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05화>
부아아아앙-
거친 엔진음을 토해 내는 100여 대의 오토바이가 자동차와 온갖 잡동사니가 널린 도로를 움직이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 라이더 전원은 지난 2달 동안 마수와 몬스터가 가득한 서울에서 싸우면서 안전지대를 만들어 가족과 집, 재산을 지킨 베테랑들이었다!
물론 그런 베테랑에게도 안전지대를 나와 서울을 가로질러 강남으로 내려오는 건 긴장되는 일이었다.
모두는 바짝 긴장한 얼굴과 마음으로 움직였다.
처음에만!
안전지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거대한 강이 된 우이천에 생각지도 못한 바지선이 있었다.
대형 플라스틱통 수천 개와 단단한 철골 시멘트 구조의 바지선을 타고 순식간에 우이천, 중랑천을 지나 성수 대교 아래 한강을 건넜다.
압구정에 도착한 순간 모두는 다시 바짝 긴장했다.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쏟아진 게 2달 전!
다리를 끊고 한강에 저지선을 만들었지만, EMP 마력 폭풍이 터지고 강남에도 게이트가 열리면서 저지선은 경기도까지 후퇴했다.
마개가 막힌 욕조 위,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을 계속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물이 흘러넘친다.
마개가 막힌 욕조는 강남지역.
욕조에 쏟아지는 물은 마수와 몬스터.
물이 쏟아지는 고장 난 수도꼭지는 게이트다.
지금 강남은 위는 한강으로 막히고 아래는 저지선으로 막힌 채 게이트에서는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지고 있었다.
당연히 국민대에서 북한산 초입으로 이어진 안전지대와, 각성 동물 ‘뽀미’라는 숨구멍이 뚫린 강북보다 상황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압구정에 도착한 모두는 정찰대를 사방에 보내고 바짝 긴장한 채 조심조심 움직였다.
압구정에서 한강 변을 따라 신사, 잠원으로 이동한 후,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반포까지.
5km, 3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지나오는 데 3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바짝 긴장한 게 무색하게도 강남의 상황은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3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었다!
아니 마수와 몬스터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
“…….”
“…….”
폭풍 전야와 같은 고요에 어느새 대화가 사라지고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 외쳤다.
“대장!”
순간 라이더 전원의 시선이 선두로 모였다.
풀 페이스 헬멧을 쓰고 철판과 강화 플라스틱을 박아넣은 가죽 재킷에 가죽 바지, 안전화를 신은 여자.
대장은 빙글 고개를 돌려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 진짜! 대장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대장이라 불렀던 중년의 라이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사거리 쌀집 큰딸이라고……!”
“아, 진짜! 그냥 이름 부르라고요. 이름! 그놈의 사거리 쌀집 큰딸!”
다시 한번 버럭 소리치는 순간 곧 100여 명의 라이더 사이 곳곳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장 이름이 뭐지?”
“혹시 아는 사람?”
“뭐야 너희 대장 이름도 몰라?”
“대장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아니 그럼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버럭 한 거야?”
“우리 대장 성격 원래 더럽잖아.”
“하긴 대학 가서도 사람 패고 다니다가 경찰도 찾아왔다며?”
“내가 듣기로는 무슨 운동 하다가 그랬다던데?”
“그 운동이 그 운동이 아니잖아. 화염병 던지고 돌멩이 던지는 그 운동이잖아.”
“아! 그 빨…… 흠흠흠-”
“쌀집 임 씨 형님이 엄청 걱정하던데. 에휴- 저거 언제 철들지. 쯧쯧-”
“그래도 그 덕분에 괴물 튀어나오자마자 모두 잡았잖아? 우리 집도 지키고!”
“하긴 그건 그렇지.”
“맞아, 맞아! 그 정도면 대학 보낼 만하지!”
“그렇지. 기다렸다는 듯이 화염병 만들고 벽돌 깨서 던지고 쇠 파이프로 쥐어패서 잡았지! 캬- 역시 대학에서 배워선지 다르더라고!”
하하하하하-
이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크크킄크킄-
카카카카캌-
푸흐흐흐흡-
웃음은 곧 전염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말만 들어도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었다!
