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40화>
트럭과 승합차가 주위를 둘러싼 자동차 뒷좌석 앞.
자동차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검은 로브에 배낭을 짊어진 아이와 곰 인형이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빠랑 고모를 기다리고 있다고?”
검은 로브를 입은 아이가 질문하는 순간 유리창에 붙은 곰 인형이 고개를 까닥이고 대답이 돌아왔다.
“난 모르는 사람이랑은 이야기 못 한다니까! 고모랑 약속했어! 우리 고모 엄청 무서워! 나 말고 곰곰이한테 말해야 해!”
자동차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곰 인형을 흔들며 대답하는 5살 남짓한 어린아이.
“…….”
짧은 침묵 후에 질문했다.
“곰곰이. 아빠랑 고모는 어디 갔는데?”
“배! 우리 배 타러 왔어. 아빠는 배 찾으러 갔어!”
“곰곰이. 언제부터 기다렸는데?”
창문으로 쓱 올라오는 손가락 2개.
“2일?! 2시간?!”
고개를 젓다가 끄덕이는 곰 인형.
“2시간! 백까지 열 번 세면 온다고 했는데……. 왜 안 오지?”
실망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축 늘어지는 어깨.
“……곰곰이. 내가 처음 나타난 사람이야?”
“아니, 아까 배고파 보이는 아저씨, 추워 보이는 언니, 기름 필요한 아줌마 만났어.”
“…….”
문득 창문 너머로 시선을 움직이자 추위에 덜덜 떨리는 어깨가 보였다.
담요 한 장 없이 시동 꺼진 자동차 안에서 홀로 아빠와 고모를 기다리는 아이.
그런 아이가 만났다는 배고파 보이고, 추워 보이고, 기름이 필요한 사람들.
‘설마……?’
문득 든 생각에 바로 질문했다.
“곰곰이. 그 사람들에게 혹시 뭐 줬어?”
“곰곰이는 훌륭한 곰이야! 당연히 도와줬지!”
“…….”
휘이이잉-
문득 불어온 바람에 실린 소리.
으아아아-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
남쪽, 한강 방향이다!
“곰곰이. 혹시 아빠랑 고모 남쪽, 한강으로 간 거야?”
“맞아! 아빠가 먼저 갔는데! 안 와서. 고모가 한강으로 찾으러 갔어!”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왔다.
-자동차 안에 홀로 있는 아이.
-그 주위를 완전히 가린 승합차와 화물차.
-아이를 두고 한강으로 달려간 아빠와 고모.
난장판이 된 서울에서 지난 몇 달간 몇 번이나 본 광경이다.
철근 콘크리트 요새나 다름없는 아파트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서울을 탈출하기 위해 한강으로 왔다.
그러나 한강에 놓인 다리는 광화문 게이트에서 쏟아진 몬스터를 막기 위해 끊어 버린 상황.
원래도 큰 강인 한강은 북한산에서 쏟아진 엄청난 물에 유속이 몇 배로 빨라졌다.
지금 한강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강 이남에 전개된 군대는 서울에서 빠져나간 지 오래고, 한강에 남은 배는 오리배 보트 수십 척이 전부다.
부족한 오리배와 넘치는 사람들.
처음에는 차근차근 오리배로 사람들을 나르기 시작했을 거다.
하지만 사람이 넘치면 몬스터가 모여드는 법.
한강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을 거다.
지금 바람에 실려 오는 비명과 고함, 외침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그 난장판에는 곰 인형과 함께 자동차에 홀로 남은 아이의 아빠와 고모도 있다.
난장판이 된 한강 변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아이를 자동차에 남겨 두고 승합차와 화물차로 그 주위를 가린 후 배를 찾아 달려간 거다.
100까지 10번 세면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아이를 혼자 두다니,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그러나 누구나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아이는 텅 빈 자동차 안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
승합차, 화물차로 주위를 가려 놓았으면서, 담요 한 장 없이 아이를 자동차에 뒀을 리 없다.
아빠와 고모가 사라지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곰곰이는 훌륭한 곰이야! 당연히 도와줬지!’
아이가 곰 인형을 흔들며 외친 말에 답이 있었다.
-배고픈 아저씨.
-추워 보이는 언니.
-기름이 필요한 아줌마.
부자연스럽게 놓인 승합차를 밀어내자 자동차가 나온다.
그 자동차에서 들려오는 숫자 세는 아이 목소리.
