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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56화 (1,15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56화>

“아빠!”

장철은 한달음에 달려오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다급히 외쳤다.

“세린아! 너 어떻게 여기에?! 괜찮아?! 다친 데는……!”

“앗, 아앗! 아빠 나 약속대로 자동차 안에만 있었어! 절대 차에서 나와서 따라온 거 아냐! 곰곰이가 증인이야! 저기 곰 아저씨가…….”

장세린은 곰 인형을 흔들며 정신없이 말을 쏟아 냈다.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온 아빠와 깜짝 놀라 말을 쏟아 내는 아이.

다시 만난 아빠와 딸.

두 사람의 모습을 장철은 홀린 듯이 바라봤다.

“…….”

두 사람에게는 몇 시간도 걸리지 않은 헤어짐과 만남이었다.

그러나 장철에게는 이 모습을 다시 보기까지 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년. 그 긴 시간 동안 단 하루도 꿈꾸지 않은 날이 없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헤매는 아이와 정신없이 그 뒤를 쫓으며 외치는 자신.

‘세린아!’

그러나 아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멈추지 않았고, 언제나 꿈의 끝은 같았다.

간신히 따라잡아 그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아빠?’

아이가 고개를 돌릴 때 모든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꿈에서 깨어났다.

수백 수천 번 꿈을 꿨지만 단 한 번도 세린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꿈에서라도 그 환한 웃음과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무서워하지 않게, 아파하지 않도록. 그 작은 몸을 꼭 안아 주고 싶었다.

자신의 바람은 마침내 이뤄졌다.

고래 내복을 입고 유치원에 가야 하는 열두 가지 이유를 외칠 때처럼 심각한 얼굴로 말을 쏟아 내는 아이.

세린이는 아빠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자신이 아닌 20년 전 젊은 장철에게.

그 웃음과 목소리가 자신에게 향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젊은 장철은 자신의 품에 안긴 작은 온기를 다시는 꺼트리지 않을 거고.

세린이는 아빠, 엄마, 고모와 함께 행복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장철은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이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뚫린 구멍이 메워지고 채워지지 않던 갈망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이때 문득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자신의 손을 잡은 붕대에 감긴 가늘고 긴 손가락.

장민.

시선이 마주치자 언제나처럼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장민.

“고마워. 정말 너무 고마워…….”

“…….”

장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어린 동생의 붕대에 감긴 손을 조심스레 마주 잡았다.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실패의 기억, 자괴감은 스스로를 좀먹는다.

자신과 달리 실패하지 않은 젊은 장철은 훌륭한 아빠이자 남편. 그리고 오빠가 돼 줄 거다.

세린이는 절대 손을 놓지 않을 아빠와 언제나 웃어 줄 엄마,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을 장민.

그리고 같이 웃고, 같이 달리고, 같이 요플레 뚜껑을 핥을 특급 헌터를 만나게 된다.

세린이는 다시 가족을 만났고 그 안에 장철 헌터의 자리는 없었다.

괜찮다.

너무나 바랐지만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오랜 기원이 마침내 이뤄졌으니까.

천문석 덕분에.

“고맙다…….”

장철은 고개를 돌려 천문석에게 말하다 멈칫했다.

“……!!”

홀로 멀리 떨어져 손짓, 발짓과 함께 다급한 눈빛을 보내는 천문석!

천문석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입 모양으로 외쳤다.

‘손! 그 손!!’

“손?”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보였다.

육체 각성자의 철퇴 같은 손에 잡힌 붕대에 감긴 가늘고 긴 손가락.

빙그레 웃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맞잡은 손의 주인 장민.

“왜?”

“아냐, 아무것도…….”

평소처럼 대답하고 천문석을 다시 보는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평소와 똑같아서 무심코 넘겼다!

장민 대표가 아닌 어린 장민이 자신의 손을 잡고 반말을 하고 있다!

조카를 데려온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닌.

오빠! 2000년의 젊은 장철에게 하듯이!

* * *

두두두두둥-

심장이 미친 듯이 진동하고!

