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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15화 (1,11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15화>

“어떻게 잘 끝났네.”

천문석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주위를 돌아봤다.

이세영 선생님의 각성과 노화 역전.

임수정이 만들 여의도와 부산을 잇는 해상 보급로.

미래에서 현재로 전해진 무엇을 해야 할지 적힌 4번 쪽지까지!

한나절도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해결됐다.

이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때였다.

워커 실트가 건네준 이 시계로!

천문석은 잡낭 안에서 워커 실트의 회중시계를 꺼냈다.

멈춰버린 회중시계.

그러나 이제는 워커 실트가 말한 완행의 의미를 알았다.

2020년 남일도.

2004년 부산.

2000년 3월 1일 서초구.

완행으로 도착한 시간과 장소마다 인연이 닿은 사람들을 만나 인과를 이었다.

2004년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빨간 버튼을 눌렀을 때 2000년 3월 1일 이곳으로 왔듯이, 빨간 버튼을 누르면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게 된다.

그 목적지가 어디일지도 감이 왔다.

인연이 닿은 사람이 있는 곳!

부산과 이곳에서 이은 인과가 시작되는 때다.

장철 헌터의 바람과 자신의 기원의 대상, 장세린이 있는 곳!

2000년 1월 1일,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고 장세린의 운명이 변화한 날이 목적지다!

한 번, 길어도 두 번이면 목적지에 도착하고 한경석의 가출에서 시작한 긴 이번 사건도 끝난다.

문득 이 모든 난장판이 시작됐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남일도에는 2개의 빛의 기둥이 솟았고.

자신과 파티마, 김태희 대령은 셋으로 흩어져 움직였다.

김태희 대령은 보트를 지켰고.

자신은 남일도 동쪽으로 향했고.

바람검 파티마는 서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던전 2개가 열리고 둘로 나뉜 파티가 던전에 들어갔다.

자신과 장철, 마혁진.

한경석과 파티마.

“경석이랑 파티마는 잘하고 있을까?”

헤어진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몇 달은 지난 듯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다시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임수정이 멀리 잔해 너머로 사라지며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마주 손을 흔들고 빌딩 옥상을 향해 말했다.

“염동. 이제 내려와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염동 대협.

피핏-

마혁진은 단숨에 공간을 뛰어넘어 지상에 내려서는 즉시 외쳤다.

“야! 나비효과 일어난다며?! 나한테는 숨어 있으라더니 쟤랑 이렇게 오래 이야기해도 되는 거야?! 보니까 막 정보도 주는 것 같던데? 이거 괜찮은 거야?!”

“…….”

천문석은 마혁진이 쏟아 내는 이야기를 말없이 들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 목적지, 세기말 대한민국에 홀로 남게 될 염동 대협 마혁진의 이야기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 녀석이 이유 없이. 아니지, 이유가 있어도 혼자 남을 놈이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미래의 자신이 만든 4번 쪽지에 시선이 갔다.

그러나 쪽지 안에는 염동 대협 마혁진이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은 이유는 없었다.

단지 세기말 대한민국에 남게 될 염동 대협에게 4개의 쪽지를 만들어 전하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러나 추론은 가능했다.

1, 2, 3, 4번 쪽지의 내용을 모두 종합하면 염동 대협 마혁진은…….

‘버리고 온 건가? 불의의 사고? 혹시 동전 던지기로 남을 사람을 정했다면?!’

그러나 그 무엇도 이거다! 하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버리고 온 거라면 임수정을 통해 쪽지를 전하는 게 아니라, 오리배 악어가 옥상에 도착하는 순간 염동포탄이 쏟아졌을 테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풀리지 않는 의문에 마음속으로 묻는 순간 마혁진의 고함이 정신을 깨웠다.

“야, 이제 어디로 가냐니까?!”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다 계획대로다! 바로 움직이자!”

“움직여? 뭐를?”

천문석은 이세영 선생님에게 다가가 이마에 놓인 흑전을 회수하고 어깨로 둘러업었다.

“우선 오리배 악어 있는 저 건물 옥상으로 돌아가자. 우리 다시 이동해야 해.”

“이동하는데 건물 옥상은…… 설마 다시 시간을 이동한다고! 여기가 목적지 아니었어?!”

“어, 아냐. 한 번, 어쩌면 두 번 정도 더 이동할 거 같아. 움직이자.”

“또 이동해야 한다고? 아니 뭐가 이따위야. 사건이 끝나지를 않아…….”

마혁진의 탄식을 뒤로하고 암석 트롤을 지나 텅 빈 광고판이 있는 건물을 보는 순간, 번쩍 떠오르는 게 있었다.

“……!”

암석 트롤과 몬스터 무리가 쓸고 지나간 건물 주위는 휑했다.

그러나 2004년 부산 칠성파 빌딩에서 만난 이세영 소장님은 분명히 말했다.

‘……건물을 포위했던 마수와 몬스터는 모조리 박살 났고! 건물 주위에는 철근, 시멘트, 자동차가 뒤엉킨 거대한 장벽이 있었어요!’

거대한 장벽이 없다!

