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42화>
“안녕안녕안녕……!”
‘……인사까지 특급 헌터랑 닮았네. 진짜 남매 아냐…….’
피식 웃는 순간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픽- 의식이 꺼졌다.
그리고 깊은 물 속에 빠진 듯 부유하는 의식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 기!]
[…… 새끼!]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부유하던 의식은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10분 더 잘…….”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벼락 치듯 터져 나온 외침!
“이세기 이 새꺄! 당장 일어나!”
순간 번쩍 눈이 떠지고 보였다.
까맣게 타들어 간 해골 같은 얼굴이!
흐어억-!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날린 주먹!
꽝-
강철 같은 손바닥이 주먹을 막아 냈다!
“……!”
소리 없이 미끄러져 벌떡 일어나는 몸!
다리를 굽히고 손을 내민 채 내력을 끌어올릴 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미친 새끼! 갑자기 왜 공격하고 지랄이야!”
“나다!”
푸른 안광이 번뜩이는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쩐지 초조해 보이는 수염이 잔뜩 난 얼굴과 자신의 주먹을 막은 강철 같은 손바닥!
“장철 헌터님?!”
이 순간 깨달았다!
“해골! 너 마혁진이구나?! 새캬! 놀랐잖아!”
“뭐? 해골?! 야, 이 새끼야 이거 다 너 때문이잖아! 그리고 너 왜 장철한테는 존댓말이고 나한텐 반발이야! 너 딱 걸렸어! 너 몇 살이야?! 새캬! 내가 장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염동 대협 마혁진은 분노한 얼굴로 말을 쏟아 냈다.
아차! 장철 헌터가 계속 정신줄을 놓고 있어서 깜빡했다!
‘시바 어떻게 말을 돌리지?!’
맹렬히 머리를 굴릴 때.
장철 헌터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우리 짐, 오리배 악어? 같이 넘어온 물건이 전부 다 없어졌다!”
“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어느새 아침이 되고 하얀 눈이 하나둘 떨어지는 흐린 하늘!
심각한 얼굴의 염동 대협 마혁진과 마침내 깨어난 장철 헌터.
그 뒤로 보이는 사면을 막은 철제 구조물과 벽!
이곳은 이세영 선생과 만났던 서초구 빌딩 옥상 텅 빈 대형 광고판 안이다!
그리고 장철 헌터의 말대로 이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졌다.
오리배 악어!
짐과 배낭이 들어 있던 오리배 악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리배 악어? 짐 다 어디로 갔어? 야, 마혁진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깨어났을 때는 이거만 남아 있었어.”
마혁진은 작은 배낭과 강철봉을 들어 올렸다.
작은 배낭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이상한 꼬맹이!”
“이상한 꼬맹이?”
“꼬맹이라고? 갑자기 무슨 꼬맹이?!”
의아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는 장철과 마혁진.
“잠시, 잠시만……!”
천문석은 손을 들어 말을 끊고 재빨리 기억을 되짚었다.
-달빛이 내리는 무한의 숲!
-발간 불을 내뿜던 도깨비불!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진 동물 울음소리.
-동물 요괴들을 추적했던 이상한 꼬맹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흐릿한 기억!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이상한 꼬맹이에게 침낭과 핫팩, 칼로리바 등등이 들어 있는 배낭 2개와 오리배 악어를 통째로 줬다!
“왜 줬지?!”
결과는 기억났다!
그러나 그 결과까지의 이유와 과정!
기억 대부분이 흐릿하고 연기처럼 흩어지고 있다!
‘생각해라! 생각해!’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퐁퐁이, 용용이!”
외치는 순간, 번쩍 고개를 돌려 대형 광고판으로 막힌 공간을 살폈다.
없다! 오리배 악어 안에 잠들었던 퐁퐁이와 용용이가 없었다!
“퐁퐁이, 용용이! 하늘 고래, 하얀 벨루가 못 보셨습니까?!”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장철과 마혁진.
“……!”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철제 구조물을 잡고 위로 뛰어 올라갔다.
“야, 안 돼!”
“잠깐만 기다려!”
다급한 외침과 함께 반사적으로 손을 뻗는 장철과 마혁진.
“퐁퐁이, 용용이 찾아야 합니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철제 구조물을 올라 광고판 위로 올라섰다.
‘아, 퐁퐁이 용용이는 이상한 꼬맹이가 집에 보냈지!’
불현듯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굳어 버렸다.
빵빵, 빠앙-
크르르르릉-
위이잉, 위이잉-
무심결에 넘기고 있던 소리!
경적과 진동,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외침이 폭탄이 터지듯 일시에 쏟아졌다.
“앞에 멈추지 말고 움직여!”
“틀렸어! 차도 완전히 막혔어!”
“차라리 내려서 걷자!”
“차 버리면 안 됩니다! 도로 막혀요!”
“이쪽 차선에서 차 빼세요!”
“뭔 헛소리야! 반대차선 완전히 막혔는데!”
“최대한 중앙선에 붙여! 기동로 만들어야 해!”
