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26화>
“맞아. 나랑 같은 사람이야!”
‘가능성이 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질문했다.
“이름이…… 아니지! 이름은 당연히 모르지! 특징을 설명…… 그림! 맞아 그림 그려서 보여 줄게! 종이가 어디에 있더라?”
공구 벨트에서 펜을 꺼내고 종이를 찾아 주머니를 뒤질 때 앞치마에서 튀어나온 책에서 찢어 낸 듯한 종이!
천문석은 이 종이에 전생의 스승님의 모습을 그렸다.
어렵지는 않았다.
스승님은 잊을 만하면 꿈속에 나타나 딱밤을 날리셨으니까!
순식간에 특징을 살린 그림이 완성됐다.
고승처럼 정광이 번뜩이는 눈!
신선 같은 하얀 수염과 검은 머리카락!
허름한 승복이 아니라면 전혀 스님 같지 않은 스님!
스승님을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이라면 보는 순간 알아볼 그림이다!
천문석은 심호흡하고 종이를 내밀었다.
“네 친구, 혹시 이렇게 생겼냐?”
꼬맹이는 힐끗 종이를 보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 내 친구랑 하나도 안 닮았는데?”
“야, 자세히 봐봐! 나이는 다를 수 있어! 점, 부적, 수맥 찾기, 야바위, 사냥, 요리 뭐든지 잘하고. 성격이 지랄 맞아서 툭하면 지팡이랑 딱밤을 날리는 사람이야! 특히 지랄 맞은 성격에 주목해야 해!”
“음. 으으음-.”
꼬맹이는 미간을 좁히고 종이를 번쩍 들어 달빛, 랜턴, 모닥불에 비쳐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확실히 아닌 거야?”
천문석이 다급히 묻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겠는데.”
“그게 뭔 소리야! 눈이랑 입가, 특징 위주로 자세히 봐봐!”
“그게 아니라. 그림을 너무 못 그려서 몰라보겠어.”
“뭐? 야, 이 정도면 잘 그린 거지! 그림이 자체가 아니라, 느낌이랑 분위기를 확인…….”
반사적으로 외치는 순간 번쩍 머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반대로 하면 된다!
자신이 그리고 꼬맹이가 확인하는 게 아니라, 꼬맹이가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확인하는 거다!
“그렇지! 네가 친구 모습을 그리면 되겠네!”
“앗! 맞아! 나 그림 엄청엄청 잘 그리거든! 내가 그린 그림 보고 다람쥐, 곰, 여우, 늑대……! 친구들이 완전 똑같다고 했다니까!”
“좋았어! 바로 그려라!”
천문석은 꼬맹이에게 펜을 건네고 종이를 뒤집어 테이블에 놓았다.
착-
펜을 받는 순간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놓인 빈 종이를 지그시 바라보는 꼬맹이.
“……!”
극과 극은 통하는 법!
무의 극에 올랐던 전생 천마는 알 수 있었다!
종이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전해지는 느낌!
머릿속에서 완성한 그림을 단지 화폭에 옮겨 낼 뿐이라는 거장의 품격이 느껴졌다!
“으앗!”
기합과 함께 일필휘지!
번개같이 펜을 움직여 단숨에 그림을 그려 냈다!
“휴- 힘들었어! 이거야, 내 친구랑 완전 똑같아!”
꼬맹이는 쓱- 이마의 땀을 훔치며 종이를 내밀었다.
천문석은 잽싸게 종이를 받아 랜턴에 비췄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때? 아는 사람이야?”
꼬맹이가 묻는 순간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 그림이 네 친구라고?”
“맞아!”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꼬맹이.
“완전 똑같다고?”
“맞아! 완전 똑같아!”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꼬맹이.
“…….”
천문석은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봤다.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원과 점으로 이뤄진 그림을!
[@[email protected]]
“……!”
순간 마음속 외침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야, 너 그림 잘 그린다며?! 이게 뭐야! 이걸로 어떻게 사람을 알아봐! 그림 완전 못 그리잖아!”
“뭐? 내가 그림을 못 그린다고? 그럴 리가?! 난 뭐든지 잘한단 말이야! 삼, 삼은 구! 앗! 그렇지! 다람쥐!”
꼬맹이는 진심으로 충격받은 얼굴로 다람쥐를 불렀다.
킥-?
“다람쥐! 이 그림. 내 친구랑 닮았어, 안 닮았어?!”
망태기에 앉아 나무 열매를 갉아 먹던 다람쥐의 대답이 돌아왔다.
킼, 키키킼킼-!
“다람쥐도 완전 똑같다잖아! 나 그림 엄청 잘 그린단 말이야! 다시 보여 줄게!”
번쩍 펜을 들더니 파파팟- 다시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꼬맹이.
“다람쥐, 곰, 여우, 늑대……! 봐봐! 완전 똑같잖아!”
천문석은 꼬맹이가 당당히 내민 종이를 봤다.
