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13화>
천문석은 임수정의 계획을 듣는 순간 촉이 왔다.
‘이거다! 2000년 3월 1일에 떨어져 임수정을 만난 게 이것 때문이구나!’
그래서 바로 입을 열어 확인했다.
“여기 서초구에 온 게 서울에서 빠져나갈 탈출로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맞아. 스승님의 쪽지만 전할 거였으면 소수로 움직였지. 이렇게 100명이 넘는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지는 않았지.”
임수정은 지도를 꺼내 펼쳤다.
“강북의 하천이 한강과 하나로 이어진 건 알고 있지? 서울 서쪽에서 동쪽까지 창릉천, 북한천, 우이천, 중랑천이 강북을 가로질러 한강이랑 이어진 상태야. 지금 강북은 거대한 섬이지.”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1차 세기말 대한민국 사건 당시.
북한산에서 쏟아진 엄청난 물이 중랑천을 지나 한강으로 밀려온 걸 확인했다.
범람한 중랑천 제방을 무너뜨려 그 물로 몬스터 웨이브를 쓸어버리기까지 했다.
“지금 뽀미 안전지대가 있는 국민대와 북한산 초입에서 배를 타면 정릉천, 청계천. 우이천, 중랑천을 거쳐 한양대 앞으로 나오거든. 여기서 한강을 건너면 바로 압구정이야. 거기서 한남IC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로 내려오면 여기지. 그리고 저기 청계산을 지나면…….”
임수정의 손가락이 남쪽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켰을 때 말을 받았다.
“분당. 국군이 저지선을 펼친 경기도 분당이구나!”
“맞아. 아직 서울에 전기와 수도가 살아 있고 식량이 공급되지만 언제 끊길지 모르니까. 탈출로 겸 보급로를 만드는 건 필수야. 뽀미 안전지대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모르고.”
천문석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여유가 있는 지금, 임수정은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대량의 물자와 사람을 옮길 수 있는 바지선으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하천과 한강을 건너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분당에 저지선을 펼친 국군과 연결 물자와 인력을 움직일 계획이다.
하천과 한강에선 주위에 가득한 물을 성벽 삼고.
경부고속도로에선 오토바이의 속도로 몬스터를 떨쳐 낼 생각이다.
나쁘지 않은, 아니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세울 수 있는 최고의 계획이었다!
임수정이 새삼스레 다시 보였다.
가진 능력은 활용도가 높은 초능력 계통의 순간이동 능력.
활동 거점은 각성 동물 뽀미가 지켜 주는 안전지대,
게다가 100여 명이 훌쩍 넘는 오토바이 부대와 베테랑 정찰조까지 운용하고 있다.
지금 서울에서 활동 중인 1세대 헌터 중에 눈앞의 임수정 이상의 세력과 조직력을 가진 각성자는 없을 거다.
그러나 2020년에는 1세대 헌터 임수정이란 이름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천문석은 그 이유가 짐작됐다.
한남IC에서 청계산을 지나 국군이 저지선을 펼친 분당까지 이어지는 보급로가 문제다!
수십 대의 탱크와 자주포, 겹겹이 펼쳐진 철조망과 기관총 진지까지!
현대 무기는 절대 약하지 않다.
최상급 몬스터라 해도 극악의 효율을 감수하고 포탄과 미사일을 쏟아부어 반발장만 날려 버리면 현대 무기로 잡을 수 있다.
오크와 고블린 같은 몬스터는 기관총을 긁기만 해도 저지할 수 있다.
화약 폭발이 정지되는 EMP 마력 폭풍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국군이 이렇게 어이없게 서울에서 밀려나지도 않았을 거다.
임수정의 분당과 보급로를 잇겠다는 계획.
국군의 경기도 저지선에 병력을 모아 한 번에 서울을 수복하겠다는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게이트다.
게이트 사태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서울에만 4개, 전국의 대도시마다 게이트가 열리고, 국토 곳곳에 균열과 던전이 생겨나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진다.
현대 무기의 막강한 화력은 엄청난 보급으로 가능한 것!
경기도 저지선이 유지될 수 있는 건 도로를 통해 보급되는 물자 덕분이다.
마수와 몬스터에 포위돼 보급이 끊기는 순간 끝장이다!
보급로가 위협받으면 분당과 경기도 일대에 펼쳐진 저지선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다.
수원, 평택, 세종 그리고 대구!
결국, 저지선은 낙동강 전선 방어선까지 계속 밀리게 된다!
이것이 임수정이라는 1세대 헌터의 이름이 2020년에 전해지지 않는 이유다.
보급로를 이동 중인데 사방에서 마수와 몬스터 쏟아지면?
도로는 폭우가 쏟아지는 계곡과 마찬가지로 변한다!
