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29화>
“진짜 이름이 주소였구나?!”
“……!”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오랜 의문이 풀렸다.
1차 세기말 대한민국 사건!
나비 효과를 조심하란 말이 게 무색하게 수많은 사건을 일으켰다.
-국민대 감귤이에게 준 뽀미라는 이름.
-안전 장갑 제조법과 뽀미 안전지대의 전달.
-EMP 마력 폭풍 경고.
-대몬스터전 기본전술 가르쳐 주기.
-사선 확인의 필요성 강조.
-중랑천 제방을 무너뜨려 몬스터 웨이브 처리.
-서리 늑대를 시고르자브르 종이라 말하고 한강에 얼음 다리 놓기.
……
그리고 한 가족의 운명을 바꿨다.
장철, 장민, 장세린.
의인 광장은 시고르자브르 광장이 됐지만, 세린이의 운명은 변하지 않았다.
세린이의 곰 인형 곰곰이를 아빠에게 전해 주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것은 변하고 다른 것은 변하지 않은 이유를 지금 알 수 있었다!
이름과 기억을 잊은 채 대주술을 펼친 꼬맹이가 그린 그림.
직선으로 뻗지 않고 빙글빙글 겹친 커다란 원, 뒤엉킨 나뭇가지가 그 이유였다.
이 그림은 평범한 그림이 아닌 세계의 진실을 담은 그림이다!
“나뭇가지, 세계가 엉망으로 뒤엉켜 있어서! 제대로 된 세계를 찾으려면 그 세계에서 불렸던 진짜 이름이 필요한 거지?!”
깨달음을 담아 묻는 순간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 아닌 침묵이 돌아왔다.
“…….”
“뭐야? 왜 아무 대답이 없어?!”
문득 시선을 내리자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ㅁ@?!]
특급 헌터가 짓던 이모티콘 표정!
눈과 입을 커다랗게 뜬 채 얼어붙어 있는 꼬맹이!
“야, 그 얼굴 뭔데?! 어, 잠깐 너 설마……?!”
무언가 번쩍 머리를 스치는 순간.
으아아아앗!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얼음이 풀리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랬던 거야?! 진짜 이름을 알아야 숲에서 나갈 수 있는 게 그래서였어?!”
깨달음의 탄성이!
“…….”
순간적으로 말문이 컥 막히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는 꼬맹이.
“어, 잠깐 뭔가 이상한데?! 뭐 까먹고 있는 거 같은데…… 방금 한 말 진짜야? 혹시 나한테 사기 치는 거 아냐?!”
꼬맹이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날아오는 순간 컥- 막혔던 말문이 뻥- 뚫렸다.
“사기? 야, 무슨 소리야! 이거 전부 다 방금 네가 한 말이잖아!”
“뭐? 내가 한 말이라고?! 정말로? 진짜로?! 확실해?!!”
꼬맹이는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로 손에 든 나무 막대기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세계? 주소?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와! 황당한 꼬맹이 녀석!”
천문석은 나무 막대기를 탁- 낚아채 바닥에 그려진 그림을 짚었다.
“이 큰 원이 뒤엉킨 나뭇가지! 가야 할 목적지!”
“가운데 있는 작은 원이 지금 우리가 있는 숲!”
“작은 원, 숲에서 큰 원, 뒤엉킨 나뭇가지로 이어지는 선이 바로 저거잖아?”
……
암반 위에 그어진 선명한 하얀 선을 가리키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맞아! 저거 내가 그은 금이야!”
“자, 이제 잘 봐봐! 금을 뛰어넘으면 이렇게 움직이는 거잖아.”
천문석은 나무 막대기를 움직였다.
쓰으으윽-
작은 원, 숲에서 시작해 선을 타고 이동.
큰 원, 뒤엉킨 나뭇가지에서 멈추는 나무 막대기.
“보이지 네가 그린 큰 원. 여기 나뭇가지가 엄청 많이 뒤엉켜 있잖아?!”
“맞아! 내가 그렸어!”
고개를 끄덕이는 꼬맹이.
바로 지금이 세계의 진실을 알리는 결정적 순간이다.
천문석은 꼬맹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했다.
“이 수많은 가지가 뒤엉킨 원에서 집이 있는 나뭇가지, 돌아갈 세계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
두 눈에 맺히는 당혹!
그러나 이 당혹은 길지 않았다.
“……!”
두 눈이 별처럼 빛나는 순간 당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당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찾아가면 돼!”
“그게 아니라 이름이잖아! 본질과 이어진 진짜 이름! 그걸 주소 삼아서 찾아가면 되잖아!”
“아앗! 주소! 그랬구나! 그래서 진짜 이름이 중요했던 거구나!”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깜짝 놀라 연신 탄성을 터트리는 꼬맹이.
“아니! 거꾸로잖아! 네가 말하고 내가 놀라야지?!”
화자와 청자!
말하는 사람과 놀라는 사람이 반대된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천문석은 다시 한번 외칠 수밖에 없었다.
“야, 이거 전부 다 네가 설명한 거잖아?! 그것도 방금!”