“인도에 시민분! 도로에서 나와 주세요!”
“이면도로 이용 부탁드립니다!”
“수정아! 수정아, 어디 있어?!”
……
“…….”
천문석은 멍하니 주위를 돌아봤다.
무너지고 골조가 드러난 건물과 버려진 자동차가 가득했던 폐허!
하룻밤 새 이 모든 게 변했다.
멀쩡한 건물과 빌딩, 아파트가 줄줄이 이어지는 시가지!
정신없이 외치는 사람들로 가득한 인도와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 대는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
줄줄이 이동 중인 장갑 차량과 교통 통제 중인 경찰들까지!
잠들기 전까지 폐허였던 서초구 시가지가 완전히 변했다.
“야, 이게 어떻게……?!”
질문하는 순간 까칠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 위에 광고판! 거기 청년, 움직이지 마! 위험해!”
“네?”
문득 고개를 돌리자 옥상에 가득한 사람들이 보였다.
코트, 패딩에 양복바지,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 사이로 사다리를 들고 뛰어오는 경비 할아버지가 보였다.
“…….”
“…….”
그리고 어느새 배낭과 강철봉을 들고 인파 사이에 스며든 마혁진과 장철이 있었다!
탁-
대형 광고판에 사다리가 걸리고 경비 할아버지의 외침이 들려왔다.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얼른 내려와요! 아니 왜 자꾸 이 광고판에 올라가는 거야?! 없애든지 해야지!”
“네, 네!”
대답과 동시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쳤다.
지상에서 들려왔던 다급한 외침과 달리 옥상에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상을 구경하는 직장인들이 잔뜩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주위를 훑던 시선이 장철에게 닿았다.
장철은 강철봉을 움직여 바로 옆 건물을 가리켰다.
“…….”
강철봉을 따라 움직인 눈에 대형 현수막이 보였다.
[새천년 맞이 국민 대축제 – 광화문 2000]
* * *
“야, 염동. 어떻게 된 거야?!”
가득한 인파를 피해 움직인 옥상 구석.
천문석은 펄럭이는 대형 현수막을 가리켰다.
“저거 뭐야?! 새천년 맞이 국민 대축제? 광화문 2000이라고?! 여기 설마 세기말 대한민국이야?!”
마혁진과 장철의 시선이 마주치고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네가 이동한 거 아니었어?!”
어이없어 하는 마혁진.
초조한 얼굴의 장철.
“어쩐지…… 아직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사람들 반응이 게이트가 열린 다음 날인 것 같아. 이곳은 한강 남쪽 서초구고…….”
광화문 게이트가 열린 다음 날!
2000년 1월 2일!
잠들기 전까지 2000년 3월이었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2달의 시간을 거슬렀다!
‘설마?!’
반사적으로 잡낭을 열고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멈춘 상태다!
당연했다. 장철 헌터가 깨어난 후에 넘어가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 시간을 거슬렀지?!”
“역시 그랬구나! 혹시 지금 한강을 넘어가도 될까? 가능한 한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도로 북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끝을 흐리는 장철 헌터.
느껴졌다!
초조한 목소리, 다급한 표정,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움찔거리는 육체!
장철 헌터는 자신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이유는 생각할 것도 없다!
이곳이 2000년 1월 2일! 장철 헌터의 기원이 투영된 세계다!
자신이 이 세계에서 곰곰이를 가져와 장철 헌터에게 전해 줬다!
지금 장철 헌터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자신이 깨어나기 전에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잡은 기회다.
세기말 대한민국의 난장판에선 약간의 어긋남이 영원한 이별이 될 수도 있다.
곰곰이의 주인에게 인도해 줄 길잡이, 자신이 꼭 필요했다.
장철 헌터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자신이 깨어나길 기다렸을 거다!
“우선 움직이죠!”
천문석은 배낭과 강철봉을 낚아채, 앞장서 달렸다.
“알았다!”
반색해서 따라붙는 장철.
“야, 어디 가는데?! 오리배 악어는?! 우리 짐은?! 야, 야! 설명은 해 줘야지!”
질문을 쏟아부으며 따라붙는 마혁진.
“강북! 우린 한강을 넘는다! 자세한 건 한강을 넘어서 이야기해 줄게!”
천문석, 장철, 마혁진은 인파가 가득한 옥상을 거슬러 달려 옥상 철문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전기가 아직 살아 있다!”
“아뇨! 사람들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계단으로 내려갑니다!”
방화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잡낭을 열고 마스크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이건 왜?”
“갑자기 마스크는 왜?!”
“나비 효과!”
“아! 그렇지! 나비 효과!”
바로 마스크를 쓰는 장철 헌터!
“하- 그 난장판을 만들고 놓고! 뭐? 나비 효과? 네가 할 말이냐?!”
어이없어 하며 마스크를 쓰는 마혁진!
“야, 그거 전부 나비 효과까지 계산하고 움직인 거야!”
스스로도 믿지 않는 외침과 함께 계단을 뛰어내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목적지는 뚝섬 유원지!