몬스터의 격류가 몰아치는 도로에서 100여 명의 각성자는 그야말로 한 줌!
찰나의 순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
“뭐야? 탈출로 묻더니 왜 아무 말도 없어? 어때, 괜찮을 것 같아?”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의아한 얼굴의 임수정이 보였다. 순간 저절로 입이 열렸다.
“넌 진짜 나 만난 게 천운이다. 앞으로 귀인님이라고 불러라.”
“갑자기 뭔 소리야? 천운이라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임수정.
천운, 귀인은 조금의 과장도 섞이지 않은 말이다.
자신은 2004년 검은 폭풍이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안전하게 유지될 보급로를 말해 줄 수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씩 웃으며 말했다.
“야, 거긴 안 돼! 내가 끝내주게 안전한 보급로 겸 탈출로를 가르쳐줄게.”
“안전한 보급로? 이거보다 안전한 보급로가 있다고?”
임수정의 얼굴에 생겨난 의혹은 다음 순간 경악으로 변했다.
“뽀미보다 더 센 각성 동물이 지키는 보급로야.”
* * *
“……!”
앞발 치기 한방에 수십 미터 크기의 암석 트롤을 바스러트리고 찰나의 순간 수 킬로미터를 공간 도약하는 게 뽀미다!
그런 뽀미보다 더 센 각성 동물이 지키는 보급로라면 수십억, 아니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거기가 어디? 아니 우선 대가부터…….”
“됐어. 대가는 필요 없다.”
진짜로 대가는 필요 없었다.
지금은 3월 1일 게이트가 열린 1월 1일에서 2달이 났을 뿐이다.
서울에는 아직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혹시 아는가?
자신이 아는 사람이 임수정이 만든 탈출로를 이용할지.
그리고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런데 이 각성 동물은 뽀미하고는 좀 달라.”
“뽀미랑 다르다고?”
“어. 좀 많이 달라. 어떻게 다르냐면…….”
천문석은 설명을 시작했다.
뽀미와는 다른 각성 동물.
각성 동물과 마수를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는 인간을 대하는 본능이었다.
개, 고양이, 기린, 코끼리…….
그 종이 무엇이든 게이트가 열리고 각성한 각성 동물들은 마치 누군가의 부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사람에게 호의를 보이고 지켜 줬다.
대표적인 게 국민대에 살던 삼색 고양이 뽀미.
각성한 뽀미는 밀려오는 마수와 몬스터를 순식간에 처리한 후, 대피한 학생과 주민들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간식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20년! 뽀미는 단 한 번도 사람을 공격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녀석은 달랐다.
자신을 유인하려는 항공모함을 둘로 쪼개 한라산에 떨어뜨리고.
군함과 어선을 장난감 공처럼 용권풍으로 튕겨 올리고, 바닷물 가오리에 실어 멀리 날려 버렸다.
접근조차 쉽지 않기에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그 본모습을 아는 각성 동물!
……
“이 녀석은 수십 개의 용권풍을 휘감고 수백, 수천의 바닷물 생명체와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그 각성 동물이 어디에 있는데?”
임수정이 묻는 순간.
천문석은 씩 웃으며 방금 쪽지로 알게 된 정보를 말했다.
“이름은 용용이. 그 용용이가 며칠 후 여의도에 나타날 거다.”
“여의도?”
임수정의 시선이 지도로 움직일 때.
천문석은 지도 위 압구정을 짚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바지선에서 내릴 필요 없이 이렇게 움직이는 거다.”
한강을 따라 쭉 내려간 손가락은 여의도에 잠시 멈췄다가 계속 서쪽으로 움직였다.
“아!”
임수정의 얼굴에 깨달음의 빛이 스쳤다.
여의도에서 서쪽으로 한강으로 타고 내려가면……!
“그러니까 네 말은…….”
“맞아. 서해야.”
천문석은 지도 위 손가락을 계속 움직였다.
“한강 하구로 빠져나와. 군대와 물자가 모이고 있는 영종도에 도착하면 서해야. 서해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제주도, 부산, 어디든 이동할 수 있어.”
“부산? 저지선은 경기도에 있는데?”
“저지선이 낙동강까지 밀릴지도 모르잖아?”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게이트 폭격 준비만 끝나면 국군이 밀고 올라온다는 이야기가 파다한데!”
그렇게 믿었다가 서울에 고립되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어차피 겪으면 알게 될 일.
천문석은 설명을 이었다.
“어쨌든 경로는 알겠지? 용용이가 주기적으로 해양 마수와 몬스터를 정리할 테니. 해안선에 붙어서 이동하면 부산까지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진짜 문제는 용용이다. 용용이는 아주아주 위험하다.”
