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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41화 (1,142/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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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41화>


“핫팩은?”


“뜨거우니까 직접 만지지 않는다!”


“칼로리바는?”


“아침, 점심, 저녁! 한 개씩! 하루 세 개만 먹는다!”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절대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자동차 문은 언제 연다?”


“아빠랑 고모가 왔을 때만 연다!”


“숨겨 둔 배낭은?”


“아빠랑 고모가 오면 보여 준다!”


“잘했어! 자, 그럼 김밥 먹자!”


“김밥!”


환호성과 함께 김밥을 입안 가득 씹으며 배시시 웃는 장세린.


“마이어!”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여기 컵에 물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마시고.”


장세린은 컵에 담긴 뜨거운 물을 후후- 불어 김밥을 꿀꺽 삼키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외쳤다.


“철수 오빠는 김밥 안 먹어? 엄청 맛있어!”


“조금 있다. 먼저 먹고 있어. 난 잠깐 볼일 좀 볼게.”


“알았어!”


김철수는 씩씩한 대답을 뒤로하고 자동차 밖으로 나와 붓과 물통을 들었다.


잔뜩 흐린 하늘에 해가 뜬 이름 아침 주차장.


장세린이 앉아 있는 자동차와 주위를 가린 승합차와 화물차들이 보였다.


화물차와 승합차로 자동차 주위를 막아 놨는데도 사람들에게 걸렸다.


자신이 떠나고 아이의 아빠와 고모가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타날지 모른다.


장세린이 차에서 아빠와 고모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게 있었다.


강제로 차를 열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줄 보안 마법 회로.


따뜻한 물이 찰랑이는 물통에 하얀 물감을 통째로 짜 넣고 마력을 밀어 넣었다.


하얗게 변한 물에서 푸른 마력광이 흘러나오자 일필휘지로 붓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자동차 창문과 문짝, 차체와 타이어 전체에 새하얀 마법 회로가 그려졌다.


짝-


가볍게 박수를 쳐서 마법 회로에 시동을 거는 순간.


파팟-


불꽃과 함께 물감은 날아가고 푸른 마력광으로 활성화된 보안 마법 회로만 남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일은 끝났으니 남은 것은 하늘의 뜻, 천명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하늘의 인과는 헤아릴 수 없으니 어떤 천명이 떨어질지는 신조차 짐작할 수 없다.


“천명(天命).”


문득 고개를 들어 잔뜩 흐린 하늘을 봤다.


게이트 전쟁에 패배한 지구.


허신과 악신의 놀이터가 된 타 대륙.


고통과 분노, 울분과 비참함. 그 모든 것을 직접 보고 겪었기에 천명, 하늘의 뜻이란 말을 좋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오래전의 자신은 천명을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타 대륙에 떨어지는 순간 깨달은 힘, 마력!


마도의 극에 올라 세계에 대륙어와 마법을 새겨 넣었다.


마력장 지대의 무한한 마력을 인류에게 전해 줄 마탑을 세웠다.


영원히 멈추지 않을 불멸의 심장, 마도 엔진이 맥동하는 강철의 거인 타이탄을 만들었다.


-돌과 철.


-마탑과 타이탄.


-머릿돌과 강철의 거인.


-마법의 극에 달한 마도왕들.


-강철의 거인으로 무장한 제국 군단.


-아득한 하늘에 띄워 올린 전능 옥좌.


선악도 분별도 없는 하늘을 대신해 보석과 강철, 마법과 타이탄의 폭풍, 대륙 전쟁을 일으켜 타 대륙에 가득한 허신과 악신, 고대의 악과 초월종을 쓸어버렸다.


타 대륙에 문명의 빛을 밝히는 순간, 인간과 수인, 엘프, 놈, 드워프 모든 지성체의 맹약을 세계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빛의 길을 올라 지구로 돌아왔다.


“…….”


문득 시선을 내리자 7살 남짓 아이의 손이 보였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타 대륙을 갈아엎었던 보석과 강철의 황제, 마도 황제의 힘은 없었다.


자동차에 보안 마법 회로를 활성화하고, 이상한 숲에서 얻은 핫팩과 담요, 칼로리바…… 잡화가 가득 담긴 배낭을 주는 것.


이것이 기억에 구멍이 뻥뻥 뚫리고 힘 대부분을 잃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진인사(盡人事)였다.


이제 자신은 마법 회로를 보수하고 돌과 철을 찾기 위해 떠나고, 이 자동차 안에는 아빠와 고모를 기다리는 아이, 장세린만 혼자 남게 된다.


남은 것은 하늘의 뜻, 천명(天命)뿐이다.


“…….”


김철수는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봤다.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내리자 눈이 마주쳤다.


핫팩을 넣은 담요를 돌돌 감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장세린은 김밥을 꼭꼭 씹고, 따뜻한 물을 꿀꺽 마시고 배시시 웃었다.


“이 김밥 엄청 맛있어!”


“그래? 잘됐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난 이만 갈게. 그 자동차 안에 있으면 안전할 거야. 기억하지? 아빠랑 고모 말고는 절대 문 열어 주면 안 된다. 알았지?”


