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84화>
가끔 그런 아침이 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어나 몸은 포근하고 머리는 시원한, 다시 태어난 듯 산뜻한 아침이.
지금이 바로 그랬다.
마치 자다가 환골탈태라도 한 듯한 상쾌한 기분!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았는데도 감이 왔다.
오늘 자신은 역대급 컨디션……!
‘어, 잠깐 이거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설핏 잠에서 깬 채 기억을 되짚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지를…….”
“뭔가 문제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한 목소리들.
‘나 잘 자고 있어. 조금만,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날…….’
마음으로 대답하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제가 깨워 보겠습니다! 소장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소장님!
검은 폭풍 이세영!
각성력의 그릇이 깨진 이세영 선생님!
“……!”
번쩍 눈을 뜨고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순간, 입안에서 엄청난 쓴맛이 확 올라왔다.
크웨에억-
혀가 떨어지고 뇌가 깨어나는 듯한 쓴맛!
“이세기 선생님!”
“괜찮으세요?!”
“물, 물……!”
“여기!”
다급히 물을 들이켜 입안을 몇 번이나 헹궈 낸 후에야 주위가 보였다.
최 팀장, 김 대리, 한호석 병장.
그리고 유희연에 처음 보는 얼굴과 밤하늘이 보였다.
“이분은……? 쿨럭-“
“제 언니예요.”
“안녕하세요. 동생을 도와주셨다고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아, 아까 말했던 유희명. 여기는……?!”
“비밀통로로 빠져나왔습니다! 잠시만 저랑 대화를!”
다급히 잡아끄는 최 팀장!
“야, 왜……?”
이 순간 보였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김 대리와 한호석 병장, 유희연과 유희명 자매의 시선이 향한 곳!
바닥에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꼬맹이와 이세영 선생님!
‘아차! 이세영 선생님!’
“이세기 선생님과 같이 발견된 소장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잠깐만!”
천문석은 최 팀장의 말을 끊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세기 님! 우리 소장님 어떻게 된 건가요?!”
“꼬맹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분명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본 것 같은데.
한호석 병장과 유희연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괜찮다! 나한테 방법이 있다!”
이세영 선생님은 그릇이 깨지고 각성력이 마르던 상황이었다!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은 시야를 하얗게 물들이던 섬광이다!
그 섬광에 상태가 악화되고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치료가 불가능할 수도…… 아니 지금은 상태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천문석은 불길한 생각을 떨치고 손목과 이마에 손을 올리고 기감을 일으켰다.
그리고 굳어 버렸다!
“……!”
“심각한 건가요?!”
“당장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을?!”
“잠깐 구급차는 안 돼! 김 대리, 그거! 방금 그거 확인했지?!”
“네, 포션 있었습니다! 아직 시제품이지만 1차 검증은 끝난…….”
……
천문석의 굳은 얼굴을 본 모두는 정신없이 말을 쏟아 냈다.
이 순간 입이 열리고 깜짝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왜 멀쩡하지?!”
“네?”
“그게 무슨?”
“이세기 선생님?”
모두의 황당해하는 외침은 들리지도 않았다.
금이 간 그릇과 말라 가던 각성력!
계단에서 만난 이세영 선생님은 게이트 전쟁의 영웅, 검은 폭풍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손목과 이마로 흘려 넣은 기감이 조금도 뻗어 나가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쿵쿵, 쿵쿵쿵-
맥을 타고 흐르는 활기와 기감을 밀어내는 반탄력!
그릇에 간 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말라 가던 각성력은 가득 채워졌다!
이세영 선생님의 육체와 내력은 환골탈태라도 한 듯 완전히 변해 있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문득 느껴지는 게 있었다!
각성력에서 느껴지는 친숙함!
“이거?!”
깜짝 놀라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기감을 밀어내는 각성력에 담긴 영기가 느껴졌다!
너무나 익숙한 영기(靈氣)!
각성력에 대환단의 영기가 담겨 있다.
누군가 대환단의 약력에서 영기를 뽑아내 각성력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2004년 게이트 전쟁이 한창인 부산에서 대환단을 구할 곳은 하나뿐이다.
‘내 대환단!’
반사적으로 잡낭의 지퍼를 여는 순간 깨달았다.
“……!”
대환단은 푸젠시의 난장판에서 수백 미터의 물기둥을 반으로 가른 남중국의 절대자, 원조 천검에게 넘겼다!
잡낭 안에 대환단은 없다!
‘뭐지? 어떻게 대환단을 쓴 거지?! 설마 원조 천검이 나타난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이곳은 남중국도 2020년도 아니다.
