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44화 (1,14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44화>

‘장철 헌터의 딸, 장세린이 있다!’

깨달음의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과 다른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장철, 장민, 장세린을 만나고 곰곰이를 받았다.

다시 돌아온 2020년의 서울에서 장철에게 곰 인형 곰곰이를 건네준 그 밤!

천문사의 주인으로 대를 이어 쌓아 올린 업을 담아 검은 동전을 튕겨 올리며 천문(天問)!

하늘에 고했다.

‘장철의 딸을 내놔라!’

그러나 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하늘은 대답을 준비했다.

수천수만 가닥인 인연의 실로 찬란하게 빛나는 인과를 짜 올렸다.

그리고 지금 그 찬란하게 빛나는 인과, 하늘의 대답이 자신 앞에 놓였다.

멀리 고가 도로 아래 놓인 자동차와 그 안에 있을 장세린.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초조한 얼굴로 한강 변을 살피는 장철.

장세린과 장철!

서로 다른 세계의 딸과 아빠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다!

천문석은 외침과 함께 가로등에서 뛰어내렸다.

“장철 헌터님……!”

타타타아앙-

이때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가깝다!

반사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도로를 끼고 만들어진 저지선 너머,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났다!

한둘, 많아야 10마리 단위! 산산이 흩어진 몬스터 무리가 건물과 빌딩 사이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타타탕, 타타탕-

점사로 쏟아지는 탄환과 죽 긁고 지나가는 기관총에 모조리 갈려 나가는 마수와 몬스터!

수백 단위의 랩터, 고블린, 오크가 쏟아지고 마수와 몬스터 무리가 끝없이 밀려오던, 자신이 갔던 세기말 대한민국의 격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나타나는 마수와 몬스터의 수는 예전의 1/20도 안 된다.

게다가 전의와 투지는 바닥! 도망치기 급급할 뿐!

보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대 괴수의 존재에 마수와 몬스터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산산이 흩어졌다!

이 정도면 버려진 자동차와 철조망, 기관총 진지로 급조한 저지선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엄청난 피어를 터트리고 위압감을 드러낸 거대 괴수!

그러나 거대 괴수가 도착할 때까지는 충분한 여유가 있다!

천문석은 바로 장철에게 말했다.

“장철 헌터님. 고가 도로 아래 주차장! 그곳에 세린이, 장세린이 있습니다!”

“고가 도로? 주차장?!”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고가 도로를 찾는 장철 헌터.

“세린이? 장세린? 야, 지금 뭔 소리야? 이곳 주차장에 누가 있다고?”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마혁진.

“나중에 말해 줄게! 거기 말고 왼쪽으로 더 화물차랑 승합차 너머 자동차 보이시죠? 그 자동차…….”

“……!”

장철의 시선이 고가 도로 아래 주차장에 멈췄다.

반색해서 달려가려다 멈칫하고 시계를 확인했다.

“확실한 거야? 지금 시간이면 이미 떠난 후일 텐데?!”

“우선 이동해서 확인하죠! 야, 염동. 자전거 어디 있냐?!”

“새꺄! 네가 집어 던진 자전거를 왜 나한테…….”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자전거로 속도 못 낸다. 차라리 달리는 게 빨라!”

장철 헌터가 말을 끊고 앞장서 달리고.

천문석은 바로 뒤로 따라붙었다.

“알았습니다! 염동! 염동력 언제 필요할지 몰라! 각성력 아끼고, 체력으로 뛰어라!

“새꺄! 내 염동력이 네 거야? 아까부터 자꾸 나한테…….”

천문석은 돌아보지도 않고 버럭 분통을 터트리는 마혁진을 향해 딱밤을 날렸다.

딱밤이 지나가는 순간 허공에서 북 치는 소리가 울리고 지끈- 십자로 쪼개진 이마가 아려 왔다.

“……씹쌔…….”

마혁진은 울분을 삼키고 달렸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인파를 헤치고 성수대교를 달리길 십여 분.

