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46화>
“요플레 뚜껑?”
“요플레 뚜껑!”
“요플레 뚜껑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어이없는 상황에 말이 쏟아졌다.
“어떻게 요플레 뚜껑이 보물이야?! 세린이 너 가족사진은?! 원래 가족사진이 최고의 보물이었잖아!!”
“……!”
창문 너머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고 씩씩하게 외치는 장세린.
“아까 바꿨어!”
“뭐, 바꿨다고? 그것도 아까?!”
“내 최고의 보물은 이제 요플레 뚜껑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가족사진이 요플레에 밀릴…….”
“요플레가 아니라! 요플레 뚜껑이야!”
“……요플레 ‘뚜껑’에 밀렸다고? 어떻게 요플레 뚜껑이 가족사진을 이겨?!”
“잘 봐! 내가 보여 줄게!”
몸을 숙여 비닐봉지에서 요플레를 꺼내더니 찌익- 뚜껑을 따고 할짝할짝 혀로 핥으며 초롱초롱한 시선을 보내는 장세린!
그 눈빛만 봐도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봤지? 알았지?!’
“……알긴 뭘 알아?!”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캬아아- 이 맛이야! 역시 요플레는 뚜껑이 최고로 맛있어!”
세린이는 곰곰이한테서 꺼낸 거울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요플레 뚜껑을 내밀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보이지? 김철수! 철수 오빠가 준 이 요플레 뚜껑이 이제 내 최고의 보물이야!”
“김철수, 철수 오빠? 그건 또 누구……?!”
“보여 줄게!”
다시 크게 외치고 벌떡 일어나 몸을 돌돌 감은 담요를 펼치고 하나하나 들어 올렸다.
“따뜻한 담요!”
“후끈후끈 핫팩!”
“완전 맛있는 김밥이랑 칼로리바!”
“아빠랑 고모 오면 주려고 트렁크에 숨겨 둔 배낭! 앗! 이건 비밀이야!”
“이거 전부 다 철수 오빠가 나한테 주고 간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요플레 뚜껑! 철수 오빠가 나란히 앉아서 뚜껑 핥는 거 가르쳐 줬어!”
“요플레 뚜껑 핥는 걸 가르쳐 줬다고? 아니 애한테 뭘 가르쳐 준 거……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철수 오빠가 그걸 다 줬다고?!”
“맞아! 철수 오빠 완전 대단해! 내가 막 춥고 배도 고팠단 말이야! 그런데 철수 오빠가 나타나더니! 따뜻한 코코아! 맛있는 김밥이랑 뜨거운 물! 요플레! 담요, 핫팩, 칼로리바! 앗! 자동차에 그림도 그려 줬어! 짝짝- 이렇게 박수 치니까! 막막 자동차에서 빛도 나왔다니까!”
반짝이는 눈으로 다다다- 쏟아 내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춥고 배고팠다고?!
핫팩을 몇 개나 까놓고 두꺼운 담요를 바닥에 깔고, 이불을 덮어 주고 먹을 것을 잔뜩 놓아 두고 갔는데?!
“지금 무슨 말……?!”
다급히 묻는 순간 창문 너머로 보였다.
세린이가 덮고 있는 담요와 핫팩, 뚜껑을 핥은 요플레와 김밥, 칼로리바……! 전부, 모조리 다 자신이 준 게 아니다!
“아빠가 준 이불이랑 음식, 핫팩은……?!”
“……곰곰이가 배고파 보이는 아저씨, 추워 보이는 언니, 기름 필요한 아줌마 도와줬어. 정말정말 배고프고, 춥고, 필요해 보여서 도와줄 수밖에 없었어!”
흠칫 놀라 시선을 피하며 변명하듯 말하는 세린이!
“……!”
장철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동시에 깨달았다.
오리배 보트를 구해 돌아왔을 때 세린이가 없었던 이유를!
두꺼운 담요와 이불, 핫팩, 초코바와 음식이 잔뜩 있었던 자동차가 텅 비었던 이유를!
