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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52화 (1,15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52화>

“……!”

“……!”

아무 기척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 이름, 이세기!

‘교각 위다!’

경악한 남자와 장민의 시선이 동시에 교각 위로 움직이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다.”

흠칫 놀란 남자는 몸을 돌리며 사시미칼을 쑤셨다.

순간 휙 수직으로 떨어진 무언가가 사시미칼을 때렸다.

깡-

칼날이 그대로 부러져 나가고 손아귀가 찢어질 듯 칼날과 팔이 요동친다!

“……!”

반사적으로 부러진 칼로 치고 들어가려는 순간 번쩍이는 광채가 보였다.

프레스로 잘라 낸 듯 깔끔하게 부러진 칼날이 장갑 낀 손에 잡혀 있었다!

상대는 장갑 낀 손을 내려쳐 강철 날을 잘라 냈다!

다리가 얼어붙고 입안이 바짝 마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누구……!”

그리고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작업용 가죽 앞치마.

평범한 검은 재킷에 블랙진.

짧은 머리에 마스크를 쓴 얼굴.

그러나 드러난 피부와 체형, 목소리로 바로 감이 왔다.

20대 초반!

애송이 청년!

그러나 나른한 듯 지루한 두 눈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마치 맹수를 마주한 듯 심장이 쿵 내려앉고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

의식하기도 전에 발이 움직여 주춤주춤 몸이 물러날 때 탄식이 들려왔다.

“하- 무슨 깡패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나? 깡패 한 놈이 갱생하니까 다른 깡패 놈이 나타나냐? 아니지, 염동 걔는 이런 양아치는 아니었지.”

양아치!

10살은 어린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순간 성큼 앞으로 움직이는 청년.

“……!”

위압감에 자신도 모르게 물러섰다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서는 순간, 남자를 그대로 지나치는 청년.

청년은 양손으로 로프를 잡은 소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남자가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볼 때.

청년, 천문석은 빠르게 걸으며 로프를 잡은 소녀를 살폈다.

피에 절은 로프.

파르르 경련하는 팔.

모조리 뒤집혀 꺾인 손톱.

식은땀을 흘리며 떨고 있는 몸.

험하게 구른 무림인이라 해도 당장 정신줄을 놓고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비명도 도움의 외침도 지르지 않았다.

10대 중반의 어린 소녀는 작은 신음 하나 흘리지 않고 형형한 두 눈으로 탐색하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20년 후 그대로인 얼굴은 볼 필요도 없었다.

이 눈빛과 행동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2000년 게이트가 열린 서울, 장철의 아파트.

아파트 창문을 뚫고 들어온 자신을 향해 석궁을 날리고 부엌칼 창을 찌르던 모습!

-2020년 몬스터 경보가 터진 제주도와 게이트가 열린 부산.

나이트 아머로 강하해 현현체, 거대 괴수를 폭풍처럼 몰아붙이던 모습!

신체 성장이 끝나지도 않은 10대 중반. 게다가 비각성자다!

반면 상대는 제대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해도 각성자!

월등한 신체 능력에 폭력과 싸움에 익숙한 조직 폭력배에 조잡하지만, 오러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적을 상대로 꺾이지 않는 투지와 놀라운 전투 감각으로 끝까지 버텨 승기까지 잡았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그 싸움을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멀리서 보는 순간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은 맞았다.

“장민.”

장철, 마혁진과 만나기로 한 청담대교에는 장민이 있었다!

* * *

“……!”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생각 하지도 못한 상황!

장민의 두 눈에 의문이 생겨났다.

그러나 의문은 찰나에 사라지고 경계심이 생겨났다.

장민답게!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장민의 손에서 로프를 낚아챘다.

“잠깐! 엄청난 무게가 걸려……!”

소스라치게 놀란 장민이 외치는 순간 정신없이 달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다다다다닷-

“뒤에……!”

장민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아무 저항 없이 로프가 끌려오고 찰나에 단단한 매듭이 묶였다.

빙글 몸을 돌리는 순간 보였다.

“으아아악-“

선명한 붉은빛, 오러가 담긴 사시미칼을 들고 땅을 박차는 깡패 남자가!

“위험!”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창대를 잡고 자신 앞으로 끼어드는 장민!

천문석은 가볍게 손을 뻗어 원을 그렸다.

이 순간 바람이 불었다.

계절과 맞지 않는 따뜻한, 몽글몽글 만져질 듯 질감이 느껴지는 산들바람이.

휘이잉-

바람은 가볍게 장민을 옆으로 밀어내고.

으아아악-

악을 쓰며 도약한 남자를 향해 불어 갔다.

이 순간 선명한 붉은 오러가 바람을 반으로 가르고 생각지도 못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양아치?! 내가 혈맹 군주다! 새끼야!!”

