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08화>
팟-
폭음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소리가 울리는 순간, 그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던 암석 트롤이 그대로 정지했다.
천문석과 이세영의 시선이 마주치고 여섯 번째 리볼버 탄환에 암석 트롤이 침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화염병을 던지던 임수정과 염동포탄을 쏘아 보내던 마혁진은 돌변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검은 폭풍이!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모든 공격을 무시하고 돌진하던 암석 트롤이 멈췄다!
총성도 마력광도 없이!
“어떻게?!”
“설마, 이세기가?!”
두 사람이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천문석도 경악한 얼굴로 이세영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5연발 리볼버의 여섯 번째 탄환!
발사될 리 없는 탄환이 발사됐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 탄환이 반발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해 암석 피부 너머 암석 트롤의 머릿속 절대 영역으로 순간 이동했다는 것!
절대 영역.
지배력이 아득히 올라가는 육체 안!
순간이동 능력자가 최강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 절대 영역에 있었다.
독이나 폭약 아니 동전이나 작은 돌멩이라도 상관없다.
순간이동으로 몸 안에서 불쑥 나타나는 물체를 버틸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그건 마수와 몬스터도 마찬가지.
지배력이 아득히 치솟는 절대 영역 안에는 모든 각성력이 먹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염동력의 포탄에 물리력을 실어 보내고, 마력으로 화염과 뇌전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이세영 선생님은 이걸 해냈다!
단 한발의 마탄!
5연발 리볼버의 존재할 리 없는 여섯 번째 마탄으로 암석 트롤을 침묵시켰다.
최상급 몬스터의 절대 영역 안으로 마탄을 순간이동 시켜서!
이세영 선생님은 불가능하다.
아니 그 어떤 각성자라도 불가능하다.
이게 가능한 사람은 한국에 단 한 명뿐이다.
검은 폭풍 이세영!
이 모든 것이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마침내 이세영 선생님이 각성했다는 것!
“내 계획대로! 카캬카카카캌-!”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문득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다.
“……!”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바라보는 이세영 선생님과 시선이 마주쳤다.
빙그레 미소 짓는 얼굴과 별처럼 반짝이는 눈.
겸연쩍게 웃으며 손을 들 때 선생님의 입이 먼저 열렸다.
순간 수백 미터의 거리를 뛰어넘어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래서 여섯 번째 방아쇠를 조심하라고 말한 거였구나?]
마음속에서!
“선생님?! 지금 이거?!”
천문석이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이세영의 시선이 움직였다.
달리던 자세 그대로 멈춘 암석 트롤.
환호하던 사람들이 도망쳐 텅 빈 건물과 빌딩.
암석 트롤의 지배력이 풀려 뿔뿔이 흩어지는 몬스터 무리.
빙글 주위를 훑은 시선이 흐릿한 하늘에 닿는 순간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육체, 오러, 마탄, 마력, 초능력, 무공.]
[여섯 계통의 각성자, 각성 동물.]
[세계에 가득한 의지.]
[이게 당신이 찾은 답이군요.]
[결국, 성공하셨군요. 사령관님.]
……
“사령관님? 지금 무슨 말을……?!”
자신도 모르게 묻는 순간 하늘을 보던 이세영 선생님과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나 때문이었구나…….]
[이 모든 것을 나 때문에 준비한 거구나.]
[그래도 딱밤을 그렇게 많이 때리다니 너무했어.]
이세영 선생님이 빙그레 웃는 순간.
천문석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텔레파시!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초능력 계통의 텔레파시 능력이다!
전투 예지와 텔레파시는 모두 초능력 계통!
사상 최고의 전투 예지 능력자 검은 폭풍이 텔레파시 능력을 발현해도 이상할 건 없다!
아니 오히려 이 사실은 증거였다.
검은 폭풍이 각성했다는 명확한 증거!
됐다! 시동이 걸렸다!
마침내 제대로 각성했다!
“잠깐 그렇다면!”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생각!
나비효과!
이세영 선생님이 각성한 지금 나비효과를 막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달라진 역사를 바로잡는 것!
원래라면 리볼버와 마탄을 받고 한 번의 딱밤을 날리자마자 선생님은 기절했어야 한다!
하지만 원래 역사와 달리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 번이 아닌 미친 듯한 폭풍 딱밤을 날렸고, 이후 여섯 명의 정찰조를 만났으며, 강남 건물을 먹겠다고 존버하던 사람들에, 암석 트롤과 몬스터 무리까지 나타났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건물 옥상에서 처음 딱밤을 날렸던 순간, 그 뒤의 기억을 모조리 날려 버리면?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이세영 선생님의 기억은 원래 역사와 비슷해진다!