게이트 전쟁이 한창인 2004년의 부산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보였다.
지퍼가 열린 잡낭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었다!
눈에 익은 나무곽!
천검에게 넘긴 대환단을 담은 나무곽이다!
“이게 왜 여기에 있어?!”
설마 대환단만 꺼내서 넘겼나?
아니다! 분명 나무곽째로 던져 줬다!
어느새 손이 저절로 움직여 나무곽을 꺼내 열고 있었다.
나무곽의 틈이 벌어지자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향이 퍼져 나갔다!
‘설마, 설마! 설마!!’
그리고 완전히 나무곽이 열리는 순간 새끼손톱 크기의 대환단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20분의 1!
5% 남짓 남은 대환단!
이 대환단 조각을 보는 순간 촉이 왔다!
누군가 95%의 대환단을 사용해서 이세영 선생님의 각성력을 채웠다!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던 대환단을 이용해서!
* * *
“……!”
천문석은 경악으로 굳는 순간, 가슴 졸이며 이 모습을 보던 모두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최 팀장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검은 폭풍 이세영은 서울 수복 작전의 핵심이자 브레인이다.
한국 최강의 각성자 마혁진과 서울 거점의 헌터들이 아무리 많아도 검은 폭풍 이세영을 대체할 수는 없다!
‘제발, 제발……!’
최 팀장이 마음으로 기원할 때, 경악으로 굳어 있는 천문석의 머리는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었다.
검은 폭풍 이세영이 아니라. 대환단 생각으로!
자신이 얻은 대환단은 모두 2개다.
무림 던전에서 단혈철검 주호에게 받은 2개!
그중 하나는 절친 이세기에게 넘기고, 하나의 대환단만 가지고 지구로 돌아왔다.
그 대환단은 우여곡절 끝에 기동 병참 도시에서 공물로 바쳐 사라졌다.
그런데 푸젠시 난장판에서 잡낭을 열었을 때 공물로 바친 대환단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지금 잡낭 안에서 대환단이 다시 나왔다!
1/20만 남은 3번째 대환단이!
‘대환단이 왜 계속 나와?!’
자신도 모르게 활짝 열린 잡낭을 보는 순간.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용과 별이 그려진 검은 동전!
이 순간 번쩍 뇌리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대환단만 복사된 게 아니다!
무심코 넘겼던 기억!
검은 동전, 흑전!
분명 흑전을 푸젠시에서 만난 마혁진에게 계약금이라고 던져 줬다!
그런데 지금 잡낭 안에는 여전히 흑전이 있다!
분명 하나였던 흑전이 2개로 복사됐었다!
물건을 넣고 온 마음을 담아 흔들면 복사된다는 전설 속 외발 도깨비 상자처럼. 흑전이, 대환단이 복사됐다!
“……!”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벌써 세 번째다.
검은 동전으로 한 번, 대환단으로 두 번!
추리의 기본!
불가능한 모든 것을 제외하고 남은 하나가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진실이다!
믿을 수 없는 남은 하나!
‘내 잡낭이 외발 도깨비 상자가 됐다고?!’
그렇다는 건? 대환단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천문석은 잡낭 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또 다른 대환단은 없었다.
“없어! 왜 없지?! 앗! 그렇지! 흔들어야 하는 거구나?!”
파파파파팟-
잡낭을 풀어 미친 듯이 흔들고 다시 확인했다.
‘없다! 더 강렬한 소망을 담아서 흔든다!’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이야아압-!”
그러나 아무리 미친 듯이 흔들고, 소망을 담아 외쳐도 대환단은 복사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만 들려왔다.
“……그렇게 안 좋은 건가요?!”
“지금이라도 포션을 사용하는 게……!”
“구급차 부를게요! 지금 염동 대협님이 확인하러 나가셨으니까! 따라가서 공중전화로……!”
……
이야아아압-!
천문석은 목소리를 흘리며 기합을 지르며 잡낭을 흔들었다!
이때 흔들리는 잡낭을 잡는 손이 있었다.
최 팀장!
“이세기 선생님! 잠시만! 지금 소장님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 건가요?! 우선 말씀부터…….”
“멀쩡해!”
“네?”
“멀쩡하다고! 지금 몸 상태가 급격히 좋아져서 기절한 거다. 일종의 명현 반응이야! 내일이면 멀쩡하게 깨어날 거야!”
이야아압-!
대답을 끝낸 천문석은 다시 잡낭을 흔들었다.
“……할 수 있다! 복사가 된다!”
“…….”
