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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06화 (1,10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06화>

“……마지막 임무.”

입속으로 읊조리다 문득 시선을 내리자 수첩에 붙여 놓은 칼로리바 포장지가 보이고, 스승님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이 쪽지는 뭔가요?’

‘개고생.’

‘네?’

‘개같이 구르게 되는 인과가 담겨 있는 쪽지다. 하아-’

스승님은 깊은 한숨과 함께 설명을 시작했다.

‘2번 안전 장갑이라고 쓴 쪽지는 네 거다.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으니까 나중에 내가 떠나면 보고. 3번 정찰조 쪽지는 압구정에 도착했을 때 정찰조 애들한테 줘서 목적지에 보내면 된다. 그리고 4번은 네가 이세기를 만나면 그때 직접 건네줘라. 그렇게 하면 될 거다. 아마도…….’

미래를 아는 사람처럼 거침없던 모습과 달리, 말끝을 흐리던 스승님의 모습.

자신은 잠시 머뭇거리다 질문했다.

‘2, 3, 4번이요? 1번 쪽지는 없나요? 그리고 이세기를 알아보려면 뭔가 다른 특징을 알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이 순간 스승님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1번 쪽지, 있었지.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 받았을 때 바로 버렸어야 했는데. 아니 다시 만났을 때 아예 말도 걸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아- 1번은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리고 이세기는.’

문득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섬뜩한 광채가 쏟아지고 확신이 담긴 말이 이어졌다.

‘알아서 널 찾아올 거다. 날 찾아온 것처럼 말이지.’

‘네? 찾아온다고요?’

‘그래 ‘뭐야 이 녀석?’이라는 생각에 다시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 그 녀석이 바로 이세기다!’

스승님은 깊은 한숨과 함께 떠나갔고, 자신은 2번 쪽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우이천, 중랑천을 지나 한강을 건너는 방법과 압구정에서 서초까지의 이동 경로,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었다.

게이트가 열린 지 2개월! 난장판이 됐을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는 일이다!

스승님의 표정만으로 상상을 초월한 개고생이 예상됐다.

하지만 스승님이 없었다면 아무리 뽀미가 있어도 안전지대를 강북구, 도봉구까지 확장하는 건 불가능했다.

서울이 난장판이 되고 법과 도덕이 무너진 지금, 원칙을 지키는 건 무엇보다 중요했다.

받은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

그래서 스승님에게 받은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전원 자원자로 인원을 모아 3월 1일 오늘 아침 출발했다.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엄청난 초능력을 지닌 스승님이 개고생할 거라고 단언한 일이다!

완전 무장한 100여 명의 베테랑 라이더 전원은 처절한 싸움을 각오하고 움직였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이 목적지인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세워진 건물이 보이는 서초구 대로에 도착했다.

이 대로를 직선으로 5분만 달리면 이세기가 있는 건물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세기에게 스승님에게 받은 4번 쪽지를 건네면 임무는 끝난다.

그러나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온갖 잡동사니가 널린 도로 좌우.

멀쩡한 건물과 무너지고 골조가 드러난 건물이 뒤섞인 시가지에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쏟아지고 최상급 마수가 튀어나왔어도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 거다.

무너진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멀쩡한 건물과 빌딩, 아파트 창문과 옥상, 베란다에서 몸을 내민 사람들은 악을 쓰듯 외쳤다.

시가지가 가까워지자 이 주민들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고, 목이 터져라 지르는 외침이 생생히 들려왔다.

임수정과 100여 명의 라이더들은 바짝 긴장한 채 주민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드디어 군대가 왔다!”

“한강! 역시 한강을 타고 진입했어!”

“잠깐 군대 맞아? 군복이 아닌데?! 게다가 오토바이 부대라고?”

“당연히 군대지!”

“맞아 알박기도 다 끝났는데 일반인이 저렇게 무리 지어 올 리 없지!”

“저지선을 펼치러 왔겠지?!”

“당연하지! 한강에 저지선을 펼쳐야지!”

