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03화>
“……귀인 새꺄! 좀 기다리라고!”
천문석은 돌연 들려온 외침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노화역전 각성!
시동, 나비효과!
그리고 귀인 새꺄까지!
너무나 의미심장한 키워드!
누군가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메시지를 보냈다!
‘도대체 누가?!’
의문을 품는 순간 목소리가 이어졌고 잽싸게 귀를 기울였다.
“……그게 끝이야?”
“어, 이게 끝인데?”
“아니, 내용이 뭐 그 모양이야?”
“그러게. 이거 나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야, 자세히 봐봐! 그 뒤에 이어지는 거 없냐?”
“너 다른 쪽지랑 헷갈린 거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봐봐 봉인 뜯은 거 보이지?”
“헬멧 자세히 살펴봐. 대장 평소 말투랑 완전히 다르잖아!”
“어, 그러고 보니. 종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칼로리바 포장지에 써서 준 거야?”
“어라! 이 칼로리바 유통기한도 좀 이상한데……?”
“그것보다 이 건물이 맞는 거야? 인기척이 전혀 안 느껴지는데?”
“오다가 서초 IC 표지판 봤잖아?”
“위치는 맞아. 저 산이 우면산이고 저쪽에 서초 구청 있고…….”
“저기 옥상 구석에 광고 안 실린 대형 광고판 있잖아. 이 건물이 맞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안 나와?”
“그러게 말이야? 왜 안 나오지? 들어가서 확인해 볼까?”
“야! 위험하니까! 나올 때까지 절대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 들었잖아?!”
“아니 그렇게 위험하면 문을 폭약으로 날리면…….”
……
만담처럼 툭툭 주고받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감이 왔다.
옥상 문을 날려 버린 사람들, 생각지도 못한 외침을 전한 이들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
지시를 받고 이 건물을 찾아와 쪽지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외쳤을 뿐이다!
즉, 모든 의문의 답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들이 ‘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
순간 불꽃이 튀고 머릿속에서 단서와 정보가 소용돌이쳤다.
칼로리바 포장지에 적은 외침!
대장이 말했다는 광고가 안 실린 대형 광고판!
노화 역전 각성, 시동을 거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는 말!
가장 우려하던 나비효과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확언!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렀던 귀인 새캬까지!
모든 단서가 소용돌이치며 파팟- 아귀가 맞춰질 때 잔뜩 억눌린 목소리의 질문이 날아왔다.
“귀인 새꺄. 이거 설마?”
“너지? 방금 저 외침, 너한테 말하는 거 맞지?”
이세영 선생님과 염동 대협 마혁진의 경악한 얼굴!
“맞다. 잠깐만!”
천문석은 손을 들어 말을 끊고 사고 가속 상태로 빠져들었다.
‘귀인 새꺄!’ 이게 단서다!
돌멩이, 이세기, 귀인!
본명만큼이나 익숙한 가명들!
자신과 같이 구르던 녀석들은 어느 순간 이 가명 뒤에 호칭을 붙여서 외쳤다.
‘귀인, 하 시바!’
‘이세기 이 새끼!’
‘돌멩이 새끼야!’
‘시바, 이 새끼. 새끼야’를 거쳐 진화된 호칭이 바로 ‘새꺄’다!
즉 ‘귀인 새캬!’라고 부른 ‘대장’은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같이 구른 적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세기말이 막 지난 2000년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옥상이다.
자신이 이곳에 온 지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고, 지금 이곳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을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다.
1차 세기말 대한민국 사건!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 지하 유적에서 과거로 이동했을 때 만났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누구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얼굴들이 파파팟-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김철수 발명가.
추이린 수석 연구원.
레이 실트, 마도구 제작자.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같이 튕긴 동료!
젊은 장철.
중학생 장민.
꼬맹이 장세린.
-오리배 악어에 기절한 장철 헌터의 가족!
초대형 뱁새의 파트너 보석 가면 쓴 마력 각성자.
자신에게 나이트 아머를 넘겨주고 산화한 정체불명의 초월자.
국정원 최 팀장.
CIA 제임스 김 요원.
시가지를 가로지를 때 만난 일반인들.
뚝섬 방어선과 광화문 저지선에서 만난 군인들.
……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
뇌리를 스치는 얼굴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중에 자신을 ‘귀인 새꺄!’라고 부를 정도로 같이 구른 사람은 없…….
“……!”
순간 번쩍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귀인 새꺄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귀인’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있었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종로 거리에서 우연히 부딪쳤고, 치열한 경쟁에 밀려 버스를 몇 대나 놓친 후 국민대로 가는 자동차를 태워 줬다!
2020년과는 완전히 다른 배우같이 잘생긴 얼굴에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사람.
그 사람은 자동차에 탄 자신을 향해 농담하듯 말했었다.
