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09화>
‘아니, 시바! 저게 뭐야?!’
일기일원공의 거울에 뚜렷한 상이 맺히는 순간 보였다.
무공, 육체, 오러, 마탄, 마력. 그리고 초능력까지!
6계통의 각성력과는 다르지만, 각성력을 근원으로 하는 힘!
이세영 선생님에게 걸린 시동, 심상 공간 속 명운에 닿은 힘은 전투 예지가 아니었다!
즉, 사상 최고의 전투 예지 능력자 검은 폭풍은 전투 예지 능력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낙동강 전선을 지키고.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키고.
게이트 전쟁에 승리할 수 있던 이유!
검은 폭풍, 이세영 선생님이 이 모든 위업을 어떻게 이뤘는지.
자신이 전해 준 각성력이 4년 만에 마르고, 심지어 그릇에 금까지 가게 된 이유를 알았다.
발사될 리 없는 6번째 탄환이 튀어나오고 지배력이 무한대로 올라가는 절대 영역을 뚫은 방법도 알 수 있었다.
본질을 비추는 일기일원공의 거울에 맺힌 상!
이세영 선생님의 능력은 동전을 던져 앞뒤를, 주사위를 던져 숫자를 맞추는 것과 같았다.
단, 동전의 앞뒤와 주사위 눈을 맞추는 ‘예언자’가 아니라.
원하는 앞뒷면과 주사위 눈이 나오도록 던지는 ‘사기 도박꾼’에 가까웠다.
앞앞앞앞앞…….
앞면만 나오는 동전!
33333333…….
같은 숫자만 나오는 주사위!
확률을 속이는 사기 도박꾼!
이게 바로 검은 폭풍 이세영 선생님의 능력이었다.
그렇다!
검은 폭풍 이세영의 능력은 확률 변수 고정이었다.
‘확률 변수 고정!’
일어날 확률이 0%인 일은 없다.
그 어떤 황당한 사건이라도 일어날 확률이 ‘0’은 아니다.
-하늘로 튕겨 올린 동전이 똑바로 설 확률.
-텅 빈 탄창에서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탄환이 쏘아질 확률.
-산속 버려진 사당 문을 두들긴 고아가 천하 십절의 고수가 될 확률.
-그 사당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아이가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가 될 확률.
-극을 넘은 천마가 하늘의 불꽃에 훅 갔다가 한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전생할 확률.
-그 청년이 지구와 무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온갖 사건·사고에 구르며 인과를 이을 확률!
0.00000000001%.
소수점 아래로 10개의 ‘0’이 붙은,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사건들!
그러나 매주 로또에 당첨되는 사람이 나오듯, ‘0’이 아닌 이상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검은 폭풍 이세영 선생님의 능력이 바로 이것이다.
원인과 결과, 인과.
현재 발생한 원인으로 미래에 일어날 결과.
주사위를 던진다는 ‘원인’으로 몇 초 후라는 미래에 보게 될 ‘결과’, 주사위 숫자.
정육면체 주사위에서 각 눈이 나올 확률은 1/6!
확률 변수 고정은 이 주사위 숫자를 고정하는 거다.
미래의 결과를 ‘예지’하는 게 아닌 미래의 결과를 ‘고정’한다.
결과를 ‘관측’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고정’하는 ‘확률 변수 고정’은 ‘전투 예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다!
명운에 닿았다고 말할 정도로!
‘바로 이게 이유다!’
미친 듯이 전법륜인 딱밤을 날려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던 이유!
이세영 선생님은 이미 ‘확률 변수 고정’이라는 시동이 걸려 있었다!
자신이 폭풍 같은 딱밤을 때려 시동을 걸려 한 것은 RC카용 AAA 건전지로 화물차를 움직이려 한 거나 마찬가지!
각성이 안 되는 게 당연했다.
아니. 혹시라도 전투 예지 각성을 해서 확률 변수 고정능력을 잃었다면 검은 폭풍이 사라지는 대참사가 터질 뻔했다.
‘이런 삽질을 했다니!’
천문석은 탄식하는 동시에 감탄했다.
‘이걸 어떻게 해낸 거야?’
‘확률 변수 고정’이라는 상상을 초월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검은 폭풍의 업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낱같은 승리의 가능성을 찾아 ‘고정’하기 위해서 확률이라 이름의 주사위를 수없이 굴리고 또 굴렸으리라.
