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12화 (1,11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12화>

2020년 5월 5일.

눈앞에 같은 날짜에 제조된 칼로리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20년 후, 미래에 제조된 칼로리바가!

“……!”

머릿속에서 섬광이 터지고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4 – 이세기’라 적힌 칼로리바 포장지.

피멍이 든 채 기절한 이세영 선생님.

포장지 쪽지를 전한 임수정.

빌딩 옥상에 숨어 있는 마혁진.

그리고 주위에 가득한 건물과 빌딩, 아파트를 지나 하늘에 시선이 닿았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마치 무대 위에 오른 등장인물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

100도 임계점에 달한 물이 끓어 올라 액체에서 수증기로 변하듯.

사람의 삶에도 한 번의 선택으로 미래가 송두리째 변하는 임계점, 결정적 순간이 있다.

2020년 5월 5일에 만들어진 포장지 쪽지가 지금, 2000년 3월 1일 자신에게 전해졌다.

지금이 바로 선택의 순간이다.

시간을 거스른 포장지 쪽지를 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

머릿속에서 수천수만 가지 생각과 가능성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목적이 명확했기에 망설임은 찰나였다.

아빠와 딸.

장철과 장세린.

세린이의 곰 인형 곰곰이를 장철 헌터에 전한 그 밤.

검은 동전을 하늘로 튕겨 올리며 천문(天問), 하늘에 고했다.

장세린, 장철의 딸을 내놓으라고!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천문사의 계승자의 직관으로 알 수 있었다.

2020년, 2004년, 2000년.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자신 앞에 나타난 이 칼로리바 포장지 쪽지는 인과를 잇는 사슬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천문석은 주저하지 않고 칼로리바 포장지를 뒤집었다.

포장지 뒷면에는 여백이 보이지 않도록 빽빽하게 글자가 적혀 있었다.

맨 위에 적힌 문장이 눈에 박혀 들었다.

[너 지금 내력으로 환골탈태, 반로환동 시키고 노화 역전 각성이라고 구라 치려고 하지? 와, 사기꾼 녀석!]

‘뭐야? 어떻게 알았어?!’

재빨리 다음 문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거 안 먹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인하고 각성자는 엔진이 달라. 디젤 엔진에 휘발유를 넣는 꼴이야. 혼유 사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봤지?]

주유소 알바할 때 봤다.

혼유로 엔진이 아작 나면 최소 300만 원 이상, 재수 없으면 수천이 깨진다!

깜짝 놀라 시선을 옮기자 바로 문장이 이어졌다.

[놀랄 필요 없다. 나한테 해결책 있으니까. 너 검은 동전 가지고 있지? 그 흑전과 심상 공간의 태양을 내력으로 연결해라. 그러면 인력이 생겨나거든. 인력이 생겨난 흑전을 선생님 이마에 올려놓기만 하면 노화 역전은 간단히 해결된다. 이 밑에 적어 둔 내용은 그다음에 해야 할 일들이니깐 우선 노화 역전 해결하고…….]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된다고?!’

방법은 간단하다.

문제는 흑전을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

2004년 부산에서 한호석 병장과 동전을 던지며 깨달았다.

검은 동전, 흑전은 인과를 빗나가게 하는 정체불명의 마물이라는 것을!

그런 흑전을 이세영 선생님, 게이트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검은 폭풍에게 사용하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했다.

잽싸게 포장지로 시선을 옮겨 키워드 위주로 빠르게 문장을 훑었다.

[쪽지는 4개를 준비해야 한다.]

[1 - 염동, 2 – 안전 장갑, 3 – 정찰조, 4 - 이세기.]

[그러니까 잡낭 안에 있는 칼로리바 3개는 꼬맹이 주지 말고 남겨 둬. 아니지 혹시 모르니 포장지만 회수해도 되겠네.]

[쪽지에 적을 내용은 따로 네모 칸 안에 적어 놨으니까 참고하고.]

[완성된 쪽지 4개는 염동, 걔한테 주면 알아서 줘야 할 사람에게 전해 줄 거다.]

[중요한 건 염동한테 쪽지를 건네줄 타이밍인데…….]

[염동 이 녀석 개같이 구르겠구나! 하고 팟 감이 오는 순간 건네주면 된다!]

[아, 그리고 며칠 후 용용이가 서해에서 한강을 거쳐 여의도까지 올라올 거다.]

……

흑전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 원리는 아무리 훑어도 없었다.

뜬금없는 말들만 이어지다가 3개의 쪽지에 적을 내용이 담긴 네모 칸이 불쑥 튀어나왔다.

1 – 염동.

2 – 안전장갑.

3 – 정찰조.

1번 염동은 염동 대협 마혁진?!

3번 정찰조는 옥상에서 외친 육인의 정찰조다!

‘안전 장갑?’

문득 시선을 돌리자 이세영 선생님 앞. 임수정이 끼고 있는 안전 장갑이 보였다.

