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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99화 (1,10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99화>

모든 화약 무기를 무력화시켰던 EMP 마력 폭풍은 이미 끝났지만, 여전히 탄환은 몬스터의 반발장에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마지막 한 발의 탄환으로 노릴 곳은 한 곳뿐이다.

타아아앙-

공기를 찢어발긴 탄환은 하늘로 뛰어오르는 놀의 눈을 뚫고 들어가 뇌를 엉망으로 휘저어 놨다.

아무리 터프한 몬스터라도 뇌가 파괴되는 순간 끝장이다!

허공으로 도약한 놀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회전해 땅에 처박혔다.

질주하던 몬스터 무리가 처박힌 놀과 뒤엉키는 순간 이세영은 몸을 돌려 전력으로 달렸다.

이제 탄환은 없다.

절대 이곳에서 잡혀선 안 된다!

버스와 차량 행렬이 탈출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눈덩이를 굴리듯 몬스터 무리를 하나로 모았다!

저놈들은 자신에게 잔뜩 독이 오른 상황!

이곳에서 잡혀 광기가 터지면 주위에 숨어 있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으아아악-

이세영은 악을 쓰며 달렸고.

크아아아아-

우오오오오-

포효와 하울링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뒤를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20, 17, 15, 13, 10미터!

닿을 듯이 가까워지는 몬스터!

반면 목표로 삼은 건물은 여전히 멀다!

‘여기까지구나.’

최후를 직감한 순간 보이는 게 있었다.

홀로 서 있는 벽이 무너지고 골조가 드러난 10층 건물!

‘저 건물에서 최대한 시간을 끈다!’

결심과 동시에 달리는 방향을 바꾸려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새하얀 섬광과 굉음! 천둥벼락이 터지고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쐐애애애액-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늑대의 몸통에 구멍이 뻥뻥 뚫리고 놀과 오크의 팔다리가 허공을 날았다!

물풍선이 터지듯 피가 치솟고, 갈기갈기 찢어져 머리와 사지가 날아가는 몬스터 무리!

“……이게 무슨?!”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는 순간 깨달았다.

멈추면 안 된다!

자신을 쫓아 오는 몬스터가 흩어지면 숨어 있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이세영은 달렸다.

콰아아앙-

쐐애애애액-

새하얀 섬광과 굉음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천둥벼락과 공기를 찢어발기는 폭음!

카아앙-

깨애애앵-

몬스터의 다급하고 겁먹은 비명을 뒤로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 절뚝이던 발목은 어느새 감각이 사라졌다.

당장이라도 몬스터 무리를 박살 내는 무언가가 날아와 끝장날 것만 같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달리는 것뿐!

뒤를 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난장판이 된 도로와 잔해가 흩어진 인도를 지나 마침내 도착했다.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옥상에 자리한 버려진 건물, 목표에!

이세영은 주저하지 않고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이 순간 멀리 건물 옥상에서 한 사람이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천둥 벼락에 맞춰 염동포탄을 발사하던 마혁진이었다.

마혁진은 검은 폭풍이 들어간 건물 옥상을 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어 신호하는 이세기!

“ㅁㅁ ㅁㅁㅁㅁ! ㅁㅁ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저 신호의 의미, 자신이 할 일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다시 신호할 때까지 적당히 주위 몬스터 무리를 처리하며 짱 박혀 있는 것!

“알았다.”

마혁진은 크게 손을 흔들어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하고 다시 염동포탄을 발사했다.

쐐애애애액-

수백 마리의 몬스터 중 3할이 염동포탄에 박살 나고 6할이 흩어져 도망쳤다.

남은 1할의 몬스터 중 십여 마리가 검은 폭풍이 들어간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건물 안은 염동포탄의 사각이다!

하지만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몬스터 무리는 이미 기세가 완전히 죽어 지리멸렬한 상태.

검은 폭풍은 비각성자라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판단력과 움직임이 탁월했다.

게다가 저 건물에는 최종 보스가 있었다.

이세기.

자신도 모르게 불룩 튀어나온 이마를 만지는 순간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 미친놈, 딱밤을 때려서 각성력을 채운다고?!”

그러나 마혁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 건물 옥상!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으니까!

‘염동! 각성력 채워 줄게! 이리 와라!’

마치 초월적 존재가 말하듯 귀가 아닌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기습적으로 날아온 딱밤!

어이없게도 이세기 놈이 날린 딱밤에 맞는 순간 텅 빈 각성력이 채워졌다!

그것만이 아니다!

마혁진은 문득 숨어 있는 옥상 끝에 시선을 뒀다.

달그락-

시선이 닿는 찰나의 순간 염동력장이 펼쳐지고 느껴지고 움직인다!

염동역장의 전개 속도가 수십 배 빨라지고 인지 능력이 확장됐다!

역장 안에 자리한 자잘한 돌멩이 하나까지 느낄 수 있다.

눈 앞을 가리던 뿌연 막이 사라진 것처럼 모든 것이 선명해지고 각성력의 질이 월등하게 올랐다!

