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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14화 (1,11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14화>

“……그렇게 노화 역전 각성을 하게 된 거야. 이제 알겠지? 절대! 절대로! 전신에 피멍은 고의가 아니었다! 노화 역전을 위한 필연적인 준비였다. 너 잊지 말고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천문석은 설명을 끝내고 힐끗 임수정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임수정은 여전히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채 이야길 흘려듣고 있었다.

당연했다!

용용이, 여의도, 해상 보급로 같은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다. 더 흥미 있고, 충격적인 사실에 눈이 가는 건 당연했다.

노화 역전 현상!

임수정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10대 중반의 소녀가 된 이세영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각성자라는 이름의 초인이 생겨나는 시대. 게다가 임수정 본인이 각성자이기도 하다.

그래도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노화 역전, 불로장생, 회춘은 수천 년 인간 역사의 정점에 오른 권력자 모두가 한 번쯤은 바랬던 욕망이 결정체니까!

오히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그럼 이야기한 대로 피멍 든 건 비밀로 부탁한다.”

말을 마무리하며 어깨를 툭- 치는 순간 번쩍 고개를 돌리는 임수정.

“어, 어! 알았어. 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냐? 내가 말 안 해도 선생님 아까 암석 트롤하고 싸울 때는 제정신이셨잖아? 다 기억하고 계실 것 같은데?”

“그건 걱정할 거 없다.”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검은 폭풍으로 각성하는 순간 선생님이 당긴 7번째 방아쇠가 기억을 날려 버렸으니까!

“네가 해 줄 건 혹시 나중에라도 선생님이 물었을 때 그냥 시치미만 딱 떼면 된다. 혹시 헛다리 짚어도 절대 넘어가지 말고.”

“헛다리?”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임수정의 모습에서 감이 왔다.

임수정과 이세영 선생님은 깊게 얽힌 관계가 아니다.

깊게 얽혔으면 ‘헛다리’란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반응할 리 없었으니까!

“자, 그럼 설명은 끝났고, 헤어지기 전에 꼭 필요한 정보들…….”

이때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이 사람들 돌아가겠다는데 어떡하죠?

천문석과 임수정의 시선이 마주치고 다음 순간 동시에 같은 곳으로 움직였다.

도로를 따라 세워진 건물과 빌딩.

시가지 뒤쪽에 우뚝 솟은 아파트.

“그 무전 알박기한 사람들?”

“어, 맞아. 알박기한 사람이 이렇게 많을지는 상상도 못 했어. 우선 바지선이 있는 압구정으로 대피시키긴 했는데…… 몬스터 없으면 다시 돌아오겠다는데. 어때? 이곳으로 사람들 돌아와도 괜찮을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천문석은 손가락을 들어 도로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2층 건물 높이를 훌쩍 넘어가는 암석 덩어리.

최상급 몬스터 암석 트롤!

“그렇지. 물을 필요도 없지, 최상급 몬스터가 나타난 곳에 돌아왔다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하아-“

임수정은 깊은 한숨을 쉬며 무전기를 잡았다.

“안 돼. 여기 위험하다. 최상급 몬스터 암석 트롤이 나타났어. 언제든…….”

천문석은 이세영 선생님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주위를 돌아봤다.

무너지고 골조가 드러난 건물 사이사이 사람들이 환호하던 멀쩡한 건물과 빌딩이 보였다.

처음 봤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과연 욕망이야말로 인간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지고.

EMP 마력 폭풍까지 터졌다.

그 결과 국군의 저지선마저 경기로도 후퇴했는데, 이곳 서초구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알박기, 부동산 점유 취득을 위한 존버에 들어간 것이다!

아니 어쩌면 2004년 만난 마혁진의 말대로 참치 통조림으로 아파트를 산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나쁜 계획은 아니었다.

이곳 서초구에서 10km만 내려가면 청계산을 지나 국군이 저지선을 펼친 분당이 나온다.

분당은 서울 수복을 위해 전차와 병력이 집결 중인 장소!

경기도에 저지선을 펼친 국군이 서울로 밀고 올라오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장소가 이곳 서초구다.

혹시 상황이 악화하여 대피해야 할 때도 청계산을 지나 분당까지 10km만 이동하면 저지선이 있다.

아마 서초구뿐만이 아닐 거다.

서초, 강남, 압구정…….

멀쩡한 건물과 빌딩, 아파트마다 알을 박은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러나 이 존버 계획은 기본 전제부터 틀렸다.

분당에 집결 중인 국군은 서울로 올라오지 못한다.

아니 경기도에 펼쳐진 저지선 자체가 뒤로 쭉쭉 후퇴해 낙동강까지 밀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20년의 부동산 점유 취득 시효를 채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4년 후 2004년, 검은 폭풍은 서울 수복 작전에 성공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버에 들어간 서초와 강남의 부동산 전망은 밝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남과 맞닿은 청계산이 안정화 권역 밖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20년 서초구와 강남구의 부동산 가격은 폭삭 주저앉는다!

주저앉는 게 있다면 비상하는 것도 있는 법!

정릉, 수유, 인수!

