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19화>
…… -!
퐁퐁이는 문득 깨달았다.
아무리 열심히 지느러미를 열심히 휘저어도 왕사탕에 닿지 않는다!
구으읏-?!
‘어떡하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친구가 보이고 번쩍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반투명한 지느러미, 영체!
지금 자신과 친구는 꿈을 꾸고 있다!
그렇다면 왕사탕을 가진 친구도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구으으으으-
결심하는 순간 뿔피리 소리를 닮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포그르르르르-
수천 개의 물방울이 쏟아져 기절하듯 잠든 천문석을 휘감았다.
그리고 수천 개의 물방울이 터져 나가는 순간, 천문석의 몸 전체가 물 위에 비친 상처럼 흐릿해졌다.
순간 가슴에 머리를 비비던 퐁퐁이와 용용이의 영체는 물속으로 다이빙하듯 투명해진 가슴 안으로 퐁당 빠져들어 갔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심상 공간에 도착했다.
태양의 빛과 열기가 이글이글 쏟아지고!
혼돈이 거대한 태풍처럼 몰아치는 심상 공간!
구읏, 구으읏-?!
히잇, 히히잇-!?
퐁퐁이와 용용이는 혼돈의 태풍에 휩쓸려 소용돌이 속 낙엽처럼 빙글빙글 회전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그러나 퐁퐁이는 온갖 위험이 널린 공허의 바다에서 허공도로 내려온 하늘 고래의 후손!
혈통을 타고 내려오는 본능대로 움직였다.
포아아아앙-
퐁퐁이는 잽싸게 친구를 낚아채, 몰아치는 혼돈의 폭풍을 거슬러 날아올랐다.
휘이이이잇-
순간 퐁퐁이 등에 찰싹 달라붙은 용용이의 각성력이 움직였다.
혼돈의 태풍에 뻥 구멍이 뚫리고 아득한 천공에 자리한 이글거리는 태양이 나타났다!
퐁퐁이와 용용이는 보는 순간 깨달았다.
‘왕사탕이다!’
‘왕사탕이다!’
포아아아아앙-
로켓 비행으로 혼돈의 태풍에 뻥 뚫린 구멍을 단숨에 지나 태양에 닿는 순간.
할짝-
퐁퐁이와 용용이는 주저하지 않고 왕사탕, 천강흔 랜덤 박스 태양을 핥았다.
…… -!!
…… -!!
벼락 맞은 듯한 전율이 퐁퐁이와 용용이의 영체를 휘감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감각의 폭풍이 몰아쳤다.
퐁퐁이와 용용이의 울음소리가 심상 공간에 울려 퍼졌다.
구으으으으-
하늘 고래의 뿔피리 소리가 하늘로 뻗어 나가고.
휘이, 휘이이-
흰돌고래의 바람 소리가 폭풍 속으로 퍼져 나갔다.
퐁퐁이와 용용이의 노랫소리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는 순간.
하늘 고래 퐁퐁이의 영체에서 염(念)의 안개가 쏟아져 내렸다.
아직 어리지만, 퐁퐁이 또한 하늘 고래.
염의 안개에는 공허의 바다를 유영하는 하늘 고래를 허공도로 부른 이의 아득한 기원이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하리라.’
허공도(虛空島).
이름 그대로 텅 빈 산맥을 풍요로 가득 채운 기원이 천문석의 심상 공간에 쏟아졌다.
기원이 담긴 념의 안개가 심상 공간에 몰아치는 혼원지기(混元之氣)에 닿는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구름이 모여들고 비가 쏟아져 내렸다.
빗속에서 싹이 트고 풀과 나무가 쑥쑥 자라 순식간에 숲이 됐다.
무성한 숲에 불어온 바람이 나뭇잎과 씨앗을 품고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이 바람을 따라 염의 안개가 퍼져 나가며 숲이 생겨나고 모든 것이 변화했다.
따뜻한 태양.
물기를 머금은 바람.
돌연 쏟아지는 소나기.
자박거리는 모래사장.
빗속에 섞인 흙냄새.
수줍게 머리를 내민 새싹.
부드럽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녹색의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
감정도 마음도 없는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느껴지고 미소 짓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가 웃는 순간 따라 웃게 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생명은 그 자체로 경이롭기에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웃게 된다.
즐거운 웃음이 울려 퍼지는 곳에 생명이 깃들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것이 아득한 기원이 담긴 염의 안개가 쏟아지고.