‘안전 장갑은 임수정이다!’

천문석은 네모 칸 안의 내용을 훑었다.

2, 3번 임수정과 정찰조에 건넬 쪽지에 적힌 내용은 자신이 겪은 게 전부 별것 없었다.

그러나 1번 염동 쪽지는 달랐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수십 줄이 적혀 있었다.

-국민대 뽀미를 만나 안전지대 확장.

-각성력 훈련과 기초 전투법 가르치기.

-한강과 지천을 연결하는 수상 이동로 건설.

-용용이가 나타난 여의도에 안전지대 만들기.

……

읽는 순간 바로 알아챘다.

임수정에게 들었던 스승님의 업적이다!

즉, 쪽지에 적힌 염동, 염동 대협 마혁진이 바로 임수정이 말한 스승님이었다!

1번 쪽지는 염동 대협 마혁진, 스승님이 할 일이 적힌 퀘스트 목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마혁진은 분명 저 빌딩 위에 있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드는 순간 번쩍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지금 중요한 건 스승님의 정체가 아닌, 이 쪽지를 만든 사람이다!

1, 2, 3번, 3개의 쪽지에 적을 내용만 적혀 있는 4번째 쪽지.

지금 자신이 읽고 있는 ‘4 – 이세기’ 쪽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4번 쪽지는 만들 필요가 없었으니까!’

의문을 품는 즉시 답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장면이 재생됐다!

‘1, 2, 3번’ 세 개의 쪽지를 만들어 이미 가지고 있던 4번 쪽지와 함께 건네주는 장면!

중요한 건 ‘누가’, ‘누구에게’, 그리고 ‘언제’이다.

누가 - 바로 자신이.

누구에게 - 염동 대협 마혁진에게.

언제 - 임수정이 스승님을 만난 2달 이전에.

2020년 5월 5일에 제조한 칼로리바 포장지로 만든 1, 2, 3, 4번 쪽지를 건네준다.

천문석은 지금 손에 들린 칼로리바 쪽지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

반사적으로 포장지를 뒤집어 앞면을 살피자 처음 봤던 글자가 보였다.

‘1 – 이세기’

이 순간 잠긴 금고에 열쇠가 꽂혀 철컥- 돌아가듯 모든 의문과 답이 맞물렸다.

건물 옥상에 떨어지자마자 나타난 이세영 선생님.

정찰조를 보내고 오토바이 부대와 나타난 임수정.

시동을 거는 데 실패한 순간 튀어나온 암석 트롤.

……

누군가 미래를 보고 미리 준비한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일어났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마치 본 것처럼 오늘 일어날 사건을 모두 알고. 그 사건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오늘 일어난 일을 직접 겪은,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있는.

2020년에 만들어진 칼로리바 포장지에 해야 할 일을 적고 이름을 남긴 사람.

누가 이 모든 것을 했는지 대놓고 적어 놨다.

‘1 – 이세기’

그렇다!

천문석 바로 자신이었다!

지금 손에 쥐어진 4번 쪽지는 타임캡슐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보내는 타임캡슐이 아닌, 미래에서 과거로 보내는 타임캡슐!

즉, 지금 2000년 3월 1일에 있는 자신과 장철, 마혁진은 다시 한번 시간을 거슬러 오르게 된다.

임수정이 스승님, 염동 대협 마혁진을 만난 2달 이전의 시간대로!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칠성파 보스, 깡패 새끼, 염동 대협, 스승님.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 마혁진은 2020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

염동 대협 마혁진이 게이트 전쟁이 시작되는 2000년 대한민국에 남는다!

깨달음의 순간 머릿속에 수백 가지 생각의 폭풍이 몰아쳤다.

“…….”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자 빌딩 옥상에 쌓인 잔해 사이로 얼굴을 내민 마혁진이 보였다.

자신의 딱밤에 이마가 십자로 깨진 마혁진은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던 남쪽을 가리키며 손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몬스터 무리를 모두 흩어 버렸다는 의미.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어째선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동대문에서 칠성파 보스 마혁진과 처음 만났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다.

어느새 깡패 두목 마혁진은 염동 대협 마혁진 동료가 됐다.

이 결과는 수많은 우연과 선택이 모여 만들어졌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선택이 변하면 결과도 변하듯 미래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

미래는 쪽지 한 장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정해지는 거다.

천문석은 머릿속 의문을 지워 버리고 움직였다.

지금은 미래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당장 해야 할 일을 할 때다.

쪽지에 적힌 내용대로 노화 역전으로 이세영 선생님의 각성부터 완성한다!

“임수정, 잠깐만 비켜봐라.”

성큼 걸어가며 잡낭 안으로 손을 넣는 순간 두근- 심장이 크게 맥동했다.

핑그르르-

밖으로 나온 손에서 튕겨 오른 검은 동전, 흑전!

천문석은 회전하는 흑전에 마음을 두고 내력을 일으켰다.