‘오늘의 운세에서 제가 동북쪽으로 가는 ‘귀인’을 만날 운세라고 했거든요.’
신문에 나온 오늘의 운세를 보고 자신을 ‘귀인’이라고 불렀던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주택 복권을 내밀며 2등 당첨의 천운을 불어 넣어 달라고 부탁했던 남자!
호의에는 호의로!
주택 복권에 일기일원공을 밀어 넣으며 하늘에 기원했다.
‘하늘님. 이 주택 복권에 천운 좀 넣어 주세요!’
하지만 무심한 하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곧 광화문 게이트가 열려 주택 복권은 종잇조각이 됐다.
그러나 오늘의 운세에 나온 대로 천문석 자신이 귀인, 천운을 가져다준 건 맞았다.
국민대까지 차를 태워 준 그에게 헌터용 단검과 안전 장갑을 건네줬고, 북한산에서 서리 늑대를 찾아 광화문으로 돌아올 때 다시 만나 그 남자와 딸, 동생이 오리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게 도와줬으니까!
1차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귀인이라 불렀던 남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텅 빈 대형 광고판 뒤에 숨겨진 오리배 좌석에 정신을 잃고 앉아 있는 헌터.
‘장철 헌터다!’
* * *
“……!”
깨달음의 순간 전율이 전신을 흘렀다.
2000년의 장철 헌터가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알았는진 모른다!
메시지에 담긴 외침도 마지막 봤던 장철 헌터의 성격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2000년 서울에서 정찰조를 통해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장철 헌터다!
장철 헌터일 가능성이 70. 아니, 80% 이상이다!
아니 장철 헌터가 아니더라도 만나야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를 언급하며 만나야 한다고 전했으니까!
아무리 딱밤을 날려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세영 선생님!
그러나 노화 역전 각성, 시동 거는 게 실패하지 않았다고 확언했다!
‘이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가속된 사고 속에서 결론이 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어 재빨리 주위를 확인했다.
뻥 뚫린 문에는 고개만 살짝 내민 사람들이 보이고.
염동 대협 마혁진은 염동력장을 끌어올린 상태.
이세영 선생님은 발갛게 부어오른 고개를 연신 갸웃했다.
천문석은 바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동 정지. 계획 변경입니다.”
“뭐? 갑자기…….”
“계획 변경이라고?”
“설명하려면 길고, 문 날려 버린 저 사람들 제가 아는 사람이 보낸 것 같습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천문석은 숨어 있는 잔해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여기 각성자 있습니다!”
“……진짜잖아?!”
“진짜 사람이 있었다고!”
“어, 작업용 앞치마? 공구 벨트?”
“목수 복장인데 저 사람 맞아? 엄청 위험하다며?!”
“분명 옥상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랬는데?”
……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은 뻥 뚫린 입구.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상체를 내밀고 외치는 모습들이 보였다.
군복에 두꺼운 군용 야상을 걸치고 오토바이 헬멧, 방패, 망치, 벌목도, 파이프 창을 쥔 사람들!
2, 3, 40대 남녀가 뒤섞인 여섯 명!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따끔따끔한 감각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마혁진의 말대로 제대로 피를 본 베테랑 각성자들이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대장이 헛다리를 짚은 거 같은데?”
“그럴 리가 없잖아! 대장이 만든 이 장갑 덕분에 손을 구한 사람이 몇 명인데!”
“물건 만드는 거랑 이거는 다르지.”
……
그런 베테랑들이 다시금 만담을 시작하려 했다.
콰아앙-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박수를 쳐서 말을 끊고 모든 의문의 답이 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방금 만나야 한다는 대장이라는 분! 그분 이름이 장철 맞죠?!”
정찰조 여섯의 시선이 날아오는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철?”
“대장 이름이 장철이야?”
“쌀집 주인 성이 장씨 아니지 않아?”
“아니, 그걸 떠나서 딸내미 이름을 누가 장철로 지어!”
‘뭐야, 이 반응? 딸? 대장이 여자라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 확신 어린 대답이 들려왔다.
“우리 대장 이름 장철 아닙니다!”
‘장철이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누구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대장 본대랑 같이 오고 있으니……!”
“어, 그런데 장철이라는 이름 왠지 귀에 익은…….”
“전에 만난 그 사람들 아냐? 그 버스 개조해서 밀고 내려가던…….”
“아, 그 몬스터 몰이하겠다던 선생님!”
“그 선생님 이름이 장철이었어?!”
“아닌데. 그 버스 운전하던 운전병이 이 선생님이라고 하던데?”
이 순간 잔해 뒤에서 연신 고개를 갸웃하던 이세영 선생님이 벌떡 일어났다.
“야, 너희들이었구나! 나야 나! 이 선생! 이세영!”