북한산과 맞닿은 성북구와 강북구의 부동산 가격은 폭등한다.

물론 북한산도 청계산과 마찬가지로 안정화 권역 밖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번에도 이유는 간단했다.

청계산에는 없는 게 북한산에는 있기 때문이다.

뽀미.

북한산은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각성 동물 뽀미의 존재가 강북과 강남 부동산 가격의 역전을 만들어 냈다.

즉, 지금 자신 앞에서 무전기를 잡은 쌀집 딸 임수정은 20년 후 서울에서 제일 땅값이 비싼 지역의 캐부자 건물주가 되는 거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부럽다!”

“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 아냐. 너한테 한 말 아냐. 그래 그렇게. 오늘 하루만 상황을 보는 거로 해. 올 필요 없다, 여기 일도 다 끝났으니까 나도 곧 돌아갈 거야. 그래, 이따 보자.”

임수정은 무전을 끊고 천문석을 봤다.

“방금 부럽다는 건 뭐야?”

천문석은 대답 대신 정말 유용할 조언을 했다.

“너, 집이랑 땅 절대 팔지 마라.”

“뭐야 갑자기 뜬금없기는…….”

피식 웃은 임수정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엄마 사전에 땅을 판다는 건 없어. 지금도 주위 땅이랑 건물 모조리 사들이고 있어.”

“뭐? 땅을 산다고?! 아니 왜? 이 난장판에 땅을 왜 사?!”

“뭐야? 방금은 절대 팔지 말라며?”

임수정은 황당해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긴데…… 엄마 말로는 언제 보급이 끊길지 모르니까. 오래 버티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거야. 하아아-”

임수정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뽀미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니면 훌쩍 사라질지도 모르는 데 농사라니……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안 먹혀. 아빠는 차라리 이곳 강남이나 안전한 대전 땅을 사자는데…… 에휴- 이제 포기 상태야.”

“…….”

멍하니 임수정을 바라보는 천문석의 머릿속에서는 수백 가지 생각이 몰아쳤다.

그 더럽게 비싸질 땅을 농사짓겠다고 사 모으고 있다고?

아니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일이야?!

이 놀라운 혜안이라니!

임수정은 미래의 캐부자 건물주가 아니었다.

놀라운 혜안을 지닌 엄마 덕분에 서울에서 제일 땅값이 비싼 지역의 캐캐캐부자 건물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부러웠다!

정말 부러웠다!

“……!”

“뭐야? 너 그 표정. 엄청 부러워하는 표정인데? 너도 같이 올라갈래? 뽀미가 활약하면서 좀 올랐지만, 우리 동네 집값 아직 헐값인데? 통조림…….”

너무나 솔깃한 제안이다.

그러나 자신과 동료들은 곧 이곳을 떠날 예정이다.

그리고 땅을 사기 위해 뽀미 안전지대로 갈 필요는 없었다.

2004년 마혁진에게 받은 골드바 3개!

가격이 폭등한 골드바 3개를 한국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로 성장하는 한호석 병장에게 투자했으니까!

그렇다!

이제 자신은 건물주를 보고 부러워만 하던 예전의 알바가 아니다!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에게 골드바 3개를 투자한 대박이 예정된 투자자다!

캐캐캐부자 건물주가 될 임수정의 모습에 자신의 미래가 겹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승부욕이 솟구쳤다.

“승부다! 나중에 누가 더 캐부자 건물주가 되는지 겨루는 거다! 절대 금수저에게 지지 않는다!”

“……쌀집 딸이 언제부터 금수저가 된 건데?”

임수정은 어이없는 얼굴로 이세기를 보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이제는 10대 중반의 소녀로만 보이는 선생님!

‘이 녀석한테 진짜 믿고 맡겨도 되는 거야?’

고심하는 순간 뚝 웃음이 그치고 이세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정보 말해 줄게. 잘 들어라.”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전해 준 정보만으로도 모든 게 변했다!

“잠깐! 좀 적을게!”

임수정은 바짝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 * *

“그럼 선생님 잘 부탁할게. 고마웠다.”

임수정의 작별 인사에.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걱정할 거 없어 그보다 내가 말한 거…….”

“용용이, 여의도, 해상 보급로. 이동로는 주로 강을 이용할 것! 뽀미 안전지대에서 먼 곳에서는 전투를 지양해라! 가능한 사람들을 설득해서 부산으로 내려보내라! 기타 등등! 전부 기억했어!”

천문석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절대 잊으면 안 돼. 갑자기 몬스터가 쏟아질 때의 도로는 폭우가 쏟아지는 계곡이나 마찬가지야. 몬스터의 격류에 휩쓸리는 순간 끝장이다. 가능한 배로만 이동해라.”

“야, 몇 번을 말하는 거야? 나 서울에서 2달이나 버틴 베테랑이야! 그것도 광화문 게이트가 지척인 국민대에서!”

임수정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사실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광화문 게이트가 지척인 국민대 뽀미의 영역에서 버텼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임수정의 생각보다 뽀미는 더 대단한 각성 동물이었다.

2020년 북한산 지역 대부분은 안정화 권역 밖에 있었다.