한강을 지나 육지로 들어서자 총성이 점점 커지고 한강을 따라 쭉 뻗은 도로가 나타났다.

“여기서 뚝섬 방향으로 달린다!”

바로 방향 전환!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총성이 달라졌다.

타다다다다다당-

쉴 새 없이 울리는 총성!

크르르르르르르-

거대한 바위가 맞물려 돌아가듯 소름 끼치는 굉음!

반사적으로 돌아가는 시선에 보였다.

중랑천, 시가지, 뚝섬!

세 방향에서 십 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거인이 튀어나왔다.

화강암, 현무암, 사암……! 수많은 바윗덩어리가 팔다리, 몸통을 이룬 대형 몬스터, 바위 트롤!

타다다다다당-

기관총, 소총, 수류탄! 화력이 집중됐지만, 바위 트롤의 암석 피부에 튕겨 나가고!

크르르르르륵-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구멍이 뻥뻥 뚫린 저지선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쿠우웅, 쿠우우웅-

걸음마다 땅이 울리고 시멘트, 아스팔트가 깨져나가고, 팔다리에 걸리는 순간 나무, 건물, 가로등이 뚝뚝 끊어져 널브러졌다.

바위 트롤의 거체는 천천히 걷는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

그냥 몸을 돌려 도망만 쳐도 따돌릴 수 있다.

그러나 저지선을 펼친 군인과 경찰이 빠지는 순간 한강에 모여든 수십만 시민이 위험하다.

바위 트롤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장철 헌터님 먼저 가세요! 여기는 저랑 염동이 처리하겠습니다! 뚝섬…… 아니 청담 대교에서 만나는 거로 하죠!”

“뭐? 야, 새꺄! 왜 네 맘대로……!”

“오른쪽! 고가 도로 방향 녀석은 내가 끌고 가면서 처리하겠다!”

장철이 외침과 동시에 달리고.

천문석도 바로 움직였다.

“왼쪽 중랑천 제방에 나타난 놈은 내가 처리한다!”

“잠깐…….”

“염동! 넌 가운데 시가지 맡아라! 겸사겸사 오크, 고블린, 랩터! 몬스터도 같이 처리하고 민간인 피해 주면 딱밤 100대 맞는다!”

“야, 새꺄. 기다리라고!”

마혁진이 절규하듯 외쳤으나 천문석은 이미 중랑천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시바, 시바. 시바앗!”

마혁진은 하는 수 없이 분통을 터트리며 시가지를 향해 달렸다.

장철, 천문석, 마혁진은 셋으로 나뉘었다.

* * *

“소총탄은 안 먹힙니다!”

“전차 아직이냐?!”

“우회해서 기동 중이라 10분 정도……!”

장철은 군인들을 스쳐 지나가며 외쳤다.

“내가 끌고 가겠다!”

“네?”

반문하는 순간 맨홀 뚜껑을 들고 단숨에 저지선을 뚫고 가속하는 장철!

따다다땅-

맨홀 뚜껑을 때리는 소총탄!

“사격 중지!”

“멈춰! 사격 중지!”

다급한 외침과 함께 사격이 멈추는 순간.

하아아아앗-

기합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맨홀 뚜껑!

콰아아아앙-

작은 탄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질량을 가진 맨홀 뚜껑이 바위 트롤에 꽂혔다.

암석 피부에 쩍 끔이 가고 휘청였을 때.

장철 헌터는 망치를 들고 돌진하고 있었다.

바위 트롤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와드드득-

전신의 힘과 속도, 각성력을 모아 망치를 내려찍었다!

쾅, 쾅, 콰아앙-

해머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단단한 암석에 쩍쩍 금이 가서 떨어져 나왔다.

크르르르르륵-

고통이 담긴 포효가 터지는 순간 장철은 몸을 돌려 고가 도로를 향해 달리며 외쳤다.

“와라!”

바위 트롤은 완전히 장철에게 어그로가 끌려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이때 천문석은 중랑천 제방에 도착했다.

쏴아아아아-

전신에서 물을 쏟아 내며 제방을 기어올라, 몸을 일으키는 바위 트롤!

