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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53화 (1,15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53화>

타타타타탓-

담요를 망토처럼 걸치고 곰 인형을 흔들며 번개같이 도망가는 꼬맹이!

“…….”

“…….”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보는 미래의 장철과 과거의 장민.

타아앙, 크아아-

날카로운 총성과 멀리서 울리는 마수의 포효가 두 사람의 정신을 깨웠다.

“잠깐!”

“세린아!”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움직이는 순간 담요를 뒤집어쓰고 달리는 세린이의 몸이 번쩍 공중으로 들렸다.

세린이를 잡은 건 누구보다 빨리 달려온 천문석이었다.

휙, 휙- 허공을 가르는 작은 다리와 다급한 외침!

“아앗! 누구야?! 얼른 놔줘! 고모! 고모 온단 말이야! 으아앗!!”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외치는 장세린.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바로 생각나는 얼굴과 모습이 있었다.

엄마가 나타나는 순간 정신없이 세발자전거 페달을 돌려 도망치던 특급 헌터!

“사촌이라서 그런가? 너희 왜 이렇게 닮았냐?”

“얼른 놔 줘! 큰일 났어! 고모, 고모가 온단 말이야!”

고모란 외침을 장민으로 바꾸면 특급 헌터와 판박이!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다.

“너, 혹시 고등어 싫어하냐?”

“고등어? 난 고등어 좋아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는 장세린!

“뭐? 고등어를 좋아한다고?!”

천문석은 세린이를 번쩍 들어 비행기를 태우듯 붕붕 허공으로 움직이며 질문했다.

“고등어구이는?”

“좋아!”

“고등어 조림은?!”

“아주 좋아!!”

“고등어 김치찌개?!!”

“완전 좋아!!”

……

어느새 도망치던 것도 잊고 손을 활짝 펼치고 환하게 웃는 장세린.

천문석은 세린이를 부우웅- 빠르게 움직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장민은?!!”

“완전완전 좋아!! 우히히힛-”

신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공중을 날던 세린이의 작은 몸이 지상에 착 내려섰다.

“자 세린이가 완전 좋아하는 장민이 여기 있습니다!”

“우와아아아!”

장세린은 양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1, 2, 3초 동안만!

“아아아…….”

환호성은 순식간에 잦아들고 특급 헌터와 똑같은 표정으로 등 뒤의 천문석과 눈앞의 고모를 번갈아 봤다.

[@ㅇ@??]

말없이도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

천문석은 씩- 비열한 악당처럼 웃었다.

“잘 기억해 봐. 마지막에 ‘장민은?!!’이라고 물어보니까 ‘완전완전 좋아!!’라고 대답했잖아?”

“……!!”

작은 팔이 붕붕- 허공을 가르고.

작은 발이 동동동- 땅을 굴렀다.

두 눈에 생겨난 황당함과 어이없음!

나쁜 어른에게 감쪽같이 속은 꼬맹이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앗, 아앗, 아아앗!!”

천문석이 풉- 웃음을 삼키는 순간.

장세린은 뒤집어쓴 담요를 던져 버리고 달려들었다.

“으아앗-! 속였어! 날 속였어! 아아앗! 거짓말하면 나쁜 사람인데!”

“난 거짓말 안 했는데?”

“아…….”

다리를 두들기던 작은 주먹이 멈추고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

장철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새하얀 붕대가 칭칭 감긴 손이 한발 먼저 세린이를 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고모 화 하나도 안 났어.”

세린이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 작게 속삭였다.

“……진짜로?”

“진짜로…….”

“정말로?”

“정말로…….”

꽃이 피어나듯 찰나의 순간 환해진 얼굴.

“앗! 고모! 나 엄청 좋은 거 배웠어! 철수 오빠가……!”

어느새 신나게 외치는 장세린.

장민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내는 어린 조카를 꼭 안았다.

손과 팔에서 저릿저릿 올라오는 고통이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란 걸 알려 주는 통증이 고마웠다.

언제나 환하게 웃고 신나게 달려와 귓가에 비밀을 속삭이는 세린이 심장 소리와 따뜻한 몸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가벼운 몸을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힘껏 껴안았다.

“…….”

천문석은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접으며 이 모습을 바라봤다.

장철, 장민, 장세린.

이들 가족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장철과 장민 두 사람은 헤어진 세린이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지금 장민과 장세린의 만남은 원래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한 사람 덕분이었다.