내력이 움직이는 순간 탁- 떨어지는 흑전이 손아귀에 잡혔다.

두근-

그 순간 심장이 크게 맥동하고, 마음이 그려낸 길을 따라 일기일원공의 내력이 움직였다.

심상 공간의 천강흔 랜덤 박스 태양과 현상 공간의 흑전이 이어졌다.

쿵쿵, 쿵쿵쿵-

심장이 맥동하는 매 순간 천강흔 랜덤 박스 태양에서 쏟아진 힘이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따라 격류가 되어 쏟아졌다.

흑전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격류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엄청난 격류를 삼키는 데도 별과 용이 그려진 검은 동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거 진짜 되는 거 맞아?’

천문석은 의심스런 눈으로 흑전을 바라보며 조심조심 이세영 선생님의 이마에 놓았다.

툭-

그리고 흑전이 이마에 닿는 순간, 감전이라도 된 듯 부르르 경련하는 이세영 선생님!

‘선생님?!’

깜짝 놀라 흑전을 떼어 내려 할 때 천강흔 태양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순간 흑전에서 인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소리도 느낌도 없는 바람이 불어왔다.

천지에 가득한 각성력의 흐름, 영맥!

영맥이 태양의 인력에 끌리는 소행성처럼 흑전으로 쏟아졌다.

폭우가 쏟아지면 우산을 써도 몸이 젖는 법!

흑전에 내리는 각성력의 폭우가 이세영 선생님의 심상 공간으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심상 공간에 자리한 그릇이 가득 채워지고 주위로 흘러넘쳤다.

흘러넘친 각성력은 쩍쩍 갈라진 강바닥을 적시는 물길이고, 십 년 동안 메마른 사막에 내리는 비였다.

바짝 마른 진흙 속에서 물고기가 깨어나고, 씨앗이 단단한 껍질을 깨고 싹을 틔우듯.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에 활기와 생명력이 차올랐다.

이세영 선생님의 전신이 서기에 물드는 찰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거미줄 같은 금이 그어졌다.

그 금에서 진득한 암녹색 액체가 흘러나오는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세월에 희끗희끗 센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지고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흘러넘쳤다.

때우고 치료한 이빨이 후두둑- 쏟아진 자리에서 새하얀 치아가 솟아났다.

거미줄 같은 금이 간 피부가 와작- 바스러지자 그 아래에서 드러나는 티 한 점 없는 피부!

노화 역전 현상!

마치 영상을 수백 배 속도로 뒤로 돌린 듯 이세영 선생님의 육체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천문석은 흑전에 닿은 손으로 이세영 선생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낄 수 있었다.

노화 역전이 일어나 신체가 재구성되자, 확률 변수 고정, 현실 개변의 능력이 자라나고 있었다.

화분이 커지자 더 크게 가지 뻗는 나무처럼!

이 순간 2004년에 만난 이세영 선생님의 그릇이 깨지고 각성력이 말랐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확률 변수 고정 능력이 자라는 속도가 그릇이 커지는 속도보다 빠르다.

작은 화분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난 것이나 마찬가지!

이대로라면 나무의 압력에 화분에 금이 가고 물이 새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천문석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 결과를 보고 왔기 때문이다.

2004년 칠성파 빌딩 6층에서 검은 폭풍 이세영과 작업용 앞치마를 입은 자신이 만났을 때.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나타나 검은 폭풍의 깨진 그릇을 고치고 말라 가는 각성력을 가득 채워 준다.

천문석은 흑전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이세영 선생님의 노화 역전은 성공했다.

이제 한 가지 일만 더 하면 2000년 3월 1일 이곳에서 할 일은 끝난다.

임수정.

경악한 얼굴로 노화 역전 중인 이세영 선생님을 보고 있는 관객을 돌려보내는 것.

“…….”

천문석은 임수정에게 성큼 다가가며 말했다.

“너, 서울에서 빠져나갈 탈출로 만든다고 했지?”

* * *

천문석이 임수정에게 성큼 걸어가는 이때 흑전에 변화가 시작됐다.

세상에 일방적인 것은 없었다.

지구가 달을 끌어당길 때 달 또한 지구를 끌어당긴다.

흑전의 인력으로 쏟아진 각성력이 이세영의 심상 공간과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적실 때.

역으로 이세영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힘도 흑전의 인력에 끌렸다.

실타래가 풀리듯 가늘고 길게 뽑혀 나오는 현실 개변의 힘!

운명조차 바꾸는 현실 개변의 힘이 흑전 안으로 돌돌돌 빨려 들어가는 순간.

노화 역전은 끝나고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던 현실 개변의 힘은 뚝 끊어졌다.

흑전에 빨려 들어간 현실 개변의 힘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어린아이 한두 명의 운명을 비틀 정도였다.

그러나 이 순간 지금껏 아무 변화도 없던 흑전의 표면이 반짝였다.

마치 충전이 끝났고 언제든 시작할 준비가 됐음을 알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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