깜짝 놀라 살피자 어른 없이 어린아이 혼자 곰 인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두툼한 담요, 열기를 뿜어내는 핫팩, 식량이 보인다.
“…….”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주유구가 열린 자동차.
작은 온기 한 점 없는 유리창.
덜덜 떨리는 작은 몸과 텅 빈 좌석.
이 모든 것이 보였으니까.
5살 남짓 부모 없이 혼자 있는 아이를 구슬리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았으리라.
“곰곰이. 담요랑 핫팩, 음식. 전부 아저씨, 언니, 아줌마 준 거야?”
“아앗! 어떻게 알았어?!”
깜짝 놀란 외침과 함께 털실 모자를 쓴 작은 얼굴이 창문 위로 쑥 올라왔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깜짝 놀라 문 뒤에 숨는 아이.
“앗! 난 안 가! 아빠랑 고모 기다려야 해! 이거 줄게 그냥 가!”
당황한 외침과 함께 살짝 열린 창문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이제 더 없어! 진짜로 그게 마지막이야! 아껴 먹던 건데…….”
허리를 굽혀 주차장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웠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반쯤 녹은 초코바.
“…….”
초코바를 보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지난밤 숲에서 만난 이상한 꼬맹이.
이상한 꼬맹이는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강제로 배낭을 매줬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외침을 질렀다.
‘돌멩이가 준 배낭! 내가 아니었구나! 받아! 이 배낭 꼭 필요할 거야!’
‘안 돼! 배낭 정말, 진짜, 꼭! 필요해 보여서 준 거란 말이야! 배낭 버리고 가면! 엄청엄청 아프게 물어 줄 거야!’
……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을까?
이상한 꼬맹이에게 배낭을 받고 깨어나니, 진짜로 그 배낭이 필요한 아이가 나타났다.
마치 하늘의 인과가 이 모든 것을 준비한 것처럼!
“그럴 리 없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을 숲으로 불러서 배낭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기 위해선 엄청난 명운을 대가로 바쳐야 했으리라.
그런데 배낭에 들어 있는 건 고작 잡화, 식기, 음식, 방한용품뿐.
자동차 안에 홀로 떨고 있는 아이에게나 필요한 물건 들었다.
무정한 하늘의 인과가 한 아이를 돕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했을 리 없다.
그러니 이상한 꼬맹이가 엄청난 명운을 대가로 이 배낭을 건네줬을 리도 없다.
비가 선악을 가려 내리지 않고.
햇살이 선악을 가려 비추지 않는 것처럼.
하늘에는 선도 악도 없다.
선과 악을 행하는 건 사람.
당연히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도 같은 사람뿐이다.
“언제나 그랬지…….”
피식 웃는 순간 결심하고 똑똑 창문을 두들겼다.
“곰곰이. 문 좀 열어 봐. 줄 거 있어.”
“그 초코바가 진짜 마지막이야! 맛있었는데…….”
“야, 그런 거 아냐. 우선 초코바 받아.”
창문 틈으로 초코바를 떨어뜨렸다.
“앗! 내 초코바!”
불쑥 올라온 작은 손이 초코바를 받는 순간, 번개같이 배낭을 열고 비닐봉지를 꺼내 흔들었다.
“문 열면 이거 줄게.”
“필요 없……!”
“이거 김밥이야.”
“김밥?!”
깜짝 놀란 외침과 함께 살짝 열린 창틈에 바짝 붙은 얼굴.
“어때? 맛있는 냄새 나지?”
김밥을 감싼 호일이 나타나자, 작은 코가 실룩이고 얼굴에 놀람과 망설임이 퍼져 나갔다.
“김밥. 김밥은 맛있는데, 아주 맛있는데, 정말 맛있는데…….”
좌우로 흔들리는 김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같은 말을 반복하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아이.
“자, 문 열고 김밥 같이 먹자. 여기 칼로리바랑 요플레도 있어…….”
“요플레!”
“요플레 맛있게 먹는 법 알아?”
“뚜껑이야! 요플레는 뚜껑부터 핥아야 해!”
“어디서 가르쳐 주냐? 요새 꼬맹이들은 다 비슷하네. 문 열고 우리 같이 김밥 먹고 요플레 뚜껑 핥자.”
“김밥, 요플레…….”
아이는 홀린 듯이 손을 뻗다, 휘잉- 바람 소리에 흠칫 놀라 빙글 몸을 돌려 자동차 바닥에 웅크렸다.