이 모습을 멍하니 보던 김 대리는 다급히 물었다.
“잠깐, 잠깐만! 지금 그 가방은 그럼 왜 흔드는……?!”
“영약이 복사됐어! 이 가방이 외발 도깨비 상자가 됐을 가능성이 높아! 이야압! 얍얍얍-!”
“…….”
“…….”
최 팀장과 김 대리의 허탈한 시선이, 기절한 특임 소장과 잡낭을 흔드는 이세기를 오갔다.
‘뭐지, 이 정신 나간 외침음?’
‘기절했다가 깨어나시더니 정신이 좀 나간 거 아닐까요?’
이때 들려온 외침이 천문석을 멈추게 했다.
“꼬맹이! 일어나 봐!”
“정신 차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세영 선생님 옆에 기절한 소년이 보였다.
아차! 이세영 선생님에게 집중하느라 깜빡했다!
잽싸게 손을 뻗어 맥문을 짚고 신체를 확인했다.
맥과 호흡 모두 정상이다.
“걱정할 거 없어. 그냥 피곤해서 잠들었을 뿐이야. 억지로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날 거다.”
“하아-.”
“다행이네요.”
유희연, 유희명 자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천문석은 정신을 잃은 꼬맹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얘 왠지 분위기가 낯익은데…… 아, 철수 형!”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유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얘가 제가 말한 김철수예요.”
김철수!
설마, 철수 형의 어린 시절?!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꼬맹이 김철수를 샅샅이 훑었다.
연령대는 얼추 철수 형이 맞다!
그러나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고개가 저어졌다.
“아무리 어린 시절이라도 철수 형이라기에는 너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유희연이 질문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순간 간단한 확인 방법이 떠올랐다.
꼬맹이 김철수를 아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혹시 김철수 얘, 보육원에서 사냐?”
“아뇨. 우리 집 옆집에 살아요. 아까 말씀드렸는데, 아버지랑 둘이서 컨테이너 하우스 사는 아이라고…….”
대답을 듣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이미 철수 형이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그러나 어쩐지 철수 형과 비슷한 분위기에 깜빡하고 다시 물었다.
“하긴 철수 형이라기에는 너무…….”
……잘생겼다!
천문석은 뒷말을 속으로 삼키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피로에 축 처진 어깨와 피곤이 가득한 얼굴!
짙은 다크서클과 수면 부족으로 휑한 얼굴이야말로 대학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억하는 철수 형의 상징이다!
그러나 눈앞의 꼬맹이 김철수는 완전히 달랐다.
짙은 눈썹과 곧은 코!
호쾌함이 느껴지는 얼굴선!
아직 어린 얼굴만 봐도 잘생김이 흘러넘쳤다.
이대로만 자라면 상위 0.001% 연애 생태계 파괴자가 될 싹이 보였다!
철수 형과 달리 말이다!
‘카캬카카캌-’
속으로 웃음을 삼키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아니지! 철수 형도 상위 0.01%구나!’
철수 형은 허세인, 강화영. 두 사람과 현실 러브 시그널을 찍고 있다!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재벌 2세 허세인과 제주도 최고의 땅 부자 임옥분 여사님의 손녀 강화영과 양다리를 걸친 거다!
그렇다!
철수 형도 연예 생태계 파괴자였다!
너무나 슬프게도 포식자가 아닌 피식자였지만 말이다!
예능이 왜 재밌을까?
현실에서 보기 힘든 자극을 주인공이 아닌 관객 입장에서 체험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된 예능에서 주인공이 되는 순간 찾아오는 건 재미가 아닌 고난이다!
스마트폰이 뜨끈뜨끈해질 때까지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철수 형처럼!
천문석은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철수형과 이름이 같은 꼬맹이 김철수에게 조언했다.
“넌 자라서 꼭 포식자가 되라. 절대 현실 러브 시그널 같은 거는 찍지 말고.”
카캬카카카캌-
천문석은 모든 근심이 날아간 듯 호쾌하게 웃었다.
이때 유희연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세기 님 괜찮으세요?”
“……나?”
“네. 저기 군인분이랑 꼬맹이 김철수, 모두 아직 안 깨어났는데, 이세기 님만 정신을 차리셔서…….”
“……!”
이 순간 머릿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렇다! 복사된 대환단! 철수 형과 비슷한 꼬맹이 같은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유희연의 말이 맞다!
자신은 이렇게 멀쩡하면 안 된다!
섬광이 터지고 정신줄을 놓았을 때는 열리기 직전이었으니까!
천강흔 랜덤 박스!
반사적으로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