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36화 (1,13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36화>

“잘 가! 특급 헌터!”

마지막 작별 인사와 함께 하얀 선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고.

꼬맹이는 짧은 한숨과 함께 빙글 몸을 돌렸다.

“휴- 아직 어린데 괜찮을까……? 나랑 동물 친구들 목소리가 따라갔으니까 괜찮겠지?”

부드러운 햇살이 쏘아지는 공터, 바닥에 그어 둔 해시계는 2칸이 지나 있었다.

“제사장 돌아오려면 2칸쯤 더 걸리겠지?”

번쩍 고개를 들어 성긴 가지를 드리운 커다란 나무에 외쳤다.

“처음 보는 사람 나타나면 바로 가르쳐 줘야 해!”

샤사사사사-

마치 대답하듯 가지가 흔들리고 부드러운 바람이 귓가를 스칠 때 동물 친구들을 봤다.

곰, 늑대, 여우, 사슴, 너구리…….

공터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동물 친구들!

이제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킬 때다!

“친구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성큼성큼 걸어가 손을 번쩍 뽑았다.

그 작은 손에는 반짝, 반짝 빛나는 밤송이 빛이 붙어 있는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 -?!

…… -?!

…… -?!

의아한 시선이 쏟아지는 순간.

꼬맹이는 킁, 킁- 냄새를 맡더니 돌연 외쳤다.

“어, 잠깐! 벌점이 조금 남았잖아! 모두 삼각형 쌓아!”

…… -!

…… -!

…… -!

동물 요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삼각형 쌓으라고!’

‘갑자기 왜 삼각형을?!’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누구야? 누가 또 사고 쳤어?!’

‘다람쥐가 또 나무 열매 훔쳐 먹은 거 아냐?!’

……

동물 요괴들의 시선이 하늘다람쥐에게 모이는 것과 동시에 억울해 하는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키킼, 키키킼키키킼-!

‘아냐! 이번엔 나 아니야!’

“빨리 움직여! 제사장 돌아오면 우리 모두 잡혀가서 강제로 자야 해!”

꼬맹이가 소리치는 순간 동물 요괴들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삵과 너구리, 여우와 늑대가 사각형을 만들고.

곰이 네 발을 펼쳐 네 마리 동물 요괴를 밟고 조심조심 올라갔다.

카아아앗-

삵이 하악질을 하는 순간 서열 꼴찌 곰은 흠칫 놀라 움츠러들었다.

“삘리빨리. 움직여!”

꼬맹이가 버럭 외치자 삵이 움찔하고, 곰의 넓은 등 위로 다른 동물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사슴, 오소리, 도롱뇽, 토끼, 뱀, 비둘기와 까마귀…… 그리고 니케.

삵, 너구리, 여우, 늑대를 밟고 엎드린 곰 위로 삼각형으로 동물들이 쌓였다!

삼각형 쌓기!

평소 잘못을 할 때면 단체 기합을 받던 자세다!

보통 동물이라면 불가능하지만, 무시무시한 요력을 쌓은 동물 요괴들에겐 어렵지 않았다.

단 요력을 썼을 때만!

“어질어질한 기운은 쓰면 안 돼! 그러면 벌점 안 깎여!”

곰과 동물들의 무게에 삵, 너구리, 여우, 늑대가 비틀거리고.

발밑과 등 위 쌓인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동물들에 서열 꼴찌 곰의 전신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좋았어! 잠깐만 기다려! 넘어갈 나뭇가지 찾을게!”

번개같이 공터를 달렸고 곧 외침이 들려왔다.

“찾았어!”

쓰으으으으윽-

꼬맹이는 새하얀 돌멩이로 구불구불 긴 곡선을 그리고 벌떡 일어나 외쳤다.

“여기야! 이쪽으로 오면 돼!”

…… -!!

…… -??

‘이대로 움직이라고?!’

경악한 눈으로 서로를 보는 순간 다시금 들려오는 외침.

“빨리빨리! 제사장 돌아온다니까!”

삵, 여우, 너구리, 늑대!

곰을 떠받치는 네 다리가 힘겹게 움직일 때.

꼬맹이는 한달음에 달려와 따라 걸으며 외쳤다.

“잘 들어! 팟! 하고 빛이 터지면 하나둘셋! 세고 파팟! 하고 넘어가는 거야! 알았지?!”

킥, 키키킼-!

삼각형 꼭대기에 편하게 앉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하늘다람쥐.

“앗! 니케! 니케는 아냐! 니케는 따로 가야 해!”

킼. 키킼키킼-?

“니케는 이름 생겼잖아! 그리고 니케는 벌점도 없잖아! 당연히 따로 가야지!”

하늘다람쥐는 폴짝 뛰어 꼬맹이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고.

삼각형을 쌓은 동물 요괴들은 힘겹게 공터를 가로질러 구불구불 하얀 선 앞에 도착했다.