그 결과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선생님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당연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고, 바라는 게 크면 필요한 대가도 커진다.
작은 승리에는 작은 대가면 충분하다.
그러나 검은 폭풍이 바람은 게이트 전쟁의 승리였다.
4년 동안 낙동강 전선을 지킨 것만으로 어떻게 됐는지 직접 두 눈으로 봤다.
몇 시간 전까지 있었던 2004년 부산, 칠성파 빌딩 6층 계단.
검은 폭풍 이세영 소장님의 그릇이 깨지고 각성력이 마른 것을 직접 확인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2004년 이후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검은 폭풍은 5개 게이트가 중첩해서 열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서울과 부산, 대전, 강릉, 완도, 광주……!
전국의 도시에 열린 게이트에 안정화 장치를 설치해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안전지대를 연결하는 도로망을 복구하고 마수와 몬스터를 마경으로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검은 폭풍이 정립한 대몬스터전 전략 전술과 재금 공업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게이트는 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무한한 자원과 가능성을 가진 이세계로 이어진 통로가 됐다.
마침내 인류는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했다.
검은 폭풍 이세영 소장님은 바람대로 학교로 돌아갔고.
학생이었던 자신은 교단에 선 이세영 담임 선생님과 만나게 된다.
언제나 헛다리를 짚던.
참전 메달을 자랑스레 보여 주시며.
게이트 전쟁의 치열함이 아닌 희망을 말하던 선생님.
이세영 선생님은 주름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이 학생인 자신이 이세영 선생님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다.
눈부신 젊음과 명운에 닿은 힘을 잃었지만, 선생님은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반대였다.
제주도 바다에서 일어난 엉망진창 카지노 나이트의 밤이 끝난 해변.
이세영 선생님은 이태성 길드장의 계략에 빠져 힘과 젊음을 되찾으셨다,
‘이세영! 힘을 되찾은 걸 축하한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 으하하하하-’
이태성 길드장의 득의양양한 외침에.
이세영 선생님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태성! 이 미친 게임 폐인 놈!’
10대로 돌아간 이세영 선생님은 되찾은 젊음에 기뻐하는 게 아니라 어려진 모습으로 어떻게 학교에 돌아갈지부터 걱정하셨다.
임시방편으로 인형 가면을 써 보라는 말에 벌꿀이 뚝뚝 떨어지는 벌집 모양 가면을 쓰고 환호하던 그 모습과 그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원하는 빛나는 젊음.
신성을 얻은 존재조차 바라는 명운에 닿은 힘.
검은 폭풍이라는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이세영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을 별 고민 없이 포기하셨다.
선생님은 원래 그런 분이셨다.
그렇기에 게이트 전쟁의 승리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로 돌아와 주름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셨다.
이세영 선생님은 원래 그런 분이셨기에…….
* * *
“…….”
어느새 천문석은 현실의 눈으로 정신을 잃은 이세영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무공, 각성력, 주술력…….
그 계통이 어떻든 모든 힘은, 힘 그 자체보다 누가 그 힘을 가졌는지가 중요했다.
이세기가 구파일방은커녕 정파 100대 문파에도 간당간당한 창천검문의 무공으로 천하 십절의 검절, 무림 맹주 천검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이세영 선생님이기에 가능했다.
확률 변수 고정이라는 명운에 닿은 힘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다면 이런 위업을 이루진 못했을 거다.
그 힘이 이세영 선생님에게 전해졌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
이세영 선생님과 확률 변수 고정능력이 만났기에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모두 바쳐 기원을 이루는 대주술 중의 대주술, 현실 개변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본질을 비추는 조요경이 된 일기일원공으로 봤다.
이세영 선생님의 심상 공간 깊은 곳에 자리한 무언가.
확률 변수 고정의 힘은 마치 태양처럼 각성력의 씨앗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민들레 솜털처럼 천지에 흩날리는 각성력의 씨앗이 끌려와 닿는 순간.
무공, 육체, 오러, 마탄, 마력, 초능력.
6계통의 각성력의 씨앗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확률 변수 고정에 합쳐졌다.
확률 변수 고정이 각성력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이것 때문이었다.
각성력의 씨앗과 확률 변수 고정의 힘에는 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사람을 지켜라.’
천지에 가득한 각성력과 그 씨앗에 담겨 있던 의지가 확률 변수 고정에도 담겨 있었다.