“아차!”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마혁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뭔데? 이젠 네가 탄성만 터트려도 불안해! 빨리 말해!”

“장벽! 깜빡했어! 저 건물 주위에 장벽 세워야 한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몬스터 다 처리했잖아? 그리고 떠날 거라며? 떠날 건물에 장벽은 왜 세워?!”

마혁진은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장벽을 세우는 이유는 간단했다.

2004년 이세영 소장님이 기절했다 깨어났을 때 ‘거대한 장벽’을 봤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직접 수많은 인과를 이었던 자신은 100%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장벽을 쌓을 염동력자, 마혁진은 황당해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입을 털었다.

“야, 장벽이라고 해도 거창한 거 아냐. 간단한…… 그래, 그냥 담장이라고 생각하면 돼!”

“주위에 철근, 콘크리트 잔해. 자동차, 버스, 화물차 널려 있잖아? 저걸로 대충 블록 쌓듯이 쌓으면 된다!”

“현존 최고의 염동력자 염동 대협 마혁진이라면 1시간. 아니 30분이면 끝난다!”

“자 얼른 해치우고 밥 먹고 넘어가자! 난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장철 헌터 확인하고 식사 준비할게.”

“아니, 떠난다며 갑자기 무슨 장벽을 세운다는 거야…… 하아-”

마혁진은 깊은 한숨과 함께 염동력을 끌어올리며 발걸음을 내딛다 멈칫했다.

“…….”

“뭐야? 왜 멈춰. 얼른 해치우고 넘어가야지.”

마혁진은 이세기를 빤히 바라봤다.

대수롭지 않은 듯 재촉하는 이세기에게서 ‘그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했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무심코 넘길 뻔한 그것!

이세기 놈의 숨 쉬듯 자연스러운 구라가 느껴진다!

마혁진은 이세기에게 질문했다.

“방금 쌓으라는 장벽 높이가……?”

“얼마 안 돼. 얼른 움직…….”

“그러니까 그 얼마 안 되는 높이가 얼마냐고?”

“한국 최강의 초능력 각성자! 염동 대협이라면 30분이면 된다니까!”

“시간이 아니라 높이로 말하라니까!”

“적당히 마수와 몬스터가 넘지 못할 정도…….”

말꼬리를 흐리며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이세기!

마혁진은 진지한 얼굴과 목소리로 한 자 한 자 힘을 줘서 질문했다.

“정.확.히. 몇.미.터.짜.리. 장.벽.이.냐?”

“…….”

짧은 침묵 후 대답이 돌아왔다.

“5…….”

“5미터 정도면…….”

안도하는 순간 목소리가 이어졌다.

“층.”

“……뭐?”

“5층.”

“…….”

마혁진은 고개를 돌려 오리배가 털어진 건물을 봤다.

지상에서도 잘 보이는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옥상에 세워진 건물은 층고가 높고 면적이 넓은 전형적인 상가 건물이었다.

“담장? 자동차 블록? 30분이면 끝난다고?”

마혁진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저 상가 건물을 빙 둘러싸는 장벽을 세워야 한다는 거지. 그것도 5층 높이로?”

“맞아. 야, 그래도 버스 같은 거로 쌓으면 금방이야! 자, 얼른 하고 밥 먹고 한숨 돌렸다가 넘어가자! 하하하-”

이세기가 행보관처럼 말하는 순간.

마혁진은 마침내 폭발했다.

“미친 또라이 녀석! 몬스터 다 처리했다니까! 아니 장벽을 세울 게 아니라! 그냥 1층 입구랑 그 위에 창문만 막으면 되잖아?! 저거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야! 상급 마수, 몬스터 아니면 못 뚫어!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자동차로 쌓은 장벽보다 콘크리트 벽이 몇 배는 더 단단하잖아! 그런데 5층 높이 자동차 장벽을 쌓는다고? 야, 이거 완전 삽질하는 거야!”

“아! 그러네!”

깨달음의 탄성과 함께 바로 고개를 젓는 이세기.

“그런데 안 돼. 저 건물 주위에는 장벽 세우는 거로 벌써 정해져 있거든.”

“미친! 그걸 누가 정했는데?!”

이 순간 이세기는 어깨에 둘러업고 있던 검은 폭풍을 번쩍 내밀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물러설 때.

검은 폭풍의 머리에 씌워진 헬멧이 떨어져 내렸다.

마혁진은 반사적으로 떨어지는 헬멧을 낚아채 내밀다 굳어 버렸다.

“……!”

이세기가 어깨에 둘러업은 검은 폭풍!

헐렁한 군복, 소총, 탄띠에 걸린 리볼버까지!

검은 폭풍의 모든 게 눈에 익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나이!

옥상에 나타난 검은 폭풍은 4, 50대였다.

그러나 지금 이세기의 어깨 위에는 10대 중반의 소녀가 있었다!

*   *   *

“……!”

경악한 마혁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검은 폭풍의 얼굴과 이름은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혁진은 검은 폭풍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2004년 서울 수복 작전 참여 설득을 위해 1세대 헌터들을 모은 자리에서!