천문석은 서로를 껴안은 장민과 세린이 너머를 봤다.

“…….”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장철 헌터.

20년의 세월 동안 잃어버린 딸을 찾아다닌 아빠가 거기에 있었다.

성수 대교를 내려와 셋으로 일행을 나눌 때 생각했다.

장철 헌터는 어떤 선택을 할까?

-장세린과 함께 2020년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과거의 자신, 가족들에게 데려다줄까?

그 답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신나서 말을 쏟아 내는 아이와 그 몸을 꼭 끌어안은 고모.

이제 곧 사색이 된 얼굴로 주차장에서 돌아와 안도할 아빠.

장세린, 장민, 장철.

그리고 병원에서 기다릴 엄마.

2000년의 장철 가족은 다시 웃을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것은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른 장철 헌터 덕분이었다.

장철 헌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스크로 가려진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마스크 너머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후회와 번뇌, 갈망과 아쉬움이 사라진 맑은 눈빛.

장철 헌터는 장세린과 장민, 다시 만난 딸과 동생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장철은 그 이름 그대로 강철 같은 남자였다.

천문석은 웃었다.

이때 세린이의 신난 외침이 들려왔다.

“그렇게 철수 오빠한테 선물을 잔뜩 받고 숨어 있는데! 곰 아저씨가 내가 숨어 있는 자동차 끌고 왔어!”

* * *

“……어?!”

장철이 흠칫 놀라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날아왔다.

세린이를 꼭 안고 있던 소녀가 천천히 몸을 돌려 올려다봤다.

서늘한 눈빛!

1세대 헌터이자 한 손에 꼽히는 랭커!

강철 해머 장철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 순간 비수로 찌르는 듯한 질문이 들려왔다.

“정말 그러셨나요?”

자신도 모르게 움찔 한 발 뒤로 물러서자 다리에서 작은 손이 느껴졌다.

“그랬다니까! 나는 진짜진짜 안 오려고 했어! 철수 오빠랑 요플레 핥으면서 약속까지 했단 말이야! 곰곰이가 증인이야! 그런데 곰 아저씨가 곰처럼 으아아! 자동차 번쩍 들고 달려왔다니까! 곰 아저씨 빨리 우리 고모한테 말해!”

세린이는 바지를 흔들며 당당히 외쳤다.

“내가 우리 고모 엄청 무섭다고 했지! 곰 아저씨는 이제 큰일 난 거야! 빨리 사실대로 말해! 안 그럼 엉엉 울게 될 거야!”

“…….”

장철은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가슴에도 오지 않는 소녀가 자신 앞에 서 있었다.

표정 없는 담담한 얼굴.

손에서 팔까지 칭칭 감긴 붕대.

‘붕대.’

붕대를 보는 순간 불현듯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돌아온 자신을 기다리던 동생.

엉망이 된 손바닥과 부러져 나간 손톱, 밧줄에 쏠린 팔뚝.

저 붕대 아래에는 오리배를 지키기 위해 깡패들과 싸운 상처가 있었다.

엄청난 통증이 느껴질 텐데도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자신 앞에 서 있는 동생…….

장민.

그 뒤로 어느새 지상으로 끌려 올라온 오리배가 보였다.

저 오리배는 멍청한 자신을 대신해 장민이 찾아내고 지켜 낸 구명줄이었다.

그런 장민에게 주차장에서 돌아온 자신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줬다.

‘네가 자리를 비워서 세린이가 없어졌다.’

그리고 정신없이 난장판이 된 서울로 달려갔다.

장민은 아무 변명 없이 뒤를 쫓아와 자신의 옆을 뒤를 지켰다.

그때의 자신은 옆을 뒤를 돌아볼 정신이 없었기에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언제나 현명하고 어른스러웠기에 잊고 있었던 사실.

‘이렇게 어렸구나…….’

장민도 세린이와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이해와 공감,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였다.

어린 동생이 느꼈을 절망과 고통이 가슴을 울렸다.

‘이렇게 어렸구나…….’

‘얼마나 아팠을까…….’

……

장철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이때 문득 느껴졌다.

작은 팔로 다리를 꼭 안고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세린이.

그 체온이 느껴지는 순간 말문이 트였다.

“세린이는 절대 안 온다고 했다!”

“맞아! 절대 안 온다고 했어!”

