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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96화 (1,09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96화>

“세영 이모? 유희연의 큰이모 이름이 세영이라면…….”

뇌리에 번뜩이는 직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보였다!

절뚝이는 다리로 폐허가 된 시가지를 달리던 군인.

커다란 철모에 얼굴이, 헐렁한 야상에 체형이 가려졌다.

그러나 어느새 멈춰 선 군인이 멀어지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얘들 떼어 놓고 따라갈게! 먼저 가서 기다려!”

수백의 몬스터가 꼬리에 붙었는데도 담담한 태도, 웃음기마저 담긴 목소리로 외치는 저 모습!

학교에서, 알바 하던 식당 부엌에서, 그리고 몇 시간 전 칠성파 빌딩 계단에서 들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와 모습이다!

‘이세영 선생님!’

깨달음의 순간 머릿속에 폭풍이 몰아쳤다.

유희연!

방금 전까지 있었던 2004년 부산, 칠성파 빌딩 비상계단을 오를 때 만난 학생!

염동 대협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던 유희연의 큰이모가 이세영 선생님이라고?!

“왜 말을 안 한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신동대문에서 다시 만날 칠성파 보스 마혁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만났던 국정원 최 팀장.

-이상 던전에서 같이 구를 부동산 전문가 한호석.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의 오빠, 국정원 김 대리.

칠성파 빌딩 23층 펜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와 인과가 얽혀 있음을 깨달았다.

당연히 유희연도 인과가 얽혀 있는지 확인했다.

그때 했던 질문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류세연! 너 혹시 류세연이라고 알아?!”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잘못된 질문을 했다!’

‘유’라는 성만 듣고 류세연과 인과가 이어졌다고 짐작하고 확인했다!

아니었다.

유희연의 친가가 아닌, 외가가 자신과 인과가 얽혀 있었다!

유희연의 이모가 바로 이세영 선생님, 검은 폭풍 이세영이었다!

진실을 깨닫는 동시에 의문이 떠올랐다.

“아니, 잠깐? 기절한 이세영 선생님을 봤잖아? 그럼 알아봤을 텐데?!”

의문이 말이 되어 튀어나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생각나는 대답!

유희연, 유희명 자매는 얼굴을 본 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세영 선생님은 노화 역전 각성으로 10대 중반 소녀로만 보였으니까!

“아니지! 이름! 이름을 들었으면 당연히 알아봤어야! 아……!”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름을 들었다면 유희연은 당연히 검은 폭풍 이세영이 큰이모라는 걸 알아챘을 거다!

한 사람이라도 ‘이세영’이라는 이름을 말했다면 말이다!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

특무대 한호석 병장.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는 유희연, 유희명 자매 앞에서 ‘이세영’이란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은 폭풍 이세영의 모든 것이 비밀이었고, 2020년에서 온 자신이 이세영 선생님을 알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안 됐으니까!

이 순간 유희연, 유희명 자매의 생각이 짐작됐다.

오래전 헤어진 큰이모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그러나 겉모습은 10대 중반 소녀이고 이름표도 붙어 있지 않은 별이 두 개 붙은 검은 군복을 입고 있다.

국정원 직원과 특무대 병장이 이름조차 입에 담지 못하는 노화 역전 각성한 특무대 소장!

유희연과 유희명 자매는 그런 특무대 소장이 자신들의 큰이모라고 주장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거다.

“그래서!”

탄성이 터지고 꼬리를 끊고 공터에서 대화를 나눴을 때가 기억났다.

유희연, 유희명 자매는 말끝을 흐리며 트럭 위에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이세영 선생님을 힐끗거렸다!

이상함을 느껴 질문했었다.

‘혹시 저기 군인분한테 용건 있냐?’

‘네, 꼭 확인할 게 있어서.’

‘뭔데? 말해 내가 확인해 줄게.’

‘죄송해요. 이건 직접 확인해야 할 일이라서…….’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은 유희연, 유희명 자매.