“앗! 벌써 가려고? 김밥! 김밥 가져가야지!”


창문이 열리고 남은 김밥을 전부 내미는 장세린.


김철수는 맨 위에 놓인 김밥 한 줄을 집어 들었다.


“더 가져가! 김밥 하나둘셋넷다섯! 다섯 개나 있어!”


“난 이거면 충분해, 음식 잔뜩 쌓아 놨거든.”


“김밥 엄청 맛있는데? 아빠가 사 오기로 약속한 치킨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 백 점짜리 김밥이야!”


“난 원래 김밥 별로 안 좋아하거든.”


김밥 한 줄을 흔들며 웃었다.


“그럼 안녕이다. 기억하지?”


“아빠, 고모 말고는 절대 열어 주지 않는다! 앗! 엄마는? 엄마 오면 어떡하지?”


“엄마는 당연히 포함이지.”


“아빠, 엄마! 고모 말고는 절대 열어 주지 않는다!”


장세린은 씩씩하게 외치고 곰 인형을 흔들며 작별 인사했다.


“안녕 철수 오빠! 곰곰이도 반가웠대!”


“안녕 장세린. 나도 반가웠어. 곰곰이도 만나서 반가웠다.


마주 손을 흔들고 몸을 돌릴 때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 그렇지. 너 혹시 오늘 며칠인지 알아?”


그러자 손가락 2개가 창문으로 올라왔다.


“2000년 1월 2일!”


*   *   *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빌딩 창문.


김철수는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흐릿한 빛 아래 한강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정말 1월 2일이었다고?!”


김철수의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장세린과 헤어지며 했던 질문과 돌아온 대답!


‘너 혹시 오늘 며칠인지 알아?’


‘2000년 1월 2일이야!’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 순간 계속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상하게 낯설던 거리!


사방에서 느껴지던 인기척!


한겨울로 돌아간 듯 차가운 칼바람!


2월, 3월, 4월. 전부 아니었다!


자신이 꿈에서 깨어난 지금은 2000년 1월 2일!


지구 최초의 게이트 광화문 게이트가 열린 다음 날이다!


즉, 자신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가 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상한 숲에서 만난 더 이상한 꼬맹이!


이유는 알지 못한다.


아니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자신이 수없이 바랬던 그 순간으로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2000년 1월 2일은 자신이 북한산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헛되이 골든 타임을 날리고 있을 때다!


반대로 말하면 사라진 돌과 철의 행방을 쫓을 골든 타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는 말!


지금 당장 북한산으로 움직이면 잃어버린 돌과 철을 찾을 가능성이 확 올라간다.


문제는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이 미래와 같은 세계인지, 분화한 다른 세계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


같은 세계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른 세계라면 돌과 철을 회수하는 순간 세계의 나무가 분화하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다.


대응 방법은?!


변수가 발생할 여지 자체를 없애는 것!


이 세계에선 돌과 철의 위치만 확인하고, 회수하는 건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서 한다!


돌아가는 방법도 이미 확인이 끝났다.


영안을 뜨고 유리창을 보자 몸에서 흘러내리는 푸른 안개가 보였다.


푸른 안개가 새어 나오는 곳은 이상한 꼬맹이에게 물린 부위였다.


그리고 손끝을 위로 꾹 당기자 손등에 붙었다.


자각몽!


자신은 아직 꿈에서 깨지 않았다.


밤의 숲에서 이상한 꼬맹이에게 물린 순간 깨어난 게 아니라 다시 한번 꿈에 빠져들었다.


2000년 1월 2일.


수없이 바랬던 그 순간을 꿈꾸고 있다!


북한산으로 달려가 돌과 철의 행방을 확인하고 꿈에서 깨면 된다!


그 전에 반드시 확인할 게 하나 있었다.


망원경을 눈에 붙이고 화물차와 승합차로 가려진 장세린이 숨어 있는 자동차와 그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뜬 아침.


그러나 잔뜩 찌푸린 하늘에 오히려 점점 어두워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건물과 빌딩 창문 너머로 불안한 얼굴의 사람들이 보이고, 골목을 걸어 한강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난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아직 본격적인 위험은 시작되지 않았고, 서울 시민 반 이상은 대피하지 않고 집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다.


그러나 광화문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수와 몬스터가 거리를 다시 휩쓸면, 그 사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 한강으로 몰리게 될 거다.


장세린이의 아빠와 고모는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한강을 넘을 방법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눈이 내리기 전에 장세린을 만나 담요와 핫팩, 칼로리바, 김밥 그리고 배낭을 건네줄 수 있었다.


“다행이네.”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만약 자신과 만나지 않았다면, 아빠와 고모가 돌아왔을 때 장세린은 크게 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짜 하늘이 준비한 거 아냐?”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오고 바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무정한 하늘이 그럴 리 없다.


이때 주차장으로 접근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재빨리 망원경 배율을 조정하자 쇠 파이프. 망치, 멍키스패너로 무장한 십여 명의 남녀가 보였다.