“뭐, 내가 설명한 거라고?! 정말로? 진짜로?! 확실해?!!”
“……!”
뭐지, 이 기시감은?!
스스로 설명하고 스스로 감탄하는 꼬맹이의 모습에 신뢰도가 뚝, 뚝- 떨어질 때 문득 질문이 튀어나왔다.
“야, 그럼 ‘진짜 이름’은 왜 부르라고 한 건데?!”
숨 쉴 틈도 없이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멋있어서!”
“……뭐?”
“이름 부르면서 넘어가면 멋있잖아!”
“…….”
“……멋있지 않아?”
꼬맹이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문득 떠오른 생각.
“혹시 펄쩍 뛰어서 넘어가란 것도……?”
“넘어갈 때는 당연히 펄쩍 점프해야지! 멋있잖아!! 앗! 나 이름 기억나고 넘어갈 때를 대비해서 점프 연습했는데 보여 줄까?!”
“…….”
“앗, 점프! 으아앗, 점프점프!!”
대답하기도 전에 기합을 지르며 폴짝폴짝 뛰는 꼬맹이.
“…….”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세계의 비의에 닿았다는 전율, 감동, 격정이 씻은 듯 사라졌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꼬맹이가 특급 헌터, 앙꼬 못지않은 황당하고 맥락 없는 꼬맹이라는걸!
그리고 마음속에 의심이 자라났다.
큰 원, 세계.
작은 원, 무한의 숲.
크고 작은 원을 잇는 선, 경계.
세계를 엉망으로 만든 나쁜 놈.
이름과 자리를 뺏긴 꼬맹이의 친구.
이 모든 게 자신의 생각일 뿐이라면?!
꼬맹이가 이 거대한 환몽을 펼친 게 아니라면?!
“어때?! 나 잘 뛰지! 꿈에서 깨서 숲으로 도망친 다음 매일매일 연습했어! 넘어갈 때 최대한 멋지게 넘어가야 하거든! 아아앗- 점프!”
꼬맹이가 기합을 지르며 폴짝폴짝 뛰는 매 순간 가슴에서 머리에서 의심암귀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 녀석 그냥 꼬맹이 아냐?!’
의심이 문장으로 떠오르는 순간 재빨리 머리를 털어 생각을 지워 버렸다.
‘지금은 의심할 때가 아니다!’
이름이 변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고.
과정이 황당해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 학생, 주부, 노인.
누가 달을 가리켜도 달은 달이듯!
말하는 사람이 변해도 그 안에 담긴 진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은 흙 속의 사금을 찾듯, 꼬맹이의 말에 담긴 진실을 찾는 거다!
“아앗- 점프! 아아앗- 점프점프!”
꼬맹이가 실시간으로 신뢰도를 깎아 먹을 때.
천문석은 파파팟- 불꽃이 튀도록 머리를 굴렸다.
‘꼬맹이의 말에서 숲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곧 맥락 없는 꼬맹이의 외침에서 숲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다!
경계를 잇는 선이 자신을 거부한 이유!
자신의 이름 ‘천문석’을 가짜 이름으로 판단한 이유를 깨달았다!
꼬맹이는 이미 말했다.
‘이름은 남이 불러 주는 건데…….’
여기에 답이 있다!
환몽에서 깨어나 숲을 떠나는 데 필요한 진짜 이름!
수없이 뒤엉킨 나뭇가지 중 가야 할 곳을 찾기 위한 주소!
진짜 이름, 주소의 조건은 다른 사람이 불러 주는 거다.
이세기를 이세기란 이름보다, 이 새끼, 더럽게 잘생긴 새끼로 더 많이 부른 것처럼.
타인이 자신을 불러, 세계에 각인된 이름이 경계를 넘는 데 필요한 진짜 이름이다!
천문석이란 이름이 먹히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천문석이라고 부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
깨달음의 순간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생계 전선에 몰린 중학생 때부터 키즈 카페 부점장을 지나 남중국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수없이 불렸던 이름!
‘바로 이거다!’
감이 오는 순간 바로 외쳤다.
“진짜 이름 기억났어!”
꼬맹이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폴짝폴짝 뛰며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야, 이번엔 진짜야!”
천문석은 당당히 이름을 외쳤다.
“알바!”
* * *
“아닌데.”
숨 쉴 틈도 없이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바로 준비했던 말을 이었다.
“밤송이 빛! 그걸로 확인하자!”
“에휴- 아예 이번엔 잔뜩 가져올게.”
콩콩콩- 깨끔 발로 달려가 낙엽을 활짝 펼친 양손 가득 가져와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움큼 집어 휙- 뿌리는 순간 둥실둥실 떨어지는 밤송이 빛!
천문석은 내력을 담은 손으로 흡(吸)자결의 요결을 펼쳤다.
휘이이이입-
오른손에 생겨난 와류가 진공청소기처럼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어? 어, 어어?! 어어어?!!”
꼬맹이가 말을 잇지 못할 때.
“와라!”
천문석은 잽싸게 오른손을 뻗었다.