두 자매가 선택한 확인 방법은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정신을 잃은 노화 역전 각성자이자 특무대 소장, 검은 폭풍이 깨어나 자신들을 알아보는 걸 기다리는 것!

“……!”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서 몰아치는 폭풍 같은 상념!

천문석은 상념을 끊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

멀어지는 버스에서 상체를 내민 유희연과 유희명, 그리고 가족들.

버스를 따라 달리는 수십 대의 트럭과 자동차 행렬.

“모두 절대 멈추지 말고 달려!”

크게 외치고 빙글 몸을 돌려 달리는 유희연의 큰 이모, 이세영 선생님.

이 모습을 보자 유희연의 심정이 이해됐다.

유희연 자신과 가족, 사람들을 위해 몬스터를 유인하다 헤어진 큰이모.

이세영 선생님과 비슷한 얼굴,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자신보다 어려진 소녀가 나타났다.

유희연과 유희명 두 자매는 가슴 졸이며 소녀가 빨리 깨어나길, 그리고 헤어진 큰이모가 맞기를 간절히 바랐을 거다.

두 자매의 소망은 이뤄졌다.

서울 대성당 의무실 침대에 기절한 10대 소녀 모습의 군인은, 몬스터를 유인하다 사라진 유희연, 유희명 두 자매의 큰이모, 이세영 선생님이 맞았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리배 악어와 함께 떨어진 지금 이곳이 어디고, 또 언제인지 알 수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질 때 본 도시를 반으로 가르는 거대한 강은 한강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이 언제 인지 알려 주는 증거를 이미 봤다.

바로 뒤!

“대형 광고판.”

빙글 몸을 돌리자 오리배 악어가 떨어진 사방이 벽으로 막힌 철골 구조물이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새하얀 벽.

오리배 악어가 떨어진 철골 구조물은 아직 광고가 붙지 않은 대형 광고판이었다.

이 대형 광고판이 무엇인지 자신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몇 시간 전 칠성파 빌딩 6층 층계참에서 이세영 선생님이 말했던 그 대형 광고판이다!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서 있는 건물 옥상!

바로 이곳이 이세영 선생님이 ‘귀인’을 만난 장소다!

“……!”

문득 시선을 내리자 입고 있는 옷이 보였다.

옷 위에 덧입은 작업용 앞치마.

망치, 못, 드라이버가 걸린 공구 벨트.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작업용 앞치마와 공구 벨트가 이세영 선생님이 만난 ‘귀인’이 입었던 복장이다!

-회중시계의 마력 회로에 휩싸여 떨어진 텅 빈 광고판이 있는 건물 옥상!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앞치마와 공구 벨트!

-몬스터를 유인해 자신이 있는 건물로 달려오는 이세영 선생님!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자리의 모든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세영 선생님은 자신이 서 있는 이 건물 옥상에서 ‘귀인’을 만나 리볼버와 마탄을 받고 딱밤을 맞고 각성하게 된다!

-검은 폭풍의 5연발 리볼버!

-재금 공업의 정품 마탄!

-강제 각성시키는 딱밤!

이 모든 것을 할 ‘귀인’의 정체는 천문석 바로 자신이었다!

* * *

“…….”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거대한 흐름이 느껴졌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아득한 인과의 흐름!

과거의 사건이 ‘원인’이 되어 미래가 변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렇기에 과거의 원인으로 발생한 미래의 결과를 인과(因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인과가 반대다.

미래에서 알게 된 결과가 일어나도록, 과거의 원인을 만들어 내야 한다.

바로 자신이!

미래를 뜻하는 대로 변화시키는 일은 원래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수로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일이다.

그러나 자신은 그 원인과 결과를 모두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세영 선생님에게 직접!

그것도 2004년의 부산 칠성파 빌딩 6층 층계참에서!

순간 이세영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파파팟- 떠올랐다!

“……!”

수백의 몬스터 무리에게 쫓기는 이세영 선생님은 걱정할 거 없다!

이세영 선생님이 자신이 있는 건물 옥상에 무사히 도착한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확정된 사실이니까!

