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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85화 (1,08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85화>

“……뭐야!? 어디로 간 거야!?”

금이 가고 찢어져 에너지를 이글이글 쏟아 내던 천강흔!

당장이라도 활짝 열릴 듯하던 천강흔 랜덤 박스가 사라졌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럴 리가 없는데!?”

설마, 벌써 열린 건가?

마공에 다시 입문한 건가!?

혹시 지금 상태는 태풍 전야!?

반사적으로 수인을 짚고 심상 공간을 관조하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기경팔맥을 도도히 흐르는 내력의 강!

넓어지고 깊어졌다!

정순해지고 거대해졌다!

도도한 흐름에 엄청난 힘을 품었다!

내력의 질과 양이 몇 배로 불어났고 관조하는 순간 마음에 감응해 뒤틀려 몰아친다!

쿠르르르릉-

불어난 내력이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

“……!”

‘초절정!? 설마, 천강흔 랜덤 박스가 열리고 자신도 모르게 초절정의 벽을 넘은 건가!?’

생각과 동시에 심상 공간에 초절정의 벽이 나타났다!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헐어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초절정의 벽!

초절정, 초인경에 오른 것은 아니다!

초절정의 벽은 여전한데도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이 영육과 혼백에 차오르고 있다!

‘어디냐?’

마음으로 묻는 순간 너무나 거대하여 오히려 느끼지 못한 것이 느껴졌다!

심상 공간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

‘햇살이라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강렬한 햇살이 근원이 보였다.

아득한 하늘 한가운데 이글이글 빛과 열기를 뿜어내는 태양!

심상 공간에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태양이 떠 있었다!

천문석은 태양의 정체를 보는 순간 알아챘다.

천강흔 랜덤 박스!

당장이라도 열릴 것 같던 천강흔 랜덤 박스는 심상 공간의 태양이 됐다!

* * *

‘……저게 뭐야!?’

곳곳에 금이 가고 찢어져 당장이라도 갈가리 찢길듯한 천강흔 랜덤 박스가 멀쩡해졌다!

아니 그 이상이다!

변한 건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심상 공간의 아득한 하늘에서 빛과 열기를 뿜어냈다!

진짜 태양처럼!

태양의 본질은 수소를 연료로 핵융합하는 거대한 발전기!

천강흔 랜덤 박스도 그 안에 담긴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우르르르르르-

랜덤 박스가 우렛소리를 내며 진동하는 순간 찬란한 햇살과 뜨거운 열기, 에너지가 쏟아졌다.

기경팔맥을 도도히 흐르는 내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거대한 에너지가 심상 공간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다!

비가 강이 되어 바다로 흐르고 태양의 열기에 증발해 다시 비가 되어 쏟아진다.

식물과 동물이 태어나고 스러지고, 바람이 불고 강과 바다가 흐른다.

이 끝없는 순환. 거대한 태풍과 해일을 만들어 내는 힘의 근원은 태양이다!

지구와 같다.

거대한 태양의 에너지로 심상 공간에 순환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천강흔 랜덤 박스 태양으로!

‘이게 가능한 거야!?’

아니, 가능 여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자신이 관조하고 있는 사실 이었으니까!

중요한 건 천강흔 랜덤 박스다!

‘랜덤 박스 안에 뭐를 넣은 거야!?’

우르르르릉-

천강흔 랜덤 박스에서 시작된 진동이 하늘을 떨어 울릴 때마다 물결치듯 파문이 쏟아져 무한한 심상 공간을 뒤흔들었다!

천문석은 이 상황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예전의 천강흔 랜덤 박스가 XXX 등급 천마 신공이 잠든 상자였다면.

지금 하늘의 천강흔 랜덤 박스 태양은 핵융합 발전기나 마찬가지다!

예전의 천강흔 랜덤 박스는 여는 순간 XXX 등급 천마 신공이 99% 튀어나오고 ‘자신만’ 망하는 거였다!

그러나 업그레이드된 천강흔 핵융합 발전기는 열리는 순간 천마 신공만 튀어나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넣어 둔 태양처럼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무언가’도 같이 튀어나온다!

지상에 태양이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상에 생겨난 태양을 부르는 이름은 이미 있었다.

핵융합 폭탄.

천강흔 랜덤 박스는 천강흔 핵융합 폭탄으로 진화한 것이다!

* * *

“……!”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외침이 터져 나왔다.

“미친, 누가 이런 거야!?”

외침이 터지는 순간 심상 공간을 관조하던 정신이 현실로 튕겨 나오고 번쩍 뇌리를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이세영 선생님!

