없는 인과가 느껴졌다.
순간 파파팟- 머리를 스치는 기억들.
국가 헌병대가 출동한 광화문에서 한경석이 남중국으로 튄 것을 알게 됐다.
바로 남중국행 비행기를 부탁하고 옥탑방으로 돌아와 류세연이 챙겨 준 배낭을 가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남중국 푸젠성, 남일도, 2004년 부산, 2000년 3월 서초구를 거쳐 이상한 숲에서 깨어났다.
그 숲에서 만난 이름을 잊은 아이에게 오리배 악어와 핫팩, 담요, 칼로리바…… 배낭을 넘겨줬다.
자신이 이름을 잊은 아이에게 건네준 담요를 2000년 1월 2일 세기말 대한민국의 장세린이 걸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2000년 3월 서초구.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임수정이 건네준 포장지 쪽지!
‘4 – 이세기!’
그 쪽지에 꼬맹이에게 담요, 핫팩, 칼로리바를 준다고 적혀 있었다!
반사적으로 잡낭을 열고 쪽지를 보는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자동차 대시보드 위!’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한달음에 자동차로 달려갔다.
대시보드 위에 그대로 놓여 있는 비닐봉지!
비닐봉지를 다시 열자 너무나 눈에 익은 핫팩, 은박지, 빈 페트병, 칼로리바 포장지가 튀어나왔다!
“설마, 설마…….”
천문석은 비닐봉지에서 나온 칼로리바 포장지를 펼쳤다.
[제조 일자 : 2020년 5월 5일]
잡낭에 들어 있는 포장지 쪽지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2020년 5월 5일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짜가 인쇄돼 있었으니까!
-핫팩, 칼로리바 포장지!
-생수병, 은박지, 요플레!
-천문석이라 수놓아진 담요!
-어쩐지 눈에 익은 배낭까지!
세린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은 환몽(幻夢)! 이상한 숲에서 만난 이름을 잊은 꼬맹이에게 자신이 건네준 물건들이다!
자신이 건네준 물건들이 2000년 1월 2일 장세린에게 전해져 미래를 바꿨다!
‘누가?!’
이름을 잊은 아이는 아니다!
세린이는 고모와 아빠를 만났을 때 ‘철수 오빠’가 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줬다고 외쳤으니까!
‘철수 오빠’가 연결고리다!
[천문석 -> 이름을 잊은 꼬맹이 -> 철수 오빠 -> 장세린 -> 다시 천문석]
순간 머릿속에서 담요가 움직인 경로가 그려지고 결론이 튀어나왔다.
이름을 잊은 꼬맹이가 철수 오빠에게 자신이 준 물건들을 건네줬다!
“야, 꼬맹이! 이상한 꼬맹이! 너 혹시 여기 있냐?!”
아무리 외쳐도 이상한 꼬맹이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아아아앙-
시가지 방향 멀리서 엔진 소리와 외침이 들려왔다.
“……대협!”
“……염동 대협!”
그리고 이어지는 익숙한 목소리!
“야, 그만 따라오라니까! 왜 계속 따라오는데!”
염동 대협을 사칭한 장철이 한강을 건너가자 진짜 염동 대협 마혁진이 나타났다.
“마혁진 녀석 타이밍…….”
순간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가고 머리에 박혀 들었다.
-상판이 날아간 청담대교!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염동 대협!
-끊어진 다리를 잇는 공병대와 자재!
이 모든 것이 합쳐지는 순간 머릿속에서 불꽃이 번뜩였다.
이미 세린이는 오리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자신이 이름을 잊은 꼬맹이에게 건네준 담요와 물건들을 세린이에게 전해 준 사람!
‘철수 오빠’가 누구인지 지금은 알아낼 방법이 없다!
지금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다!
끊어진 청담대교를 잇는 것!
예상대로 닥치니까 해결책이 튀어나왔다.
중장비와 폭약을 동원해도 며칠은 걸렸을 꽉 막힌 중랑천 물길을 몇 시간 만에 뚫은 초능력 각성자가 나타났다!
건설에 최적화된 일당백, 아니 일당천의 초능력 각성자!
최강의 건설, 토목공사 능력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
“와! 뭐야?! 왜 이렇게 운이 좋아!”
천문석은 번쩍 손을 들고 내력을 실어 외쳤다.
[염동 대협 마혁진!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