우연히 같은 의지가 담길 리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월을 다시 초월한 아득한 존재의 안배였다.
그리고 그 아득한 존재의 안배가 이세영 선생님에게 닿은 건 너무나 당연했다.
비슷한 것은 서로에게 끌리는 법이다.
‘사람을 지켜라.’
아득한 존재의 의지와 이세영 선생님의 의지는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았으니까.
천문석은 어느새 이세영 선생님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기절한 선생님을 향해 너무나 답이 뻔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 10대의 젊음이 사라진 게 아쉽지는 않으세요?”
질문하는 순간 머릿속에 그려진 이세영 선생님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10대? 젊음? 뭐가 사라졌다고?’
“……어?”
그리고 반사적으로 다시 보는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그대로다!’
심상 공간에 집중하느라.
너무 익숙한 얼굴이라 깜빡 잊고 있었다!
명운에 닿은 힘, 확률 변수 고정!
현실 개변이라는 사기 능력을 얻었는데!
이세영 선생님의 얼굴이 그대로다!
그렇다!
노화 역전이 안 됐다!
* * *
“……!”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굳어 있는 것도 잠시.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기감을 뻗어 이세영 선생님의 육체를 확인했다.
육체에서 느껴지는 힘과 활력!
그리고 일기일원공의 거울로 확인한 각성력!
이세영 선생님은 각성한 게 확실했다.
중간에 일이 좀 꼬였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세영 선생님이 스스로 기절하며 말의 앞뒤와 아귀가 맞아들어갔다.
이제 모든 게 해결됐다.
단 한 가지, 노화 역전 각성을 빼고!
분명 이세영 선생님은 딱밤을 맞고 기절했다 깨어났을 때 확 어려졌다고 말했다.
즉, 기절한 지금 노화 역전 현상이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신체가 재구성될 전조 증상, 노화 역전이 일어날 조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왜 노화 역전이 안 일어나는 거지?!’
반사적으로 맥을 짚고 육체와 심상 공간을 동시에 확인하는 순간 번쩍 한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각성력 부족!
이세영 선생님의 심상 공간에 넘치도록 충분한 각성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자신이 쏟아부은 각성력은 ‘전투 예지’ 능력을 각성하고 신체 재구성, 노화 역전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전투 예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확률 변수 고정’, 명운에 닿은 현실 개변의 능력을 각성시키는데는 간당간당했다!
즉, 노화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에는 남은 각성력이 부족한 거다!
“……!”
모든 게 얼렁뚱땅 마무리됐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진 상황!
그러나 천문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은 간단하다!
이미 각성이라는 바위는 굴렀다.
모자란 각성력을 때려 박아 넣으면 노화 역전이 시작되리라!
파파팟-
번개같이 엄지로 약지를 짚어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고 심상 공간에 가득한 각성력을 움직였다.
‘급해! 빨리 모여라!’
그러나 각성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건 또 왜 안 움직여?!’
반사적으로 관조하는 순간 이번에도 바로 알아챘다.
심상 공간의 각성력이 텅텅 비었다!
대환단을 마중물 삼아 뽑아낸 엄청난 각성력이 모두 사라졌다!
“미친 그 많던 각성력이 전부 다 어디로……!”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번쩍 고개가 들리고 그 각성력이 간 곳이 보였다.
암석 트롤.
이세영 선생님.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가 있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빌딩 옥상.
십자로 찢어진 이마를 가진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염동 대협 마혁진!
순간 뇌리를 스치는 기억.
이세영 선생님이 검은 폭풍으로 각성하도록 압력을 주기 위해 암석 트롤과 몬스터 무리를 몰아야 했다.
자신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기에, 이걸 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
그러나 마혁진의 각성력도 간당간당한 상태!
그리고 자신의 심상 공간에는 쓰고 남은 각성력이 잔뜩 있었다!
“…….”
어차피 자신은 사용하지도 못하는 각성력,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남은 각성력을 모두 최대출력 딱밤에 담아 마혁진에게 날렸다!
그렇다!
마혁진의 저 십자로 찢어진 이마가 바로 그 많던 각성력이 전해진 흔적이다!
어차피 버리는 뼈다귀 서리 늑대 탱탱이 준다고, 남은 각성력을 모두 마혁진에게 줘 버린 지금.
각성력이 필요한 긴급 상황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