‘기회다!’

천문석은 단숨에 거리를 좁혀 1미터 앞에서 둔보를 펼쳤다.

태산을 짊어진 듯 어깨, 가슴, 허리, 다리에 엄청난 부하를 걸고!

느리게 더 느리게!

1미터 남짓한 거리를 60초 동안 천천히 나아간다!

바위 트롤이 빠르게 보일 정도로 느린 움직임으로!

거대한 산맥을 깎아내며 전진하는 빙하를 마음에 담는다!

쿵-

바위 트롤이 암석 주먹이 떨어지는 순간 심기체를 관통하는 일권이 쏘아졌다.

콰드드드득-

이 너무나 느린 일권이 닿기 전에 바위 트롤의 암석 주먹이 먼저 닿았다.

퉁-

암석 주먹은 기차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튕겨 나가고.

툭-

천문석의 한없이 느린 일권이 바위 트롤의 몸에 닿았다.

콰아아아앙-

십 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바위 트롤의 거체가 공성추에 직격당한 듯 허공으로 날아올라, 제방 너머 중랑천의 급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수십 톤의 암석 거체라도 수만 톤의 급류에 휩쓸린 순간 조약돌이나 마찬가지!

바위 트롤은 온갖 잡동사니와 뒤엉켜 중랑천 하류로 밀려갔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달리며 머리를 굴렸다.

‘됐다! 이제 뚝섬 유원지에서 오리배를 구해 청담대교에서 장철과 만나면…….’

우와아아아아-

이때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와 생각을 끊었다.

“……염동?”

마혁진이 달려간 시가지 방향!

자동차, 화물차, 철근 콘크리트 잔해들! 수백에서 수 톤에 달하는 물체가 허공에 떠올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염동력장!

고블린, 오크, 랩터, 늑대! 온갖 마수와 몬스터가 딸려 올라가고.

암석 트롤 3마리가 허우적거리며 허공에 떠올라 역장의 폭풍에 빨려 들어갔다!

“아니, 저게 뭐야?!”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염동력장은 각성력에 기반한 힘!

각성력과 반발장은 닿는 순간 불과 기름처럼 반응한다!

하지만 바위 트롤의 반발장은 마치 꺼져 버린 듯 염동력장에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염동 녀석이 일으킨 게 아닌가?!”

천문석은 바로 달려가며 머리를 굴렸다.

이때 역장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카카카카캉-

철근과 시멘트, 자동차! 이 모든 게 거대한 칼날이 되어 회전했다.

자잘한 마수와 몬스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고!

바위 트롤 3마리는 철근과 콘크리트, 자동차와 연속으로 충돌했다!

바위 트롤의 암석 몸체가 더 단단하다!

그러나 물방울에 화강암이 파이듯 쉴 새 없이 충돌하는 철근과 시멘트, 강철의 폭풍에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깨지고 깎여나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용!

강변을 달리던 시민, 사격하던 군인, 시민들을 유도하던 경찰.

모두의 경악한 시선이 이 거대한 강철의 폭풍에 모였다.

“…….”

“…….”

“…….”

그 시선이 강철의 폭풍을 만들어 낸 사람에게 향했다.

강철의 폭풍 아래, 한 손을 들고 오연하게 서 있는 남자!

한달음에 달려온 천문석은 모두의 시선이 모인 그 남자를 봤다.

“염동?!”

바위 트롤 3마리를 공깃돌처럼 들어 올려 염동력장의 폭풍으로 쥐어패는 건 염동 대협 마혁진이 맞았다!

자신도 반발장 때문에 둔보를 펼쳐 바위 트롤을 중랑천의 급류로 밀어 버렸다!

그런데 마혁진은 바위 트롤 3마리를 염동 역장으로 붙잡아 공중에 띄우고 육체를 직접 공격하고 있다!

대형 몬스터의 반발장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말도 안 돼! 염동 대협! 진짜 너냐?!”

이 순간 시선이 모여들었다.

“염동 대협?!”

“염동! 초능력!”