당연히 던전, 균열이 생기고 마수와 몬스터도 흘러들어왔다.

그러니 원래라면 북한산 일대에는 삼엄한 경계 태세가 펼쳐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산은 심마니 헌터가 주로 찾을 뿐 삼엄한 경계 태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2020년에는 북한산 전체가 등급외 각성 동물로 성장한 뽀미의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딜레이 없는 초장거리 순간이동!

-1급 염동력자 수십 명조차 압도하는 염동력!

-숨이 컥 막힐 정도로 비싼 레이드 탱커용 마법, 거대화 능력!

-여기에 거대 괴수의 반발장 동조화 현상의 역, 각성력 필드 전개 능력까지!

2020년 바다에 용용이가 있다면 육지에는 뽀미가 있었다.

이게 바로 각성자 임수정의 약점이었다.

등급외 각성 동물 뽀미의 영역에서의 전투로 감각이 세팅됐다는 것!

뽀미의 영역에서 싸우던 감각으로 다른 마수와 몬스터와 싸우면 오판하기 쉬웠다.

게다가 서울에는 4개의 게이트가 더 열리게 된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총 5개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력장이 중첩된다!

서울 전체가 중첩된 게이트 마력장의 영향권에 들어가 유례없는 마경이 펼쳐진다!

갑자기 중력이 강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마수와 몬스터는 더 강해지고 서울에서 버티는 건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양면이 있다.

마력장 중첩 현상은 쇠를 두들기는 망치질이자 중력수련이다.

마력 폭풍이 몰아치는 서울에는 더 많은 각성자가 생겨나, 더 빠르고, 더 강하게 성장한다!

이태성, 추이린, 장철 같은 1세대 헌터들이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1세대 헌터에 한 사람의 이름이 더해질 거다.

“임수정.”

“야, 알겠다니까. 그렇게 걱정되면 같이 가든지!”

임수정은 농담인 척 진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에겐 장철 헌터의 바람에서 시작된 이 일의 끝을 봐야 할 의무가 있었고.

눈앞의 임수정에게 수십 년을 살아온 동네를 지키고 보급로 겸 탈출로를 지킨다는 목적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잡낭을 열고 포션을 꺼내 던졌다.

“그건 힘들고, 이거 받아라.”

“엇!”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포션을 낚아챈 임수정.

“외상용 급속 치료제야. 상처에 발라도 효과가 있지만, 마시면 생명력과 재생력이 극대화된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24시간 안에 쇼크가 와서 기절할 수 있다. 항상 기억하고 사용해라.”

휘이-

설명을 들은 임수정은 휘파람을 불었다.

“외상용 급속 치료제? 와! 이런 치료제는 어디서 구하는 거야? 너 우리 스승님이랑 완전 판박이인데? 생각지도 못한 정보에, 꿀템까지. 너 진짜 대가 필요 없어? 바지선에 냉동식품이랑 통조림 잔뜩 준비했는데 좀 줄까? 이 정도 정보에 치료제면…… 참치 통조림 10개 정도 대가로 줄 수 있는데? 지금 참치 통조림은 화폐나 마찬가지니까…….”

천문석은 길게 이어지는 말을 끊었다.

“됐어. 식량은 충분하다 얼른 가 봐.”

“그럼 난 간다. 알 박은 사람들은 내일 정오쯤 풀어 줄게. 조심하고 고마웠다.”

임수정은 손을 흔들고 시동이 꺼진 오토바이를 밀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너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차피 해어지는데 마스크 좀 벗어 볼래?”

“이게 어디서 수작을!”

“야, 그런 거 아냐! 나 인기 엄청 많거든!”

“그래그래 믿어 줄게.”

“와, 어이없는 녀석! 진짜 어디서 본 거 같아서 그래. 마스크 잠깐만 내려 봐.”

임수정은 웃음기를 지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천문석도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런 느낌은 대화를 시작하자 점점 강해져, 어느 순간부터는 예전에 이렇게 대화를 했던 것 같은 기시감마저 느껴졌다.

어쩐지 마스크를 벗는 순간 임수정의 입에서 ‘아, 너!’라는 탄성이 들려올 것만 같았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시간 여행자는 나비효과와 얼굴이 팔리는 걸 주의해야 하는 법!

그냥 모른 채 이대로 헤어지는 게 낫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보여 줄게.”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아보라고?”

“얼굴은 몰라도 ‘이세기’ 이름은 알잖아? 이세기란 이름의 엄청 강한 헌터…… 아니지. 이세기라는 캐부자 헌터의 이름이 들리면 찾아와라. 그때 얼굴 보여 줄게.”

‘20년 후 2020년에 말이지. 카캬카-’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손을 흔들었다.

“야, 얼른 가. 부하들 기다리겠다.”

“좋아! 다음에 만나면 빚진 거 다 갚을 테니까. 캐부자 쌀집 딸의 보답을 기대해라!”

임수정은 크게 손을 한번 흔들고 오토바이를 끌고 도로 북쪽으로 사라졌다.

이걸로 2000년 3월 1일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다시 한번 시간을 거슬러 오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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