20년 전 자신이 동네 꼬맹이일 때부터 부모님과 알고 지내던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다!
5, 60대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할 분들이 갑자기 각성하고는 펄펄 날아다니더니 애들만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없다며 여기까지 따라와 속을 긁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원죄였다.
그렇기에 몇 번이나 외쳤던 말을 다시 외칠 수밖에 없었다.
“임수정! 임수정이라니까요! 제발 좀 이름으로 불러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알았어. 대장.”
“생각해 볼 게 대장.”
“대장 좋구만, 뭐 저리 질색이야?”
벽과 대화하는 듯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갑갑함에 숨이 컥- 막힐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른이 돼서 애를 놀리고 말이야!”
동네 최고의 마당발 세탁소 아주머니!
“아주머니!”
감격한 목소리로 부르는 순간 세탁소 아주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 임 대장이라고 불러!”
“그럼 그렇지! 하하핰-.”
“후흐흐흐흨-.”
“크크크크킄-.”
……
다시 한번 웃음이 퍼져 나가고, 바짝 긴장했던 얼굴과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긴장이 풀렸다!’
임수정은 눈빛으로 감사를 전하고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빡센 임무가 될 거라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모든 게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미리 청소라도 한 것처럼 한강을 넘어 압구정에 도착한 이후, 여기에 올 때까지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나타나지 않았다.
문득 시선을 멀리 두자 사거리가 보였다.
도로 표지판은 날아갔지만 바로 감이 왔다.
저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나아가면 정찰조가 발견한 건물까지는 직선이다.
그 건물에 도착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번 임무도 끝이다!
임수정은 내심 안도하며 외쳤다.
“모두 준비하세요! 저 사거리만 지나면 목표가 보일 겁니다!”
부아아앙-
마치 대답하는 듯한 엔진 소리와 함께 100여 대의 오토바이는 도로를 지나 사거리에서 우회전했다.
우와아아아아-
이 순간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 * *
남쪽으로 쭉 뻗은 대로.
100여명의 베테랑 라이더는 넋이 나간 듯 멍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봤다.
이들 모두가 이런 표정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건물 창문과 옥상, 아파트 베란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몸을 내밀고 환호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각성 동물 뽀미의 영역에 만든 안전지대를 나와 바짝 긴장한 채 한강을 넘으며 생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
“…….”
“…….”
“…….”
모두가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볼 때 라이더 한 명이 문득 말했다.
“임 대장! 저기가 진짜 목적지 맞아? 뭔가 좀. 아니 많이 이상한데?!”
“…….”
임수정은 대답 없이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대로로 들어서는 순간 미친 듯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
‘스승님! 빡센 임무라면서요? 설마 엉뚱한 곳으로 온 건가?!’
임수정은 문득 든 생각에 재빨리 수첩을 꺼내 펼쳤다.
딱풀로 수첩에 붙여 둔 칼로리바 포장지에 적힌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2000년 3월 1일. 서초구.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있는 건물 옥상.]
번쩍 고개를 들자 환호하는 사람들 너머 우뚝 솟은 건물이 보였다.
옥상에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있는 건물!
정찰조가 발견하고 연락한 스승님이 자신에게 남긴 쪽지에 적힌 그 건물이 맞다!
그런데 시가지의 이 모습은 뭐란 말인가?!
무너지고 골조가 드러난 건물들!
곳곳에 널려 있는 몬스터 팔다리와 사체. 그리고 방금 뿌려진 듯 선명한 피!
방금까지 격렬한 전투가 일어난 듯한 모습과 달리 시선을 돌린 건물 창문과 옥상, 아파트 베란다마다 사람들이 있었다.
한두 명 수준이 아니다.
얼핏 봐도 수백 명이 넘었다!
한강 이남 서초구에 뽀미 같은 각성 동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각성 동물의 영역도 아닌, 그냥 시가지에서 버티고 있다고?!’
임수정이 황당함에 입을 떡 벌리는 순간 라이더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왜 피난을 안 간 거야?”
“강으로 막혀서…… 어, 여기는 한강을 건널 필요도 없잖아?”
“그렇지 여긴 강남이니까 그냥 내려가면 되지.”