복사된 대환단!

대환단으로 이세영 선생님의 각성력을 채워 준 사람이 한 일이다!

‘아니. 선생님은 제대로 고쳤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해놓은 거야!?’

마음속으로 외치는 순간 의문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천강흔 랜덤 박스로 태양은 왜 만들어?

아니 심상 공간에 태양은 어떻게 띄운 거야!?

아니, 아니! 띄우려면 자기 심상 공간에 띄우지, 왜 내 심상 공간에 천강흔 태양을 띄워 놓은 건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끝없는 의문!

머리가! 가슴이! 의문으로 가득 차오르는 순간 말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누구야!?”

이 순간 번쩍 깨달았다!

섬광에 정신을 잃은 사람은 둘이다.

자신과 이세영 선생님!

그러나 발견된 사람은 셋이다.

자신과 이세영 선생님 그리고…….

“……!”

빙글 움직이던 시선이 멈추는 순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율이 흐르고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이세영 선생님도 아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범인은 나머지 한 사람이다.

꼬맹이 김철수!

‘김철수 꼬맹이가 대환단으로 이세영 선생님의 각성력을 채우고, 무언가를 넣어 천강흔 랜덤 박스를 태양으로 만들었다고!?’

‘그럴 리가!? 아무 힘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무언가 놓친 건가!?’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기절한 김철수 꼬맹이의 전신을 훑었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아무 저항 없이 스며드는 기감!

반발력과 각성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김철수는 그냥 평범하게 잘생긴 꼬맹이다!

대환단의 약력에서 영기를 뽑아내 각성력을 채우고. 열리기 직전인 천강흔 랜덤 박스를 핵융합 발전기, 태양으로 만들 능력은 없다!

이런 건 대요마 아니, 요괴선에 오른 존재도 불가능하다!

‘아니, 그럼 도대체 누구야!?’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잃은 이세영 선생님.

맥박과 호흡을 확인하는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

통조림을 먹으며 걱정스레 살피는 한호석 병장.

기절한 김철수 꼬맹이.

걱정스러운 얼굴의 유희연과 유희명 자매.

얼굴에 천이 감긴 채 짐짝처럼 놓인 칠성파 보스 마혁진.

잡동사니와 대형 봇짐이 놓인 옥상에 있는 사람은 이들이 전부다!

이들 중에 천강흔 랜덤 박스를 핵융합 발전기로 진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순간 불쑥 한 문장이 떠올랐다.

[불가능한 모든 것을 제외하고 남은 하나가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진실이다!]

“……!”

이세영 선생님, 김철수 꼬맹이, 한호석 병장, 국정원 최 팀장과 김 대리, 유희연과 유희명 자매, 칠성파 보스 마혁진!

이들 모두를 제외하면 남은 용의자는 한 명뿐이다!

바로 자신, 천문석!

천강흔 랜덤 박스가 열리는 순간 무의식중에 움직였다면?

아니, 지금 자신에게 할 질문은 이거다!

대환단의 약력에서 뽑아낸 영기로 각성력을 채우고. 열리기 직전인 천강흔 랜덤 박스를 태양으로 만든다.

전생의 천문석,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라면 이 모든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대답이 튀어나오는 순간 다시 한 번 머리를 스치는 문장.

[불가능한 모든 것을 제외하고 남은 하나가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진실이다!]

이 모든 것의 범인은 바로 전생……!

마침내 진실을 깨닫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동 대협이 늦으시네요? 제가 확인해 볼까요?”

아차! 염동 대협! 2020년의 마혁진!

아직 염동 대협 마혁진을 확인하지 않았다!

‘마혁진이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즉시 고개가 저어졌다.

하지만 확인을 하는 게 우선이다.

천문석은 바로 외쳤다.

“염동 대협! 걔 어디 갔냐!?”

옥상 난간 너머, 대로 방향을 가리키는 유희연.

“지금 칠성파 빌딩이랑 주위가 모조리 난장판 돼서 빠져나갈 길 확인하러 가셨어요.”

“난장판?”

반사적으로 달려가다가 멈칫하는 순간 지금껏 흘려버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쾅쾅, 콰아아-

으아아아-

“……잡아라!”

“강제 징병……!”

“……모조리 처넣는다!”

“……대가 본색을 드러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 탄식과 환호성, 다급한 외침이 뒤엉켜 들려왔다!

칠성파 빌딩뿐만이 아니다!