퐁퐁이와 용용이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심상 공간에 숲이 생겨나는 이유였다.
그리고 마지막 변화가 시작됐다.
할짝할짝할짝-
퐁퐁이와 용용이가 신나게 핥은 천강흔 랜덤 박스 태양의 열기와 빛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림자조차 지워 버리는 강렬한 빛에 음영이 생겨나고, 이글이글 살을 태우던 햇볕은 온화하게 몸을 감싼다.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혼돈의 태풍이 사라진 자리에 숲이 나타났다.
심상 공간 안에는 꿈, 온화한 달빛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밤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틱, 틱, 틱-
이 고요한 밤의 숲에 너무나 거대해서 오히려 들리지 않는 초침 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
틱틱, 틱틱틱틱-
이때 현실에서도 초침 소리가 빠르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느리고 빠르게 서로 다른 속도로 울려 퍼지는 초침 소리.
현실에서 초침 소리가 울리면 딜레이를 두고 심상에서 초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틱틱, 틱틱틱-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 초침이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순간 현실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찰칵-
깊숙이 눌렸던 빨간 용두가 튀어 오르고.
파스스스슥-
회중시계에서 가닥가닥 빛이 뻗어 나왔다.
이 빛이 경계를 넘어 왕사탕을 핥는 퐁퐁이와 용용이의 몸에 닿는 순간, 빛의 해일이 되어 퍼져 나갔다.
천문석, 마혁진, 장철.
오리배와 미궁 악어 7호까지.
모두가 빛의 해일에 삼켜졌다.
이 순간 가시처럼 솟구친 빛이 허공에 마력 회로를 그려 내고.
찰나의 순간 완성된 마력 회로가 오리배 악어를 완전히 감싸고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2004년 해운대 앞바다에서 일어난 일이 일어났다.
마력, 회로가 밤을 환히 밝히는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천둥소리에 하늘이 북처럼 요동치고.
번쩍-
하늘로 솟구친 한 줄기 섬광이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1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 빛이 사라졌을 때 텅 빈 광고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광고판이 서 있는 옥상에 남아 있는 건 바람을 막을 잡동사니 움막과.
바닥에 아이소핑크를 깔고 침낭에 들어가 쿨쿨 잠든 소녀, 이세영 선생님뿐이었다.
오리배 악어와 세 사람, 두 각성 동물은 2000년 3월 1일에 존재했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러나 깜깜한 서울 시가지에서 1분 동안 밤을 낮처럼 밝힌 빛을 본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그 모두의 시선이 빛이 터져 나온 장소, 서초구의 한 건물 위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알박기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밤을 지새우던 임수정도 있었다.
“대장! 저 섬광?”
“서초! 선생님이 계신 건물 같은데?!”
“당장 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다급한 외침에도 임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계획대로 여의도로 움직인다. 저곳은 안전하다.”
임수정은 섬광이 터져 나온 방향을 바라보며 확신을 담아 말했다.
‘저곳에는 이세기가 있으니까!’
그리고 3일 후.
임수정과 정찰조는 서초구의 건물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못 알아봤지.”
임수정은 탄식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말투와 인상의 이세기!
여의도에 도착한 후에야 불현듯 이세기가 누군지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움직이는 시선.
손에는 철사와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안전 장갑이 있었다.
2000년 1월 1일.
서울에 처음 괴물이 나타난 그날 밤.
갑자기 나타나 안전 장갑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사라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이세기였다.
“이세기, 너였냐. 아니, 넌 내 얼굴도 봤잖아? 그런데 어떻게 못 알아 봐?!”
황당함에 탄식하는 순간 정찰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벌써 3일이나 지났는데 아직 있을까요? 게다가 암석 트롤까지 나왔던 곳인데.”
“그래서 이렇게 소수로 움직이잖아? 멀리서 확인만 해도 되니까 금방 끝날 거다.”
“그보다 대장. 여의도 거점 괜찮을까요? 지금 모인 사람 수만 해도 백 명이 훌쩍 넘는데. 아무래도 유지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임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3일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의도에 도착하고 주위를 확인하는 순간 바로 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확 불어난 한강 수위로 여의도는 섬이 된 상태.
섬이 된 여의도에는 서울에 남은 공무원과 방송 관계자들, 시민들이 대피해 있었다.
문제는 여의도에 사람들 모이자 몬스터들도 모여들었다는 것.
바로 전투 준비를 시작했지만, 전투는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다.