“시작할게!”

꼬맹이는 밤송이 빛이 붙은 돌을 양손으로 흔들며 외치고.

“친구들이 돌아갈 곳으로 길을 이어 줘!”

외침과 함께 밤송이 빛이 붙은 돌멩이를 휙 던졌다.

돌멩이가 구불구불 하얀 선을 넘는 순간.

파파파파팟-

섬광이 연속으로 터지고 불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와드드드득-

공간이 비틀려 찢어지고 검은 균열이 줄줄이 생겨났다.

…… -!!

…… -!!

…… -!!

균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요동치고 강렬한 이끌림이 전해졌다.

제사장 삼킨 것처럼 그냥 무작위로 연 균열이 아니다!

요동치는 균열 너머로 보이는 빛의 길!

경계를 넘는 길이다!

‘진짜야?!’

‘진짜였다고?!’

‘진짜 길을 열었다고?!’

‘진짜로 보내 주는 거라고?!’

……

동물 요괴들의 경악한 시선이 얽힐 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기다려! 하나둘셋! 하고 넘어가야 해!”

반사적으로 뛰려다가 멈칫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하나!”

손가락을 하나 접은 이상한 인간 아이와 다람쥐가 보였다.

…… -?

…… -?

의아한 시선이 날아오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이상한 인간 아이.

“약속했잖아? 친구들 전부 집에 보내 주고 난 마지막에 가겠다고. 먼저 가 나도 금방 갈 거야.”

…… -

…… -

인간 아이의 외침을 듣는 순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동물 요괴들은 전부 한 사람과 내기를 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도박꾼!

완전히 탈탈 털리고 조각상에 갇혔을 때 주정뱅이 도박꾼은 말했다.

‘너희 악연이 너무 굵은데. 나한테 전 재산을 넘겨줬는데 그냥 둘 수 없지! 악연을 씻을 수 있는 행운의 장소에 놓아 줄게! 카카캌-’

도박꾼이 비열한 웃음과 함께 조각상을 놓은 곳은 계단 논이 가득한 산속 작은 사당이었다.

결계도 변변치 않은 사당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조각상을 깨트리고 도망치려는 순간 사당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허공도의 제사장!

거대한 화룡을 부려 사령 군단을 잿더미로 만들고. 쇠고리 지팡이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요마의 머리를 깨뜨린 강자!

경계를 그어 구분을 지으신 상(上)께서 내리신 령(令)의 주인이었다!

미친 도박꾼 놈은 허공도의 제사장이 있는 사당에 조각상을 놓은 것이다!

제사장은 서늘한 시선으로 조각상을 바라보며 쓰윽- 나무 지팡이로 금을 그었다.

‘금(禁)을 넘으면 겁화에 던져 천 년 동안 땔감으로 써 주마.’

그렇게 감히 움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하염없이 시간을 흐르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꼬맹이가 나타났다.

‘앗! 멋진 조각상이 잔뜩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금을 넘어와.

‘킁, 킁- 으앗! 벌점 뭐야?! 나쁜 짓 엄청 했잖아?!’

조각상의 냄새를 맡고 깜짝 놀라 외치더니.

‘그렇지! 너희 내 부하 겸 친구 하면 벌점 깎아 줄게! 모두 좋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하얀 돌에 맞아 조각상이 깨지고 강제로 부하가 됐다.

그리고 고난이 시작됐다.

벌점을 깎아야 한다며 쉴 새 없이 땅을 갈고, 강과 오솔길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바위를 옮겨 이 거대한 숲을 만들었다!

나쁜 냄새를 빼야 한다고 먹는 순간 혀가 떨어질 듯 쓴맛이 돌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약초를 계속계속 먹어야 했다!

견디다 못해 도망치거나 반항하는 순간 무자비한 응징이 가해졌다.

펄쩍 뛰어 무는 순간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이 갈려 나가는 극통이 쏟아졌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시간이 지난 지금!

인간 꼬맹이가 약속대로 자신들을 보내 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혹시 함정 아닐까?’

‘충성심 시험?!’

‘지금이라도 납작 엎드려야 하나?’

생각지도 못한 외침에 주저주저할 때 외침이 들려왔다.

“둘! 셋! 지금이야! 빨리 뛰어! 꼴찌는 내가 물어 줄 거야!”

딱, 따닥-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삼각형으로 쌓인 동물 요괴들은 반사적으로 뛰어올랐다.

우으으응-

우오오오-

깨애애앵-

왕왕, 왕-

개객개객-

……

공중에서 충돌해 뒤엉키는 순간 팟, 팟, 파팟- 섬광과 함께 공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슴, 오소리, 도롱뇽…….

삵, 너구리, 여우, 늑대…….

육중한 곰과 까마귀까지.

동물 요괴 모두가 빨려 들어가는 순간 균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밤송이 빛은 하늘 높이 날아갔다.

