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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39화 (1,14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39화>

꿈속에서 받은 배낭이 현실에 나타났다!

게다가 팔뚝과 어깨, 배, 다리 몸 전체에 이빨 자국이 가득하다!

“……!”

이빨 자국과 배낭!

명확한 증거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 숲은 그냥 꿈이 아니다!

“오래 사는 엘프! 밤의 길!”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타 대륙에 떨어져 동료들과 구를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 사는 엘프는, 달이 비추는 곳이라면 세계의 나무 어디로든 길을 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지구로 돌아가는 길을 열겠다고 생각했다.

동료들과 개고생을 하며 대륙 북쪽 끝으로 올라가 엘프 마을을 찾았다.

엘프 마을의 대장로 오래 사는 엘프!

오래 사는 엘프는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천 년 거목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밤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해 주실 일들이 있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온갖 황당하고 어이없는 의뢰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나중에는 이미 한 고생이 아까워 빡세게 의뢰를 수행했다.

마지막 의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오래 사는 엘프는 신비한 미소를 지으며 길을 열어 줬다.

‘이제 명운이 다 모였답니다. 이계인께서 가야 하는 장소로 길을 열어 드릴게요. 자, 이 랜턴을 들고 달빛이 비치는 저 오솔길을 걸어가시면 된답니다.’

길고 긴 개고생이 마침내 끝났다!

이제 지구로 돌아간다!

그렇게 희희낙락! 달빛이 비치는 오솔길을 한달음에 달려 도착한 곳은 지구가 아니라 대륙 남쪽 끝의 마경, 열사의 사막이었다.

그 열사의 사막에서 도망자들을 만나고 진실을 알게 됐다.

‘오래 사는 엘프? 아, 그 사기꾼 녀석!’

그렇다!

자신과 동료들은 오래 사는 엘프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기꾼 엘프가 열어 준 밤의 길은 진짜였다!

안개가 흐르는 밤의 숲.

현실처럼 생생한 꿈.

방금 자신이 겪은 일들은 달이 없었던 것만 빼면 밤의 길과 같다!

이상한 꼬맹이는 오래 사는 엘프가 열었던 밤의 길과 비슷한 숲으로 자신을 불렀다!

“왜 부른 거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보였다.

자신 앞에 놓여 있는 배낭!

이 배낭을 자신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

지금 알아야 하는 건 ‘이유’가 아니라 ‘어떻게’다.

마도의 기억은 곧 힘이다.

지금의 자신은 기억 대부분이 날아가 힘 대부분을 잃은 상태.

그렇지만 존재의 본질이 가지는 격, 질량,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

무거울수록 움직이는 데 큰 힘이 필요한 법!

자신을 숲으로 부르기 위해 엄청난 명운을 대가로 올렸을 거다!

엄청난 명운을 대가로 숲으로 자신을 부르고 건네준 배낭.

그 숲에서 이 배낭을 가지고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불렀을 때 이상의 명운을 대가로 올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린 이름을 찾아간다던 그 이상한 꼬맹이가 했다.

갑자기 친구의 이름을 훔친 나쁜 놈이라 외치며 추적하고.

세계에 기원이 새겨진 하늘 고래가 금기를 깨고 지느러미를 휘둘렀다.

지느러미에 맞아 날아온 오리배에서 꼬맹이를 낚아채 구르는 순간 81번 물리기까지 했다.

이해할 수도, 종잡을 수도 없던 외침과 행동들.

그러나 그 결과 자신 앞에 이 배낭이 놓이게 됐다.

이 모든 게 우연일 리 없다.

이상한 꼬맹이는 자신이 이 ‘배낭’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가도록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배낭 안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고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고개를 돌리자 창문 너머 엉망이 된 서울 시가지가 보였다.

2000년 1월 1일.

최초의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2달가량이 지났다.

아니,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지 못한지 한참이 지났으니 3달 이상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져 난장판이 됐다.

아직까진 잘 막아 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열린 게이트, 나타난 마수와 몬스터는 시작일 뿐이다.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마력장!

곧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게이트, 던전, 균열이 생겨나고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지고 던전 브레이크, 균열 침식이 시작된다.

그걸 막기 위해 마력장 억제 마법 회로를 새겨 시간을 벌고, 기억을 되찾기 위해 돌과 철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우연히 꿈으로 끌려 들어갔을 리 없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가설들.

자신을 부른 꼬맹이가 초월적 의지라면?

나뭇가지가 뒤엉켰다는 말이 전 세계가 난장판이 될 상황을 비유하는 거라면?

초월적 의지가 전 세계가 난장판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자신을 숲으로 불러 눈앞의 배낭을 건네준 거라면?

그렇다면 배낭에 들어 있을 물건은 하나뿐이다!