“그렇지! 저지선을 펼치려면 경기도가 아니라! 강남을 지킬 수 있는 한강에 펼쳐야지!”

“강남은 불패한다!”

“드디어 존버가 성공했다!”

“2달! 건물을 끝까지 지켰다!”

“이제 나도 강남 건물주다!”

“아파트! 이건 이제 내 아파트다!”

“찬호 엄마! 우리도 이제 강남 아파트 집주인이야!”

……

“…….”

“…….”

어느새 오토바이가 멈추고, 깊은 침묵이 100여 명의 라이더 사이에 내려앉았다.

게이트가 열리고 난장판이 된 서울에 안전지대를 만들고 버티며 온갖 인간군상을 겪었다.

그런 임수정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을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이 한 시간 거리에 저지선이 있는데도 서울에서 버틴 이유!

임수정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러니까. 지금 강남 건물, 빌딩, 아파트 먹겠다고 버티고 있었다는 거야?!”

“존버는 또 뭐야?”

“존버! 존나 버티기구나!”

“저 사람들 아무래도 집주인들도 아닌 거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황당함으로 물들 때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외침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때 끝없이 환호성이 터지는 도로를 달려오는 군인이 보였다.

군인은 헐렁한 군복에 소총을 메고 도로 좌우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와요!…… 해! 피해요!”

“저 군인은 또 누구야?”

“뭐가 온다고?”

그 외침은 수백 명이 지르는 환호에 삼켜졌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워지던 어느 순간 환호성을 뚫고 온전한 문장이 들려왔다.

“몬스터 밀려와요! 위험해! 당장 피해요!”

“몬스터?”

“몬스터가 어디 있다는 거야?!”

“근처에 몬스터는 안 보이던데?”

몬스터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릴 때 라이더 중 몇이 외쳤다.

“어, 저 군복?!”

“저기 달려오는 사람 그 선생님 아냐?!”

“그 선생님?”

“저번에 정찰 나간 우리 애들 구해 줬던 선생님 말이야!”

“아! 그 버스 빼내겠다고 달려서 몬스터 유인하던 그 선생님!”

“여기예요! 선생님! 여기입니다!”

반색한 라이더들이 손을 흔드는 순간, 정신없이 달려오던 이세영은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낯익은 오토바이 곳곳에 보이는 낯익은 얼굴들!

옥상에서 다시 만난 정찰조 애들이 말한 본대다!

“왔구나! 빨리 사람들 대피시켜야 해! 남쪽에서 몬스터가 밀려오고 있어! 아주 강한 놈이야!”

“네?”

“어디에 몬스터가……?”

“몬스터 안 보이던데?”

……

고개를 갸웃하는 라이더들과 여전히 환호하는 주민들!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다! 총성으로 흩어 버린다!’

이세영은 반사적으로 소총을 풀어 하늘에 겨누는 순간 깨달았다.

‘탄환이 없다!’

순간 탄띠에 결착해 둔 파우치가 보였다.

“호석이!”

파우치를 여는 순간 보이는 리볼버와 탄환!

재빨리 리볼버를 꺼내 탄환을 한 발 넣고 반사적으로 외치고 하늘을 향해 당겼다.

“사선 확인!”

타앙-

평범한 총성과 함께 탄환이 발사됐다.

그러나 그 결과는 평범하지 않았다.

탄환의 궤적을 따라 짙은 녹색의 마력광이 레이저처럼 수직으로 하늘을 가로질렀다.

찰나의 순간 환호성은 사라지고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솟구치는 마력광에 모였다.

“……!”

“……!”

마력광에 모인 시선이 그 시작점 리볼버에 닿는 순간.

“몬스터 남쪽에서 밀려와요! 지금 당장 피하세요!”

이세영은 온 힘을 다해 외치고 몸을 돌려 몬스터를 유인하러 달렸다.

이 순간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일어났다.

우와아아아아-

수십 배로 커진 환호성이 터지고 외침이 터져 나왔다!

“총! 진짜 총이야!”

“진짜 군대가 왔잖아!”

“국군이 신무기를 가지고 강남에 왔다!”