격전을 치른 듯 초췌한 모습으로 주차장을 지나가다 화물차와 승합차에 반색해서 달려갔다.


벽을 이룬 화물차를 밀어 빼내고 그 안의 자동차를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



“열어 주면 안 돼.”


마음으로 말하는 순간 사람들이 움직였다.


웃으며 구슬리고, 창문에 붙어 간청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한다.


그러나 자동차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망치, 쇠 파이프로 내려치고, 보도블록을 던지고, 묵직한 연석으로 내리찍어도 보호 마법 회로를 깔아둔 자동차에는 흠집 하나 가지 않았다.


세린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곰곰이와 함께 바닥에 웅크렸다.


크아아아-


이때 포효가 터지고 자동차를 열려고 안간힘을 쓰던 사람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도망쳤다.


세린이는 끝까지 문을 열지 않고 버텼다.


“꼬맹이, 제법인데.”


확인은 끝났다.


장세린은 아빠와 고모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 차 안에서 나오지 않을 거다.


이제 북한산으로 달려가 돌과 철의 행방을 찾으면 된다!


김철수는 몸을 돌려 걸으며 김밥을 씹다 흠칫 놀랐다.


“이 김밥? 영희 수녀님 김밥 맛이잖아?!”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하늘에 시선이 닿았다.


“혹시 보상입니까?”


바로 고개가 저어지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선악도 분별도 없는 하늘이 그럴 리 없지.”


김철수는 빌딩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숲에서 만난 이상한 꼬맹이.


아빠와 고모를 기다리는 장세린.


영희 수녀님 김밥과 똑같은 맛의 김밥.


게다가 잊어버린 이름을 대신할 멋진 이름까지 만들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운이 좋은 날이다.


“감이 좋은데. 돌, 철 전부 찾는 거 아냐?!”


김철수는 희희낙락 김밥을 씹으며 광화문 게이트 너머, 돌과 철이 있을 북한산을 향해 달려갔다.


*   *   *


김철수가 북한산으로 달려갈 때 꿈에서 깨어난 원룸에 변화가 시작됐다.


휘이이잉-


반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바람이 닿는 순간 바닥에 떨어진 종이가 펄럭 허공으로 떠올랐다.


[특급 헌터]


[@[email protected]]


[ˁ῁ˀ]


[ʕ•ᴥ•ʔ]


[ↂᴥↂ]


[◉ᴥ◉]


……


앞뒤로 이름과 이모티콘 십여 개가 그려진 종이가 바람에 휩쓸려 방안을 빙글빙글 수십 번 돌았다.


휘이이이잉-


작은 방 안에 숲 내음이 가득 차오르고 아득히 멀리서 외치는 듯한 아이 목소리와 동물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녕안녕안녕! 특급 헌터 나중에 다시 만나!]


우우우웅-


깨개개객-


까아아악-


킥, 키키킼-!


……


이 순간 허공에서 안개가 쏟아지고 커다란 배낭을 멘 아이가 불쑥 튀어나왔다.


“……!”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종이!


반사적으로 종이를 낚아채는 순간, 작은 몸은 옷가지가 널린 푹신한 침대에 떨어졌다.


출렁이던 매트리스가 멈췄을 때 아이는 종이를 펼치고 환하게 웃었다.


“특급 헌터.”


친구가 자신을 위해 구해다 준 이름과 동물 친구들 그림이 그려진 종이!


제대로 왔다!


이 종이가 있는 여기가 자신이 있을 나뭇가지다!


아이는 배낭을 벗고 두툼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소중한 종이를 가슴에 올리고 눈을 꼭 감았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휘잉, 휘이잉-


이 순간 무한의 숲에서 불어온 숲 내음과 안개, 동물 요괴들의 목소리가 담긴 바람이 창문 사이로 빠져나가 건물을 휘감았다.


건물은 순식간에 안개에 휩싸였다.


한겨울 냉기와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건물의 모습이 흐릿한 안개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생경한 느낌에 다가오던 마수와 몬스터는 휘잉- 바람이 스치는 순간,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요력에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쳤다


그 어떤 마수와 몬스터도 감히 다가오지 못할 금지가 된 원룸 건물 침대 속.


눈을 꼭 감은 아이는 빛에 휩싸인 채 조금씩 어려지고 있었다.


친구가 말한 그 날이 올 때까지 오랫동안 잠을 자고, 그 잠에서 깨어났을 땐 모든 것을 잊게 되리라. 하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긴 잠에서 깨어나면 일어날 일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웃고 숨이 차게 뛰고, 신나게 구슬을 치고, 쌩쌩이를 달릴 너무나 즐거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잊어도 괜찮았다.


하늘은 따뜻하고 땅은 포근하다.


세상은 웃음과 즐거움,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특급 헌터!”


새로운 이름을 씩씩하게 외치고 시간을 돌리듯 점점 어려지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붉게 충혈된 눈과 수염이 빽빽한 얼굴로 세기말을 재현하는 던전을 찾아다니는 1세대 헌터와 동생, 누나를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안녕안녕…….”


특급 헌터는 즐거운 꿈을 꾸듯 빙그레 웃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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