“도로 타고 한 시간만 달리면 경기도 저지선이잖아?!”
“그러네? 어떻게 아니 왜? 여기서 버틴 거야?”
……
라이더들의 말대로다!
강남은 다리가 모조리 끊기고 한강과 이어진 하천으로 섬이 돼버린 강북과는 다르다.
이곳 서초구에서 남쪽 청계산만 빠져나가면 국군이 1차 저지선을 펼친 분당이 코앞이다!
당연히 이곳 서초구에는 남아 있는 사람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마후라에 구멍이 뻥뻥 뚫린 배달 오토바이와 폭주 오토바이를 끌고 올 수 있었다.
마수와 몬스터의 주의를 끌어도 사냥하고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압구정에서 이곳에 올 때까지 몬스터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고.
막상 도착한 목적지 서초의 상황도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물이 흘러넘치는 욕조!
마수와 몬스터가 가득할 거란 서초에 몬스터가 아닌 주민이 잔뜩 있었다!
지난 2달여 스승님과 개같이 구른 직감이 말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장. 계속 전진할 거야?”
이상을 느낀 건 임수정만이 아니었다.
웃음기가 싹 사라진 얼굴로 목소리를 낮춰 묻는 아저씨.
부릉, 부르르릉-
천천히 이동했는데도 어느새 시가지까지는 100여 미터 남짓 남은 상태.
시가지로 들어갈지, 멈출지 아니면 아예 뒤로 빠질지 지금 결정해야 한다!
순간 임수정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있는 건물에 오게 된 이유!
모든 게 시작된 건 2000년 1월 1일.
광화문에 처음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이 쏟아진 밤이었다.
괴물과 싸우고 있을 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남자가 나타나 가르쳐 준 게 있었다.
눈이 손으로 움직이고 케블라 섬유와 철편,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갑이 보였다.
안전 장갑.
이 안전 장갑의 시작이 바로 그 남자의 아이디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다는 남자는 목장갑, 철사, 젓가락으로 ‘안전 장갑’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더니, 옥상을 달려 사라졌다.
처음에는 만들어 끼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괴물들이 끝없이 나타나며 안전 장갑이 아니었다면 손가락이 날아갈 위기를 수없이 겪었다.
효용이 증명된 이상 퍼지는 건 시간문제!
철공소 아저씨들과 수예점 아주머니들이 달라붙어 본격적으로 개량하고 공장을 돌려 만들어 낸 안전 장갑을 만나는 모든 사람, 강북 전체에 뿌렸다.
그리고 이 안전 장갑이 한 사람을 불러들였다.
이마에 붉은 십자 상처가 있는 남자가 나타나 안전 장갑을 가리키며 외쳤다.
‘안전 장갑! 드디어 찾았다! 이세기 미친 새끼! 으아아악-’
미친놈처럼 괴성을 지르던 붉은 십자 상처의 남자가 바로 이번 임무를 준 스승님이었다!
그리고 지난 2달, 스승님은 마치 미래를 아는 사람처럼 거침없이 행동했다.
-마수와 몬스터의 사냥법을 배웠고.
-각성자와 각성력의 존재를 알게 됐다.
-각성 동물 뽀미와 접촉해 그 영역 국민대를 요새화하고.
-국민대를 시작으로 북한산과 맞닿은 강북구, 도봉구 지역으로 뽀미의 영역을 늘려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쉴 새 없이 배우고, 사냥하고, 조직하고, 건설하느라 2달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전 새벽 스승님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부산으로 떠나며 마지막 임무를 맡겼다.
‘3월 1일이다. 성수 대교를 지나 압구정에서 서초구로 내려가면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있는 건물이 있을 거다. 그 건물 옥상이 목적지다. 거기에 이걸 전하면 된다.’
스승님은 칼로리바 포장지를 접어 만든 쪽지 세 개를 건넸다.
딱지 모양으로 접힌 세 개의 쪽지에는 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2 – 안전 장갑.
3 – 정찰조.
4 - 이세기.
환호하는 주민들로 가득한 시가지 너머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있는 건물 옥상.
그곳에 있을 ‘이세기’에게 4번 쪽지를 전하는 게 스승님의 마지막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