어른 없이 차 안에 혼자 있는 아이.
게다가 아이 주위에는 이불과 핫팩, 음식이 잔뜩 있다.
이 모습을 본 아저씨, 언니, 아줌마는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차 안에 홀로 있던 세린이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세린이가 말한 배고파 보이는, 추워 보이는, 기름이 필요한 이 말에 답이 있었다.
20년 전 자신이 직접 봤었던 온기 한 점 없이 텅 빈 자동차에 답이 있었다!
장철은 마침내 그날의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세린이는 온기 한 점 없는 자동차 안에서 홀로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 스스로 문을 열고 아빠를 찾아 떠난 거다.
“……!”
순간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져라 외치고 부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
세린이와 장민 두 사람만 차에 남겨 두고 배를 구하겠다고 한강에 가서는 안 됐다.
아비규환의 난장판이 된 한강에서 멍청하게 굴어, 장민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어서는 안 됐다.
곤란해하는 사람을 도와준 장세린.
자신을 찾아와 악다구니 속에 뛰어들어 기어코 배를 구한 장민.
아이에게서 음식, 담요와 핫팩, 기름을 가져간 사람들.
이 모든 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어수룩하고 멍청한 20년 전 자신의 잘못이다.
“…….”
아이를 지키지 못한 아빠.
가족을 위해 행동하지 못한 가장.
장철은 차마 창문 너머의 아이를 볼 수가 없었다.
“아저씨 울어? 앗! 혹시 나만 핥아서 그래?!”
깜짝 놀란 목소리와 함께 창문이 살짝 열리고 툭 바닥에 떨어지는 무언가.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는 시선에 주차장 바닥에 떨어진 요플레가 보였다.
“아저씨도 뚜껑 핥아! 그럼 기분 좋아져!”
조금의 걱정도 없는 신난 목소리.
환한 얼굴로 요플레 뚜껑을 핥는 세린이가 보였다.
장철은 요플레 뚜껑이 세린이의 보물이 된 이유를 깨달았다.
추위와 배고픔에 덜덜 떠는 아이 앞에 나타난 김철수.
핫팩과 두툼한 담요로 몸을 돌돌 말아 주고.
뜨거운 코코아로 한기를 녹이고 김밥으로 허기를 채워 줬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요플레 뚜껑을 핥으며 마음을 채워 줬다.
세린이의 눈에는 김철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보였을 거다.
아니, 김철수는 천사가 맞았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대신해 아이를 도와준 천사.
“…….”
김철수가 바로 이유였다.
자신과 장세린이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원래라면 자신이 도착하기 한참 전에 자동차를 떠났을 세린이가 아직도 차에 남아 있는 이유.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유리창.
발갛게 달아오른 작은 얼굴과 반짝이는 눈.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요, 핫팩, 칼로리바, 요플레…….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눠 줘 세린이를 도와준 김철수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세린이의 손에 들린 반짝이는 요플레 뚜껑은 보물이었다.
장세린뿐만이 아닌 세린이의 아빠, 엄마, 고모.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동생 모두에게 최고의 보물이었다.
장철은 요플레를 집어 들며 진심을 담아 맹세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괜찮으니까! 아저씨 얼른 요플레 가지고 가! 우리 고모 완전 무서워! 고모 오면 막 때릴지도 몰라! 전에 놀이터 차지한 언니, 오빠들도 엉엉 울면서 도망쳤어!”
걱정스러운 외침에 동생의 얼굴이 떠오르고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강단과 결단력, 실행력까지.
오빠인 자신보다 언제나 현명했던 장민의 기억이…….
* * *
세린이가 사라지고 무너져 내린 아내와 정신줄을 놓은 자신.
마경이 된 서울과 세기말 대한민국을 재현하는 던전을 정신없이 찾아다녔다.
장민은 그런 자신을 책망하지도 조언을 하지도 않았다.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말없이 도와줬다.
세린이를 찾기 위해 5개 게이트가 중첩된 서울 마경을 헤맸을 때.
자신의 옆에는 항상 동생 장민 있었다.