휘이이이입-
진공청소기에 빨려드는 먼지처럼 단숨에 끌려오는 밤송이 빛!
‘된다, 되고 있다!’
“으아아앗-!”
꼬맹이가 입을 떡 벌리고.
휘이이이입-
밤송이 빛이 오른손에 닿는 순간.
“봤지?! 알바가 내 진짜 이름이다!”
천문석은 번개같이 손을 움켜쥐었다.
휘이이이잉-
이 순간 밤송이 빛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통과해 하늘 멀리 날아가 버렸다!
“……!!”
천문석이 경악으로 굳는 순간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 꼬맹이!
“힘내.”
“……알바도 아니면 도대체 뭐야……?! 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이름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왔다.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천문석.”
“……!”
어깨를 토닥이던 손길이 멈추고 단숨에 얼어붙는 꼬맹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
“천마! 이게 진짜 이름이구나!”
반색해서 외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
꼬맹이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동시에 번개같이 몸을 돌렸다.
“야, 뭐야?! 진짜야 아니야?! 말해 줘야지!!”
“흐흣, 흐흐흫-”
순간 어깨가 들썩이고 잔뜩 억누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설마, 설마? 설마?!’
천문석은 돌돌 말린 담요를 번쩍 들어 꼬맹이의 얼굴을 봤다.
우헤헤헤헼헤헤헼-
순간 풍선이 빵 터지듯 웃음과 외침이 터져 나왔다.
“천마래! 우히힛히힠-”
“지존이래! 우히힣히킼-”
자지러지는 웃음과 들썩이는 전신!
꼬맹이는 입을 가린 채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천마(天魔).
딱밤으로 백보신권을 뚫고 장경각주의 이마를 깨트리고!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빛으로 소림 방장이 뒷목을 잡고 넘어가게 만들었다!
‘뭐? 무명 못 밝혀? 어? 지혜의 륜도 못 띄운다고?! 아니 반백 년 수행했는데 이게 안 된다고?! 난 할 줄 아는데!! 카캬카캌-!!’
말 몇 마디로 삼봉칠룡(三鳳七龍)을 멘붕에 빠트리고 발끈해 덤벼두는 정파 무림의 후기지수를 남녀 구분 없이 데굴데굴 굴려 해체 시켰다!
‘너희 봉황(鳳凰)에서 봉(鳳)은 수컷이고 황(凰)은 암컷인 거 아냐? 삼봉칠룡(三鳳七龍)? 삼봉(三鳳)? 풉- 삼봉! 푸풉- 삼봉이래! 카캬카카캌-!!’
무림의 그 누구도 앞을 막지 못했다.
무공, 말싸움, 잔머리, 개싸움, 불법, 도교, 유학의 극에 달한.
구파일방을 필두로 하는 정파 무림 모두가 이를 갈던 무림 공적!
정파 무림뿐만이 아니다!
사파의 거목, 사자련주의 울화통을 터트리고!
초절정 고수, 마도 17문의 가주들이 전전긍긍 강제 폐관 수련하게 만들고!
마도 18문의 모든 무인에게 이름과 소속, 직위가 새겨진 명판을 목에 걸고 다니게 했다!
인성을 상실한 마인조차 공포에 떨며 경계를 넘어 도망치고!
곶감을 쥐여 줘도 엉엉 울던 아이가 이름만 들어도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존재!
천하십절의 검절!
천검 이세기가 무림 맹주가 될 때까지 그 누구도 막지 못한 무림의 재앙!
그게 바로 하늘에 닿은 마(魔)!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천문석이다!
그렇다.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 천마의 이름을 듣고 꼬맹이는 웃고 있었다.
우히헤히헤힛헷켘-
완전히 빵 터져서 눈물이 흐를 정도로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마도 18문의 마인이라면 당장 전법륜인 딱밤 20연타부터 날렸을 거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꼬맹이는 무의식중에 이 거대한 환몽을 펼친 환몽의 주인이다!
“……!”
천문석은 당장이라도 터지려는 분노를 삼키고 입을 열었다.
“하, 하하- 그렇게 재밌냐……?”
“우히히잌- 완전 웃겨!”
“하하하- 소림, 아미에선 뒷목부터 잡던 이름인데 그걸 듣고 넌 빵 터졌구나……?”
“우헤헤헤헼- 천마라잖아! 천마! 이름이 천마래!”
“하하- 천마가 그렇게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웃긴 이름이구나……?”
“우히에히에헼-! 엄청 웃겨! 지존이라잖아!”
……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꼬맹이.
참을 인(忍)!
참을 인(忍)!!
참을 인(忍)!!
……
천문석은 수십 개의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기며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웃고, 대답 좀 해 봐. 어때 진짜 이름 맞아?”
“한 번 더. 우히히힠- 한 번 더. 우헤헤헤헼-”
“한 번 더 말하라고?”
배를 잡고 웃느라 고개만 간신히 끄덕이는 꼬맹이.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꼬맹이는 다시 한번 빵 터졌다.
“우히히힛힠- 지존이래! 우헤헤헷헼- 천마가 이름이래! 지존 천마! 우히헷히헷힠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