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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91화 (1,09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91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바라보듯 기괴한 얼굴이 된 유희연, 유희명, 한호석 병장!

“오해하지 마! 여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잽싸게 설명하는 순간.

염동 대협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됐고. 이거나 받아라.”

“야, 오해를 풀어야……!”

빙글 몸을 돌리던 천문석은 깜짝 놀랐다.

염동 대협은 더플백을 내밀고 있었다.

2개 전부다!

“설마 나 주는 거야?!”

깜짝 놀라 묻는 순간 천장을 가리키는 염동 대협.

“짐 챙길 때 놓고 와라.”

‘뭐지?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의문을 품는 순간 펜트하우스 금고 방에서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김철수 신부가 칠성파 보스에게 돈을 빌린 차용증!

“……!”

그리고 지금 염동 대협이 내민 더플백에 가득 담긴 골드바!

차용증과 골드바!

2004년의 마혁진, 칠성파 보스는 차용증을 받았고.

2020년의 마혁진, 염동 대협은 골드바를 건네고 있다.

상반된 모습이 하나로 머릿속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깨달았다.

2004년과 2020년 16년의 세월에 달라진 마혁진의 선택을!

천문석은 더플백을 받으며 짧게 물었다.

“괜찮냐?”

염동 대협은 대답 없이 피식 웃고는 서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유희연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네?”

유희연, 유희명 자매 앞 테이블 위에 툭툭 놓이는 서류들.

항공권, 건물 등기증, 신원 보증서…….

“제주도행 항공권이랑 주택 필요한 서류들이다. 포스트잇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알아서 다 처리해 줄 거다. 이미 대가는 치렀고, 불법 브로커 아니라 정식으로 사업자 내고 영업하는 회사다. 엄마 돌아오면 그 골드바 환전해서 같이 제주도로 가라.”

“안전지대 제주도 부동산이요?! 어떻게? 제주도 부동산은 아예 매물이 말랐는데?!”

한경석 병장의 깜짝 놀람 외침이 터질 때.

유희연과 유희명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서류와 염동 대협을 번갈아 바라봤다.

“…….”

“…….”

안전지대 제주도행 항공권과 주택,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서류가 눈앞에 놓였다.

오늘 처음 만난 각성자의 이유 모를 호의.

자매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을 거다.

‘왜 이렇게까지 해 주지?’

천문석이 마음속으로 묻는 순간 귀로 같은 질문이 들려왔다.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나요?”

염동 대협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고 서류 가방을 닫은 뒤 내밀었다.

“이것도 그 더플백이랑 같이 놓고 와라.”

“…….”

천문석은 서류 가방을 잡는 순간 느꼈다.

묵직한 서류 가방 안에는 여전히 서류가 들어 있었다. 골드바 수십 배, 수백 배 가치가 있는 안전지대 제주도의 부동산 서류가.

염동 대협, 2020년의 마혁진은 가치가 폭등한 골드바와 그보다 수백 배 가치 있는 안전지대 제주도의 부동산마저 모두 포기했다.

그런데도 그의 눈과 행동에서는 아쉬움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숙제를 끝낸 사람 특유의 후련함만이 느껴졌다.

‘어째서 그럴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답이 떠올랐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칠성파에 돈을 빌리고 차용증을 쓴 김철수 신부님.

칠성파와 도박 빚으로 얽힌 유희연, 유희명 자매와 두 사람의 아버지.

부산의 황제, 한국 최강의 각성자, 칠성파 보스, 깡패 두목 마혁진.

염동 대협 마혁진은 과거의 자신, 깡패 두목 마혁진이 맺은 악연의 매듭을 풀고 있었다.

“…….”

천문석은 전생과 현생, 무림과 마굴, 삶의 현장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는 사람은 많다.

미래를 바꾸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기회가 찾아왔을 때 결심대로 잘못을 바로잡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협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천문석은 더플백과 서류 가방을 툭 치며 물었다.

“야, 너 후회 안 하겠냐? 돌아가면 거지잖아?”