찌릿, 찌릿-

등골을 타고 흐른 전율이 사지로 퍼져 나갔다!

장민에게 잡힌 손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고 파르르 떨렸다!

검치호에 팔을 물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의 반도 안 되는 10대 소녀가 아닌 재앙급 마수가 앞발을 턱 올려놓은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왔다!

“……!”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상상을 초월했던 장민이 무언가 눈치챘다!

힐끗-

시선을 던지는 순간.

빙그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장민!

‘뭐지? 뭐를 눈치챈 거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반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순간 깨달았다.

어려도 장민은 장민이다!

갓 스물에 초거대 기업과 거래를 뚫고 장강 유통을 세우고.

몇 년도 걸리지 않아 정·재계, 헌터 업계에 거미줄 같은 인맥을 만들더니.

서른도 되기 전에 장강 유통을 대기업으로 키워 냈다!

대기업의 창립자, 오너, 회장, 장민!

그 머리 회전과 심계는 일개 헌터인 자신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런 장민의 심계를 짚을 사람은 이 자리에 한 명뿐이다!

자신에게 입 모양으로 이상을 알린 사람!

장민조차 머리를 싸맨 악마 꼬맹이 특급 헌터를 갱생시킨!

알바 천문석!

‘지금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장철은 강렬한 눈빛과 입 모양으로 외쳤다.

순간 천문석은 엄지로 중지를 누르고 허공에 딱밤 날리며 입 모양으로 대답했다.

‘하늘을 잇는다!’

장철은 바로 알아봤다.

알바 천문석에게 배운 조카, 특급 헌터의 특기, 하늘을 잇는 딱밤!

‘야, 그건 왜?! 그거보다 장민 뭔가 눈치챈 거…….’

장철은 까맣게 잊고 있던 걸 깨달았다.

장민과 특급 헌터!

장민이 특급 헌터를 처음 만난 건 자신이 세린이를 찾기 위해 서울을 헤매다 중상을 입었을 때다!

장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냐, 아냐! 이렇게! 이렇게 핥아야 한다니까! 아빠 잘 좀 해 봐!”

어느새 세린이는 아빠에게 요플레 핥는 시범을 보여 주고 있었다.

직접!

세린이가 ‘직접’ 요플레를 핥고 있었다.

그렇다. 세린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즉, 장철이 잃어버린 세린이를 찾아 서울 폐허를 헤맬 일도, 장민이 따라 움직일 이유도 없다.

장민이 크게 다친 장철을 지게에 짊어지고 달리다 이상한 건물에 들어가는 상황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이 이상한 건물에 있던 아이를 발견할 일도 없었다.

특급 헌터!

장민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 미래가 변했다!

* * *

던전 속 세상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린이, 어린 딸을 직접 만난 장철은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세린이는 살아 있다!

당연히 특급 헌터도 살아 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 순간 떠오르는 이름, 천문석!

“……!”

고개를 돌릴 때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동 대협님! 잠시만 급히 드릴 말씀이……!”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다가온 천문석!

“그렇지! 우리 급히 할 말이 있었지!”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느껴졌다.

손을 놓지 않는 붕대 감긴 손!

가볍게 힘만 줘도 뿌리칠 수 있는 미약한 힘!

국가헌병대의 각성력 억제 구속구조차 힘만으로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손은 뿌리칠 수 없었다.

자신의 손을 잡은 사람은 국가헌병대가 아닌 빙그레 웃고 있는 장민이었으니까!

“…….”

“……이 손 좀.”

“저희 급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 좀 떼겠습니다!”

천문석이 붕대 감긴 손을 잡는 순간.

장민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존댓말을 하시네요?”

“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천문석이 당황하는 순간 바로 이어지는 목소리.

“……마치 저를 아시는 것처럼 말이죠?”

입가에 머금은 웃음과 부드러운 목소리.

천문석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앞의 장민은 10대 소녀가 아니라 장민 대표처럼 말하고 있었다.

“……!”

“……!”

천문석과 장철이 얼어붙는 찰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흐흐흣-

“농담이에요. 얼른 이야기 나누세요.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전 오빠한테 잔소리하러 가야겠네요.”