“안녕안녕안녕! 동물 친구들 모두 잘 가! 이번에는 나쁜 동물 되면 안 돼!”

작별 인사가 끝났을 때 공터에 남은 것은 꼬맹이와 하늘다람쥐 둘뿐이었다.

*   *   *

꼬맹이는 빙글 몸을 돌려 외쳤다.

“이제 니케 차례야! 그전에 선물 줄게!”

킼, 키키키킼-?

하늘다람쥐가 고개를 갸웃하자.

꼬맹이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친구들이랑 니케는 달라. 니케는 아직 나뭇가지에 오르지 않았거든. 최고로 멋진 다람쥐, 황금 일족으로 만들어 줄게! 우선 줄 게 있어!”

딱, 딱-

돌연 이빨을 부딪치고 말을 이었다.

“내가 물면 엄청 아픈 거 알지? 내 특기 ‘아프게 물기’ 줄게!”

키킼, 키키키킼-?!

고개를 갸웃하는 하늘다람쥐를 양손에 담고 마음을 담아 외쳤다.

“앞으로 니케가 물면 누구나 완전, 진짜, 정말로 아파할 거야!”

파아앙-

민들레 홀씨 같은 빛이 쏟아져 나와 양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 됐어!”

활짝 손을 펼치자 새하얀 털 위에 번개가 달리는 듯한 황금빛 줄무늬가 생겨난 하늘다람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킼, 키키키킼-?!

“멋지지?! 니케라는 이름만큼 멋진 줄무늬야! 이제 친구들이 잔뜩 있는 나무줄기로 이어진 금 그어 줄게!”

하얀 돌멩이를 꺼내 쓰으윽- 길게 선을 그었다.

“여기 금 넘어가면 니케랑 비슷한 친구들 엄청 많아!”

킥, 키키키킼-?!

깜짝 놀란 외침.

“당연히 진짜야. 그런데 금 넘어가면 이름이랑 기억 다 잊어버릴 거야.”

킼킼, 키키키키킼-??

“니케는 아직 나뭇가지에 오르기 전이라 그래. 니케라는 이름도 받기 전이고…… 그래서 이 금을 넘어가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

꼬맹이가 손을 들어 선을 가리키는 순간.

휘이이잉-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울음소리가 숲 내음 가득한 바람에 담겨 날아왔다.

킥, 키키키키-

키킼, 키키키키-

……

니케는 듣는 순간 알아들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같은 동족의 울음소리다!

…… -?!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바로 돌아오는 대답.

“맞아. 지금 니케랑 비슷한 황금 다람쥐 친구들이 잔뜩 있는 세계야. 이 금 넘어가면 모든 게 시작돼.”

킼킼, 키키키키킼-?

“괜찮아. 기억을 잃고 이름을 잊어도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거든!”

“새 친구들이랑 신나고 재밌게 놀고 열심히 배우는 거야!”

“쑥쑥 자라 직장을 가지면 니케라는 멋진 이름도 얻고, 좋은 친구들도 아주 많이 만날 거야.”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우리는 다시 만나 엄청 재밌게 놀게 될 거야.”

“아, 엄청 재밌겠다. 그날이 얼른 오면 좋겠다!”

반짝이는 눈과 환한 얼굴로 꿈꾸듯 말하고 선을 가리켰다.

“자, 니케! 전진!

니케는 어깨에서 훌쩍 뛰어내려 선을 향해 움직였다.

휘이잉-

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울음소리와 황금빛 알갱이, 숲 내음이 점점 선명해지고 어느새 니케는 홀린 듯이 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타타타타탓-

바로 앞에 다가온 새하얀 선을 넘으려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니케! 점프! 멋지게 점프해야지!”

키킼-!

반사적으로 펄쩍 뛰어올라!

휘이잉-

바람을 휘감고 720도 회전해 금을 넘었다!

“훌륭해! 최고의 점프야!”

친구의 탄성이 터지는 순간 니케는 고개를 한껏 젖혔다.

장난스럽게 반짝이는 친구의 눈과 크게 흔드는 손.

“안녕안녕안녕…… 니케 잘 가!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작별 인사가 들려오는 순간 니케의 황금빛 줄무늬가 생겨난 몸이 금에 닿았다.

섬광이 터지고 숲 내음이 가득한 황금빛 바람이 휘잉 전신을 휘감았다.

금을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 원래도 작았던 니케는 점점 작아지더니 갓 태어난 새끼 하늘다람쥐가 되어 금 너머에 툭- 떨어졌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긴급 사이렌이 울리고.

키킼, 킼키키키-?!

키키킼, 키키키킼-!!

킼킼, 키키키키킼-!!

……

경악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서 황금빛 물결이 밀려오는 순간 짧은 외침과 함께 두 세계를 잇는 금은 사라졌다.

“황금 다람쥐! 내 친구 잘 부탁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