“대협이라고?!”

“염동 대협?! 저분 이름?!”

……

사방에서 외침과 시선이 쏟아질 때.

오연하게 서 있던 마혁진이 몸을 돌리고 눈이 마주쳤다!

번갯불이 번뜩이는 마혁진의 두 눈!

그리고 이마에 생겨난 작열하는 푸른빛의 십자안(十字眼)!

“마안(魔眼)? 너 무슨 짓……?!”

흠칫 놀라 한걸음 물러서는 순간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 새꺄! 내 이마! 이거 뭐야?!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어?”

* * *

쾅, 쾅, 콰아앙-

장철이 어그로를 잡고 달리는 바위 트롤에 전차 포탄이 직격했다.

철갑탄이 바위를 깨뜨리고, 고폭탄의 폭발이 반발장을 날려 버렸다.

이 순간 성형작약탄에서 쏟아진 화염이 암석 피부와 그 사이 육체에 닿았다.

크르르르르르르-

멈춰 선 바위 트롤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용감한 행동이……!”

장철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군인은 보지도 않은 채 전력으로 달렸다.

“위험합니다! 거기 괴물들 몰아넣는 장소……!”

군인의 다급한 외침, 총성과 폭음, 마수와 몬스터는 포효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장철은 시가지 너머 고가 도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달렸다.

곧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졌다.

끼이이이익-

펄쩍 뛰어 갈고리발톱을 내려찍는 랩터!

크아, 크아아-

전투 함성을 지르며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는 오크 스쿼드!

우오오오오-

하울링과 함께 툭, 툭 튀어나와 포위하는 거대 늑대 무리!

……

불쑥 튀어 나간 주먹이 랩터의 갈고리발톱을 뽑아 던지고.

수평으로 움직인 해머에 조잡한 금속 방패째 오크가 날아갔다.

장철은 시선도 두지 않고 종횡으로 주먹과 해머를 그었다.

이 선에 걸리는 순간 날카로운 발톱, 단단한 비늘, 금속 무기, 반발장이 맺힌 가죽이 부러지고 뚫리고 꺾이고 찢어졌다.

붉고 푸른 피가 터지듯 쏟아지고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장철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고가 도로를 향해 직선으로 달렸다.

이번에는 절대 늦지 않는다!

강변으로 달리는 시민들과 이들을 유도하는 경찰!

도로와 건물에서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마수와 몬스터!

차 벽을 세우고 진지를 만들고 몬스터를 사살하는 군인!

이들 모두를 지나 고가 도로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제발, 제발, 제발……!’

마음속으로 외치며 주차장을 가로지르자 마침내 보였다.

무언가 가리려는 듯한 곳에 모인 화물차와 승합차!

“……!”

터질 듯 빠르게 뛰는 심장과 파르르 떨리는 몸.

한달음에 달려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십 년의 세월,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경과 던전, 이세계를 찾아 헤매며 기원하고 기원했다.

그 기원의 결과가 바로 앞에 있다!

그러나 마침내 찾은 희망이 꺾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면…….’

‘이번에도 늦었다면…….’

‘그 미소를 다시는 보지 못한다면…….’

이때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칠십오, 칠십구, 팔십일…….”

“……!”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수천, 수만 번 되뇌고 후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100까지 10번 세는 거야. 그럼 아빠 돌아왔을 거야. 그때까지는 이 안에 숨어서 기다리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걱정하지 마! 나 절대 안 들킬게!’

눈을 꼭 감고 손으로 귀를 가리더니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동차 바닥에 엎드려 띄엄띄엄 숫자를 세던 그 모습!

“……!”

얼어붙었던 장철은 한달음에 달려 자동차 앞에 섰다.

“……구십일, 구십오, 구십구, 백!”

엉망진창 숫자 세기가 끝나고 낯익은 인형이 창문 위로 살금살금 나타났다.

불에 그을리고 천을 덧대 꿰맨 곰 인형, 곰곰이.

그리고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곰곰아. 아빠 왔어?”

내 딸 세린이의 목소리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