아는 사람을 만난 듯 환하게 웃는 얼굴로 외치는 순간 깜짝 놀란 외침이 돌아왔다.
“이 목소리?”
“그 이 선생님?!”
“겁 없는 선생?!”
“배달부 애들 구해 주신 그분?!
“헐렁한 군복, 저 소총! 맞네! 그 선생님이야!”
벽 뒤에 몸을 숨겼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이세영 선생님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너희들 무사했구나! 잘 도망쳤구나!”
“당연하죠! 하하하-”
“우리가 서울 바닥을 헤집고 다닌 게 몇 개월인데. 하하-”
“아니 그런데 버스랑 뒤에 따라붙던 자동차는 어디 가고 혼자세요?”
“무사히 경기도로 빠져나갔어! 그보다 너희가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야? 한강은 왜 넘어온 거야?”
……
이세영 선생님과 6인의 각성자는 마치 절친이라도 만난 것처럼 대화하고 있었다.
“…….”
“…….”
천문석과 마혁진은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봤다.
한참 후 마혁진은 질문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네가 아는 사람이라며? 장철? 강철 해머 장철? 너 방금 장철이 대장이라고 외친 거냐?”
“…….”
천문석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가장 유력했던 장철은 대장이 아니었다.
자신을 만나려는 대장이 누구인지 이젠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니 짐작도 가지 않는 건 대장의 정체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
몇 시간 전 칠성파 빌딩에서 2004년의 이세영 선생님에게 들은 모든 것이 엉망으로 뒤엉키고 있다!
리볼버와 마탄은 간신히 넘겼지만, 이세영 선생님은 여전히 자신을 ‘귀인’이 아닌 정신이 나간 호석이라고 생각하는 상태.
게다가 간단히 성공하리라고 생각한 노화 역전, 전투 예지 각성은 마지막 시동을 거는 단계에서 막혔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이세영 선생님과 정찰조 각성자들은 이미 안면이 있는 상황.
이들이 외친 메시지를 보낸 대장이라는 사람이 도착하면 모든 의문이 풀릴 거다!
“기다려 보자.”
“하아- 뭐가 이렇게 꼬이냐.”
천문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마혁진.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마혁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는 순간 뻥 뚫린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으니까.
“……!”
천문석, 마혁진, 이세영 셋이 시선이 돌아가고 한발 늦게 정찰조 여섯의 시선이 움직였다.
“어, 벌써 온 거야?!”
“뭐지? 대장만 따로 움직였나?”
정찰조 각성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두 곳에서 동시에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려 있다!”
“옥상! 건물 옥상에 있다!”
“드디어 군대가 왔구나!”
우와아아-
뻥 뚫린 문 너머에서 환호성이 터질 때.
쿠아아아아앙-
난간 너머에서는 거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버스, 자동차, 장갑 SUV, 탱크, 장갑차!
그 무엇과도 다른 못으로 칠판을 긁는 듯 신경을 갉아대는 엔진음!
옥상에 자리한 모두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이 소리!”
“설마……?”
천문석과 마혁진!
“아앗! 시가지 위험해!”
이세영!
“본대가 왔다!”
“와, 타이밍 죽이네!”
6인의 정찰조!
천문석과 마혁진, 정찰조 모두는 엔진 소리가 들려오는 옥상 북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 볼 수 있었다.
쿠아아아앙-
거친 엔진음과 함께 난장판이 된 도로에 나타나는 오토바이들!
‘정찰조가 말한 본대! 대장이구나!’
천문석은 눈에 내력을 모으고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살폈다.
일성각, 청화루, 서울 상회, 미니 슈퍼…….
상호가 인쇄된 배달 오토바이와 쇼바를 한껏 올리고 마후라에 구멍을 뚫어 놓은 폭주…….
“어, 잠깐 저 오토바이들 왜 이렇게 낯익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안 돼! 위험해!”
남쪽 난간 위에 선 이세영 선생님!
사색이 된 이세영 선생님은 전력으로 옥상을 달려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옥상 입구로 사라졌다!
“이세영 선생님? 어디에……!”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살기가 느껴졌다!
‘남쪽이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옥상을 가로질러 이세영 선생님이 섰던 남쪽 난간에 올라 셨다.
이 순간 하늘이 요동치고 몸이 저릿저릿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오-
크아아아아앙-
남쪽 시가지와 접한 산에서 최상급 마수와 몬스터의 포효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이 떨리고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에 전신의 솜털이 모조리 일어섰다!
천문석은 경악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최상급 마수와 몬스터가 아니라 이세영 선생님에게!
지금 옥상에는 8명의 각성자와 한 명의 일반인이 있었다.
자신과 마혁진.
베테랑 정찰조 여섯.
일반인 이세영 선생님.
그런데도 마수와 몬스터의 등장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8명의 각성자가 아닌 한 명의 일반인.
이세영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