염동 대협은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너야말로 아깝지 않냐?”

이 웃음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더 물을 필요도 없다.

장난치듯 붙인 별호 염동 대협.

2020년의 마혁진은 그 별호대로 대협(大俠)은 아니어도 소협. 아니, 팍 늙은 얼굴을 보면 중협(中俠)쯤은 됐음을.

“전혀.”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고 묵직한 서류 가방과 더플백을 들고 바로 의무실에서 나와, 소리 없이 복도를 걸으며 피식 웃었다.

“이제 깡패 새끼라고는 못 부르겠네.”

이때 계단 옆 화장실 문이 열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나요?”

“요플레 오빠 왔어……?”

화장실에서 나오는 두 사람은 영희 수녀님과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였다.

“요플레 오빠?”

“아까 목욕하고 요플레 줬잖아.”

아이가 졸린 얼굴을 꾸벅이며 말할 때.

의무실 방향을 보며 빙그레 웃는 영희 수녀님.

“다른 분들도 오셨나 보네요?”

“네.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시끄러웠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오늘은 화장실 가는 아이들이 많아서 깨어 있었어요. 바로 떠나실 건가 보네요.”

웃으며 말하는 영희 수녀님.

말없이 떠날 생각인데 딱 걸려 버렸다!

“네. 급한 일이 생겨서 준비되는 대로 떠나야 할 것 같네요.”

“그러시군요. 자, 혼자 자러 갈 수 있지? 아직 해 뜨려면 멀었으니까. 얼른 가서 더 자렴.”

영희 수녀님은 졸린 눈의 아이를 방으로 보내고 말을 이었다.

“그냥 가지 마시고 출발 전에 꼭 저랑 만나고 가셔야 해요. 약속이에요.”

몇 번이나 약속을 받고 식당으로 걸어가는 영희 수녀님.

“…….”

그 뒷모습에서 고소한 향기가 폴폴 느껴지는 순간, 어깨에 짊어진 더플백과 서류 가방이 가벼워졌다.

“도시락은 준비 안 해도 되겠네…….”

천문석은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갔다.

* * *

“어디에 둘까?”

천문석은 하루도 머물지 않은 방안을 쓱 돌아봤다.

어차피 떠나는 즉시 발견돼도 상관없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천문석은 한 번 눕지도 않은 침대 위에 서류 가방과 더플백을 내려놓고, 벽에 기대 둔 헌터용 배낭을 챙겼다.

염동 대협의 뒤를 쫓아 시가지로 나설 때는 상상도 못 한 것을 알게 됐다.

칠성파 빌딩 6층 층계참에서 알게 된 것!

자신과 이세영 선생님의 아득한 인과를 이어 줄 물건이 이 배낭 안에 있었다!

헌터용 배낭을 열자 바로 파우치가 보였다.

리볼버와 재금 공업 정품 마탄이 들어 있는 파우치.

파우치를 열어 리볼버와 마탄을 꺼내자, 문득 처음 리볼버를 얻었을 때가 생각났다.

무공에 다시 입문하기 전에 터진 서울 사태.

류세연을 구하러 찾아간 학교에서 이세영 선생님을 만났다.

그때 이세영 선생님은 자신에게 이 5연발 리볼버를 건네줬다.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 리볼버는 이세영 선생님, 게이트 전쟁의 전설 검은 폭풍이 사용하던 리볼버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각성 전인 이세영 선생님에게 돌아간다.

미래의 이세영 선생님이 자신에게 줬고.

자신이 과거의 이세영 선생님에게 건넨다.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미래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미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인과의 고리는 아득한 천의처럼 그 끝도 시작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아득한 인과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이세영 선생님에게 리볼버와 재금 공업 정품 마탄 수백 발을 전하고, 이마에 딱밤을 날리면 된다.

잠재된 포텐을 터트리고 각성하도록!

각성한 이세영 선생님은 천외천의 각성자 검은 폭풍이 되어, 낙동강 전선을 지키고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켜, 게이트 전쟁의 승리를 불러온다.

