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88화>
부아아아앙-
복잡한 부산 도로를 달리는 트럭 화물칸, 지쳐 널브러진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선 사람.
천문석은 운전석을 두들겼다.
“잠깐 차 좀 세워라!”
“……조폭 길드 붙었냐? 골판지? 삼거리? 역전앞 길드?!”
깜짝 놀란 외침 뒤로 운전석 창문 밖으로 초췌한 얼굴을 내민 영희.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꼬리는 완전히 끊었다! 잠깐, 앗! 저기 공터 보인다! 저기서 좀 멈춰 봐!”
“이번엔 확실한 거야? 아까도 삼거리 길드 애들 튀어나왔잖아?!”
운전기사 영희의 의심스러운 눈빛!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이번이 확실하다니까! 야, 들어 봐?”
차 한 대 없이 텅 빈 언덕길!
“뭘 들어?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순간 천문석은 운전석 지붕을 두들기며 외쳤다.
텅-
“바로 그러야!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는 것! 이게 바로 증거다! 우리는 마침내 꼬리를 끊었다!”
“…….”
부산 전술 운전단 영희는 생각했다.
‘믿어도 될까?’
이세기와 염동 대협.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의심스러웠다!
낙동강 전선 밖 위험 지대에서 오리배 악어를 타고 나타났으니까!
그래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고, 해가 진 후 시가지로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난장판을 만난다.
도망치는 헌터, 각성자, 조폭 길드와 그 뒤를 쫓는 특무대가 뒤엉킨 난장판!
잽싸게 빠져나가려다가 이 난장판에 휩쓸렸다. 이때 염동 대협을 만나 간신히 난장판을 빠져나와 트럭을 몰고 약속 장소로 갔다.
그리고 진짜 난장판에 휩쓸렸다!
마치 나침반이 북극을 가리키듯 헌터, 각성자, 조폭, 특무대까지 모두가 트럭을 쫓아왔다!
수백 번의 목숨을 건 운송을 성공시킨 부산 전술 운전단 운전기사의 직감이 말했다.
이 모든 건 이세기, 이 녀석 때문이다!
‘믿어도 될까?’
“야! 이번엔 진짜 확실하다니까! 이번에도 꼬리 안 끊겼으면 나 버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터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
“약속한 거다! 이번에 또 튀어나오면 너 버리고 간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진짜같이 하냐? 하하하-.”
“농담 아니다.”
영희가 정색하는 순간 트럭이 공터 한가운데 멈췄고, 트럭 화물칸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도착했습니까?”
“어, 여기는…… 공터?”
“아무것도 없는데 왜 여기?”
“설마! 또 유인하는 겁니까?!”
“재앙을 버리고 왔어야 했는데…….”
“……하아-.”
하나같이 초췌한 얼굴로 한숨 쉬는 동료들.
당연했다. 건물에서 내려오는 순간 밀려온 조폭 헌터와 각성자, 특무대의 해일을 뚫고 3시간이나 정신없이 도망쳤으니까!
천문석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제군들! 좋은 소식과 더 좋은 소식이…….”
“……그냥 말해.”
염동 대협이 말을 끊는 순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료들.
천문석은 바로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 꼬리를 마침내 끊었다!”
“…….”
무덤덤한 반응.
마치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입을 여는 순간, 다시 한번 염동 대협이 말을 끊었다.
“더 좋은 소식은 뭔데?”
“더 좋은 소식! 이제 정리할 때가 왔다!”
“정리라고요?”
최 팀장의 반문에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정리, 마무리, 끝! 이제 우리가 헤어질 순간이다!”
천문석은 화물칸 위 동료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마주치며 말을 쏟아 냈다.
-유희연, 유희명 자매와 김철수 꼬맹이.
“너희는 택시 불러 줄게. 그거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고.”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 칠성파 보스 마혁진.
“최 팀장. 너희는 알아서 하고.”
-특무대 한호석 병장과 이세영 선생님.
“한호석 병장은 여기 숨어 있다가 특무대로 돌아가고.”
-염동 대협과 운전기사 영희.
“둘은 나랑 같이 성당으로 가자.”
천문석은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모두를 향해 말했다.
“끝! 모두 고생 많았다. 자, 해산! 영희, 넌 택시 좀 불러 줘. 쟤들 택시 태워서 집에 보내야겠다.”
짝-
그리고 박수를 치는 순간 외침이 쏟아졌다.
“잠시만 꼭 할 일이……!”
“이세기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 모두 안녕히 계세요. 통조림 감사합니다! 이야압-”
“야, 부산에 택시는 헌터용 무장 택시뿐이야! 요금 엄청 비싸. 너 돈은 있냐?!”
……
달려들어 말을 쏟아 내는 동료들.
“야, 갑자기 뭐야?! 차례대로 말해 봐!”
“저 먼저! 급합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정원 최 팀장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어, 말해.”
“소장님을 아침까지만 보호해 주십시오!”
‘이게 뭔 소리야?!’