이 난장판을 정상으로 돌릴 해답!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돌철 황제의 상징.

돌과 철, 보석과 강철!

최초의 머릿돌과 타이탄 강철을 찾기 위한 단서다.

“……!”

전신에 전율이 흐르는 순간 배낭을 뒤집어 털었다.

와르르 쏟아져 바닥에 쌓이는 침낭, 냄비, 삼발이, 고체 연료…….

“……핫팩, 담요?”

멍하니 쌓인 물건을 바라볼 때 툭 떨어져 내리는 비닐봉지!

“……!”

번개같이 비닐봉지를 열자 튀어나온 물건들.

“칼로리바, 김밥? 요플레?”

*   *   *

“이게 다 뭐야?!”

바닥에 수북이 쌓인 그릇, 젓가락, 베개, 침낭, 수건……!

왠지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생활 잡화!

머릿돌과 타이탄을 찾을 단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지! 혹시 물건 사이에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털어 잡념을 흩어 버리고 배낭에서 쏟아진 물건들을 샅샅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통조림, 침낭, 고체 연료, 라이터, 식기.

응급약, 붕대, 지혈제가 들어 있는 구급낭.

건전지, 나이프, 멀티 툴, 망원경, 나침반.

간편 카레, 된장국, 미역국, 김자반.

……

없었다!

포장을 뜯고 돌돌 말린 침낭과 담요를 샅샅이 훑어도 없었다!

복숭아 통조림 안에도 진짜 복숭아만 들어 있었다!

잃어버린 머릿돌과 타이탄을 찾기 위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명운을 대가로 꿈으로 불러서 생활 잡화랑 복숭아 통조림을 줬다고? 왜?!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한 건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종이!

처음 숲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밟고 가슴이 철렁했던 종이가 있다!

“……!?”

반사적으로 종이를 꺼내 앞뒤를 살폈다.

[특급 헌터]

한글과 이모티콘이 앞뒤에 그려진 종이!

없다! 여기도 없다!

‘숨겨진 메시지?!’

문득 드는 생각에 종이를 문지르고, 물을 뿌리고, 라이터로 열기를 가했다.

그러나 종이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 같은 건 없었다.

여전히 [특급 헌터] 네 글자와 이모티콘만 있었다!

“……!”

눈앞이 아득해지고 손발에 힘이 풀려 종이를 놓치고 휘청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엄청난 명운을 깎아가면 자신을 불러 방한용품과 의료품, 식량…….

“……김밥, 핫팩, 담요, 칼로리바를 전해 줬다고?! 이빨로 81번 전신을 물었던 게 현실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존재의 본질을 억누른 게 아니라, 진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서라고?!”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괴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이게 뭐야!”

달이 비추는 버려진 원룸 건물에 한참 동안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괴성이 멈췄을 때.

검은 로브를 입은 아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널브러진 물품을 배낭에 담아 짊어지고 원룸 건물 계단을 오르며 되뇌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

돌과 철을 찾을 단서는 얻지 못했다.

그 이상한 숲에 왜 끌려갔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나쁜 놈으로 몰려 81번 물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결과 생활 잡화, 방한용품, 의료품, 식량이 가득 담긴 배낭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본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뱃속 깊은 곳에서 분노, 황당함, 어이없음…… 이 모든 감정이 뒤엉켜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입으로 외치는 동시에 마음으로 다짐했다.

어이없는 꼬맹이 녀석!

기억을 되찾는 순간 반드시 다시 만나러 간다!

다시 만나면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엉엉 울게 해 주마!

다짐하고 다짐하며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체감상 잠든 시간은 3시간 정도!

그러나 이상한 숲에서 깨어난 후 창밖 풍경에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꿈속에선 시간 감각이 흐트러진다.

이상한 숲에서 이상한 꼬맹이를 만나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기존 경험으로 보수적으로 생각하면, 돌아온 기억은 최소 하루에서 최대 이틀 정도가 지나면 다시 사라지리라.

즉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짧으면 한나절에서 길면 이틀!

그 안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1. 게이트 마력장을 억제할 마법 회로 보수.

2. 잃어버린 돌과 철을 수색할 장소 결정.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하아-”

잃어버린 돌과 철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폐허가 된 서울을 헤매며 돌과 철을 찾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잃어버린 돌과 철을 찾을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돌과 철을 찾는 걸 포기하고 두 번째 계획으로 넘어갈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잃어버리자마자. 아니 일주일 안에만 움직였으면 머릿돌은 몰라도 타이탄은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절로 탄식이 터졌지만, 어차피 불가능한 상상이다.

자신이 깨어난 건 2000년 1월 말, 게이트가 열리고 3주 이상이 지난 후였으니까.