자신이 처음 해야 할 일은 무사히 옥상에 나타난 이세영 선생님에게 말하는 거다!

2004년 부산의 이세영 선생님에게 들었던 그대로 전혀 예상치 못했단 표정,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흠흠- 아, 아-!”

천문석은 표정과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이세영 선생님?”

톤을 좀 더 올려 생동감 있게!

“이세영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에?!”

감정을 담은 탄성으로 마무리한다!

“이세영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에?! 앗, 아앗!!”

이 깜짝 놀란 외침이 시작이다!

귀인 그 자체가 되어 혼을 실린 구라를 펼쳐야 한다!

천문석은 첫인사를 연습하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이세영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를 샅샅이 훑어, 해야 할 말과 행동을 되새겼다.

크아아아앙-

이때 몬스터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선생님 아직이신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타아아앙-

날카로운 총성이 대기를 찢고 외침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마지막 한 올의 힘을 끌어내는 듯한 악을 쓰는 외침!

“……!”

깜짝 놀라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자 이세영 선생님을 50여 미터까지 추격한 몬스터 무리가 보였다!

선두에서 질주하는 늑대 마수!

그 뒤에 바짝 따라붙는 두 발로 달리는 놀!

살기 어린 기세를 담아 포효하는 무장한 오크 무리!

수백의 몬스터 무리의 기세가 합쳐져 자잘한 장애물을 박살 내며 가속하고 있다!

반면 이세영 선생님은 악을 쓰며 달리는데도 점점 느려지고 있다!

빠르게 줄어드는 거리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이대로는 잡힌다!’

반사적으로 난간을 뛰어넘으려는 순간, 불현듯 떠오른 단어.

나비 효과!

나비 효과를 생각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수많은 사고를 쳤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바로 지금이 이세영 선생님이 검은 폭풍으로 각성하는 순간이다!

낙동강 전선을 끝까지 유지해 수천만 국민을 지키고!

서울 수복 작전 성공으로 한반도 영토 수복의 기틀을 다진 검은 폭풍 이세영!

지금 자신의 작은 행동하나가 나비 효과를 일으켜 검은 폭풍 이세영에게 문제가 생기는 순간!

2004년의 서울 수복 작전, 2020년 게이트 전쟁이 승리한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이세영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와 최대한 같은 방법으로 인과를 이어야 한다!

자신과 이세영 선생님이 처음 만난 건 텅 빈 대형 광고판이 있는 이 옥상이다!

지금 몸을 드러내 몬스터 무리를 처리하면 인과의 시작점이 어그러진다!

지금 자신은 움직일 수 없다!

이세영 선생님은 스스로 이 건물 옥상에 올라와야 한다!

2004년의 이세영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 그대로!

‘생각해라! 빨리 생각해!’

천문석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며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부러진 가로수와 박살 난 자동차, 곳곳에 쌓인 잡동사니와 박살 난 건물과 멀쩡한 건물이 뒤엉킨 시가지!

버려진 자동차 사이를 지나 정신없이 도망치는 이세영 선생님!

광기 어린 포효와 함께 가속하는 수백의 몬스터 무리!

누군가 도와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크아아아아-

수백의 몬스터 무리가 내지르는 포효가 대기를 떨어 울리는 매 순간!

으아악-

이세영 선생님과 몬스터 무리의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당장이라도 수백의 몬스터 무리에 삼켜져 모든 게 끝장날 위기의 순간!

“대체 선생님은 어떻게 저기서 빠져나온 거야?!”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누가 빠져나왔다고?”

마혁진이 목덜미를 잡고 나타났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벼락 치듯 머리를 스치는 키워드!

FPS!

누구나 FPS, 1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본다!

‘이거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는 순간 깨달았다.

아득한 인과가 준비한 퍼즐 조각이 하나 더 있다!

1인칭 시점의 이세영 선생님이 보지 못한,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숨겨진 귀인이 있었다!

염동 대협 마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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