[ˁ῁ˀ]
[ʕ•ᴥ•ʔ]
[ↂᴥↂ]
[◉ᴥ◉]
……
“……!”
순간 말문이 컥 막혔다.
하늘다람쥐, 곰, 여우, 늑대……!
십여 개체의 동물 요괴들을 그려낸 그림.
묘하게 비슷한 그림에 더 어이없고 황당했다.
‘이 꼬맹이는 특급 헌터 이상의 강적이다!’
깨달음의 순간 가장 확실한 방법이 떠올랐다.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
“친구 어디 있는데? 같이 가서 확인…….”
“안 돼. 내 친구는 별이란 말이야!”
“별? 뜬금없이? 맥락 없이 저 하늘에 별이라고?!”
“맞아. 별! 별은 해가 뜨면 부끄러워서 안 나오잖아! 내 친구도 부끄럼이 많아서 못 만나!”
휙휙, 휙휙휙-
고개를 좌우로 젓는 모습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느껴졌다.
이상한 꼬맹이.
이름을 잊은 존재가 모여드는 숲.
그리고 이름을 기억하는 자신이 이 숲에 오게 된 이유.
이 모든 것의 연결고리로 의심되는 이상한 꼬맹이의 친구!
얼굴만 보면 스승님인지 확인할 수 있는데 얼굴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
‘다른 방법은 없을까?!’
빠르게 머리를 굴릴 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스승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하늘에 선악, 분별이 없듯 이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이유가 없더라도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다!
무한의 숲과 이상한 꼬맹이 그리고 자신.
이 셋을 잇는 연결고리에 전생의 스승님이 관련됐는지 확인할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이다.
스승님은 불운을 몰고 오는 재앙승!
괜히 얽히면 개고생하다 딱밤을 맞을 뿐이다!
지금 중요한 건 장철과 마혁진을 찾아, 이 무한한 숲에서 나가는 거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앞에는 숲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꼬맹이가 있었다.
필요한 건 오직 하나, 이름뿐!
천문석은 아직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꼬맹이에게 확인했다.
“이름 기억하면 여기서 이 숲에서 나갈 수 있는 거 맞지?”
“맞는데. 이세기는 아닌데. 그거 진짜 이름 아닌데…….”
힐끗 다람쥐를 보며 얼버무리며 말을 잇는 꼬맹이.
“괜찮아…… 있는 거지. 어떻게 사람이 완벽해. 그렇지?”
꼬맹이가 대충 얼버무린 말이 무엇인지 바로 감이 왔다.
‘괜찮아. ‘속을 수도’ 있는 거지!’
“야, 속은 거 아냐! ‘이세기’는 내 별호 같은 거야! 당연히 진짜 이름은 따로 있지!”
“앗! 그랬던 거야?! 역시 그렇지! 엄청 맛있는 밥도 줬는데, 속았을 리가 없지!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꼬맹이는 반색해서 외쳤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이 숲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아내는 거다!
천문석은 꼬맹이를 향해 전생 천마와 현생 알바의 진짜 이름을 말했다.
“내 이름은 천문석이다!”
순간 반색했던 꼬맹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시선을 피했다.
“야, 왜 또?!”
“아닌데…… 진짜 이름 아닌데…….”
“야! 이건 진짜 내 이름 맞아! ‘천문석’ 내가 직접 지은 내 이름 맞아!”
“아닌데…… 이름은 남이 불러 주는 건데…….”
꼬맹이가 힐끗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그렇다. 부모 없이 태어나는 아이가 없듯 이름 역시 남이 지어 주고 불러 주는 거다.
즉, 천문사를 물려받아 최고의 알짜 도관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 천문…….
“어?”
순간 밥 먹기 전 민들레 때와 같은 깨달음이 왔다.
전생의 이름 천문석(天問石)은 천문사(天問寺)에서 따서 자신이 지었다.
그러나 현생의 이름 천문석은…….
“야, 천문석 우리 엄마, 아빠가 지어 준 진짜 내 이름 맞아!”
“아니라니까! 그거 진짜 이름 아냐!”
“아니, 내가! 본인이! 진짜라는데 왜 네가 아니라는데? 이유가 뭔데?! 도대체 판단 기준이 뭐야?!”
순간 꼬맹이는 작은 손을 번쩍 들고 말을 쏟아 냈다.
“난 들으면 알 수 있어!”
“뭐든지 잘하거든! 칠, 팔에 오십육!”
“당연히 이름도 들으면 진짜인지 알 수 있어!”
꼬맹이가 확신에 찬 얼굴로 외치는 순간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야, 뭘 들으면 알아! 너 민들레도 속았잖아?!”
“으아앗!”
깜짝 놀라는 꼬맹이.
“뭐든지 잘한다고? 13 곱하기 13은?!”
“어어엇?! 손가락이 모자라!”
손가락을 세다 당황하는 꼬맹이.