마치 다시 한번 각성을 한 듯한 감각!

무협지에 나오는 벽을 깨고 환골탈태한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이세기의 딱밤 한방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라면 자신도 믿지 못했을 거다.

아니 직접 겪은 지금도 믿기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세기 녀석이 무엇을 했는지 봤다.

마혁진은 요동치는 눈동자로 이세기가 손을 흔들어 신호한 건물을 올려다봤다.

상급 각성자, 1세대 각성자 그런 차원이 아니다.

각성자가 보기에도 놀라운 마력 각성자, 하얀 번개 추이린이 뇌전의 폭풍으로 몬스터 무리를 지진 것과도 차원이 다르다.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내려친 것은 겉모습일 뿐,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분명히 봤다!

‘이세기가 부르자 하늘이 응답했다!’

자유자재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그 부름에 하늘이 답하는 존재.

그런 존재를 부를 이름은 하나밖에 없다!

‘……!’

차마 생각조차 하지 못한 말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마혁진은 경외와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이세기와 검은 폭풍이 만나는 건물 옥상을 올려다봤다.

“이세기. 뭘 하려는 거냐?”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하늘을 부르는 이세기와 각성하기 전인 검은 폭풍이 만난다.

저곳에서 일어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

이 순간 마혁진은 다시금 깨달았다.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에 얽혀들었음을!

* * *

건물 옥상 대형 광고판 뒤.

천문석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엄지로 누른 약지를 튕겼다.

훙훙, 훙훙훙-

약지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터져 나온 소리!

손가락을 튕기는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센 바람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각성력이 느껴졌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다!”

겸사겸사 마혁진의 각성력을 채워 주며 검증은 끝났다!

지금 자신의 심상 공간에 몰아치는 각성력이면 이세영 선생님의 노화 역전 각성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제 곧 이세영 선생님이 옥상에 도착한다!

천문석은 빠르게 계획을 되새겼다.

1. 이세영 선생님이 옥상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란 얼굴로 대형 광고판 뒤에서 나오며 2004년에 들은 멘트를 날린다!

2. 멘트를 듣고 놀란 이세영 선생님에게 아는 사람인 척 접근, 검은 폭풍의 리볼버와 재금 공업 정품 마탄을 넘긴다!

3. 깜짝 선물이 있으니 눈을 감으라고 말한 후, 약지 딱밤을 날려 이세영 선생님을 검은 폭풍으로 노화 역전 각성시킨다!

4. 정신줄을 놓고 픽- 쓰러진 이세영 선생님이 정신을 차리고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몰래 숨어서 확인한다.

5. 장철 헌터가 깨어나길 기다려 목적지가 맞는지 확인하고 최종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계획의 등장인물은 자신과 이세영 선생님, 둘 뿐. 변수가 생기기 힘든 심플한 계획이다!

이세영 선생님이 계단을 올라와 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이 시작이다!

천문석은 다시 한번 몸과 주위를 확인했다.

작업용 앞치마에 공구 벨트, 마스크!

2004년의 이세영 선생님이 말한 귀인을 처음 만난 모습 그대로다!

게다가 옥상에 올라오는 입구 주위에는 문을 막기 쉽도록 캐비닛과 철근, 자잘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준비는 끝났다!

“선생님 얼른 올라오세요. 제가 선생님을 천외천의 각성자, 검은 폭풍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카캬카캌-.”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약지 딱밤을 허공에 날렸다.

훙훙, 훙훙훙훙-

심상 공간에 가득한 각성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요동칠 때.

콰앙-

옥상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숨을 몰아쉬는 사람이 나타났다.

작은 머리와 몸에 맞지 않는 큰 헬멧과 헐렁한 군복을 입고 소총을 어깨에 걸친 사람!

“헉, 허억- 이야악-!”

들어오는 순간 몸을 돌려, 벽 옆에 준비한 캐비닛과 책상, 콘크리트 잔해와 철근을 밀어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빙글 몸을 돌리는 순간 땀과 흙먼지 가득한 주름진 얼굴이 나타났다.

몇 시간 전 봤던 10대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나이 든 얼굴.

그러나 이 얼굴은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학생 천문석이 학교에서 만난 이세영 역사 선생님의 얼굴이었으니까!

‘이제 시작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형 광고판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탄식이 들려왔다.

“……탄환이 다 떨어졌구나. 더 챙겼어야 했는데…….”

‘카캬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제가 더럽게 비싼 재금 공업 정품 마탄 수백 발을 준비…… 아차! 파우치!’

각성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과거, 현재, 미래의 인과를 이을 물건을 깜빡했다!

검은 폭풍의 리볼버와 재금 공업 정품 마탄 수백 발이 담긴 파우치!

천문석은 잽싸게 대형 광고판을 타 넘어, 오리배 악어로 돌아와 헌터용 배낭에서 리볼버와 마탄이 담긴 파우치를 꺼냈다.

이 순간 보이는 구급 배낭!

이세영 선생님은 절뚝이고 있었다!