천문석이 황당함에 멈칫할 때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네? 우리 소장님을요? 제가 특무대로 모시면 되는데?!”
통조림이 가득 든 초대형 봇짐을 힘겹게 들던 한호석 병장.
“잠시만 이쪽으로! 김 대리! 한 병장, 데려와라!”
최 팀장은 이세기를 잡아끌고 공터 구석으로 움직이며 머리를 굴렸다.
검은 폭풍 이세영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특급 비밀이다!
정치권의 의도가 담겼지만, 여기에는 이세영 본인의 의사도 담겨 있었다.
이세영 특임 소장은 게이트 전쟁이 끝난 후의 소망을 자신에게 말 한 적이 있었다.
교단으로 돌아가 다시 평범한 선생님이 되는 것!
그 소망을 위해서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조심했다.
정치권과 본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지금까지는 검은 폭풍 이세영의 신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재계의 요인과 주요 국가의 정보기관은 검은 폭풍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여기에 마탄 발명과 함께 낙동강 전선을 밀어 올리고, 서울 수복 작전을 준비하며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안전지대 제주도가 낙동강 전선이 펼쳐진 부산에 너무 가까운 게 문제였다.
지금 부산에는 한국 정·재계뿐만 아니라, 각국의 유력자와 정보기관의 눈도 깔린 상황!
이대로 병원으로 갔다가 기록이 남으면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특무대 진지로 갈 수도 없다.
지금 특무대는 전원 칠성파 빌딩의 난장판에 동원됐다.
인의 장막이 사라지고 이세영 본인도 정신을 잃었다.
검은 폭풍을 노리는 정치권, 재계, 각국 정보기관의 눈이 특무대에 모였다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국정원 안가로 옮길 수도, 자신과 김 대리가 붙어 있을 수도 없었다.
칠성파 보스 마혁진을 챙기고 특무대가 일으킨 강제 징병 해프닝이 끝나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지금 최선의 방법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그러면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이세영 특임 소장님을 맡기는 거다!
그리고 이 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이세기!
공터 구석에 도착한 최 팀장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지금 문제가 좀 있습니다. 하루! 아니, 내일 아침이면 모두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세기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소장님을 부탁드립니다!”
* * *
천문석은 자세한 사정을 묻지 않았다.
어차피 서울 대성당으로 가는 길.
서울 대성당에 이세영 선생님을 맡기고, 장철 헌터와 떠나면 된다.
“좋다. 겸사겸사 같이 가면 되니까. 그래도 따로 챙길 사람은 필요한데?”
“걱정 마십시오! 여기 한 병장이 따라갈 겁니다! 한호석 병장! 이세기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라! 알겠지?!”
김 대리에게 끌려온 한호석 병장은 깜짝 놀랐다.
“네? 이세기 선생님을 따라가라고요? 아니, 그보다 우리 소장님을 맡긴다고요?! 그냥 특무대에 돌아가서 상황을 살피는 게……!”
최 팀장은 말을 끊었다.
“아니다! 네 임무는 이세기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소장님을 지키는 거다! 바로 지금부터! 이건 정식 명령이다!”
“네, 넷!”
반사적으로 부동자세를 취하는 한호석 병장!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촉이 왔다.
‘이 녀석, 또 뭔가 꾸미고 있구나?!’
“너 이번엔 또 무슨 속셈이야?”
최 팀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칠성파 빌딩, 특무대 유치장 훑으면서 설득해야죠.”
“강제 징병당한 각성자들? 그 난장판에 설득하러 돌아간다고? 설득되겠냐?”
“그게 포인트죠! 짧고 굵게! 2달만 구르자고 말하면 혹한 각성자들이 앞다퉈 사인할 겁니다. 흐흐흐흨-.”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품에서 꺼낸 참전 서약서를 흔드는 최 팀장!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단어들이 있었다!
각성자, 특무대, 강제 입대!
짧고 굵은 2달, 참전 서약서!
파파팟-!
머릿속에서 섬광이 터지고 단어가 하나로 이어졌다.
최 팀장, 이 녀석은 강제 입대 대신 짧고 굵은 서울 수복 작전 참전으로 딜을 할 생각이다!
“와, 미친 여기서 각을 본다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최 팀장은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흐- 절호의 기회입니다! 당장 움직여서 최대한 낚아야 합니다!”
“절호의 기회라고요?”
김 대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하자.
최 팀장은 짧게 설명했다.
“지금 특무대에 강제 징병당한 각성자들 바글바글할 거다. 걔들이 이 서류를 보면 어떻겠냐?”
펄럭이는 참전 서약서!
“……!”
“……!”
김 대리와 한호석 병장은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았다.
“과연 팀장님! 탁월한 계략이십니다!”
“잠시만요! 그거 사기잖아요! 우리 소장님이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아!”
한호석 병장의 탄성이 터지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멈춰 선 트럭!
이 트럭 화물칸에는 두꺼운 담요 위에 기절한 검은 폭풍 이세영이 있었다.