중고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그 얼굴에 얼마나 놀랐던가.

검은 폭풍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이세기의 어깨에 걸쳐 있었다.

10대 소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스른 모습으로!

답은 하나뿐이다.

노화 역전 각성!

그러나 검은 폭풍의 나이 든 얼굴을 본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노화 역전 각성을 했다고?!’

각성몽을 꿀 시간도 모자랐다!

그냥 각성도 이렇게 빨리 1시간도 안 되는 찰나에 이뤄지지 않는다!

하물며 전신이 재구성되는 노화 역전 각성은 최소 2, 3일, 길면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노화 역전 각성의 사례를 모조리 수집하고 재각성이 가능한지 몇 번이나 확인했기에 잘 알았다!

‘잠깐! 애초에 언제 각성한 거지?!’

마음으로 묻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암석 트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가 도로 한가운데서 멈췄다.

돌진하는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 바윗덩어리, 암석 트롤!

순간 방금 전 기억이 재생됐다.

암석 트롤을 겨눈 검은 폭풍의 리볼버!

온 신경을 검은 폭풍에게 모두 집중하고 있었기에 분명히 봤다.

검은 폭풍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마탄도 일반 탄환도 발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 전력으로 돌진하던 암석 트롤이 침묵했다!

당연히 이세기 녀석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암석 트롤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이세기가 아니었다면?!’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다!

검은 폭풍!

암석 트롤이 나타난 순간 비각성자였던 검은 폭풍은.

암석 트롤이 멈추는 순간 노화 역전 각성자가 됐다.

한 시간은커녕 2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노화 역전 각성, 최상급 몬스터를 잡은 거다!

‘말도 안 된다!’

백 번 양보해서 각성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체가 재구성되는 노화 역전은 불가능하다!

1세대 헌터로 수많은 각성자들을 봤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답은 하나뿐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을 때면 항상 있는 녀석!

마혁진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이세기! 노화 역전 각성, 네가 한 거냐?!”

이때 천문석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하- 어떻게 마혁진이 장벽을 쌓게 하지? 염동력 없이 쌓으려면 개빡셀 텐데. 생각해라! 생각해!’

“이세기! 내 말 들었냐?! 네가 한 거 맞냐고?!”

한 타이밍 늦게 건성으로 대답이 나왔다.

“어.”

“어떻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잘. 야, 그것보다 장벽 세우는 거 꼭 해야 하는 거야. 이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순간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마혁진.

“좀 더 자세히! 혹시 노화 역전을 인위적으로 일으킨 거야?! 그게 가능한 거였어?!”

‘뭐야? 반응이 왜 이렇게 뜨거워?!’

천문석은 예상외의 반응에 문득 고개를 들며 물었다.

“너 왜 그렇게…….”

이 순간 보였다.

마혁진의 이글이글 불타는 눈동자에 담긴 열망을!

“……!”

열망이 번진 얼굴을 보는 순간 파파팟-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이름들!

이태성 길드장!

추이린 연구원!

이세영 소장님!

장철……! 아, 장철 헌터는 아니지.

장철 헌터는 빼고 자신이 만난 1세대 헌터!

이태성, 추이린 이세영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세월을 거스른 찬란한 젊음!

그리고 지금 자신 앞에는 같은 1세대 헌터인 마혁진이 있었다.

강렬한 사막의 태양에 까맣게 탄 얼굴!

자글자글한 주름과 거친 피부!

살이 쪽 빠져 뼈만 남은 몸!

최소로 잡아도 50대로 보이는 염동 대협 마혁진이!

다른 1세대 헌터들이 세월의 흔적을 거슬렀다면.

마혁진은 오히려 세월의 풍파를 x10 배속으로 맞은 상태였다!

이태성 길드장과 염동 대협 마혁진이 같이 서 있으면.

동년배가 아니라 큰아버지와 막내 조카로 보일 지경이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마혁진은 노화 역전을 원한다!

천문석은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너 혹시 노화 역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방법 있는 거야? 이미 각성 한 사람도 노화 역전 가능하냐?!”

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건물 주위에 장벽…….”

“5층이랬지? 바로 시작할까?!”

“혹시 골드바……?”

“당연히 묻어 둔 골드바 더 있다! 서울, 진도, 울산!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로 전부 넘길게!”

“그렇지! 역시! 골드바 더 있었구나! 그럼 보증 좀…….”

“어디에 사인…… 잠깐 뭐 보증?!”

마혁진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아, 보증은 안 되는구나…….”

“야, 이 씹! 너 지금 사람을 두고 노는 거면……!”

분노한 마혁진이 멱살을 잡아 올 때.

천문석은 잽싸게 허공에 딱밤을 날렸다.

후우웅-

손가락으로 튕겼다고는 믿기지 않는 거센 바람 소리이 얼굴에 날아오는 순간.

마혁진은 욱신거리는 이마의 환상통에 멈칫했고.

천문석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당당히 외쳤다.

“가능하다!”

‘먹혔나?’

힐끗 시선을 보내는 순간 보였다.

격동으로 전신을 부르르 떨고 있는 염동 대협 마혁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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