구급 배낭까지 챙겨 잽싸게 대형 광고판을 넘었다.

슬쩍 고개를 내밀자 이세영 선생님은 수통의 물을 비우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퉁퉁 부은 발목이 보였다.

‘아니, 저 발로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정신을 잃었을 때 발목 치료도 한다!

천문석은 할 일을 머릿속에 더하고 심호흡을 하고 인기척을 냈다.

“흠, 흠-.”

‘하나둘셋넷다섯여서일곱여덟아홉열!’

그리고 마음속으로 재빨리 열을 세고 대형 광고판 밖으로 성큼 걸어 나오며, 깜짝 놀란 얼굴과 목소리로 외쳤다.

“이세영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에?! 앗, 으아악-!”

깜짝 놀란 얼굴을 꾸밀 필요는 없었다.

진짜 깜짝 놀랐으니까!

후아앙-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로 날아오는 소총 개머리판!

어느새 기척도 없이 다가온 이세영 선생님이 소총을 야구 배트처럼 잡고 풀스윙을 갈겼다!

“……!”

반사적으로 데굴데굴 굴러 피하는 순간 콰아아앙- 대형 광고판에 소총이 틀어박히고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앗, 아앗! 사람! 죄송해요! 몬스터인 줄 알고……!”

“아니! 제가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냈잖아요! 나오면서 깜짝 놀라서 외쳤고요! 말하는 걸 들었으면 당연히 사람인 줄 아셔야죠! 몬스터가 어떻게 말을 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쫓기다가 보니까. 너무 긴장해서 아무것도 못 들어서…….”

연신 허리를 숙이는 이세영 선생님.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화를 낼 때가 아니다!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천문석은 재빨리 파우치를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네? 이걸 왜 저한테?”

“당연히 아는 사람……!”

이 순간 깨달았다. 생각지도 않게 날아온 소총 개머리판 때문에 순서가 꼬였다!

머리가 파팟 번개같이 돌아가 상황을 분석한다.

‘이세영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에?! 앗, 아앗-!’

이 외침에 이세영 선생님은 깜짝 놀라 외쳤어야 한다!

‘앗! 제가 선생님인 건 어떻게? 제 이름은 또 어떻게?!’

이때 원래 알고 있던 사이라고 구라를 치고 은근슬쩍 리볼버와 마탄을 건네는 게 계획이었다!

계획의 시작이 꼬여 버렸다!

“흠, 흠-.”

천문석은 재빨리 목소리를 가다듬고 첫 번째 멘트를 다시 쳤다.

“이세……!”

그러나 미쳐 말문을 떼기도 전에 한발 먼저 들려오는 목소리.

“안녕하세요. 전 이세영이라고 해요. 교사로…….”

이세영 선생님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을 말해 놀라게 하고 바로 아는 사람인 척한다는 첫 단추가 어그러졌다!

‘괜찮다!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앗!”

“앗! 혹시 저 아시나요?! 전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어쩐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마스크를 썼는데 낯이 익다고?!’

흠칫 놀라 말문이 막히는 순간 빠르게 말을 잇는 이세영 선생님.

“혹시 제 옛날 제자? 앗 공 잘 던지던 찬호?! 그 찬호! 맞지? 그렇지?!”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시작된 헛다리!

그 시작은 너무나 많이 들어 이제는 친구 같은 찬호였다!

‘아니! 도대체 공, 수류탄 잘던지는 그 찬호가 누군데 20년 전에도 튀어나와요?!’

“맞지? 찬호지? 내 촉이 움직이고 있어! 그런데 얼굴은 왜 가린 거야?! 앗! 작업용 앞치마에 공구 벨트! 어, 장갑까지?! 너 설마……?!”

황당함에 넋을 놓고 있을 때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다!’

나비효과!

이세영 선생님이 자신에게 말한 과거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맥락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우선 쏟아 내는 말을 무시하고 리볼버와 마탄부터 건네고 바로 각성시킨다!

“잠깐잠깐! 찬호 아니에요! 그 총, 빈총 맞으시죠?!”

“앗! 어떻게 이걸…… 설마! 짤짤이 잘하던 호석이?! 맞지? 동전, 찍기 귀신같이 맞추던 호석이! 수학여행에서 학주 선생님 지갑까지 털어먹었던 그 호석이?! 맞구나! 호석이!!”

다른 이름이었다면 계획대로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석’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리고 질문이 튀어나왔다.

“한호석이요?”

“맞아! 한호석! 호석이 맞구나! 짤짤이 잘하던 찍기의 신 한호석! 너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수능에서 찍기 대박 터져서 서울대 입학해서 박사과정 밟고 있다며?! 와 어떻게 이런 우연이…….”

확신 어린 얼굴과 목소리로 멈추지 않고 말을 쏟아 내는 이세영 선생님.

“…….”

이 순간 천문석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한호석 특무대 병장이 이세영 선생님이 제자였다는 것과.

자신이 세운 계획이 시작하기도 전에 완전히 꼬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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