“각성 동물이 위험하다고? 뽀미는 전이랑 달라진 게 없던데?”
임수정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용용이는 다른 각성 동물과는 달라. 마수와 몬스터를 박살 낼 뿐만 아니라. 어선, 군함 뭐가 됐든 걸리적거리면 모조리 박살 낸다.”
“야! 모조리 박살 내면 각성 동물이 아니라 마수잖아!”
“아니. 용용이는 분명 각성 동물이다!”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용용이가 각성 동물인 이유는 많았다.
해안 도로가 유지된 것.
해안 도시 부산이 버틸 수 있던 것.
한반도 근해와 일본과의 물류가 살아난 것.
이 모든 것이 용용이 덕분이다.
“용용이는 그냥 좀 장난을 좋아할 뿐이야.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공격받을 일은 없어.”
“군함을 반으로 쪼개는데 장난을 좀 좋아할 뿐이라고?”
임수정의 어이없어하는 물음에.
천문석은 웃음기가 싹 사라진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맞아. 이건 용용이한테는 장난일 뿐이야.”
그렇다. 어선과 군함을 두 동강 내서 육지에 떨어뜨리는 건 용용이에게는 장난일 뿐이다.
자동차 전복 사고만 일어나도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이 나온다.
거대한 항공모함을 반으로 쪼개 한라산에 떨어뜨렸는데도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가 용용이가 장난을 친 거라는 증거였다!
2000년 지금은 이런 모습을 보고 용용이가 장난을 친 거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2020년에는 전 세계 사람 모두가 이건 단지 장난일 뿐이란 걸 알게 된다.
“용용이는 걱정할 거 없어. 더 큰 문제는 바지선이다. 항해 가능할 거 같냐?”
“잠깐, 확인 좀 할게…….”
임수정이 무전기 꺼냈을 때.
천문석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몇 년 후 전 세계 사람이 용용이가 어떤 각성 동물인지 알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의 시작은 2004년 검은 폭풍이 5개 게이트가 열린 서울 수복에 성공하면서다.
재금 공업은 5개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설치된 서울에 자리 잡고,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쉴 새 없이 찍어 내기 시작했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효과는 이미 입증된 상태!
검은 폭풍은 그 별명 그대로 폭풍처럼 움직였다.
소수의 특무대와 함께 게이트가 열린 도시에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설치하는 순간.
국군이 화력을 쏟아부어 주력을 박살 내고, 헌터 부대와 민간 헌터가 도시로 밀고 들어가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전국에 생겨나는 안전지대라는 ‘점’과 ‘점’을 잇는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을 따라 만들어진 전선이 전진하며 ‘면’이 생겨났다.
안전한 후방과 전선이 생겨나고 국토 수복이 가능해지면서 게이트 전쟁은 전환점을 맞았다.
안전한 후방은 모든 것을 바꿔놨다.
본격적으로 공장이 돌아가며 엄청난 물자가 안정적인 보급선을 타고 전선에 공급됐다.
그리고 사상 최고의 커맨더 검은 폭풍의 진가가 발휘된다.
검은 폭풍이 특임대를 이끌고 거대 괴수, 재앙급 마수를 처리한 순간.
마탄 포격이 반발장 동조가 깨진 십만 단위 마수와 몬스터를 갈아엎었다.
한반도를 잠식하던 마경이 빠르게 줄어들고, 랜덤하게 생겨나는 던전과 균열은 복구된 도로망을 타고 이동한 헌터들이 처리했다.
서울 수복 작전이 성공한 후 1년!
대한민국은 게이트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순식간에 전 국토를 수복할 듯 밀어붙이고 있었다!
검은 폭풍과 효율적으로 반발장을 깎는 마탄,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시너지를 낸 결과였다.
생각지도 못한 전황에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주목했다.
모두의 생각은 비슷했다.
-각성자는 우리도 있다.
-마탄은 이미 복제에 성공했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만 있으면 가능하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광대한 영토와 자원, 인구로 버티던 강대국들이었다.
강대국들은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얻기 위해 엄청난 자원과 이권, 국제적인 지위 그리고 막대한 뒷돈을 제주도에 자리한 정부와 정치인에게 쏟아부었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한 나라를 제외한 강대국들은 그렇게 움직였다.
여기서 빠진 한 나라.
중국은 서울의 재금 공업 본사와 제주도의 정부에 공문을 보냈다.
[산동반도 난민 협조 요청.]
산동반도에 백만 단위의 난민과 엄청난 규모의 선박이 모여들고 있었다.
산동반도에서 인천까지의 거리는 불과 450km!
백만 단위의 난민이 안전지대 서울을 향해 서해를 건너온다면?!