어떻게 할지 계획도 이미 세워뒀다!
존재의 본질에 새겨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육체에 남겨진 단기기억을 간단히 날려 버릴 방법을 찾았다.
마혁진의 각성력을 채우려 최대출력 딱밤을 연속으로 날려 이마를 깨뜨리며 얻은 깨달음!
과유불급!
그릇에서 흘러넘친 각성력으로 단기기억 상실을 유도해 육체의 기억을 지워 버린다!
지금 당장!
“선생님!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외침과 동시에 간판에서 뛰어내리려 할 때 마음속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너 또 그 딱밤을 때리려고 그러지? 자꾸 그렇게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돼.]
‘어떻게? 설마! 텔레파시가 마음도 읽는 거였어?!’
정곡이 찔려 흠칫 놀라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텔레파시 아냐. 당연히 마음을 읽는 것도 아니고. 그 누가…… 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그 딱밤은 넣어 두렴. 나는 이제 곧 기절할 거니까 나비효과는 걱정할 거 없단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이 리볼버와 마탄을 주고 딱밤을 날린 후의 기억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모두 잊을 테니까 말이야.]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너무나 의미심장한 말들!
‘뭐야?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이 순간 이세영 선생님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로 크게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 과거, 현재, 미래. 이 모든 게 다 네 덕분이란다! 전부 다 정말 고마워……!”
휘이이잉-
이세영 선생님은 감사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작게 속삭였다.
“…….”
속삭임이 담긴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순간 전신에 전율이 흐르고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빙그레 미소 지으며 텅 빈 리볼버를 머리에 가져가는 이세영 선생님.
“……!”
무언가를 할 틈도 없었다.
이세영 선생님은 리볼버 방아쇠를 당겼다.
화염도 총성도 없었다.
유령 같은 여섯 번째 마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딱- 공이가 텅 빈 약실을 때리는 순간.
이세영 선생님은 텔레비전 전원이 꺼지듯 쓰러졌다.
“선생님!”
천문석의 머릿속에선 폭풍이 몰아쳤다.
마지막 감사 인사와 함께 바람결에 담아 전한 속삭임.
그 작은 속삭임을 분명히 들었다!
이세영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나 헛다리 짚던 박찬호, 이번에 밀었던 한호석, 자신이 직접 말한 귀인도 아닌 다른 이름.
지금 2000년의 이세영 선생님이 절대 알 리 없는 이름을 불렀다.
‘고마워 천문석, 내 제자.’
* * *
이세영 선생님이 쓰러지는 순간 재생 버튼을 누른 듯 멈춰 있던 모두가 움직였다.
“선생님!”
임수정이 시동이 꺼진 오토바이를 버리고 달리고.
“검은 폭풍!”
마혁진이 반사적으로 건물에서 뛰어내리려다가 멈칫할 때.
천문석은 펼치려다 멈춘 기술을 펼쳤다.
사일(射日).
압축된 내력으로 만든 시위를 놓는 순간 육체가 화살이 되어 쏘아진다.
한 줄기 일진광풍이 되어 수백 미터를 날아가는 육체!
파아아아앙-
천문석은 이세영 선생님의 몸을 잡았다.
“선생님! 방금 어떻게 된 거예요?! 제 이름은 어떻게!”
힘없이 축 늘어지는 몸.
확인보다 상태 확인이 우선이다!
재빨리 머리와 전신을 살폈다.
몸 곳곳에 발갛게 부어오른 흔적이 보였다.
이건 폭풍 딱밤의 흔적!
텅 빈 리볼버가 겨눠졌던 머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다!
그러나 그건 한 방에 훅 간 암석 트롤도 마찬가지!
내부, 안을 확인해야 한다!
천문석은 이세영 선생님의 손목에 손을 올리고 내력을 밀어 넣었다.
두근-!
육체 안으로 뻗는 순간 튕겨 나오는 내력!
각성력에 반발력이 생겨났다!
반발력은 각성의 증거다. 그리고 이세영 선생님이 무사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 깜짝 놀라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천문석은 잽싸게 내력을 흩어 버리고 기감을 일으켰다.