무모한 자신 때문에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몬스터에 포위되고 식량이 떨어진 채 부상까지 입었던 어느 날.
흐릿해지는 의식으로 이제는 세린이를 보러 가고 싶다고 놓고 떠나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대답하지 않던 동생.
장민은 자신을 지게에 짊어지고 몇 시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달렸다.
그때 발견했다.
마수와 몬스터가 접근하지 않는 기이한 안개에 휩싸인 원룸 건물.
가릴 것 없이 들어가 들어간 원룸 건물 안, 어쩐지 동물 울음소리를 닮은 따뜻한 바람을 따라 걷다가 발견했다.
갓 돌이 지난 것 같은 어린아이가 음식과 핫팩, 의약품 그리고 포션이 담긴 배낭과 함께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그 손에 꼭 쥐어진 종이에 그려진 그림과 적혀 있던 이름.
특급 헌터.
특급 헌터와 함께 놓인 배낭에 있던 의약품과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핫팩으로 따뜻하게 잠들 수 있었다.
원룸 건물에서 빠져나왔을 때.
장민은 잠든 아이와 함께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자신이 1세대 헌터, 강철 해머란 허명을 얻는 동안.
장민은 장강 유통이란 작은 회사를 차리고 작은 공업사였던 재금 공업, W. S. 인더스트리와 거래를 텄다.
재금 공업의 마탄과 게이트 안정화 장치.
W. S. 인더스트리의 강화 철판과 초고가의 마도구, 나이트 아머.
독보적인 기술력의 두 기업은 단숨에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장민이 세운 장강 유통도 순식간에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대기업의 금력과 권력, 인맥은 상상을 초월했다.
장민이 그 힘을 손에 쥐고 한 일은 세린이를 찾는 거였다.
“…….”
자신이 혼자서 무작정 세린이를 찾아 헤맬 때.
동생은 대기업을 세워 그 힘으로 세린이의 흔적을 되짚고, 세기말 대한민국을 재현하는 던전을 찾았다.
그때야 자신은 제정신을 차리고 옆과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미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동생은 두 초거대 기업과 거래하는 대기업 장강 유통의 오너가 됐고.
이상한 원룸 건물에서 찾은 아이는 장민의 아들, 자신의 조카 되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특급 헌터.
엉뚱함, 웃음, 황당함, 당당함, 엉망진창 사고를 치는 꼬맹이.
자신은 어느새 음식에서 다시 맛을 느끼고, 꼬맹이가 깜짝 놀랄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사고를 친 꼬맹이를 숨겨 줬다가 장민에게 등짝 스매시를 맞고, 같이 눈썰매장으로 도망쳐 눈썰매를 타고 컵라면을 먹었다.
자신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세기말 대한민국을 재현하는 던전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어느새 자신은 다시 웃을 수 있었다.
* * *
‘잃어버린 별.’
“내 딸 세린이.”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부르는 순간 흐린 하늘과 하나둘 떨어지는 눈이 물속에서 바라보듯 일그러졌다.
뜨거운 체온에 녹아내린 눈이 얼굴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
20년의 시간이 찰나에 지나가고.
다시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다.
그토록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 모든 게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서글픈 얼굴로 자신을 보던 아내.
말없이 자신의 옆을 지켜 준 장민.
힘들게 만든 거점을 내준 이태성.
재금 그룹의 인맥을 사용한 박혁.
길을 열어 주고 함께 싸웠던 길드원.
……
이들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을 이토록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
장철은 문득 시선을 내려 자랑스레 요플레 뚜껑을 흔드는 세린이를 봤다.
‘언제나 현명했던 장민이 여기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진실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요플레 뚜껑을 흔드는 세린이는 자신이 잃어버린 별, 딸이 아니다.
자신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실패한 아빠이자, 가장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요플레 뚜껑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는 세린이의 아빠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기억 속 장민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장철은 벗었던 마스크를 다시 쓰고 창문 너머 장세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 아저씨 딸이랑 착각한 거 같아…… 세린이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