……

“어?!”

달려가던 이세영이 깜짝 놀라 멈춰 서는 순간 하늘을 비틀어 쥐어짜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쐐애애애애애애-

전투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터지는 음속 폭음!

유리창이 깨질 듯 요동치고 모두가 반사적으로 귀를 막을 때.

콰아아앙-

포탄이 떨어진 듯한 폭음이 터지고 대지가 진동했다!

“남쪽이다!”

본능적으로 몸이 돌아가는 순간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다!

쭉 뻗은 대로 끝!

포격을 맞은 듯 자욱한 먼지가 치솟고 있다!

“왜 갑자기 포격을……?”

누군가 말하는 순간 일어났다.

크아아아아아-

거대한 포효가 하늘을 떨어 울리고!

쿵쿵, 쿠우우웅-

북 치듯 울리는 진동이 대지를 뒤흔든다!

“……!”

“……!”

전기가 흐르듯 손발이 저릿저릿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 2달 수없이 싸우고, 유인하고, 도망쳤던 베테랑 각성자들은 직감했다!

“설마……?”

“이거 설마?!”

쐐애애애액, 콰앙-

이 순간 다시 한번 음속 폭음이 터지고 마침내 보였다.

줄줄이 이어진 건물과 빌딩 사이사이에서 둑이 무너지듯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

그리고 그 선두에 보였다.

머리 위치가 3층 건물을 넘어가는 거대한 암반을 뚝뚝 잘라 붙인 듯한 이족 보행 몬스터, 암석 트롤이 나타났다.

크아아아아앙-

암석 트롤의 포효가 터지는 순간 저릿저릿한 전율이 전신을 훑고, 그 안에 담긴 무형의 힘이 유형의 육체를 짓눌렀다.

피어!

피어가 섞인 포효가 터지는 순간 폭발하듯 치솟은 불꽃이 암석으로 이뤄진 거체를 휘감는다!

눈에 보일 듯 선명한 반발장!

피어와 불꽃 같은 반발장!

그냥 암석 트롤이 아니라 최상급 암석 트롤이다!

* * *

“암석 트롤!”

“최상급 몬스터?!”

“저놈한테는 무기가 안 통……!”

“우선 빠져나가야!”

“사람들! 당장 대피시켜야……!”

“철근 콘트리트 건물을 찰흙처럼 짓뭉갠다!”

……

정신없이 외침이 쏟아질 때.

임수정은 말을 끊고 외쳤다.

“전원 이탈한다! 보이는 사람을 태우고 압구정! 바지선까지 달린다!”

부아아아앙-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는 오토바이들!

오토바이 엔진 굉음이 울리는 순간 최상급 몬스터의 등장에 넋이 나갔던 사람들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도망쳐!”

“당장 도망쳐!”

“안 돼 도망치다! 잡힌다!”

도로에 접한 건물에선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뛰어 내려와 골목을 달리고!

시가지 뒤쪽으로 이어진 빌딩과 아파트에선 재빨리 문을 닫고 커튼을 친 후 창과 입구를 막은 바리케이드를 확인했다.

“안 돼!”

임수정은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아파트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아직 전기와 수도가 살아 있는 상황!

입구만 막으면 자잘한 몬스터는 접근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최상급 몬스터 암석 트롤 앞에선 골판지 박스로 만든 성이나 마찬가지다!

뽀미의 영역을 확장해 안전지대를 만들며 몇 번이나 암석 트롤과 싸우고 그 전투 흔적을 봤다.

암석 트롤이 인지한 순간 숨어서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저 거대한 육체로 아파트 외벽을 타고 오르며 베란다 통창 안으로 손을 뻗으면 그 안의 사람은 먹잇감밖에 안 된다!

건물과 빌딩도 마찬가지!

철거용 중장비를 아득히 초월하는 파괴력으로 하중을 받치는 지상의 기둥을 박살 내는 순간, 거대한 건물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스승님과 뽀미를 만나기 전에는 흔적만 보여도 도망칠 수밖에 없던 항거 불능의 몬스터가 암석 트롤이었다!