‘검은 폭풍으로 각성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툭-
손끝이 이마에 닿고 육체가 아닌 영육과 혼백 사이 심상 공간 속으로 기감을 뻗었다.
곧 감이 왔다.
‘여기다!’
현실을 보는 눈을 감는 순간, 심상을 보는 눈이 번쩍 뜨였다.
보인다!
폭풍이 되어 의미 없이 몰아치던 각성력에 목적성이 생겼다.
운전자가 핸들을 잡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각성력을 연료 삼아 줄기줄기 힘을 뿜어내는 무언가가 목적성이다.
그렇다!
무언가가 힘을 뿜어내고 있다!
짐작한 대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각성력의 씨앗, 불꽃이었다!
예상한 대로 이세영 선생님은 이미 시동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5연발 리볼버의 여섯 번째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이미 시동이 걸린 자동차가 움직이는 트리거가 됐다!
‘느껴진다!’
휘발유가 타오르며 빛과 열기를 쏟아 내듯!
무언가가 각성력을 연료 삼아 쏟아 내는 힘, 6계통의 각성력!
무공은 아니다.
육체도 아니다.
오러, 마탄, 마력 모두 아니다.
이세영 선생님의 각성력은 당연히 초능력 계통 그중에서도 전투 예지…….
이 순간 심상 공간을 관조하던 정신에 벼락이 떨어졌다.
‘이게 뭐야?!’
이세영 선생님의 각성력은 전투 예지가 아니다.
아니, 아예 6계통의 각성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힘이다!
‘아니 잠깐 이 힘은 뭐야?!’
천문석은 바로 전생 천마가 혼백에 새긴 무혼을 되짚어 기감에 느껴지는 힘과 비교했다.
-대요마, 요괴선.
-천리를 비트는 마물.
-뒤틀림에서 태어난 괴이.
-한계를 넘어선 도사, 대덕, 주술사…….
파파파파팟-
미친 듯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격전의 기억들!
내력, 요력, 혼돈력, 도력, 불력, 주술력…….
전생 천마가 겪은 어떤 힘과도 다르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아니, 도대체 이 힘은 뭔데요?!’
이 순간 누군가 보여 주듯, 불현듯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무저갱의 마굴!
전생 천마가 마굴의 끝에서 본 존재.
영락한 마신과 이름이 잊힌 허신!
비슷하다!
무언가가 뿜어내는 힘은 마신과 허신의 힘이 아닌 마굴에 처박히게 된 ‘이유’와 닮았다.
신성을 얻어 신위에 닿은 마신과 허신이 마굴의 바닥에 떨어진 이유.
존재의 근원이 말라 버려서다!
“……!”
천문석은 홀린 듯 이세영 선생님의 심상 공간의 씨앗, 무언가를 향해 기감을 뻗었다.
바늘 끝을 바라보듯 정신이 아득해지고 한 줄기 실낱같은 기감이 닿는 순간 깨달았다.
존재의 근원!
이세영 선생님의 힘은 존재의 근원에 닿아 있었다!
신성을 얻은 초월자조차 말라 버리는 순간 영락하는 존재의 근원.
명운(命運)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외치는 순간 다시 한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이거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리고 진짜 명운에 닿은 힘인지 알아볼 방법이 있다!
전생 천마는 무저갱의 마굴 끝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하나의 무공을 창안한다.
모든 것을 삼키는 천마 신공 때문에 정작 전생 천마는 입문조차 하지 못한 무공.
일기일원공!
일기(一氣), 일원(一元)!
대지(地極)와 하늘(天元)을 잇는 일기일원공이 바로 존재의 근원, 명운에 닿은 무공이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마음먹는 순간 일기공과 일원공이 일어나 서로의 꼬리를 물고 회전했다.
이 순간 태극을 그려내는 일기일원공에 심상을 투영했다.
창공을 질주하는 바람의 흔적을 보여 주는 강이고.
밤을 밝히는 아득한 달과 별빛을 그려 내는 호수이자.
요마괴이의 겉이 아닌 본질을 비추는 거울, 조요경이다!
천문석은 지극과 천원을 잇는 일기일원공의 거울로 이세영 선생님의 심상 공간 가장 깊은 곳을 비췄다.
영원과도 같은 찰나의 순간이 지나가고, 마음을 비추는 일기일원공의 거울에 흐릿한 상이 맺혔다.
흐릿한 상이 선명해지는 순간 세계에 알리는 깨달음의 일성, 고고성이 터져 나왔다.
“어, 어? 어어엇?!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