갑자기 한강에 용권풍이 치솟고, 그 속에서 튀어나온 물로 이뤄진 가오리, 오징어, 고래, 상어가 모여든 몬스터를 향해 쏟아졌다.
마치 화난 꼬맹이가 물건을 던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결과, 사방에서 몰려들던 몬스터들은 말 그대로 으깨졌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굳어 있기도 잠시, 바로 용권풍의 정체가 떠올랐다.
‘이세기가 말한 각성 동물 용용이다!’
모습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수와 몬스터만 박살 내는 물로 이뤄진 고래와 상어의 모습에서 뽀미와 같은 인간에 대한 호의가 느껴졌다.
즉시 여의도를 증간 거점 삼아 서해, 부산, 제주도로 이어지는 보급로를 만들기로 했다.
여의도 거점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식량이었다.
이때 생각난 사람이 제주도에서 농사를 크게 짓고 있는 아버지의 큰 누나, 큰고모였다.
그 순간,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그 제주도 큰고모라는 분이 도와주실까요? 아무리 농사를 크게 지어도 식량을 보내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임수정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 지금 농사짓는다고 땅 사고 그러는 거, 전부 다 큰고모 때문이라니까. 걱정할 거 없어. 그리고 제주도는 몬스터도 없다잖아?”
“아무리 제주도가 안전해도 지금 같은 시기에 남을 돕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젓는 모습에 내심 웃음이 터졌다.
지금 큰고모를 만나지 못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다.
평생을 쉴 새 없이 일하고 농사를 짓고 땅을 늘리신 큰고모는 사람을 도와주는 게 일상이신 분이다.
맺고 끊는 게 분명하고, 이재와 숫자에 밝고, 사람을 다루는 데도 능숙하셨다.
그냥 농사를 크게 짓는 수준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이 미치는 사람만 수만 명.
처음 제주도에서 큰고모를 만났을 때 봤던 커다란 농장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면.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재벌 회장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큰고모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절대 그냥 넘기시는 분이 아니었다.
임수정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우리 큰고모, 임옥분 여사님은 걱정할 거 없으니까. 얼른 확인하고 돌아가자!”
임수정과 정찰조는 폐허가 된 도시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 잔해를 지나 쭉 뻗은 도로에 진입하는 순간 목적지가 보였다.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옥상에 세워진 건물.
건물을 보는 순간 모두는 입을 쩍 벌렸다.
이 건물 주위에는 3일 전에는 없던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
자동차, 버스, 콘크리트 잔해가 차곡차곡 쌓여 만든 5층 건물 높이의 장벽이!
“장벽은 뭐야?”
“원래 있던 거냐?”
“그럴 리가! 분명 저런 장벽은 없었는데?!”
“3일 만에 저 정도 규모의 장벽을 세웠다고?!”
“아니 그냥 입구랑 창문만 막으면 되는데 뭔 삽질이야?”
‘삽질!’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임수정의 머릿속에서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세기!
그렇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5층 장벽이 아닌 문과 창을 막을 거다.
쉬운 방법을 두고 어려운, 아니 삽질을 할 사람이라면 그 녀석뿐이다.
그리고 이세기가 삽질을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별 쓸모 없다고 생각한 안전 장갑이 수많은 사람의 손을 지켰던 것처럼!
“전투 준비.”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바짝 긴장해 사주 경계하는 정찰조.
임수정은 성큼 앞으로 나서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야, 거기 있냐?!]
확성기 외침이 울려 퍼지고 10초 남짓, 한 사람이 장벽 너머 창문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두더지 게임의 버튼을 누른 것처럼 창문과 옥상, 높게 쌓인 장벽 곳곳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마지막으로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앗! 여기예요! 여기 사람 있어요!”
헐렁한 군복에 방탄 헬멧과 소총.
눈에 익은 군복 차림의 소녀가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 선생님?”
임수정이 이세영을 알아보는 지금, 2000년 3월 1일에 뿌려진 인과의 조각들이 하나로 맞물렸다.
노화 역전 각성한 검은 폭풍 이세영.
임옥분 여사의 조카이자 1세대 헌터 임수정.
뽀미 안전지대와 제주도를 잇는 여의도 거점.
동족의 울음소리를 찾아 한강을 샅샅이 뒤지는 용용이.
……
그러나 이 모든 인과의 조각을 뿌린 사람, 천문석은 이곳에 없었다.
천문석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 퐁퐁이와 용용이와 함께 다시 한번 세계의 나무를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