“뭐야? 이 미친놈은?!”

천문석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순간 둘로 잘려 나간 바람에 담긴 내력이 폭발해 휘몰아쳤다!

파아아앙-

갈대처럼 흔들리는 팔다리와 어지럽게 요동치는 칼끝!

으아아악-!

남자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악을 쓰며 칼을 찔러 왔다.

그러나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와류에 제자리에서 버티는 게 고작!

찔러 오는 칼날은 속도와 예기를 잃고, 의미 없이 허공만 긁었다!

“하, 요즘 깡패 놈들은 근성이 없다니까. 야! 근성 있게 똭! 뚫고 들어와야지!”

으아아아아악-

순간 가슴이 터질 듯한 괴성을 지르며 전신을 밀어 넣었다.

사시미칼에 담긴 붉은빛이 폭발하듯 자라나 와류를 뚫기 시작했다!

“오러 각성 맞네. 마력 폭풍은 아직인데, 벌써 각성자가 나왔다고? 하늘님 너무 대충대충 아닙니까? 아니 각성을 시켜 주려면 항상 열심히 사는 나나 철수 형이나 해 주지! 깡패 놈이 각성이라니!”

천문석은 깊이 탄식했다.

이 순간 완전히 와류를 뚫고 튀어나온 부러진 사시미칼이 복부를 찔러 왔다.

부러진 사시미칼 첨단에는 오러가 맺혀 있었다.

마력, 반발장, 각성력, 물리력 모든 종류의 이능을 억제하는 오러가!

그러나 천문석이 더 빨랐다.

손이 잔상을 그리며 휙- 움직인 순간 남자의 이마에 손이 닿았다.

따아악-

벼락 치듯 딱밤이 작렬하고 마른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 최강의 각성자로 불리던 칠성파 마혁진도 정신줄을 놓았던 딱밤이다.

힘에 취한 어설픈 오러 각성자가 버틸 수 있는 딱밤이 아니었다.

“……!”

스위치를 내리듯 오러가 꺼지는 순간 사시미칼이 뚝 떨어지고 눈이 훽 돌아갔다.

천문석은 허수아비처럼 픽 쓰러지는 남자를 받아, 어느새 덩치 둘이 나란히 놓여 있는 교각 기둥에 앉혔다.

“깔끔하게 끝났네.”

탁탁 손을 털며 몸을 일으키자 바로 감사 인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언제가 됐든 반드시 이 은혜는 갚겠습니다.”

은근슬쩍 오리배 앞을 가린 장민!

“갚는 건 됐고 우선 그 손이랑 팔부터 치료하자.”

“괜찮…….”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잡혀 있는 손!

흠칫 놀라 손을 빼내려 할 때 이미 장갑을 잡고 있었다!

“……!”

극통의 예감에 움츠러드는 장민!

쓰으으으윽-

이 순간 검지가 장갑과 팔뚝 위를 그었다.

헤진 장갑과 엉망이 된 재킷의 팔 부위가 가위로 자른 듯 떨어지고 피범벅이 된 손과 부러진 손톱, 밧줄에 쏠린 팔이 드러났다.

이 모습을 보자 무심코 넘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나 긴 소매 옷을 입던 장민 대표…….

상념은 나중에!

천문석은 잡낭을 열고 빠르게 훑었다.

“포션은 쇼크 때문에 안 되고, 지혈제랑 응급 패치가 어디에…… 아, 구급낭째로 이상한 꼬맹이한테 전부 넘겼지! 붕대는 있으니 우선 상처를 씻고 지혈은…… 이 나뭇잎으로 해야겠네. 조금 따끔할 거다.”

생수에서 쏟은 물로 피와 먼지를 씻어 내고 부러져 덜렁이는 손톱 위로 단검을 움직였다.

움찔 움츠러드는 순간 깔끔하게 잘려 후두둑- 떨어지는 손톱.

바로 특급 헌터가 건네준 나뭇잎을 손바닥 사이에 놓고 내력을 일으켜 비볐다.

싸삭, 싸사삭-

나뭇잎은 순식간에 화한 느낌이 오는 끈적한 녹색의 진액으로 변했다.

살짝 혀끝으로 맛을 보자 혀끝이 떨어질 듯 아릿하고 쓴 느낌이 왔다.

꼬맹이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온갖 버섯, 약초,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었던 경험이 말했다.

소독, 진통, 지혈!

“뭐야, 이거 진짜 약초였어?!”

특급 헌터가 제대로 한 건 했다!

천문석은 녹색의 진액을 장민의 손과 팔에 넓게 펼쳐 발랐다.

“……이건?!”

화한 느낌이 쏟아지는 순간, 녹아내리듯 통증이 사라졌다!