그렇다! 특무대 지휘관 이세영은 지금 정신줄을 놓고 기절했다!
집요한 사기꾼이자 포기를 모르는 낚시의 달인, 국정원 최 팀장을 제지할 사람은 이제 없었다!
“그럼 저희는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앗 ‘포상금’! 포상금은 한호석 병장을 통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포상금’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이세기 선생님!”
“김 대리! 서류 챙겨라!”
“네, 팀장님!”
꾸벅 고개를 숙인 최 팀장과 김 대리는 바로 몸을 돌려 칠성파 보스 마혁진을 업고 골목으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사라진 최 팀장과 김 대리, 칠성파 보스 마혁진.
천문석은 감탄하며 트럭을 향해 걸었다.
포상금!
아침에 찾아뵙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이 말도 낚시를 위한 떡밥이었다!
포상금을 받으려면 아침에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의미!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에도 밑밥을 까는 이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스러웠다!
그러나 자신과 최 팀장이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건물 입구에 나오는 순간 깨달았다.
사건과 난장판이 벌어지는 양상이 심상치 않다!
서울 대성당에 돌아가는 즉시 장철 헌터와 함께 떠난다!
‘진짜 안녕이다! 최 팀장. 카캬카캌-.’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김철수 꼬맹이를 안고 있는 두 자매를 봤다.
“택시 오면 그거 타고 집으로 가면 된다. 고생 많았다.”
“…….”
“…….”
유희연, 유희명 자매는 서로를 살피며 망설였다.
“응? 뭐야? 너희 무슨 할 말 있냐?”
천문석이 묻는 순간 직설적인 질문이 날아왔다.
“집에 못 돌아가냐?”
염동 대협.
“네…….”
작게 끄덕이는 고개.
기어들어 갈 듯한 대답.
염동 대협 마혁진은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
“아까 도박 차용증. 아버지냐?”
“네…….”
“엄마는? 돌아가셨냐?”
“아뇨. 이모랑 같이 부산 던전에 지게 짊어지고 들어가셨어요.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돌아오실 텐데…….”
말끝을 흐리는 유희연.
천문석은 상황이 짐작됐다.
아직 어린 유희연, 유희명이 칠성파와 얽힌 이유는 아버지의 도박 빚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이유가 더 보였다.
말끝을 흐리며 트럭 위를 힐끔거리는 두 자매의 시선 끝에는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이세영 선생님이 있었다.
“혹시 저기 군인분한테 용건 있냐?”
“네, 꼭 확인할 게 있어서.”
“뭔데? 말해 내가 확인해 줄게.”
“죄송해요. 이건 직접 확인해야 할 일이라서…….”
유희연, 유희명 자매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해결책은 간단했다.
두 사람과 김철수 꼬맹이까지 모두를 서울 대성당으로 데려가는 것!
“좋아 너희도 같이 가자.”
천문석은 간단하게 결정하고 영희를 봤다.
“택시는 취소다. 모두 같이 서울 대성당으로 돌아갈 거다.”
“뭐?! 야, 벌써 오고 있는데 이제 와서……!”
순간 염동 대협이 끼어들었다.
“아니. 택시 불러라. 우리는 따로 할 일이 있다.”
“우리? 따로 할 일?”
염동 대협의 손가락이 자기 자신과 한호석 병장을 지나 천문석에게서 멈췄다.
“이렇게 셋, 우리는 이 트럭 타고 할 일이 있다.”
“저는 왜?!”
“뭐?! 내 트럭을 왜 너희가 맘대로 쓰는데?!”
한호석 병장과 트럭 주인 영희가 발끈하는 순간.
염동 대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다.”
푸저우 시가지에서 다시 만난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신만만한 모습!
“……!”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무언가 있다는 촉이 왔다!
“얼마나 걸리는데?”
“목적지까지는 20분이면 도착한다. 여기 한호석 병장이 잘해 주면 1시간, 길어도 2시간 안에는 모두 끝나고.”
슬쩍 본 시계는 새벽 3시!
염동 대협이 말한 일을 끝내고 서울 대성당으로 돌아가도 해가 뜨기도 전이다.
“좋아. 해 보자!”
천문석은 결정했고 곧 택시가 도착해 인원이 둘로 나뉘었다.
영희, 유희연과 유희명 자매, 김철수 꼬맹이, 이세영 선생님.
택시를 타고 서울 대성당으로 향하는 사람들.
천문석, 염동 대협, 한호석 병장.
트럭을 몰고 염동 대협이 말한 장소로 향하는 세 사람.
염동 대협의 말대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30분 후.
천문석과 염동 대협, 한호석 병장, 세 사람은 부산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장산 기슭에 있었다.
“……이상하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염동 대협은 심각한 얼굴로 주위 나무와 바위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고.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한호석 병장은 ‘L’자로 꺾인 철사 옷걸이를 들고 걸었으며.
“악, 으악-.”
천문석은 악을 쓰며 꽁꽁 얼어붙은 땅에 삽질했다.
깡, 깡, 까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