원래라면 배를 타고 무작정 바다로 나오는 건 해양 마수와 몬스터로 자살행위였다.
그러나 산동반도 해안에서 인천까지 이어지는 450km의 서해 뱃길에는 마수와 몬스터의 밀도가 극도로 낮았다.
서해는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자국의 각성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용용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공문을 받은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해를 가득 메운 배에서 쏟아지는 난민들!
백만 단위의 인구 폭탄이 떨어지면 그 어떤 나라도 버틸 수 없다!
승기를 잡았다고는 해도 게이트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
서울에 십만 단위의 난민만 나타나도 식량 공급조차 불가능했다.
한국 정부는 바로 중국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다.
첫 번째 조건은 산동반도에 게이트 안정화 장치 최우선 설치.
정부는 받아들였다.
두 번째 조건은 게이트 안정화 장치 기술 이전.
정부는 받아들였다.
세 번째 조건은 용용이가 중국 국적의 각성 동물인 걸 인정하는 것.
여기서 제동이 걸렸다.
서해, 남해, 동해.
그리고 일본 해안까지.
용용이의 힘으로 해양 마수와 몬스터의 밀도가 뚝 떨어지면서 해상 물류 이동이 가능해졌다.
용용이가 중국 국적이 되면 이 모든 것의 대가를 지급해야 했다.
1년 전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을 때라면 정부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을 수복하고 압도적으로 유리한 전황에 선거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
서울이 수복된 순간 안전지대 제주도에 자리한 정치인과 정부는 지리적, 정치적으로 고립됐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위기의 순간 지게를 짊어지고 부산 던전에 들어가 자원을 캐내고, 낙동강 전선에서 갈려 나간 국민은 요구하고 있었다.
위기가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위기 앞에서 도망친 놈들에게 책임을 묻고 매달아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제주도로 튄 정치인들의 입지와 지지도는 바닥!
반면 끝까지 서울에서 버틴 일부와 마경이 된 서울에 광범위한 안전지대를 유지한 뽀미.
서울과 주요 도시, 전국을 수복 중인 검은 폭풍의 인기는 하늘을 뚫었다.
검은 폭풍이 출마하면 대통령이, 당을 만들면 90% 이상의 의석을 싹쓸이할 상황이었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넘기고 기술을 이전하는 건 작은 공업사인 재금 공업만 압박하면 간단히 가능했다.
그러나 용용이를 중국 국적으로 인정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정치적 자살이 아닌, 진짜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결국, 정부는 거절했고 산동반도의 해안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배가 모여들었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핵무기보다 무서운 난민 폭탄이 발사됐다.
그러나 난민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단지 무슨 일어났는지 결과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해안선을 까맣게 매운 수만 척의 배가 산둥반도에서 출발해 서해를 1/3쯤 지났을 때 모두는 알게 됐다.
서해 바다에는 높이 백 미터에 달하는 바닷물의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
서해 전체를 동서로 가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2020년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그 바닷물의 장벽을 세웠는지는 보는 순간 모두가 알아챘다.
용용이.
그 사건이 용용이가 차원이 다른 각성 동물로 불리게 된 이유였다.
그런 용용이가 며칠 후 여의도에 나타난다고 칼로리바 쪽지에 적혀 있었다.
서해의 용용이가 주기적으로 여의도까지 올라왔던 것!
이게 바로 여의도 거점이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버틴 이유였다!
즉, 한강, 서해, 남해를 따라 낙동강 전선 뒤 부산 지역으로 이어지는 안전한 보급로 겸 탈출로가 만들어지는 거다!
이 보급로가 2000년 3월 1일에 떨어져 임수정을 만난 이유다.
“난 괜찮다니까.”
천문석은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 정찰조 몇 명 여의도로 보내야 할 것 같아. 분당은 잊어. 방금 최상급 몬스터 봤잖아? 그래…….”
임수정은 지도를 펼친 채 무전기로 대화 중이었다.
여의도를 거점으로 한강 물길을 보급로로 사용할 생각을 굳힌 모습.
여의도와 부산을 잇는 물길이 열리면 수많은 사람의 운명이 변한다.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은 1세대 헌터 임수정과 100여 명의 오토바이 헌터들.
그리고 어쩌면 세 사람의 운명도 변할지 모른다.
오리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간 세 사람.
배우같이 잘생긴 아빠.
어리지만 강단 있는 고모.
두 눈을 꼭 감고 끝없이 숫자를 세는 아이.
세 사람이 한강을 건넌 지 벌써 2달이 지났다. 아직도 서울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아직 서울에 있다면, 임수정이 만들게 될 해상 보급로가 한 아이와 아빠·엄마, 고모의 운명을 바꿀 거다.
충분히 할 만한, 아니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