“그리고 그림! 이 그림도 하늘다람쥐, 곰, 여우, 늑대……! 동물 요괴들이랑 하나도 안 닮았…… 아, 젠장 묘하게 닮았네…… 그림은 취소! 하여튼 천문석 내 이름 맞다니까!”
“아니야! 내가 잘 알아! 그거 진짜 이름 아니라니까! 앗! 그렇지! 잠깐만 보여 줄게!”
꼬맹이는 답답하단 듯 가슴을 두들기다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담요에 돌돌 말린 몸으로 콩콩콩 숲으로 달려갔다.
“야, 어디 가는 거야?”
“금방 찾아올게!”
호수와 숲의 경계를 달리는 꼬맹이.
“어디 있지? 어디에 있지?!”
“야, 뭐 찾는 거야?”
“잠깐만! 여기 있을 거야!”
꼬맹이는 쪼그려 앉아 나무 아래 쌓인 낙엽을 쓱쓱- 해치다 환호성을 터트렸다.
“찾았다!”
그리고 낙엽을 양손으로 들고 콩콩콩 돌아와 불쑥 내밀었다.
“이거야!”
“낙엽?”
“아니! 낙엽 말고! 숨어 있잖아! 잘 봐봐!”
“낙엽 말고 아무것도 없잖아. 빈손…….”
꼬맹이 손에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흐릿한 빛이 나타났다!
요마괴이 무엇과도 다른 영체와 실체, 생명과 물질 사이에 걸친 밤송이 같은 빛이!
“이게 무슨……?!”
“얼른 이름 불러봐! 진짜 이름이면 밤송이 빛! 얘가 찰싹 달라붙어!”
뿌연 빛을 휙 던지는 꼬맹이.
밤송이처럼 삐죽빼죽 가시가 솟은 뿌연 빛이 둥실 떠올라 빙글빙글 몸 주위를 돌았다.
“천문석.”
위이잉-
이름을 말하자마자 몸에서 멀어져 꼬맹이에게 이동하는 밤송이 빛!
“봤지? 봤지! 안 붙잖아! 진짜 이름 아니면 안 붙어!”
꼬맹이는 당당히 외쳤다.
‘정신없는 꼬맹이의 말만 믿을 수 없다!’
천문석은 꼬맹이를 가리키며 불렀다.
“특급 헌터!”
위이잉-
밤송이 빛은 꼬맹이를 떠나 하늘다람쥐에게로 이동했다!
마치 특급 헌터가 꼬맹이의 이름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처럼!
“진짜였던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말했잖아! 오, 팔에 사십! 나는 보면 알 수 있다니까!”
“어떻게 본 것만으로?!”
“다람쥐! 네가 말 좀 해 줘! 나 완전 잘 알지?”
꼬맹이는 다람쥐에게 외쳤다.
킥, 키키킼키-?
그러나 하늘다람쥐는 빙글빙글 주위를 회전하는 빛에 완전히 시선을 뺏긴 상황!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리고 목소리가 나왔다.
“니케.”
위이잉-
곧 하늘다람쥐에서 멀어지는 밤송이 빛!
“……!”
너무나 명확한 증거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1. 밤송이 빛은 가짜 이름을 말하면 멀어진다.
2. 이상한 숲의 하늘다람쥐는 니케가 아니다.
3. 즉, 가짜 이름 ‘니케’라고 부르면 멀어진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다.
첫 번째. 꼬맹이를 ‘특급 헌터’라고 부르자 빛이 멀어진 것!
그러나 이렇게 연이은 우연이 일어날 리 없었다.
두 번째. 하늘다람쥐를 ‘니케’라고 부르자 다시 빛이 멀어진 것!
가짜 이름으로 부르자 진짜로 빛이 멀어졌다!
방금 천문석이라고 스스로의 이름을 밝혔을 때처럼!
이 모든 증거를 합친 결론은?
“내가 천문석이 아니었다고?!”
생각지도 못한 결론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오고 당당한 외침이 들려왔다.
“봤지? 봤지?! 내 말이 맞지?! 가짜 이름 부르니까 밤송이 빛이 멀어지잖아! 천문석 아냐! 다람쥐 이름도 니케……!”
꼬맹이가 외치는 순간 멀어지던 밤송이 빛의 방향이 변했다.
둥실-
하늘로 날아올라.
찰싹-
수직으로 떨어져 달라붙었다.
나무 열매를 손에 쥔 하늘다람쥐 꼬리에!
“……!”
“……!”
…… -!
천문석, 꼬맹이, 하늘다람쥐 셋 모두 얼어붙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꼬맹이와 하늘다람쥐의 듣는 순간 자동으로 뜻이 이해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앗, 아, 으아앗! 으아아앗?!”
‘다람쥐! 너 ‘니케’였어?!’
킥킼, 키키키키킼키킼-?!
‘내 이름 ‘니케’였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