“모르는 사람한테 문 열어 주면 안 돼! 곰곰이는 하나도 배 안 고파! 아빠가 치킨 사 오기로 했어!”
“넌 어떤데? 배고프지 않아?”
꼬르르륵-
웅크린 아이 배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울리고.
“…….”
짧은 침묵 끝에 망설임이 가득 담긴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는 사람이랑 밥 먹으면 안 되는데…….”
웅크린 채 고개만 돌려 힐끗 김밥과 자신을 보는 번갈아 봤다.
이 모습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경계의 숲에서 주운 종이!
그 종이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과 이름이 그려져 있었다.
“잠깐만 보여 줄 게 있어!”
품 안에 손을 넣었지만, 종이는 없었다.
“어, 이게 어디 갔지?!”
로브를 뒤집어 확인하는 순간 불현듯 떠올랐다.
꿈에서 깨어난 방!
배낭에서 쏟아진 잡화에 황당해하다 생각했다.
종이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즉시 종이를 문지르고, 물을 뿌리고, 라이터 열기를 쬐었지만, 종이에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황당함과 어이없음, 아찔한 현기증에 손발에 힘이 풀려 비틀거릴 때. 종이를 떨어뜨렸다!
“보여 줄 게 있다고?”
의아해하는 아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없어도 상관없다.
“잠깐만!”
잽싸게 펜과 종이를 꺼내 이름을 적고 창문에 찰싹 붙였다.
“이게 내 이름이야. 곰곰이는 한글 읽을 줄 알아?”
“당연하지! 앗! 책에서 본 이름이야!”
익숙한 이름에 환한 얼굴로 이름을 외쳤다.
“김. 철. 수.”
“맞아. 김철수가 내 이름이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너 이름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내 이름은 장세린이야!”
“좋아. 장세린. 이제 내 이름 알지?”
“김철수?”
“그래. 나도 네 이름 알아. 장세린 맞지?”
“맞아! 나 장세린이야!”
장세린의 작은 얼굴이 위아래로 끄덕이는 순간, 톡- 김밥으로 유리창을 두들기며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김밥 같이 먹자.”
“모르는 사람이랑은 같이 밥 못 먹는다니까! 우리 고모 엄청 무서워!”
“우리 모르는 사람 아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아이와 스스로를 가리켰다.
“장세린, 김철수. 서로 이름도 아는 사이잖아?”
“앗, 아앗! 아아앗!”
쪼그려 앉은 몸이 벌떡 일어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맞아! 이제 우리 아는 사이야! 아는 사이니까, 김밥이랑 요플레 같이 먹어도 돼! 우와-“
환호성과 함께 철컥- 잠겨 있던 자동차 문이 열리고.
털실 모자를 쓴 5살 남짓 어린아이, 장세린은 환하게 웃으며 작은 손을 내밀었다.
“김철수 반가워. 얼른 들어와!”
“장세린 만나서 반가워.”
웃으며 마주 손을 뻗는 김철수.
온기 한 점 없는 차갑게 얼어붙은 장세린의 손과 김철수의 따뜻한 손이 닿았다.
“손 따뜻해!”
장세린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 때.
김철수는 차가운 손을 양손으로 잡고 마주 웃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우연?”
“너한테 정말, 진짜, 꼭 필요해 보이는 배낭이 나한테 있거든.”
“……배낭?”
“배낭은 이따 보고. 배고프지? 우선 이거부터 받아. 뜨거운 차부터 줄게.”
우선 배낭에서 꺼낸 핫팩부터 흔들어 쥐여 주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차가운 몸을 녹일 따뜻한 코코아를 준비했다.
한강 근처 주차장에서 우연히 만난 김철수와 장세린.
그러나 두 아이의 만남에 우연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도미노가 차례로 쓰러지듯 당연한 인과였다.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일어난 수많은 사건.
수만 개의 부품이 하나로 모여 시계가 움직이듯, 수많은 사건이 원인이 되어 지금의 결과가 나왔다.
김철수와 장세린.
원래라면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을 두 사람이 만나 이름을 부르고, 같이 담요를 덮고, 자동차 좌석에 나란히 앉아 뜨거운 코코아를 함께 마셨다.
어느새 장세린의 추위에 덜덜 떨리던 몸에 코코아의 따뜻한 온기가 퍼져 나가고 얼굴에 환한 웃음이 생겨났다.
이 모든 것은 검은 동전을 튕겨 올리며 하늘에 기원한 누군가의 바람이 만들어 낸 필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