놀란 얼굴의 장민에게 말했다.

“꼬맹이가 준 약초야. 나중에 고등어 10번 빼 줘.”

“네? 꼬맹이요? 고등어를 빼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천문석은 씩 웃으며 붕대를 꺼내 장민의 팔과 손을 감고 매듭지었다.

“우선은 끝. 하지만 이대로면 흉터가 남을 거야.”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

“자, 팔 번쩍!”

천문석은 장민의 말을 끊고 어깨를 툭 쳤다.

“네? 팔이요?”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드는 순간 팔이 잘려 나간 재킷이 벗겨지고 두꺼운 재킷이 상체에 걸쳐졌다.

이세기란 남자의 재킷!

“괜찮습니다! 한겨울인데 재킷은……!”

다급히 외치는 순간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열감!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 찌익- 지퍼를 끝까지 올리는 이세기.

그리고 뭐라 할 틈도 없이 말이 이어졌다.

“이거 보이지?”

“네?”

불쑥 눈앞에 내민 손에는 작은 유리병, 앰풀이 들려 있었다.

“이 앰풀 일종의 외상 치료제야. 손이랑 팔의 상처 90. 아니 70, 80% 정도는 흔적도 없이 지울 수 있어. 단지 이거 사용하면 24시간 안에 쇼크가 와서 기절하듯 잠들게 된다. 우선은 여기에 넣어 놓을게.”

재킷에 달린 주머니에 앰플을 넣고 지퍼를 잠그고 말이 이어졌다.

“나중에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면 거기서 사용하면 된다. 흉터 깔끔하게 지우고 반소매 옷 편하게 입어.”

얼굴을 가렸음에도 느껴졌다.

마스크 너머의 미소와 말 속에 담긴 깊은 호의가.

“…….”

장민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오빠와 둘만 남겨지고 호의보다 악의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

갑자기 나타나 깡패를 쥐어패고 상처를 치료하더니, 재킷을 벗어 주고 흉터를 치료할 약을 건네주며 웃는 사람.

이세기.

분명 처음 듣는 이름,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시선에 담긴 따뜻함이 그 목소리에 담긴 호의가 마음을 간지럽히는 순간 느껴졌다.

상대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

장민은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레 질문했다.

“……혹시 저를 아시나요?”

장민 대표에게 받은 수많은 호의.

시간을 거슬러 그 호의를 어린 장민에게 갚고 있다.

어린 장민의 마음이 느껴지는 지금 새삼 깨달았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뭐야? 혹시 지금 나, 꼬시는 거야?”

“네, 네?!”

당황한 외침과 함께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순간 들려왔다.

그르르르르르륵-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와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이!

“아앗! 한강이잖아! 안 돼! 큰일 난다고! 고모가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우리 고모 화내면 엄청 무서워! 귀신보다 100배 무섭단 말이야! 진짜진짜로! 정말정말로! 울 거야! 나 엉엉 울 거야!!”

“세린이 고모가 무섭긴 하지! 하하, 하하하-“

“…….”

천문석은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 사람이 자동차를 앞범퍼를 번쩍 들고 한강 변을 달려오고 있었다.

렉카차처럼!

이런 사람이 세기말 대한민국에 둘이나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장철 헌터다!

그리고 장철 헌터가 끌고 오는 자동차 안에서 들려오는 분노한 외침!

“나 엉엉 울 거라니까! 왜 안 무서워하는데?!”

몇 달이나 지났지만, 듣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장세린!

“아니, 왜 애를 저렇게…….”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세린아!”

장민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한강으로 몸을 날렸다!

“야, 위험!”

탓, 타타타타탓-

정신없이 잡동사니를 밟고 달리는 장민!

“아니! 일반인이 저게 되는 거야?!”

경악한 천문석이 따라 달릴 때 그 외침을 알아들은 장철!

“이 목소리! 너 먼저 와 있었구나! 하하하…….”

장철의 시선이 청담 대교 아래 교각에 닿는 순간 웃음은 뚝 끊어지고 몸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

10대 중반의 소녀가 한강 위에 소용돌이치는 잡동사니를 밟고 달려왔다.

어지간한 헌터라도 불가능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몸놀림과 센스!

그리고 20년 후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얼굴까지!

“장……!”

이때 자동차 안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고모!”

철컥-

자동차 문이 열리고 곰 인형과 함께 뛰어내린 어린아이.

“세린아!”

장민이 외치는 순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타다다다다닷-

장세린은 빙글 몸을 돌려 전력으로 도망쳤다.

“아냐! 내가 온 거 아냐! 아저씨가 억지로 끌고 온 거야! 고모! 나 절대 한강 따라온 거 아냐! 곰곰이가 증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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