게이트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아니, 모든 것을 떠나 이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항상 헛다리를 짚고, 학생들의 말에 잘 속는 이세영 선생님은 자신이 존경하는 선생님이었으니까.

“…….”

문득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보자 지금 1층 의무실에 누워 있는 이세영 선생님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처음 학교에서 만났을 때 주름 가득했던 얼굴은 어린 소녀의 얼굴로 변했다.

하지만 그 미소에 담긴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은 바라보는 사람을 어느새 웃게 만든다.

“이세영 선생님. 곧 다시 뵙겠네요.”

천문석은 웃으며 리볼버와 정품 마탄이 담긴 파우치를 헌터용 배낭에 넣었다.

바스락-

이때 배낭 안에 검은 봉지가 보였다.

“응? 내가 이런 걸 넣어 놨냐?”

봉지를 열자, 요플레 십여 개와 잘 접은 종이가 나왔다.

요플레를 보는 순간 누가 넣어 놨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저녁으로 김밥 파티를 하고 염동력장 목욕 후 픽픽 쓰러지는 꼬맹이들에게 자신이 나눠 준 요플레다!

당연히 용의자는 서울 대성당의 꼬맹이들이다!

잘 접힌 종이를 펼치자 용의자들이 크레파스로 삐뚤빼뚤 쓴 문장이 보였다.

고맙다!

고맙습니다!

감사감사!

완전 고마워!

끼오오오옷!

……

서로 다른 필체로 적힌 수십 개의 감사 인사는 용의자들의 자백이나 마찬가지였다!

“꼬맹이 녀석들. 내가 사 준 요플레를 다시 나한테 준 거냐?”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 꼬맹이들이 요플레를 모으는 광경이 그려졌다.

작은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나의 요플레를 나눠 먹는 아이들.

그렇게 남긴 요플레를 하나둘 모아 이 봉지에 담았으리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먹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며 요플레를 모아 자신에게 건넨 거다.

전생 천마에게 바치는 공물로 모자람이 없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종이를 뒤집고 작별 인사를 남기기 위해 펜을 찾았다.

“펜이 어디에…….”

이때 작업용 앞치마 포켓에 꽂힌 만년필이 보였다.

최 팀장의 사기 계약용 마도구 만년필!

“……이게 왜 여기에……?!”

말하는 순간 번쩍 기억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낚시질을 하던 최 팀장의 모습에 돌려주는 걸 깜빡했다!

반사적으로 만년필을 빼는 순간, 돌돌 접힌 메모지가 같이 딸려 나왔다.

“어?”

무심코 본 말린 메모지에 적힌 문장.

[해운대 앞바다]

“해운대 앞바다?”

천문석은 돌돌 말린 메모지를 펼쳤다.

[해가 뜨기 전에 해운대 앞바다에서 기다려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1년 동안 부산에서 살아야 한다. -----]

읽자마자 실소가 터지고 누가 썼는지 바로 감이 왔다.

“최 팀장. 이건 또 언제 쓴 거야? 와, 이 녀석 진짜 포기를 모르네! 해운대 앞바다? 거기에는 또 뭘 준비해 놓은 거야?”

그러나 어차피 늦었다. 자신과 일행은 트럭이 준비되는 대로 바로 떠날 테니까!

“만년필은 한호석 병장 통해 돌려줄게. 안녕이다. 최 팀장.”

헛웃음을 터트리며 메모지를 구기려 할 때 문득 문장 끝에 그어진 선이 보였다.

[……살아야 한다. -----]

메모 가장자리로 연결되는 선.

무심코 메모를 뒤집자, 길게 이어지는 선이 보였다.

[-------------> 구라…….]

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화살표와 작게 쓰인 문장이 보였다.

“구라……?”

그리고 천문석은 이어지는 문장을 읽는 순간 얼어붙었다.

[구라도 낚는 것도 아니니까 꼭 가라! 천마 천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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