“네! 얼른 가셔야죠! 아니 가야지!”

“그래! 얼른 가!”

가볍게 장철의 어깨를 두들기고 달려가는 장민.

재빨리 몸을 돌려 달리려는 순간 장민의 발걸음이 멈추고 탄성이 들려왔다.

“아! 말없이 그냥 가시면 안 돼요!”

“네?”

“혹시 그냥 가시면…….”

장민은 세린이를 가리키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이고 달려갔다.

“세린이한테 전부 이를 거예요!”

천문석과 장철 헌터는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봤다.

“어디까지 짐작한 거지……?”

“그러게 말이다.”

하아-

하아아-

안도, 황당, 어이없음! 온갖 감정이 뒤엉킨 한숨이 동시에 새어 나왔다.

천문석은 황당했다.

맞잡은 손.

반말과 존댓말.

장민이 얻은 단서는 이것뿐이다.

그런데 이 작은 단서만으로 어디까지 짐작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터트릴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

장철, 장세린, 장민.

한강을 건널 오리배 보트.

한강 너머에 있을 세린이의 엄마!

장철 가족은 오리배 보트를 타고 한강을 건너 세린이 엄마와 만나게 된다.

마침내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다.

하지만 장철 가족의 위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난장판이 된 서울은 아무것도 아니다.

게이트 전쟁은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

EMP 마력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 국군은 서울에서 후퇴해 경기도, 대전,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게 된다.

그리고 많은 일이 일어난다.

수많은 각성자!

재금 공업과 마탄!

검은 폭풍 이세영!

게이트 안정화 장치!

서울 수복 작전 성공!

……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피와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자신의 역할은 없었다.

자신이 할 일은 이 기나긴 게이트 전쟁에서 안전한 장소로 장철 가족을 인도하는 것!

그리고 게이트 전쟁에서 안전지대는 한 곳뿐이다.

제주도!

하지만 그 전에 꼭 확인할 게 있었다.

특급 헌터!

장철 가족 모두가 제주도로 떠난다면 오빠를 따라 서울 폐허를 헤맨 장민의 과거도 변한다.

‘장민 대표의 과거가 변해서 특급 헌터가 사라진다면?’

과거를 바꿨다고 반드시 미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급 헌터와 관련된 일은 작은 위험 하나도 놓쳐선 안 된다.

[키즈 카페 부사장 겸 알바 천문석 – 악마 꼬맹이 특급 헌터 – 장민 대표 – 장철 헌터 – 공방 도시 – 세기말 대한민국 – 장세린 – 곰곰이 – 하늘에 올린 기원.]

모든 연결 고리의 시작에 특급 헌터가 있기 때문이다.

‘특급 헌터’라는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다시 과거로 이어지는 아득한 인과가 와르르 무너진다!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특급 헌터, 괜찮을까요?”

장철은 자세한 설명을 하려다 멈칫했다.

동생과의 약속!

그 누구에게도 특급 헌터가 친아들이 아니란 걸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장철이 멈칫하는 순간.

천문석은 사정이 있는 걸 직감했다.

자세한 사정을 알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

“장철, 장민 두 사람에게 말하면 특급 헌터는 괜찮을까요?”

장철은 바로 기억을 되짚었다.

특급 헌터와 처음 만난 시간과 장소 모두 알고 있다.

게다가 젊은 장철을 가장 잘 아는 건 장철 자신이다.

젊은 장철은 이제 곧 각성하게 된다.

1세대 헌터 장철이라면 마경이 된 서울의 한 건물에서 특급 헌터를 찾아 빠져나오는 것 정도는 간단했다.

단 하나의 문제는 제대로 된 정보 없이 해야 할 일들만 말해 줘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것도 문제없다!

장철은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가능하다. 지금 난 장철 가족의 은인이다.”

장철 가족의 은인!

이 말의 계획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머릿속 계획은 완성됐고.

천문석은 웃으며 말했다.

“장철 헌터님. 아니 염동 대협님. 저 오리배 타고 한강 건너 아내분 만나고 오셔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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