뽀미의 영역 근처라면 영역 안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스승님이 있었다면 순식간에 돌무더기로 변했으리라!

그러나 이곳은 한강 이남! 뽀미도 스승님도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미친 듯이 돌아가던 머리가 멈추는 순간.

임수정은 외쳤다.

“암석 트롤! 한강으로 유인한다!”

대장을 지키려 대기 중이던 4, 50대 라이더는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암반을 뚝뚝 잘라 붙인 골렘 같은 외형!

그러나 암석 트롤은 생명체다!

호흡하지 못하면 숨이 막혀 죽는 건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

물에 빠지는 순간 그 엄청난 암석 피부의 무게 때문에 스스로 떠오를 수 없다!

찰나의 순간 깨닫고 동시에 외쳤다.

“저놈 내가 유인하겠다!”

“헛소리! 느려빠진 중국집 스쿠터로 뭘 유인해!”

“됐고 둘 다 빠져! 부식 배달 30년! 내가 유인한다.”

“아저씨들 제가 합니다! 오토바이퀵! 번개같이 한강으로 유인……!”

……

부아아아앙-

그 순간 정신없이 쏟아지는 외침을 엔진 굉음이 지워 버렸다.

화살이 쏘아지듯 튀어 나간 임수정의 오토바이!

“……야!”

“너 어디가?!”

“대장! 수정아! 야 임수정!”

“멈춰! 야, 넌 지휘를 해야지!”

“압구정 바지선으로 튀세요!”

부아아아앙-

임수정은 돌아보지 외치고 도로를 달렸다.

이곳은 수십 년 동안 산, 우리 동네가 아닌 낯선 동네다!

작은 골목길과 뒷구멍 하나까지 아는 동네 토박이 아저씨, 아줌마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장소다!

암석 트롤을 유인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멈추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여기서 암석 트롤을 유인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최고의 실력자!

바로 나다!

“아저씨들 사람들 대피시키고 바지선에서 만나요!”

외침과 동시에 좌석 뒤를 손으로 훑었다.

탁-

손에 착 감기는 유리병!

가솔린과 설탕을 섞어 만든 화염병!

이 화염병으로 암석 트롤을 유인한다!

임수정은 한 손으로 능숙하게 심지를 박고 핸들 아래 홀더에 화염병을 줄줄이 꽂았다.

모두 다섯 개!

화염병 준비가 끝나는 순간 버려진 버스가 보였다.

뒤에 암석 트롤이 있다!

“할 수 있다! 임수정!”

주문 같은 외침과 함께 급회전!

끼이이이익-

버려진 버스에 닿을 듯 붙는 순간.

부아아아앙-

단숨에 가속해서 튀어 나가며 라이터를 꺼내 화염병에 불을 붙였다.

“…….”

그러나 임수정은 화염병을 던지지 못했다.

크아아아앙-

피어가 섞인 포효를 지르며 홀로 전진하는 암석 트롤.

두두두두둑-

그 뒤 100여 미터 북 치듯 대지를 두들기며 밀려오는 몬스터 무리.

쐐애애애액, 콰아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음속 폭음이 터질 때마다 몬스터 무리에서 치솟는 흙먼지.

순식간에 전장으로 변한 도로에는 자신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암석 트롤과 몬스터 무리 사이, 버려진 화물차!

헐렁한 군복을 입은 채 화물차 짐칸에 납작 엎드려, 불과 몇십 미터 앞을 지나가는 암석 트롤 머리에 총구를 겨눈 사람!

방금 나타난 몬스터 등장을 경고한 이 선생님이다!

“선생님? 안 돼요! 너무 가까워요! 기다리세요! 제가 유인……!”

-……!

임수정의 외침에 암석 트롤의 시선이 움직이는 순간.

“사선 확인!”

“사선 확인!”

두 번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탕탕탕탕타아앙-

다섯 번의 날카로운 총성이 대기를 울리고.

파스스스슥-

하나로 합쳐진 마력광이 반발장을 불태우고 암석 트롤의 뒤통수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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