목표는 장철, 장민, 장세린 가족!
도로는 완전히 막힌 상태!
지금 가장 유용한 방법은 배다!
배를 타고 한강을 넘어가 목표, 장철 가족을 찾아, 배에 태워 돌아오는 거다!
그러나 오리배 악어는 사라졌고 몰려든 피난민으로 한강을 넘어갈 배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차선책은 도로를 타고 한강까지 달려가 성수, 영동, 청담 대교! 강북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넘어가는 것!
문제는 몬스터가 한강 다리를 넘자, 군에서 다리를 날려 버렸다는 것이다!
‘늦지 않았을까?!’
생각과 동시에 옥상에서 스치듯 본 장면들이 머리를 스쳤다.
줄줄이 도로를 이동 중인 장갑차!
주위 건물과 빌딩에 가득했던 구경꾼!
지금도 호기심 어린 얼굴로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엇! 누가 계단에서 뛰어!”
“조심 좀 하세요!”
……
광화문, 북한산, 중랑천!
강북에서 겪었던 세기말 대한민국과 완전히 다른 온도 차!
지금 이곳 서초구의 사람들은 위험보다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광화문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수와 몬스터로 밤새 떨었을 강북 사람과 달리, 몬스터의 위협을 직접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마수와 몬스터는 아직 한강 다리에 도착하지 않았다!
당연히 다리를 끊지도 않았을 거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다리를 끊기 전에 다리를 넘어간다!
계획이 세워지는 순간 마지막 계단이 끝나고 인파가 가득한 로비가 나왔다.
타다다다닷-
천문석은 로비를 가로지르며 외쳤다.
“압구정으로 이동해 성수 대교를 넘어갈 겁니다! 교통편을 찾아서…….”
이 순간 로비를 통과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인파가 가득한 인도.
자동차로 꽉 틀어막힌 도로!
“이쪽 차선 옆으로 빠지세요!”
“군용 트럭 지나가야 합니다!”
“거기 차 빼라고요! 기동로 만들어야 합니다!”
……
가뜩이나 도로가 거의 멈췄는데 경찰들이 한쪽 차선을 비우고 있었다!
게다가 넋이 나간 얼굴과 엉망이 몸으로 주저앉은 사람과 아이의 손을 잡고 택시, 버스에 달라붙어 두들기는 가족들!
버스, 지하철 모두 안 된다!
교통수단은 없다.
“우선 달려…….”
“야, 저기!”
장철 헌터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자 펜스에 방치된 먼지투성이…….
“자전거!”
반색해서 한달음에 달려가며 외쳤다.
“야, 염동!”
척, 하면 척!
“하아아-.”
깊은 한숨과 함께 자전거 자물쇠가 뚝뚝 끊어지고 자전거 세 대가 공중으로 휙 날아왔다!
“흐어어! 이거 뭐야?!”
“자전거가 하늘을 날았어!”
경악한 외침이 터질 때 자전거를 낚아채 올라타는 동시에 페달을 밟았다.
“1차 목적지 성수 대교! 내가 선두에서 뚫는다! 염동! 후위에서 역장으로 장애물을 밀어내라!”
자전거 세 대는 자동차 사이를 빠져나가 기동로를 여는 경찰을 스쳐 달렸다.
“잠깐……!”
“위험! 군용 차량……!”
파아아아아앙-
거센 바람이 다급한 외침을 날려 버리고.
위잉, 위잉, 위이잉-
자전거는 단숨에 가속해 경찰차를 추월했다.
경륜 선수의 평균속도는 시속 60km 이상!
각성자의 신체는 평범한 인간의 신체 능력을 아득히 초월한다.
지금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사람은 그냥 각성자도 아닌, 1세대 헌터이자 랭커 육체 각성자 장철과 잠깐이지만 한국최강으로 불린 염동력자 마혁진이다.
그리고 선두에서 길을 뚫는 건 전생 천마 천문석이었다.
휭, 휭, 휘잉-
가볍게 손을 내리긋는 매 순간 공기가 지워 버린 듯 사라지고 자전거는 점점 더 빠르게 가속했다.
위이이이이잉-
비명을 지르며 갈라지는 공기와 고속으로 회전하는 바퀴!
“미친……!”
“위험……!”
“잠깐 멈춰…….”
……
세 사람이 탄 자전거는 무섭게 가속해 줄줄이 이어진 60트럭, 장갑차, 레토나, 경찰차, 바이크와 심각한 얼굴의 경찰과 군인들을 연속해서 추월했다.
몇 개의 교차로를 지나 질주하길 3분, 1차 목적지에 도착했다.
[성수 대교]
그리고 성수 대교에서 내려오는 차량과 인파가 보였다!
천문석은 장철과 시선이 마주쳤다.
“다리가 멀쩡합니다!”
“바로 넘어갈 수 있다!”
“헉, 허억- 다 왔으니까 좀 천천히…….”
이심전심!
천문석은 내력을 폭발시켜 가속하며 외쳤다.
“전력 질주! 이대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