“엉엉 운다고 협박까지 했다!”

“맞아 내가 운다고 협박했어!”

“차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 걸 내가 자동차째로 끌고 왔다!”

“맞아! 난 절대 나오지 않았어! 곰 아저씨가 자동차째로 끌고 왔어!”

“화를 내려면 나한테 내라!”

“맞아! 화를 내려면 곰 아저씨…….”

힐끗 장철을 올려다보더니 기어들어 가듯 말하는 장세린.

“고모. 그냥 봐주면 안 될까? 곰 아저씨도 딸 찾아다닌다는데…… 나랑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는데……?”

“…….”

말없이 듣고만 있던 장민이 고개를 들었다.

“아아앗-!”

“흐어엇-!”

깜짝 놀라 물러서는 꼬맹이와 어른.

천문석은 재빨리 끼어들었다.

“한 번만 봐줘. 곰 아저씨 내가 아는 분인데 나쁜 의도는 없었어.”

‘하아아-’

장민은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

수염이 삐죽삐죽 솟은 곰 같은 덩치의 남자.

낯을 가리는 세린이가 이 곰 같은 남자의 다리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세린이가 숨어 있던 자동차까지 있었다.

이 곰 같은 남자는 주차장에서 이곳 청담대교까지 자동차를 통째로 끌고 왔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엄청난 힘!

나쁜 생각을 했다면 간단히 유리창을 깨고 아이만 데려갔을 거다.

곰 아저씨라는 남자는 호의를 가지고 세린이를 여기로 데려왔다.

하지만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을까?

오빠가 주차장으로 세린이를 찾으러 갔는데, 세린이는 자신이 있는 청담대교에 나타났다.

게다가 자신을 도와준 이세기와 세린이를 도와준 곰 아저씨는 아는 사이였다.

마치 자신이 여기서 기다리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장민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는 세 사람.

“……!”

“……!”

“……!”

장민은 생경한 감정을 느꼈다.

‘뭐지? 이 소외감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터지는 순간.

장민은 자신이 잊고 있던 걸 깨달았다.

만나자마자 해야 할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감사 인사도 드리지 않았네요. 세린이와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장민이라고 해요.”

장민은 깊게 허리를 숙이며 진심을 다해 감사를 전했다.

“아까 들었지? 난 ‘이세기’야. ‘우연히!’ 아주 우연히! 지나가다 만났어. 하하하-”

천문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장철에게 눈짓했다.

‘가명! 가명을 대셔야 합니다!’

“이쪽 풍채가 좋으신 분은……?”

시선이 장철에게 닿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는 장민.

“이상하게 낯이 익네요? 혹시 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요?”

“……!”

장철이 바짝 긴장하는 순간.

천문석은 다시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괜찮습니다! 절대 몰라봅니다! 당당히 구라를 치세요!’

낯이 익은 게 당연했다!

장민 앞에 선 곰같이 풍채 좋은 남자는 장민의 친오빠 장철이니까!

그러나 아무리 장민이라 해도 장철을 알아볼 리 없다!

2000년 회사원 장철.

2020년 강철 해머 장철.

20년이 세월은 로맨스 영화 주인공 같던 장철을 선혈이 낭자한 호러 영화의 빌런으로 변화시켰으니까!

누구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험상궂은 얼굴!

길쭉하고 날렵한 체형은 곰 체형으로 변했다!

게다가 자신의 선견지명으로 얼굴에 마스크까지 쓴 상태다!

‘그냥 밀고 나가세요! 절대 안 걸립니다!’

천문석이 눈빛으로 외치고.

바짝 긴장한 장철의 입이 열리는 순간.

“전…….”

한발 먼저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앗! 곰 아저씨 이름……!”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움직여 세린이를 번쩍 들어 흔들었다.

“세린아! 다시 비행기 타자! 붕붕붕!”

우히히히히히힛-

세린이의 자지러지는 웃음이 터져 나올 때.

천문석은 강렬한 눈빛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빨리 아무 이름이나 지르세요!’

“혹시 무슨 사정 있으시면 말씀 안 하셔도…….”

장민이 말끝을 흐릴 때.

장철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염동, 염동이다!”

“……네? 염동이요?”

당황한 장민의 표정에 깨달음의 빛이 스치는 순간, 동시에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 성이 염…….”

“염동 대협! 마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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