북한산 바위 위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보석과 강철은 이미 사라졌고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수와 몬스터로 서울이 난장판으로 변한 후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되짚은 기억에는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돌과 철을 찾으라는 외침뿐.

게다가 남은 마력은 한 줌, 대지의 기억을 읽을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머릿돌은 그 어떤 마법적 탐색도 먹히지 않지만, 타이탄 강철은 달랐다.

지구 어디에 있든 자신이 부르는 순간 답한다.

타이탄 강철을 찾으면 최초의 머릿돌을 찾는 건 시간문제고.

최초의 머릿돌을 찾으면 세계에 새겨진 기록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할 수 있었다.

잊은 기억을 찾으면 마수와 몬스터를 처리하고 게이트를 닫는 건 간단했다.

계획을 세우는 즉시 남은 마력을 쥐어짜 타이탄 강철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타이탄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다른 차원에 떨어진 것처럼!

계획의 1단계가 어그러지자 이어지는 모든 계획이 엉망이 돼버렸다.

결국,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기억에 의지한 채, 북한산과 서울을 직접 뒤지고 다니며 돌과 철, 머릿돌과 타이탄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하아- 조금만 더 빨리 깨어났더라면…….”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는 탄식이 새어 나올 때 계단이 끝나고 옥상 철문이 보였다.

탄식은 그만! 이제 다시 움직일 때다!

잠기지 않은 철문을 열자 싸늘한 칼바람이 쏟아지고 텅 빈 옥상이 나왔다.

“다시 한겨울로 돌아가나. 지구 온난화는 걱정할 것 없겠네.”

헛웃음과 함께 한달음에 옥상을 달려 난간에 올라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어슴푸레 밝아 오는 하늘 아래 무채색의 도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까도 그러더니. 이상하네? 왜 이렇게 낯설지? 건물 상태도 좋아 보이고…….”

고개를 갸웃하며 곳곳을 훑는데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쭉 뻗은 고가도로 아래.

자동차와 트럭, 승합차가 늘어선 주차장!

“자동차가 아직 남아 있다고?!”

깜짝 놀라 망원경으로 살핀 주차장 구석.

유리창과 타이어, 도색까지 멀쩡한 트럭이 보였다.

당장 시동을 걸면 바로 움직일 듯 깨끗한 1톤 탑차가!

됐다! 저 탑차라면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이런 행운이라니!”

옥상에서 주차장의 탑차까지 가상의 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 망원경을 움직여 확인했다.

서점, 화방, 편의점, 슈퍼마켓, 공구상 그리고…….

‘주유소!’

주차장 탑차까지 이동 경로를 머리에 그리고 바로 난간 너머로 몸을 날렸다.

빠르게 떨어지던 몸은 지상이 가까워지자 깃털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탁-

가볍게 지상을 밟는 순간 첫 번째 목적지로 달렸다.

슈퍼마켓!

셔터가 내려진 슈퍼마켓 앞, 버려진 카트를 챙겨 화방에서 붓과 화구, 유화 물감, 조각칼을 담고 주유소에서 말통에 경유를 가득 채워 싣고 주차장을 향해 밀고 달렸다.

주차장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외침과 인기척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오늘 이상하네. 아까 주유소도 그렇고 왜 이렇게 인기척이 많아?”

평소와 다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며 인기척을 피해 골목을 달리길 한참 해가 뜨기 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르르륵-

카트를 밀고 한달음에 주차장을 가로질러 목표로 한 탑차에 도착했다.

유리창, 타이어, 외장까지 깨끗한 1톤 탑차.

1톤 탑차는 몇 달 동안 방치됐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연료 교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재빨리 운전석 문을 열려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칠십일, 칠십오, 칠십칠…….”

숫자를 세는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 목소리라고?!’

아이 목소리를 쫓아 움직이자 차체를 맞대고 서 있는 탑차, 승합차, 화물차들이 줄줄이 나왔다.

직사각형으로 놓인 차량들.

곧 차 한 대가 사라져 뻥 뚫린 공간이 나오고 승합차와 화물차에 둘러싸인 자동차가 나타났다.

“……팔십삼, 팔십칠, 구십일…….”

숫자를 세는 아이 목소리는 이 자동차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져 난장판이 된 지 몇 달이 지난 서울 한복판.

온기 한 점 없는 자동차에서 들려오는 아이 목소리.

그러나 지금 서울은 아이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설마! 그 이상한 꼬맹이?!’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움찔 물러설 때.

“……구십칠, 백! 열 번 다 셌어!”

작은 환호성과 함께 털이 가득한 얼굴이 자동차 창문에 불쑥 튀어나왔다.

구슬처럼 까만 눈동자.

군데군데 타들어 간 털.

수십 번 천을 덧대 꿰맨…….

“……곰 인형?”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기대감 가득한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곰곰아. 아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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