빌딩 입구 로비가 있던 대로 방향, 옥상 아래 골목 곳곳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빌딩에서 시작된 난장판이 거리로 퍼져 나가고 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복사된 대환단과 천강흔 랜덤박스의 비밀은 다음에 밝혀도 된다.

지금 중요한 건 난장판이 더 커지기 전에 빠져나가는 것!

우선 탈출한다!

“야, 얼른 빠져나가자! 염동 대협 걔 어디로 갔냐!? 바로 이동해서 합류하자!”

“안 됩니다. 지금 나가면 휩쓸립니다.”

최 팀장이 말하는 순간.

통조림을 먹던 한호석 병장이 바로 말을 받았다.

“꿀꺽!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괜찮아! 나랑 염동 대협이면 뚫을 수 있다! 바로 옴직…….”

말을 끊는 한호석 병장.

“특무대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특무대가 미쳐 날뛴다고? 너도 특무대잖아? 네가 진정시키면…….”

“쟤들 완전히 눈이 돌아갔어요! 저로는 안 됩니다.”

한호석 병장이 고개를 젓는 순간.

최 팀장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지금 특무대를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천문석, 최 팀장, 김 대리, 한호석 병장의 시선이 같은 곳으로 모였으니까.

기절한 검은 폭풍 이세영 선생님!

“잠깐! 기절한 이분을 모셔가면!?”

“안 됩니다!”

“불에 기름을 뿌리는 겁니다!”

“소장님이 기절한 걸 보면 더 미쳐 날뛸 겁니다!”

최 팀장, 김 대리, 한호석 병장 셋은 동시에 고개를 젓고 말을 쏟아 냈다.

“소장님에 대한 특무대의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지금 모습! 소장님이 기절한 모습을 보면 분명 암습을 당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특무대 애들 미쳐 날뛸 겁니다! 지금 여기 있는 전원 체포하려고…….”

“야, 너 공무원이잖아. 잘 설명…….”

천문석은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지금 특무대와 얽히면 당연히 신분 확인을 하리라.

지금 여기에는 신분 확인이 불가능한 사람이 둘 있다.

자신과 염동 대협 마혁진!

순간 염동 대협이 상황을 살피러 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걸리면 가장 좆되는 건 자신과 염동 대협이니까!

“그래서!”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최 팀장은 확신을 담아 말을 쏟아 냈다.

“네. 짐작하신 대롭니다. 가만 놔두면 사그라들 난장판인데. 소장님이 기절한 모습을 보면 특무대가 더 미쳐 날뛰게 될 겁니다. 지금은 안전한 이곳에서 염동 대협을 기다려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게 최선입니다.”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말이 이어졌다.

“염동 대협께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때까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그래서 말인데…….”

최 팀장은 말꼬리를 길게 끌다가 질문했다.

“이세기 선생님 혹시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계획?

2004년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서울대성당으로 돌아가 장철 헌터가 깨어나는 걸 기다려 워커 실트가 전해 준 시계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천문석은 적당히 대답했다.

“이것저것.”

“그럼 저희와 같이 일해 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김 대리?”

“넵! 여기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서류 가방에서 나온 종이가 최 팀장의 손에 들려 내밀어졌다.

“와, 너 또 참전 서약서야? 아직도 포기 안 한 거야!?”

“그럴 리가요! 믿음, 정직, 신뢰! 제 신조입니다! 참전 서약서는 마혁진으로 깔끔하게 해결됐습니다! 자, 직접 보십시오! 절대 참전 서약서가 아닙니다!”

최 팀장이 자신 있게 내민 서류에는 다섯 글자만 손으로 적혀 있었다.

[외주 계약서]

“…….”

천문석은 외주 계약서를 쏙 뽑아내 글자 부위를 내력이 담긴 손으로 쓱쓱 문질렀다.

“앗 잠깐……!”

최 팀장이 다급히 손을 뻗는 순간 하얗게 말라붙은 수정액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고 그 아래 숨어 있던 인쇄된 다섯 글자가 보였다.

[참전 서약서]

하하하하하-

천문석은 진심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 불굴의 의지를 보라!

칠성파 보스 마혁진을 제물로 넘겼는데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았다!

대한민국에는 검은 폭풍과 1세대 헌터들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여고생 유희연!

복숭아 통조림을 먹으며 감격하는 한호석 병장!

어느새 서류 가방을 등 뒤로 숨기고 튈 준비를 끝낸 김 대리!

그리고 마른오징어에서 물을 쥐어짜듯,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는 공무원!

국정원 최 팀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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